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몽검마도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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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작성일 : 16-07-13     조회 : 478     추천 : 0     분량 : 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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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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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저런!”

 유칠이 안타까움에 발을 굴렀다. 아끼던 부장 둘이 변변히 싸움다운 싸움을 해 보지도 못하고 한꺼번에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그가 분노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장승처럼 서 있는 도무연의 모습이 눈에 꽉 차왔다.

 “도 위장!”

 소리쳐 부르자 도무연이 눈을 끔벅이며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이게 무슨 한심한 짓들이냐는 무료함이 묻어 있었다. 유칠은 그에게 왈칵 믿음이 쏠렸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저 멧돼지 같은 놈을 당할 수 있겠느냐?”

 “저까짓 것쯤이야…….”

 도무연이 군례도 생략한 채 심드렁하게 돌아서서 망루를 내려갔다. 생떼를 쓰는 귀찮은 조카 놈이라도 잡으러 가는 것 같은 모습이어서 유칠은 지금의 상황이 어떤 건지도 잠시 잊고 실소를 흘렸다.

 득의양양하여 왕상의 목을 안장에 걸고 다시 철편을 쓰던 자의 목을 취하려던 이군방이 말밥굽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온통 철사처럼 굵은 털로 뒤덮인 얼굴에 고리눈을 부릅뜨고 거친 숨을 씩씩 내뿜으며 도무연이 달려나오고 있었다. 그건 생전 처음 보는 괴이한 모습이었다.

 갑주도 없는 홑옷 차림에 붉은 전포를 휘날리며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무어라고 으르렁거리며 달려오고 있는 모습은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수라의 형상이 저러할까 싶었다.

 두원표의 진영에서도 탄성과 수군거림이 물결처럼 출렁였다. 이군방이 멍하니 그런 도무연을 바라보았다. 저 굵은 쇠사슬은 또 뭐란 말인가.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곧장 달려들고 있는 도무연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이군방은 우선 그의 용모에 질렸고, 다음으로 그의 기세에 질렸다. 싸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주춤 말머리를 돌리려고 할 때였다.

 “이 요동의 잡종 놈아!”

 어느 새 다가왔는지 천둥치듯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굵은 쇠사슬이 날아들었다.

 이군방이 얼떨결에 칼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그러나 무지막지하던 그의 칼은 수수깡처럼 댕강 부러져 버렸고, 그대로 날아든 주먹만 한 쇠사슬 끝에 얼굴이 박살났다.

 이군방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졌다. 일격에 상대를 넘어뜨린 도무연이 말배를 걷어찼다. 놀란 말이 울부짖더니 두원표의 진영을 향해 내달렸다.

 비탈에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굴러 내리듯이 말과 사람이 한 몸이 되어 그대로 적의 선두에 부딪쳐 가는 것이다.

 풀어든 긴 쇠사슬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바람개비처럼 휘돌았다. 넋을 잃고 있던 선두가 그 끔찍한 모습에 놀라 와르르 흩어졌다.

 순식간에 무너진 선두의 혼란이 선봉군 전체에 물결처럼 번져가기 시작했다. 두려움 없이 단기로 뛰어든 도무연이 쇠사슬을 휘둘러 두원표의 진영을 쑥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십여 명이 머리가 깨지거나 허리가 부러져 말에서 떨어졌고, 달아나느라고 뒤엉킨 말들이 아비규환의 소동을 일으켰다.

 그런 와중에 제법 용감한 자들이 도무연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허사였다. 일백여 근이 넘는 쇠사슬이 바람개비처럼 휘둘려지는 앞에서는 창검이 소용없었던 것이다.

 기병들이 말과 함께 으깨어져 나뒹구는 데는 그저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두원표는 기가 막혔다. 대체 저런 괴물 같은 놈이 있단 말인가.

 제가 자랑하던 철기가 아수라 같은 저 한 놈 때문에 삽시간에 둑이 터지듯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도무연이 맹렬하게 전진하고 있는 곳에는 그의 쇠사슬에 맞아 으깨어진 말과 사람의 육편들만 수북했다.

