늦게 낳으려면 손위의 형제들도 늦게 낳을 일이지, 장장 이십 삼년이나 차이가 나는 큰 아들은 왜 그렇게 일찍 낳으셨나 싶었다.
“이리로 와서 앉아!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오빠 그게 아니고요……”
“고모, 너무 했어요. 이 시간까지 결혼도 안 한 아가씨가 집에 안 들어온 건……. 큰오빠 지금 화 무척 많이 났으니까 얼른 잘못했다고 하세요.”
세상의 그 어떤 부창부수도 이렇게 완벽할 순 없었다. 엄마뻘에 가까운 큰 올케는 오로지 대꼬챙이 같은 아버지를 꼭 빼닮은 큰오빠를 이해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당장 내일 짐 싸!”
“오빠!”
“가연이 결혼할 때까지는 봐 주려고 했는데, 네가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 두 눈으로 확인한 이상 더는 안 돼. 네가 미꾸라지 새끼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 내가 곱게 물러날 줄 알았어? 내일 오전에 네 올케가 와서 짐 옮길 테니까 그리 알아.”
“오빠!”
“왜, 이래 놓고도 할 말이 있어? 말만한 계집애가 새벽이슬을 밟고 다니다니 대체 이게 말이 되는 짓이야? 할 말 있음 어디 한 번 해 봐.”
할 말이야 많지요. 남들은 독립한다고 몸을 비틀어댈 나이에 다른 사람도 아닌 큰오빠 손에 끌려들어간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요. 가연이가 결혼해서 이사를 가도 저 혼자 사는 데에는 아무 무리 없다니까요. 삼 년이 가깝도록 혼자 사는 동생을 지켜보던 오빠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함께 살아야 한다고 우기면서 찾아만 안 온다면 집에 일찍 들어온다니까요……
“저……”
“말을 해, 말을. 계속 이러고 살겠다는 거야, 뭐야?”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야? 인제에 전화해서 부모님 올라오시라고 할까? 할 말 있으면 해 봐.”
“저…… 짐은 제가 싸야죠.”
비굴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상이 살던 집터가 향교 자리였는지, 유교적인 전승에서 한 치만 어긋나도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은 큰오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간 당장 회사를 그만 둬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오빠, 저 안 들어가면 안 될까……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이게 잘 지내는 거야? 어디 다 큰 처자가 열한 시가 넘도록 집엘 안 들어와? 지금 이게 하루 이틀 일이야? 네가 서울에 올라와서 가연이한테 얹혀살겠다고 했을 때, 오빠 집에 방이 없어 허락한 거지 마음이 내켜서 허락한 게 아니야. 내가 그 시간 동안 하루라도 편하게 잠을 잔 줄 알아? 익은 음식이나 다름없는 계집애를 객지에 보내놓고 마음 졸이실 부모님 생각에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어. 긴 말 필요 없으니까 당장 내일 집으로 들어와.”
일순 세상을 불 밝히고 있는 모든 조명들이 점멸한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안 오려고 머리를 굴린 것도 순전히 큰오빠 때문이었다. 서울로 올라왔다간 아버지에게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큰오빠의 굴레에 갇힐게 뻔 해,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굴려가며 춘천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낸 그녀였다. 거처는 당연히 기숙사였다. 자취니 하숙이니 하는 말을 꺼냈다간 아버지의 우악스런 손에 뒷목을 잡힌 체 당장 집으로 끌려갈 판이었다.
“난 죽은 거야…….”
다른 생각을 했다간 당장 회사를 그만 두게 만들겠다는 엄포와 함께 큰오빠 내외가 떠나고 나자, 은혜는 털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튼 가만 보면 너희 집도 진짜 별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나 네 큰오빠만 보면 지금도 무서워서 소름이 돋는 거 아니? 무릎 안 꿇고 앉으면 난리날 것 같고……”
“가연아……”
“?”
“너 정말 나쁜 년인 거 알지?”
“이것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렇지, 결혼하는 친구더러 나쁜 년이 뭐야? 그러지 말고 이참에 너도 시집이나 확 가 버려. 그럼 너희 오빠 안 저럴 것 아냐?”
“그러다 저 아저씨하고 똑같은 남자 만나면?”
