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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작가 : 오새롬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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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6화
작성일 : 17-06-15     조회 : 434     추천 : 0     분량 : 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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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화장실 문과 더럽혀진 테이블도 어제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와 함께 인생이야기를 즐기던 아저씨는 이미 집을 떠난 것 같았다. 사람이 나가는 줄도 모르고 기분 좋은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온다. 손님이 나간 집을 정리하고 마지막 남은 행복감까지 만끽하며 집안 곳곳을 치우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굴러다니는 술병을 치우는데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이불을 정리하기 위해 곳곳에 숨겨진 과자부스러기들을 털어내며 창밖으로 침구들을 옮긴다. 깔끔하게 사용한 이불이 이토록 더러워진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베란다 앞까지 이불을 가져올 무렵 베란다 문지방에 부딪쳐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아저씨가 가지고 계시던 휴대폰이 그의 집에 남겨져있다. 급하게 집을 나서느라 미처 챙기지 못하고 간 것 같다. 주인도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물건을 보니 아무도 찾지 않는 아저씨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다른 연락처는 일체 모르는 상태였기에 휴대폰이 울리기 전까지 잘 보관 할 수 있도록 충전기를 연결하고 남은 이불정리를 끝내갔다.

  청소를 모두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 덧 정오에 다다른 시간이었다. 크게 허기감이 밀려오지 않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자연스레 닫힌 노트북을 열어본다. 소설 속에 나온 주인공을 떠올리며 캐릭터 정리를 시작했다. 마치 악마와 같은 욕심 많고 계산적인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만들어 낸다. 소녀에게 다가오는 볼품없는 인간들은 세상 속에서 인정받고 머리 좋은 사람들과 살인을 즐기는 범죄좌도 있었다. 하나 둘 캐릭터의 형성이 완성될 무렵 자신이 책 속 주인공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상상해본다.

  보통의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어린 아이에게 잘못된 욕망으로 다가가 농락당하는 모습을 필름으로 이어붙이니 어두운 계획들이 실행되는 동안까지도 쾌락에 취해 있을 그의 모습이 보였다. 성적인 욕심을 떠나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존재에 대한 넘치는 만족감이 결핍에 의해 말라버린 그의 영혼을 살찌우기에 충분했다. 닭고기 수프 하나로 영혼을 울렸다는 어느 유명 작가의 이야기 보다 훨씬 현실다운 복수와 치정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을 것 같다. 세상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탐욕과 끝없는 기대감으로 어두워진 곳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설에 깊이 빠져들다 보니 어느 새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다. 아마도 주인공들의 처절한 마지막 모습을 자신이 이루지 못한 마음 속 복수로 대신 그려나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사람들의 악랄함은 그만 접어두고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일정을 정리하기 위해 방문을 닫는다.

  어젯밤 그에게 식사자리를 제안한 그녀에게 연락을 해보려다 성급한 것 같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휴대폰 자판위로 멈춰있는 손가락이 원하는 마음과 제지하려는 마음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을 하고 있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이야기를 위해서는 안부 인사가 적당한 것 같다. 이미 집에 도착하고도 반나절이 지났겠지만 굳어버린 손가락을 움직이며 본능에 충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안녕하세요. 502호 사는 남자입니다. 늦은 시간에 집에 가셨는데 잘 도착하셨는지 걱정이 되어 연락드립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VIP 고객을 접대하는 보험회사처럼 형식적인 문구와 내용들이 그의 어설픔과 부족한 부분들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이마저도 막상 전송버튼을 누르자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식사제안은 그녀가 했지만 절대로 먼저 연락이 올 것 같지 않았기에 눈을 질끈 감고 메시지를 전송했다.

  한창 일을 하거나 자고 있을 시간에 발 빠른 답장은 불가능 할 것 같아 여유를 갖고 기다리기로 한다. 부드러운 커피 한잔과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불안해질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잔잔한 음악의 선율만으로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안정시키기 힘들었다.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트램펄린 마냥 불규칙적으로 뛰는 가슴이 좀처럼 일정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르고 달래듯 불안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위로한다.