 쇠사슬이 미치는 범위에서 서로 먼저 벗어나려고 아우성을 치는 가련한 생명들이 있을 뿐, 그곳에는 이미 엄정한 군율과 질서를 뽐내던 요동의 철기는 없었다.

 두원표가 이를 악물었다. 이건 악몽이었다. 진중에 우뚝 세워져 있는 두원표의 깃발을 발견한 도무연이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원표의 곁에 있던 위사들이 장창을 세우고 도무연을 맞이하기 위하여 말을 달려나갔다.

 도망쳐오고 있는 자들을 창대로 후려쳐 길을 트며 곧장 도무연에게 달려가는 위사들을 보며 두원표는 다시 한 번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바로 이 때라는 듯, 목책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일천 명의 위사들이 짓쳐 나왔다. 선두에 서서 유칠은 대도를 휘두르며 목청껏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에 화답하듯 일천의 위사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말발굽소리가 낭야의 들판에 진동했다.

 넓게 벌려 서 있던 좌군과 우군의 보기(步騎)들도 두원표의 선봉군을 포위할 기세로 둥글게 진세를 벌려서 쇄도해 들기 시작했다.

 선두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철기와, 그때까지 주장(主將)의 명령을 하달 받지 못한 탓으로 일만의 요동 선봉군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 사이 선두를 다투듯 치달려 온 반군의 좌, 우군 전위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양쪽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진법이고 명령이고 필요 없는 난전(亂戰)이었다.

 일만의 요동군 선봉과 일만의 반군들이 드넓은 낭야 벌판에서 서로 뒤엉키고 만 것이다. 낭야 벌판이 시작되는 곳에 낮은 산이 하나 있었다.

 낭산(狼山)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써, 무당산과 함께 호북의 이대 명산인 대홍산 줄기가 거침없이 내달리다가 뚝 떨어뜨려 놓은 듯, 벌판을 깔고 우뚝 선 산이다.

 산의 규모는 작았지만 수림이 울창했고 바위들이 위엄 있게 솟아 있어서 야산치고는 산세가 험했다.

 그 낭산의 정상에 두 명의 인물이 바람에 표표히 옷깃을 날리며 서 있었다.

 그들의 발아래 펼쳐져 있는 넓은 낭야 벌판에서는 뽀얀 먼지를 날리며 수많은 군마들이 뒤엉켜 죽고 죽이는 일대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두 명의 인물은 한가롭게 경치를 구경하듯 그 싸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뜻한 백의에 백색 유생건을 두르고, 손에는 한가롭게 섭선 한 자루를 말아 쥐고 있는 선비풍의 젊은이와, 그의 노복인 듯 허름한 마의에 훌쩍 큰 키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서 있는, 나이를 짐작키 어려운 노인이었다.

 선비의 풍모는 단아하고 흠잡을 데 없이 준수했다. 한 눈에도 세도깨나 있을 법한 어느 사대부 집안의 귀한 공자인 게 분명했다.

 고색창연한 보검 한 자루를 아이처럼 품에 안고 있는 노인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맑은 정광이 일렁였다.

 “허어, 참으로 장관이로고.”

 젊은 선비가 섭선을 활짝 폈다가 다시 접으며 감탄했다. 대군이 서로 뒤얽혀 싸우는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듯했다. 선비가 동의를 구하듯 노인을 돌아보았다.

 “안 그렇습니까, 추노? 저런 장관은 처음입니다.”

 “노복도 그렇습니다, 공자.”

 추노라고 불린 노인이 공손히 대답했다. 선비가 섭선 끝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 자를 좀 보시지요. 참으로 보기 힘든 무용이군요. 옛적 항우도 저만은 못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추노가 선비의 섭선 끝을 따라 시선을 주었다. 그의 반쯤 감긴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정말 그렇군요. 염부의 나찰이 있다면 저러할까요?”

