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몽검마도
작가 : 송진용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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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화
작성일 : 16-07-19     조회 : 520     추천 : 0     분량 : 5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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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기와 뒤엉킨 위사들이 필사의 투지를 발휘하며 싸우고 있었다. 위사 한 명이 적의 장창수가 내지른 창에 가슴을 꿰뚫렸다.

 그러나 말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들고 있던 철퇴를 내던졌다. 창을 뽑아내던 자의 머리가 터지며 함께 굴러 떨어진다.

 “장하다!”

 사납게 부르짖은 사도치가 다시 부드득, 이를 갈았다. 한눈에도 그를 따르던 위사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등을 보이거나 머뭇거리는 자는 없었다. 칼을 고쳐 잡은 사도치가 악을 쓰며 적병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훌륭하다.”

 자신의 발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전을 지켜보며 왕중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경기병 이백을 휘몰아 달려든 자의 용맹은 그가 여태까지 보아온 그 어떤 무장보다도 뛰어난 것이었다.

 반군의 진영에 저런 자가 섞여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유칠의 친위군과 자신의 이만 대군이 뒤엉켜 있는 평원의 복판에 가 있지 않았다.

 사도치의 놀라운 용맹이 그의 눈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재담꾼에게 밤을 세워가며 들었던 조자룡의 용맹이 생각났다. 품에 아두(兒斗) 아기를 안고 조조의 백만 대군 속을 무인지경 달리듯 했다던가.

 당양 장판파의 싸움 이야기를 가장 듣기 즐겨하던 왕중석이었다. 그 조자룡의 용맹이 저러했을까 싶게 적의 장수는 감동적인 무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섭정!”

 왕중석이 부장을 소리쳐 불렀다. 호출 당한 부장이 깜짝 놀라 갑주를 쩔렁이며 다가왔다.

 “적이지만 보기 드문 용자다. 가서 이름이라도 알아 오라.”

 잠시 어리둥절하던 부장이 곧 복명하고 상장군의 군영에서 달려 내려갔다.사도치는 핏발선 눈으로 다음 상대가 될 놈을 찾고 있었다.

 철기들은 더 이상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사도치의 말은 벌써 장창에 찔려 쓰러지고 없었다. 그는 말을 버린 채 이제는 두 발로 내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철기 하나가 장창을 번쩍이며 측면에서 쇄도해 들었다. 곧장 옆구리를 꿰어버릴 기세다.

 “흐흥!”

 코웃음을 날린 사도치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한 길 넘게 뛰어오른 그가 두 발로 연달아 말의 머리를 차내며 한 손으로 적의 장창을 말아 쥐었다. 머리가 깨진 말이 울부짖는 것과 함께 칼이 바람을 갈랐다.

 먼저 장창을 썩둑 갈라버린 그의 칼이 방향을 틀면서 더욱 힘을 싣고 적병의 목을 쳤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목을 잃은 자의 어깨를 차낸 사도치가 그 탄력으로 몸을 날렸다. 훌훌 허공을 날아 부딪쳐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박쥐같았다.

 “으헛!”

 다급한 경호성을 터뜨리며 창을 세우는 자의 어깨를 친 사도치가 냉큼 그자가 떨어진 말 위에 올라앉았다.

 졸지에 주인을 잃은 말이 사납게 투레질을 하며 발을 굴렀으나 사도치가 거칠게 고삐를 잡아채자 순순히 방향을 틀었다.

 말의 배에 박차를 가하는 사도치의 눈에 장수로 보이는 자 한 명이 말을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비켜라, 비켜라!”

 소리쳐 사도치를 가로막고 있던 철기들을 내몬 그가 선뜻 앞으로 나섰다. 허연 이를 드러내며 칼을 휘둘러오는 사도치에게 질렸다는 듯 그자가 두 손을 휘휘 내저으며 소리쳤다.

 “잠깐 멈추시오!”

 “뭔가, 싸우겠다면 칼을 뽑아라!”

 “아니, 아니. 나는 그대의 이름을 물으려고 왔을 뿐 싸우려는 게 아니오.”

