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해와는 반대로 도무연의 눈은 더욱 번들거리며 징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고여해의 흔들리는 눈길을 읽은 것이다. 찌르고 베어오던 강차의 힘이 조금 전과 같지 않았다.
‘이놈은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이 생겼다.
“대충 끝내. 아니면 네놈 몫의 감자는 없다.”
불가에서 흙을 털어내며 감자를 으적거리고 있던 사도치가 우물거리며 던진 말이 고여해의 신경을 극도로 긁어 놓았다.
울화통이 폭발한 순간 냉정함은 깨져 버렸고, 저도 모르게 어깨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자 강차의 영활함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걸 눈치 채지 못할 도무연이 아니다.
고여해가 찔러 넣는 강차를 팔뚝에 고스란히 맞으며 와락 다가선 그가 당황한 놈의 머리통을 노리고 힘껏 쇠사슬을 내려쳤다.
고여해는 도무연의 팔뚝에 박아 넣은 강차에 힘을 주어 비틀 여유가 없었다. 그랬더라면 아무리 무쇠 같은 팔뚝이라도 여지없이 찢기고 부서졌을 테지만 그 순간 제 머리통도 박살날 것이니 그렇다.
그는 급히 강차를 회수해 머리 위에서 교차시키며 쇠사슬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팔목이 부러지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힘 하나는 정말 곰 같은 놈이었다.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도무연이 씩 웃었다.
고여해의 눈에 언뜻 낭패감이 어렸다. 도무연의 깍지동이 같은 다리가 자신의 텅 빈 복부를 노리고 맹렬하게 차오고 있었던 것이다.
고여해는 호흡을 멈추고 아랫배에 필생의 공력을 불어넣으며 기문혈(氣門穴)을 닫았다. 최대한 충격을 흡수하고 버텨 볼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허사였다. 도무연의 힘은 두려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한 것이었다.
펑! 하고 가죽북 터지는 것 같은 굉장한 소리가 났다. 사도치가 고개를 돌렸다. 고여해의 눈에 감자를 우물거리고 있는 사도치의 얼굴이 가득 들어왔다.
그리곤 곧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그의 몸이 공처럼 둥글게 말린 채 허공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이 아득해져 가는 귓가로 씩- 하는 무디고 섬뜩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밤하늘이 일시에 폭발해 버린 듯, 눈부시게 밝고 뜨거운 빛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왔다. 그것이 끝이었다.도무연이 허연 뇌수가 묻어있는 쇠사슬을 끌며 첨벙첨벙 개울을 건너왔다.
사도치는 어둠 속에서 걸어나오는 지저(地底)의 악귀가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악귀가 사도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저기 수십 군데나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도치의 손에서 남은 감자를 빼앗았다.
“괜찮냐? 꽤 아플 텐데…….”
사도치가 감자를 건네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도무연은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콧김만 씩씩 내뿜고 있었다.
‘너는 뭐 멀쩡한 줄 아냐?’
흘겨보는 눈으로 대꾸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도치가 쓰게 웃었다. 자신의 몰골도 그보다 나을 건 없었던 것이다.
몸 여기저기에서 뽑아낸 비도가 모두 일곱 자루였다. 그것들이 발아래에서 새파란 요기를 뿌리며 번쩍이고 있다.
‘저것들이 내 살 속을 구경한 물건들이란 말이지?’
사도치는 불빛을 반사하며 가지런히 누워 있는 비도 일곱 자루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센 놈들이었지?”
감자를 다 먹은 도무연이 너덜거리는 옷자락에 손을 쓱쓱 문지르며 확인하듯 물었다.
“전쟁터에서 굴러먹었던 솜씨들은 결코 아니야.”
“저놈들 정체가 뭐였을까?”
그들은 저희가 막충과 고여해에 대해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팔팔하게 살아서 숨 쉬며 목숨을 위협했던 자들이 어느새 과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산 자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질 뿐인 것이리라.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전장(戰場)에서의 현재는 다만 살아 있는 자들이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몫일뿐이다.
“자객이었겠지 뭐.”
사도치는 의식적으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랬구먼.”
비로소 알았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건지 도무연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부스스 일어났다.
눈을 끔벅이며 사도치가 손수건에 요기스럽게 빛나고 있는 비도 일곱 자루를 정성껏 싸 담고 있는 것을 바라본다.
그를 보며 사도치가 씩 웃었다.
“내 살 속을 구경하고 나온 놈들이잖아.”
“미친 놈.”
도무연도 풀썩 웃었다. 비도를 품안에 잘 갈무리한 사도치가 허리를 폈다.
“쓸 만 한 기술이었어. 한번 연구해 보려고. 이 칼들도 썩 마음에 들고.”
끝말은 벌써 저만치 개울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끌탕을 찬 도무연도 사도치를 따라 불길이 잦아들고 있는 모닥불가를 떠났다.
멀리서 희뿌옇게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
“무슨 소리야, 후퇴라니!”
금방이라도 칼을 뽑아들 듯 칼자루에 한 손을 댄 채 유칠이 으르렁거렸다.막장들은 모두 그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눌려 시선을 떨구었다.
사도치와 도무연은 장막의 한 구석에 무심한 얼굴로 서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에 뼈를 묻는 한이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유칠의 눈에서 퍼런 섬광이 이는 듯했다.
“하지만…….”
양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도 섬광이 일었다. 더 이상 끌려 다닐 수만은 없다는 각오가 단단히 되어 있는 것이다. 반군의 우두머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유육이다.