“야! 아무나 저러는 줄 아니? 우리 세대엔 너희 집안 남자들 같은 사람 눈 씻고 찾아봐도 못 만나. 이게 숙명이다 생각하고 그냥 살던가, 아님 결혼해 버려. 내가 중현씨한테 부탁해 볼까?”
“휴.”
“그냥 이대로 살래? 큰오빠 집에서 같이 살면 네 인생 끝장나는 거라며?”
“결혼을 해도 저 아저씨나 아버지가 하라는 사람하고 해야 할 걸.”
“헉! 말도 안돼!”
“홍가연! 수십 년을 지켜보고도 모르겠니? 우리 집안에 연애란 없어. 가발 공장에 자원봉사를 할 마음이면 몰라도.”
“둘째 오빤 연애결혼이라며?”
“아들이잖아! 년이 아닌 놈! 몰라?”
“하하하. 보면 볼수록 웃겨. 아들은 사람이고 딸은 사람 아니래? 딸만 셋 낳은 우리 엄마 들으시면 뒤로 넘어가겠다.”
“우리 집에서 딸은 사람 아니야.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존재지. 우왕~ 가연아, 나 어떻게 해?…… 너 그 결혼 무르고 나랑 같이 살면 안 될까?…… 우리 멀리 멀리 도망가자, 응?”
생각할수록 갑갑증이 이는지 두 다리마저 쭉 뻗은 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은혜를 내려다보던 가연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답이 없다, 답이 없어.”
“답 좀 만들어 봐. 나쁜 년이라고 안할게, 나 좀 어떻게 살게 해 줘봐라. 응?”
잠시 심난한 표정으로 미간을 문지르던 가연이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잔뜩 안고 나왔다.
“야, 답 좀 달라는데 맥주는 왜 가져와?”
“답은 하나야.”
“뭐?”
진지함이 서린 가연의 표정에 은혜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이거 마시고 오늘 밤에 확 죽어버려. 냉장고 안에 아직 잔뜩 있으니까 죽을 때까지 마셔.”
친구랍시고 아무 도움도 못 되는 가연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가연의 말을 믿어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괜한 오기는 부리는 게 아니었다. 새벽녘까지 들이부은 맥주 때문에 아침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은혜는 연신 걸려오는 올케의 전화에 왈칵 짜증이 일었다.
“간다니까요!”
[퇴근하면 어디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요. 아가씨, 퇴근 몇 시예요?]
하루 사이에 큰오빠의 집이 왜 자신의 집으로 둔갑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제가 알아서 간다니까요!”
[여차하면 큰오빠가 고모 회사로 차 보낸다고 했단 말이에요.]
“헉!…… 언니, 저 여섯 시에 퇴근하거든요. 집에 가서 짐 챙겨가지고 가면 늦어도 아홉 시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갈 수 있으니까, 오빠한테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해 주세요. 네?”
“오전에 짐은 거의 다 옮겨다 놨으니까 사소한 것들만 챙겨오면 될 거예요.”
“끙.”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버젓한 성인인데, 남의 짐을 멋대로 옮긴 오빠 내외에게 한 바탕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팔아도 집안에서 팔아야 할 쪽이었다. 이제껏 멀쩡한 얼굴로 ‘나, 잘 살아요‘ 하면서 다닌 회사에서 그런 쪽을 팔수는 없었다. 친구 집에 얹혀사는 처지에 책상이니 옷장이니 하는 부피를 차지하는 살림살이를 마련한 적은 없지만, 머리털이 나고 처음으로 마련해 본 사적(私的)인 물건들을 멋대로 건드린 오빠 내외에 대한 불만이 은혜로 하여금 신음을 흘리게 만들었다.
“은혜씨, 오늘 어디 안 좋아? 안색이 영 아니다.”
옆자리에 앉은 에디터 하나가 물어왔지만, 은혜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통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일 수밖에.
이제는 영원히 큰오빠의 집에서 머물 날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비록 한 달이라고 해도 그건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일곱 시 귀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던 은혜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에 묻어난 냄새를 킁킁댔다. 시큼한 맥주 냄새가 긴장으로 달아오른 후각을 파고들었다. 저녁때까지 냄새가 가시지 않을 일은 없겠지만, 은혜는 벌써부터 큰오빠의 노한 눈초리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태진이, 너 고모 방에 책 정리하는 것 좀 도와줘라.”