 “이름?”

 사도치가 의아해하며 말고삐를 당겼다.

 “상장군께서 그대의 이름을 듣고 싶어 하시오!”

 사도치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찝찔한 피 맛이 혀끝에 묻어왔다.

 “사도치.”

 가슴을 펴고 자랑스럽게 말해 주었다.

 “가서 전하라. 곧 목을 가지러 갈 테니 거기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자가 말머리를 돌려 달려가는 걸 보며 사도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훑어보았다. 저를 따르고 있는 위사들은 이제 오십 기가 채 안 되어 보였다.

 “사숙, 저기 저 자를 보세요. 정말 대단하군요!”

 허죽이 손을 들어 사도치를 가리키며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신이 나서 들떠 소리쳤다. 현천자의 눈에도 사도치의 무위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놀라운 것이었다.

 유심히 그의 도법을 살펴보았지만 칼을 사용하는 강호의 어떤 문파에도 속하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타고난 힘과 야성. 그리고 그 위에 뛰어난 기세가 더해진 야적(野賊)의 칼부림 이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중한 수련을 쌓았을 변방의 정규군 중 어느 하나 그의 칼을 제대로 받아내는 자가 없었다.

 더구나 그의 도법은 힘이 넘치는 것이어서, 말과 사람을 한꺼번에 베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 정도의 도력(刀力)은 내공이 출중한 강호의 이름난 도객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어서 더욱 놀라웠다.

 “허, 괴이한 일이로다.”

 현천자는 눈살을 찌푸리고 사도치의 칼바람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의 끊임없이 솟구치는 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의 힘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내력을 쌓은 고수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그 한계가 더욱 빨리 찾아온다.

 그런데 사도치가 보여주고 있는 무위는 그런 상식을 뛰어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대도를 휘둘러 사람과 말을 베어 넘기고 있었지만 그의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사숙, 보세요. 철기들이 쌓은 벽을 거의 뚫었어요! 우와, 정말 놀라워요!”

 허죽이 손뼉까지 치며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현천자는 저 자가 보기 드물게 타고난 신력을 지녔거나, 아니면 어떤 기연을 얻어 범인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럴 수가 없는 일이다. 호기심이 더 커진 현천자는 유심히 사도치가 휘두르고 있는 칼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일정한 법식은 없었지만 그것은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가장 유용하고 효과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에 두려움 없는 용기와 과감함이 있다.

 그것이 마주한 자로 하여금 지레 질리게 하고, 그래서 기선을 빼앗긴다. 그 틈을 파고드는 그의 칼은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오랜 실전의 경험으로 몸에 배인 본능의 칼부림이었다.

 “허, 타고난 무골이로고.”

 현천자는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 불쑥 가르쳐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제자 받기를 귀찮은 일로만 여겨온 그로서는 뜻밖의 변화였다.

 “아, 저 쪽에도 기병(欺兵)이 있었네요!”

 허죽의 놀란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현천자가 전장을 바라보았다. 철기들이 눈에 띠게 무너지기 시작하자 날렵하게 무장한 오백 경기병들이 왕중석의 본영 뒤에서 불쑥 뛰어나왔던 것이다.

 선두에 선 젊은 장수가 현천자의 눈길을 끌었다. 한 자루 화극(華戟)을 끼고 매섭게 내달리고 있는 그자의 기상이 빼어나 보였던 것이다. 등에 꽂고 있는 깃발에 눈길을 준 현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동 양가장 사람이었군.”

 중원에 창법으로 이름난 가문이니 빼어난 인재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저 젊은 장수도 그들 중 한 명일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오래간만에 중원 제일창으로 꼽히는 산동 양가장의 창법을 견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으로 현천자는 전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 젊은 장수를 눈여겨보아라. 안목을 넓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현천자의 말에 허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누가 이길까요?”

 허죽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는 어느새 들판에 풀어놓은 한 마리 늑대처럼 사납게 날뛰고 있는 사도치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현천자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다. 양가의 정통 창법을 저 아수라 같은 자가 과연 당해낼 수 있을 지…….”