그리고 그는 유육의 부장 중에서도 알아주는 실세였다. 비록 유칠이 유육의 동생이고 반군을 이끄는 또 한 명의 지도자라고는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차석(次席)일 뿐이다.
양호는 그가 주장인 유육을 제치고 혼자 설치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통수권은 한 사람에게만 있어야 한다. 이 기회에 그걸 확실하게 해 두어야겠다고 결심한 양호가 당당하게 유칠을 마주보았다.
“이 목책은 비좁소. 겨우 일천 여 친위군만이 머무르고 있을 뿐, 나머지 병사는 모두 평원으로 내몰려 노숙을 하고 있소이다.”
“그래서?”
으르렁거리듯 유칠이 이사이로 물었다. 그러나 양호의 기세도 꺾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방패막이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요. 적의 철기가 들이치면 이 목책도 한나절을 지탱하지 못할 것이오.”
그건 유칠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목책 안에 비축하고 있는 식량과 물도 일천이나 되는 친위군이 먹고 마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물러설 수는 없었다. 유칠이 지그시 입술을 물고 노려보지만 양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벌써 며칠 째의 노숙으로 군사들의 사기도 떨어져 있소이다. 게다가 평원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적의 철기들에게 좋은 목표가 될 뿐이오.”
사흘 전에 첫서리가 내렸다. 대지는 점점 싸늘해져 가고, 밤바람이 칼끝을 닮아 가고 있는 계절이었다. 담요 한 장으로 언 몸을 감싸고 노숙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적당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더욱 입술을 악무는 유칠의 귓속으로 양호의 앙칼진 말들이 비수가 되어 파고들었다.
“한구로 물러서야 합니다.”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양호가 굳게 입을 닫고 유칠을 노려보았다.
“한구로 후퇴하자고?”
어이없다는 유칠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양호는 고개만 조금 끄덕였을 뿐이다. 유칠이 형 유육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돌부처처럼 꿈쩍 않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저 속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인지…….’
눈살을 찌푸리는 유칠의 머릿속에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관리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형과 함께 분연히 일어선지 어느덧 두 해.
유민들을 거두고 크고 작은 산적의 무리들을 아우르며 초적과 다름없는 행색으로 출발했지만 한때 이십만의 군세를 자랑하며 북경의 썩어빠진 조정을 두려움에 떨게 한 적도 있었다.
지난 이년 동안 크고 작은 싸움들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지금처럼 궁지에 몰린 적은 없었지 않은가. 입맛이 썼다.
유육은 일단 군사를 몰고 싸움터에 나서면 그 용맹과 힘이 항우나 여포 못지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단점은 우유부단하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의견이 일치되지 못하고 있을 때면 수장이 나서서 결단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막장들의 의견이 갈라져서 융합하지 못하면 그건 곧 군의 내분으로 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여전히 망설이고만 있는 유육을 보며 유칠은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여기서 더 물러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구(漢口)라니…….
장강의 하류에 있는 한구는 무한(武漢)과 닿아 있었다. 동남쪽으로 이백 여리나 떨어진 곳이다. 강서에 가까운 호북의 구석까지 후퇴한다는 건 곧 호북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자신들의 근거를 포기하는 일인 것이다. 한 번 그렇게 하고 나면 반군이 발붙일 곳은 대명 천하 어디에도 없게 된다. 유칠이 분연히 탁자를 쳤다.
“그건 안 돼!”
양호가 지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번쩍 들고 노려보았다.
“한구까지 물러서자니, 그곳에 배수진이라도 치자는 말이냐? 거기서 모두 물귀신이 되고 말자고?”
“그곳에서라면 장강을 타고 안휘와 강서 어디로도 갈 수 있소. 강서라면 북경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옛 오의 땅인 바, 요동의 철기들도 거기까지는 함부로 따라 들어오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안휘에는 두충의 무리가 웅거해 있소. 여의치 못하면 잠시 그들의 힘을 빌려 후일을 도모할 수도…….”
양호의 말은 유칠이 와락 뽑아든 칼로 인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유칠이 곧 양호의 목을 칠 듯한 기세로 새파랗게 날이 선 칼을 들어올렸다.
“두충의 무리와 결탁해 다시 도적이 되자는 말이냐!”
두충(杜忠)은 사회의 혼란을 틈타 안휘성을 무대로 약탈을 일삼고 있는 도적떼의 두목이었다. 그 무리가 수천 명에 달했는데 하나같이 흉포하고 잔인무도했다. 전형적인 도적떼였던 것이다.
유칠의 노기가 천장에 닿았다.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보며 제장들은 모두 긴장해서 어깨를 움츠렸다. 유칠의 호령이 군막을 들썩이게 하며 터져나왔다.
“옛날이 그리우면 네놈 혼자서 산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다시 산적질이나 하고 살자는 그따위 말은 용서할 수 없다!”
그러자 양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의자를 걷어차고 일어섰다. 그의 손도 칼자루에 닿아 있었다.
“그만!”
유육이 눈을 번쩍 떴다. 유칠과 양호는 서로를 노려보며 씨근덕거릴 뿐 더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도무연이 얼굴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닦아내며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사도치는 묵묵히 두터운 먹장구름으로 덮여 있는 하늘만 바라보았다.
가을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유육의 장막 밖에서 사도치와 도무연은 온몸이 젖은 채 벌써 한 시진이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유칠과 양호의 분위기가 위험한 수위에 달하고, 유육이 그들을 뜯어말리는 것까지는 장막 안에서 보았다. 새벽에 무사히 돌아온 사도치와 도무연의 척후 보고를 들은 장수들의 표정은 갖가지였다. 그들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토벌군의 엄정한 기세를 전해 듣고 두려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