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톡!”
진하는 잠결에 휴대폰 메신져의 알림을 들었다. 습관적으로 손을 뻣어 폰을 찾는 시도를 했지만 폰이 손에 닿는 느낌이 없다. 몸을 뒤척이며 폰을 찾으려 팔을 움직여 봤지만 바닥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분명 침대에서 자는 중이었는데 팔에 아무것도 닿는 느낌이 없다. 분명 자신의 손에 잡혀야 할 휴대폰도 찾을 수 없고 그게 놓여 있어야 할 바닥도 느껴지지 않는다.
진하는 경험한적 없는 기묘한 느낌에 잠에서 깼고, 정신을 차린 후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느낌을 받으며 기겁했다.
“깨톡!”
다시한번 들리는 메신져의 알람 소리.
‘아니 아니다. 귀에 들린 게 아니야.’
‘뇌에 직접 신호가 온 기분이다. 텔레파시 같은 게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대체 뭐 야 이거?”
진하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자신이 말도 안되는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깨 달았다.
진하가 눈을 뜬 곳은 빛이 없었다. 공기도 중력도 없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텅 빈 공허의 공간. 아무것도 없는 무 의 공간.
게다가 이 공간에 대한 인식은 진하가 실제로 느낀 것도 아니었다.
지금 이 곳에는 온갖 감각과 정보를 전해줄 육체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한 명의 인간인 진하를 인지하게 하는 인격의 정보만이 이 공간 안에 덩그러니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렁이는 구체의 형태로 된 자신의 형태가 느껴진다.
사람의 뇌가 통째로 컴퓨터로 백업되고, 감각 기관들을 대체해줄 신호만 존재한다면 이런 기분 일까?
보통 사람이 이런 경험을 한다면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 틀림 없지만, 진하는 침착하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건 꿈속인가? 아니면 내가 죽은 건 가? 가위라도 눌린 거면 차라리 다행 일 텐데..”
진하는 오감을 전달해 주는 육체가 없지만 그 보다 훨씬 뛰어 한 인지능력이 발휘되고 있음을 깨 달았다.
눈이 없지만 아무리 먼 곳이라도 볼 수 있었다.
피부가 없지만 아무리 미세한 자극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눈앞에 모래 한줌이 있다면 그것의 정확한 무게와 입자의 개수조차 알아 챌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런 초 인지능력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공허(=무)의 공간조차도 인식 했다.
전지적인 인지능력이 생긴 지금 그 것으로 어떤 것도 없다는 것 만을 느낄 수 있는 상태.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진하의 앞에 거대한 액정 화면이 나타났다.
"깨톡!"
액정에서 익숙한 메신져 알람 소리가 들렸다.
아니 소리를 전달할 매개체인 공기가 존재하지 않으니 들렸다고 느꼈을 뿐 이고 진하는 그냥 그런 정보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직접 뇌에 신호가 오는 느낌 같기도 하고..”
눈앞에 있는 화면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공간이 진하에게 그런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진하는 그저 소리가 난 다음부터 그것을 인지 할 수 있었고, 본 다라는 의념의 결과로 그것을 본 것과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뿐 이었다.
마치 전자 세계에 갇힌 것 같아.
기묘한 상황을 요약한 진하에게 액정화면이 소리와 글자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진하는 액정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용사님!!!! 우하핫 드디어 깨어나셨다!"
"..이 용사님 영 굼뜨네. 우리 앞으로 고생좀 하겠는데?"
"용사님 정신이 드시나요?
차원을 이동하고 영혼을 따로 추출하는 과정에 백치라도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
진하의 눈앞에 떠 있는 저화면은 스마트폰 메신져 깨톡과 비슷한 것 같다.
화면 구성도 그 용도도. 진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거 완전 개 꿈이네.'
아니 이렇게 생생한 느낌에 꿈이라고 인지까지 했는데 깨어나질 않는 것을 보면 가위라도 눌린 게 아닌가 싶다.
진하는 우선 메신져 화면에 채팅을 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인사를 한 사람은 총 세명이고 모두 여자로 보인다.
진하가 프로필을 터치한다는 의념을 보내자 각자의 프로필 영상이 담긴 화면이 하나씩 뜨기 시작한다.
시간의 요정 리플
용사님의 시간을 되돌려드려요.
읽고나자 프로필 영상이 플레이 되기 시작했다.
풍성한 생 머리는 옅은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머리 한쪽에는 희고 커다란 꽃을 꼽고있다.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에 까만 눈동자.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귀여운 얼굴에, 짙은 회색의 드레스를 입고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그 뒤로는 등에 반 투명한 날개가 희미한 빛무리를 사방으로 뿜어 내고 있는다. 날개 짓 없이도 공중에 떠 있는 것이 굉장히 신비로워 보인다.
150이 조금 넘을 것 같은 작은 키에 앳된 얼굴.
신비하게 빛나며 팔랑 이는 머리카락과 날개가 신비함을 더해준다. 귀여운 인형같은 느낌의 소녀 영상은 마치 실제처럼 느껴지고 있다.
“와 오지게 귀엽네.. 진짜 인형같다. ”
액정을 바라보는 진하에게서 그런 의념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프로필 영상의 소녀가 진하 쪽을 바라보며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쿵
'헐..심쿵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구나.'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은근히 귀여운 동물들을 좋아하던 진하였다. 귀여움을 집대성한 것만 같은 리플이란 요정의 영상을 넋을 잃고 쳐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윽. 난 대체 꿈에서 뭐 하는 거지? 하하.”