  몇 시간이 지나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옆에서 충전 중인 아저씨의 휴대폰도 살펴보았다. 주인 없는 물건처럼 그저 조용하게 멈춰있는 모습이 자신의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의 감정과 생각 역시 주인 없는 존재처럼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기 시작했다. 도무지 연락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죄 없는 소파를 벅벅 긁으며 초조함을 표출한다. 메시지 하나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일지 쓸데없는 계산을 하며 답장 없는 그녀를 정당화 시켜보지만 큰 효과는 없는 것 같다.

  기다리다 지친 그도 결국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이야기들이 다시 떠올라 그새를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본다. 나지막이 들리는 통화연결음은 차분하고 조용한 그녀의 성품을 닮아있었다. 호감을 갖고 바라본 시선에선 어둡고 비밀스러운 이미지가 제법 긍정적인 면으로 변해갔다. 조용한 울림이 몇 분 간 이어지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기계의 목소리와 함께 잠깐의 발신은 종료되고 만다. 옆에 놓인 쿠션으로 머리를 감싸며 몇 번이나 거절당한 자신의 행동에 몸부림친다. 부담스럽지 않게 보내려던 첫 번째 메시지를 시작으로 연락이 닿기 위해 애쓴 티가 그대로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사람의 인생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확인 되는 순간이다.

  다시 연락이 오면 어떤 핑계를 대야하나 열심히 고민해보지만 한 번 나사가 풀린 머릿속은 쉽게 재조립 되지 않았다, 각자의 부품들만 따로 뒹굴다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감정조절장치로 불규칙한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깊은 심호흡을 시작했다. 웬만한 집중력이 없으면 아무런 효과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초조함과 답답한 마음을 압박한다. 작아진 그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계의 효능은 꽤 쓸 만했다. 기계를 틀어놓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숲속을 거닐 듯 가벼운 여유가 찾아온다. 머릿속에 안절부절 했던 생각들은 그대로였지만 그것조차 평온해진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적당한 명상과 호흡을 통해 기계의 효율성을 높이다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고 난 뒤 기계의 작동을 멈춘다. 지난번처럼 지나친 사용으로 며칠 간 잠에 취하고 싶진 않았다. 조금씩 감정조절장치를 능숙하게 다루는 자신의 모습이 장인의 손길처럼 섬세하고 파급력 있게 느껴진다. 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다 달라진 것 없는 액정화면에 낮은 한숨을 쉰다. 잠시나마 차분해진 마음을 통해 더 이상의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멍한 자세로 몇 분을 버티고 있을 때 쯤 유난히 외로워 보이던 아저씨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 했다. 잃어버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주인과의 연락이 닿는걸 보니 역시나 카메라 기능 있는 알람시계에 불과한 것 같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연락처를 확인한 뒤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네 여보세요. 휴대폰 보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혹시 아저씨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음에 정확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저씨의 이름도 알지 못하던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말 뿐이었다. 한참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는 대화 끝에 결국 잠깐의 통화는 그대로 끝나고 만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맞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짧은 통화가 아쉽게 느껴지지만 그마저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어설픈 통화를 끝낸 연락처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남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은 없지만 해결을 위해 길어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도착한 메시지를 보기 위해 어설픈 폼으로 옛날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낯선 번호로 도착한 메시지 내용에는 그가 상상한 아저씨와는 조금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휴대폰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메시지를 남깁니다. 밑에 연락처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법 깔끔하고 매너 있는 문장이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 경비 아저씨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아저씨는 휴대폰 사용이 서툴러 늘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달사항을 알려주곤 했다.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몰라도 우선 자신의 휴대폰으로 남겨진 번호에 전화를 걸어본다.

  “메시지보고 연락드립니다. 통화 괜찮으신가요?”

  처음 통화와는 달리 작은 소음도 들리지 않는 주변 환경이 잠깐의 대화를 편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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