 이제 저를 따르는 위사들은 삼십여 기가 남았을 뿐이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철기의 벽은 아직도 두터웠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사도치는 그들을 뚫는다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한바탕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다.

 ‘그럴 수는 없다!’

 사도치가 이를 악물었다. 유칠의 뜻을 지키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말 위에서 목이 떨어져 죽을지언정 한 발이라도 더 왕중석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런 각오로 칼을 잡은 손에 불끈 힘을 주었을 때였다.

 “사 위장! 여기는 나에게 맡겨라!”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우레 소리처럼 들려왔다. 별군장 이필이었다. 난전 중에서 용케 몸을 뺀 그가 곧장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치는 반가웠다. 아직도 살아 있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원래 이천 기였던 별군 중 살아서 이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자는 고작 오백여 기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일만 선봉군을 무찌르고, 다시 이만이나 되는 적의 본진 속을 휘젓고 다닌 자들인 것이다.

 그러고도 아직 살아 있다. 그렇다면 우군과 좌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필과 그를 따르고 있는 기마들은 모두 피에 젖어 있었다.

 “장군은 무사하시오?”

 칼을 번쩍 들어 보인 사도치가 목청을 높였다.

 “곁에 도 위장이 있다. 아직 건재하시다!”

 역시 박도를 높이 들어 보이며 이필이 힘차게 대답했다. 사도치는 씩, 웃었다. 도무연, 그 무지막지한 놈이 곁에 있다면 아무도 유칠을 해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있어서는 안 좋다. 서둘러 끝내고 빠져나가야 한다.

 “그럼 부탁하오!”

 껄껄 웃으며 곁을 지나쳐 철기들에게 곧장 달려가고 있는 이필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사도치가 힘껏 말고삐를 챘다.

 이필이 뚫고 가는 길은 말 그대로 혈로(血路)였다. 갑자기 나타난 이필의 별군을 맞아 싸우느라고 철기들은 정신이 없었다.

 이필의 박도는 역시 눈부신 바가 있었다. 새파란 칼날이 청청한 햇빛을 가르고 떨어질 때마다 그 아래 있던 철기의 갑주도, 장창도 닥치는 대로 뭉텅뭉텅 베어져 나갔다.

 사도치는 이필의 별군을 맞이하느라고 느슨해진 철기의 벽 한 쪽을 맹렬히 뚫고 나갔다.

 그의 뒤를 이제 삼십 여기가 남았을 뿐인 위사들이 아수라의 형상을 한 채 전력으로 따랐다.

 ‘뚫었다!’

 눈앞이 갑자기 탁 트였다. 왕중석의 군막이 있는 언덕이 지척이었다. 장군좌에 오연히 앉아 바라보고 있는 왕중석의 시선이 느껴질 정도였다.

 “흩어지지 마라! 한 덩어리가 되어 친다!”

 산개해서 달려오고 있던 위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사도치 곁으로 모여들었다. 삼십여 기뿐이었지만 그 기세는 삼천 철기라도 압도할 만했다. 칼을 휘둘러 왕중석을 가리킨 사도치가 곧장 말을 달려나갔다.

 삼십여 기의 위사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내달리며 지르는 함성이 자욱한 먼지를 뚫고 드넓은 낭야 벌 구석구석까지 쩌르릉 떨쳐 울리는 듯했다.

 뜻밖의 복병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언덕 뒤에 숨어 있었던지, 내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오백여 경기병들이 갑자기 달려나왔던 것이다.

 부하들을 멀찍이 떨어뜨린 채 선두를 달려오고 있는 젊은 장수가 한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는 굳게 입을 닫고, 화극 한 자루를 옆에 낀 채 곧장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사도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지막 방어선인 게로군.’

 겉으로는 무시하는 척 했으면서도 왕중석이 이쪽의 이백 기병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역전의 노장답게 빈틈이 없는 자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목이 값어치가 나갈 것이다.

 ‘좋아, 단칼에 친다!’

 이를 악문 사도치가 힘주어 칼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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