꿈에서도 민망함을 느낀 진하가 두번째로 인사한 사람의 정보를 터치했다.
전투의 요정 베티
용사님의 전투교육 담당
마찬가지로 프로필 영상이 플레이 된다.
20대 중 후반?
성숙 해 보이는 매력을 가진 여성이 화면에 서있다.
170정도 되는 키에 차이나 드레스와 비슷한 긴 옷을 을 입고있다. 머리에 작은 모자를 썼는데 거기서 부터 내려온 망사가 얼굴을 반쯤 덮고 있다.
망사넘어로 보이는 얼굴은 꽤나 미인이지만 진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눈을 마주 칠 때 느껴지는 강렬함 존재감.
진하는 호랑이 앞의 강아지처럼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꼈다.
'..무섭다!!'
진하가 그렇게 생각하자 베티라는 프로필 영상의 여자는 씨익 웃으며 무서운 눈빛을 풀었다.
진하는 압박이 줄어든 것을 느끼고는 간신히 한숨을 쉬었다.
'휴..'
진하는 무서운 여자의 프로필을 옆으로 밀어두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여자의 프로필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 와서 확인해 보았다. 채팅창과 3개의 프로필 화면은 생각하는대로 위치가 바뀌는것이 굉장히 편리했다.
공간의 요정 엘
공간유지 담당.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이 여자도 미인이다. 제복 같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는 엘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광장히 딱딱하고 사무적인 표정으로 서 있다.
'혹시 이 사진들 나한 테 반응하나?'
앞서 두 프로필 영상이 자신에게 반응 하는 걸 기억한 진하는 자신을 보고있는 공간의 요정 엘 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안녕?"
실제로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진하의 생각이 의념이 되어 전달된다.
그러자 사진속의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꾸벅 인사를 했다.
오 맞네 제대로 리액션 도 해주고.. 이거 굉장히 이상한 꿈이네 하하.
그런 생각을 할 때쯤 화면속의 여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말하는 것이 그대로 채팅창에 써지고 목소리나 억양도 인지된다.
"반가워요. 용사님. 전 공간의 요정 "엘" 입니다. "
"갑자기 이런 곳으로 소환되어 놀라셨죠? "
"이 곳은 제가 시공의 틈 사이에 만든 이공간 이 에요."
진하가 얼떨떨한 기분으로 인사를 했다.
"어..그 그래 안녕?"
"근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용사? "
"그리고 이 공간이면 뭐.. 다른 세계를 말 하는 건가?"
"네 비슷해요. 우린 마왕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저기에 전투담당 요정 베티가 용사님을 성장 시켜줄 거 에요."
"어 뭐? 그.. 자 잠깐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말해봤자 전혀 이해가 안되거든?"
전투의 요정 베티가 진하를 보며 웃었다. 약간 비웃는 느낌이려나?
그리고는 공간의 요정 엘이 여전히 사무적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렇겠군요.
그럼 하나씩 설명 해 드릴께요.
지금 마왕이 <멸망의 의식>을 진행 중 입니다.
앞으로 5분! 그 안에 막지 못하면 세상이 끝장 나 버려요.
그래서 우린 시간이 멈춘 이곳에서 마왕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그 과정에 용사님을 소환 한 거 에요.
이해가 되 시나요? "
'아 그러니까 이 꿈 설정이.. 무슨 마왕 잡으려고 날 소환한 그런 설정 인가보군.'
'그런데 5분안에 마왕을 잡아야 한다고? 보통 마왕 이라는 건 끝판왕 같은거 아냐? 시작부터 5분안에 잡는게 가능 한 건 가?'
진하는 5분 이라는 설정이 좀 어설프다 싶었다.
"음.. 그러니까 너희가 날 여기에 소환했다고?
게다가..뭐..멸망까지 5분? 그 안에 마왕을 잡을 수 있다는 거야?"
진하가 그렇게 묻자 처음에 인사한 시간의 요정 리플이 대답을 했다.
"네네! 힘들지만 그 안에 마왕을 잡아야 해요!
혹시나 용사님이 마왕에게 죽더라도 제가 시간을 돌려서 살려 드릴 테니 걱정 마시구요~~
음~ 그러니까 용사님이 진짜로 죽을 일은 없지요! 헤헷 "
"아. 그러니까 저 귀엽게 생긴 시간의 요정 이라는 건 내 세이브 포인트 같은 건가?
죽기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진하가 다시 묻자 공간의 요정 엘이 뭔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대답했다.
"세이브 포인트라면...아..음..그런 뜻 이군요.
네 뭐 결과적으로 비슷 하겠군요.
여긴 용사님이 지구에서 하던 게임세계가 아닌 거랑 실제로 죽을 수 도 있다는 걸 제외 하면 말이죠."
채팅창에 글이 올라오지만 옆에 띄워 놓은 저 홀로그램 프로필의 영상이 동시에 말 도 한다.
소리까지 들리니 마치 실제 같다.
'게다가 홀로그램 치고는 비정상적으로 사실감이 높고 말이지.'
'이건..설마? 쟤들 만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진하는 자신에게 말을 하는 공간의 요정 엘에게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실제로는 손이 없지만 그러고자 하는 의념은 확실히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촉감이 느껴졌으니까.
"헐..이 감촉은!? "
"와 이 꿈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