 “게다가 도검도 아니고 장창이나 극도 아닌 쇠사슬이라니. 대체 저런 걸 무기로 쓸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저런, 저런. 명군의 위사들이 또 쓰러지는군.”

 선비는 거듭 감탄하고 있었다.

 “훌륭한 재목입니다, 공자.”

 노인의 말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이 서려 있었다. 선비 또한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가게 한 것도 하늘의 뜻. 빠른 길을 택해 낭산을 버리고 구룡으로 돌아갔더라면 저 자를 보지 못했을 게 아니겠습니까? 허, 참으로 장한 사내로군요.”

 거듭되는 선비의 감탄을 들으며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기만 했다.그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젊은 공자가 이처럼 감탄하는 걸 처음 보았다.

 게다가 저 자는 무예를 연마한 자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반군의 장수일 뿐이다.

 비록 용맹이 절륜하다고는 하나 강호에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과는 별개의 세계에 속해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초탈해 있던 공자가 그자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의아했다.

 노인은 다시 한 번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곰 같은 자의 무용(武勇)은 놀라운 바가 있었다.

 노인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넓게 펼쳐진 왕중석의 본진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황토언덕 위에서 사도치는 이백 명 위사들을 거느리고 서있었다.

 말이 투레질을 하며 앞발로 땅을 긁었다. 사도치가 그런 말의 목을 두어 번 투덕거려 주었다. 전쟁터에서 자란 말들이다. 전장의 피 냄새를 맡고 흥분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치의 눈이 멀리 먼지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요동군의 선봉과 유칠의 반군이 드디어 얽힌 것이다. 어떻게 될 것인지…….

 사도치의 눈에도 도무연의 악귀 같은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워낙 큰 거구인 데다가 쇠사슬을 휘두르고 있는 터여서 아무리 난전 중에 섞여 있다고 해도 금방 눈에 띠었다.

 도무연은 앞을 가로막는 위사들을 거침없이 깨뜨리며 조금씩, 조금씩 두원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멀리서도 그의 쇠사슬이 검은 빛을 뿌리며 종횡으로 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한 마리의 커다란 구렁이가 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듯, 도무연의 쇠사슬은 먼지 속에서 그렇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쓸고 지나간 곳에서는 어김없이 선연한 피보라가 먼지와 뒤섞여 허공을 물들였다. 그것을 보던 사도치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물을 만난 고기가 따로 없군. 무식한 놈 같으니.”

 마음 같아서는 저도 이대로 말을 몰아 쳐내려가고 싶었다. 왕중석의 이만 진중을 이백의 경기병을 이끌고 좌충우돌하며 휩쓸어가는 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말의 배를 조이고 있는 다리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주인의 뜻을 읽었는지 사도치의 말이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금방이라도 땅을 박찰 듯 앞발로 번갈아 바닥을 긁어댔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말 목을 투덕거려 주면서 사도치는 기다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때가 오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황토언덕 뒤에 있는 야산에도 그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늙고 젊은 두 명의 도사였다.

 잡목 숲속에 서서 그들은 연신 감탄하며 저 아래 벌판에서 전개되고 있는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늙은 도사는 안색이 붉고 청수한 것이 신선의 모습이 저러할까 싶을 만큼 고고해 보였고, 그 곁에 선 젊은 도사는 순박한 얼굴에 맑은 눈을 가지고 있어서 세상을 모르는 산중인(山中人)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들은 무당(武當)의 현천자(玄天子)와, 허(虛)자 항렬(行列)의 막내인 죽(竹)이었다.

 무당의 현자 돌림 노도(老道)들은 당금 강호에서 소림(少林)의 혜(惠)자 항렬의 고승들과 함께 북숭남존(北崇南尊)으로 숭앙받고 있는 원로 격의 인물들이었다.

 강호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무당의 삼현(三玄)은 현도(玄道), 현문(玄門), 현천(玄天)이다.

 그 중 맏이인 현도가 장문이었고, 둘째 현문은 원무전(元武殿)의 전주였다. 그러므로 그 두 사람은 좀체 무당산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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