“……. 푸하하하,”
마뜩찮은 표정으로 어머니 수란의 말을 듣고 있던 태진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따금 나타나 주변 정리를 안 되게 만들던 꼬맹이 고모와 한 집에 살게 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또 한 소리 듣고 싶어? 괜히 고모한테 장난치지 말고 잘 해.”
“우습잖아요. 하하하.”
겅중하게 큰 키가 흔들리도록 웃어대던 태진은 결국 수란에게 등짝을 한 대 맞고 난 뒤에야 웃음을 거두었다.
“애가 왜 오늘따라 왜 이래? 가뜩이나 아버지 기분 안 좋으니까 큰소리 내지 말고 어서 고모 방으로 가.”
넉살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성격이 좋은 것일까. 제 엄마가 그렇게 정색을 하는데도 태진은 연신 키득대고 있었다.
“갑시다, 고모.”
넌 비웃을 수나 있지만 난 온통 눈앞에 캄캄하단다, 이 바보 같은 조카야…….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서있는 올케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은혜는 태진을 따라 이층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웬 책이 이렇게 많우?”
돌이켜보면 늘 이런 식이었다. 제사 때나 명절 때면 어김없이 겪는 일이었다.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엉성한 대화체. 이십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어색함은 버렸다 치더라도 불편하긴 은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갑이나 돼야 말을 놓지, 이건 두 살이나 많은 조카에게 그랬니, 저랬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모씨, 이 책 다 봤수?”
“조카씨, 고모씨 지금 기분 무지 우울하거든. 건드리지 말고 짐이나 챙겨.”
“푸하하하……. 미치겠다. 우리 이런 대사 매일 주고받아야 하는 거유? 태희가 부럽다……”
“태희, 어디 갔어?”
그러고 보니 대학원에 다니는 작은 조카가 안 보이는 것 같았다.
“세미나 갔잖아. 교수가 자기 이름 걸고 책임진다고 해서 겨우 보내 준 거지.”
은혜는 그 교수가 백이면 백 여자라는 사실에 목숨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 혹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있는 제삿날이면 곧 터질 것 같은 살벌함으로 눈치를 살피게 만들던 큰 오빠를 생각하면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체념적인 마음이 드는 것도 같았다. 적어도 이 집에서 지내는 이상, 가문에 누를 끼치기로 작정을 한 ‘못된 것’취급을 받는 일은 없을 테니까. 출가도 하지 않은 여자가 집을 떠나 있는 것을 두고 오빠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천하의 호로 자식이나 하는 짓이라며 매번 눈살을 찌푸리곤 했으니.
하지만 자조적인 체념도 잠시, 은혜는 두 살이 많은 큰 조카와 네 살이 적은 작은 조카와 어떻게 매일처럼 얼굴을 맞대고 지낼 수 있을지 심난했다. 아버지!……. 다시금 칠순을 넘긴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새록새록 배어나왔다.
“고모씨, 회사가 어느 쪽이야?”
“강남.”
“인터넷 서점이라고 했던가?”
“비슷한 거.”
“비슷한 건 뭐야?”
태진의 말에 일일이 대꾸하기 싫다는 듯, 짐 가방 하나를 부지런히 뒤진 은혜가 커다란 브러셔 한 장을 꺼냈다.
“이게 뭐야?”
“문맹이야? 읽어 보면 되잖아.”
“위너북? 어, 고모씨 여기 다녀?”
“응”
“우리 회사 바로 옆이잖아.”
“헉!”
“인텔 빌딩에 있는 거 맞지?”
집에서 보는 것만으로 부족해서 늙은 조카를 회사 근처에서까지 보게 된다는 건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나 대신 그룹에 있잖아. IOU라고 들어봤지?”
“과자 만들어?”
“하하하. 제과 회사에 다니면 죄다 과자를 만드는 건가? 아무튼 재밌겠는 걸. 점심은 주로 어디서 먹어? 인텔 빌딩 안에 사내 식당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