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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작가 : 오새롬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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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11화
작성일 : 17-06-22     조회 : 430     추천 : 0     분량 : 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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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풀어나갈 방법을 쉽게 결정짓지 못하다 먼저 벌어진 일들에 대한 사과의 말부터 전하기로 했다.

  “며칠 전 새벽에 저희 집 소파에 앉아 계시다가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인 지금 깨어나신 거죠. 제가 부주의 한 탓이에요, 미안합니다.”

  지금껏 잠에서 깨지 못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수많은 핑계를 대기에도 모자란 상태이다. 그가 선택한 말들이 그녀를 납득 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모른 척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사실 잘은 모르겠어요. 저 역시 며칠 간 잠들어 있던 상황이라 왜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확실한 이유를 알고 싶네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 해야만 하는 대답은 모른다는 말 뿐이었다. 서로가 진실을 알지 못한다면 더 이상 일에 대한 원인을 찾을 이유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을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첫 만남부터 모든 것이 꼬여있었다, 어쩌면 코드가 빠져있어 기계를 작동시키지 못한 그날이 유일한 기회였을지 모른다. 정확히 알지 못했던 감정조절장치에 대한 부작용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온전히 기력을 회복한 그녀는 모든 걱정들을 위로하듯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더디게 흘러간 시간을 넘어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각자의 자리에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이 거실로 향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집에 살던 사람처럼 낯설지 않은 행동이 긴장된 마음을 안심시킨다. 식사를 준비하려던 그를 앉히고 능숙하게 요리를 시작한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아 주방에 다가섰다. 별 다른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지 묻고 싶지만 한번 요리에 몰두한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결국 처음에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옆에 놓인 서류들을 정리한다. 종이에 적힌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다 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한 그의 시선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그가 확인한 문서 안에는 그동안 잊고 지낸 경비아저씨의 이야기가 있었다. 타인의 문제에 섣불리 나서지 않기로 다짐한 후 구석에 밀어 넣은 일들이다. 아들까지 직접 찾아와 부탁했지만 흔들릴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는 피할 수밖에 없던 선택이었다.

  조용히 서류들을 훑어보다 다 차려진 반찬들 사이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혼자서는 사용하지 않던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시작한다. 명절에도 나지 않던 음식 냄새가 집안을 채우자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마냥 즐겁게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결국 어두워진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소파에 앉아서 한 마디도 안하고 있더니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 졌어요? 소화하기 쉬운 음식들만 차려놨는데.”

  식탁에 놓인 여러 음식들을 보니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해결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들과 뒤엉켜 불쾌감을 만든다. 고맙다는 말로 상황을 넘겨보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감정들은 안 좋은 생각들을 불러냈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며칠은 피해야 하는 감정조절장치에 다가간다. 사고를 수습한지 하루 만에 기계에 버튼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고 분위기를 전환한다. 다행히 별 다른 의심 없이 안 좋은 그의 기분이 나아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일주일동안 두 사람을 잠에서 깨지 못하게 한 기계는 마치 백설공주의 사과처럼 위험한 물건임은 틀림없었다. 다만 이 기계 안에 있는 독을 미리 제거 할 수 있다면 누구도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적당히 돌려놓은 기계가 좋은 사과가 되어 배고파 있는 두 사람의 식욕을 돋운다. 머릿속에 꿈틀대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느껴지는 황홀한 감정들이 고민을 잠재웠다. 식사가 끝나기 전 미세한 딸각 소리와 함께 더 이상 기계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기분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서둘러 그녀를 보내야만 했다.

  며칠 간 집에 가보지 못한 그녀도 식사가 끝나자 집에 갈 채비를 시작했다. 조금 나아진 기분이 그녀를 쉽게 떠나보낼 수 있는 준비를 해준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미리 전해야 할 인사보다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혹시 이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그만둔 얘기 들으셨나요?”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이야기들을 털어 놓아야 혹시 모를 다음 만남을 편하게 준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택배를 전해주던 날부터 다시 만나게 된 날까지 모든 과정을 알고 있다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많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말하던 그녀의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 아마도 그보다 먼저 자세한 일들을 알고 있던 게 분명한 듯 보였다. 금세 도착한 1층 복도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한참동안 끝나지 않았다.

  “모든 걸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어요.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신 거죠?”

  문서에 적힌 아저씨의 해고는 그녀와 관련이 있었다. 진실을 외면하다 지나쳤던 사건은 그와 가까운 사람을 통해 시작 된 일이다.

  “그냥 바뀐 경비 아저씨가 여러모로 일이 많으실 것 같아서요. 급하게 그만 두셨잖아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지 못하고 조금씩 뜸을 들이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급하게 말문이 막힌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함부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엔 무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심히 가세요. 도착하시면 연락 주시고요.”

  서둘러 인사를 건넨 뒤 그대로 서있던 승강기의 버튼을 누른다. 차마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급하게 집으로 들어와 다 읽지 못한 문서의 내용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사를 간지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아저씨는 아파트를 떠나고 말았다. 단순히 나이가 많단 이유로 쫓겨나게 되었다는 건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다. 이 아파트 안에서 경비 일을 보던 사람들은 자신이 퇴직의사를 비치기 전까지 쫓겨나는 일이 없었다. 주민들과 큰 다툼이 있거나 사고를 벌이지 않는 이상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될 것 같단 생각에 휴대폰에 저장된 아저씨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이 채 가기 전에 전화를 받는 걸 보니 그의 연락을 많이 기다린 모양이다. 그때 만난 카페로 약속을 정하고 서둘러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다 읽지 못한 내용들은 직접 전해 듣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그때와는 달리 먼저 약속장소에 기다리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 반가운건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전한다. 부탁을 거절하려고만 했던 자신의 행동이 떠올라 차마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서둘러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 궁금했던 사항들을 정리하기로 한다.

  “그때 주신 자료들을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구체적으로 파악하진 못했지만 아저씨의 퇴직이 501호의 이사와 연관이 있더군요.”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것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퇴직 후 곧장 그를 찾아 온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사생활을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습니다. 502호에 사시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연락하게 됐고요.”

  직접적이지 않은 사내의 표현이 편하게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그가 모르는 이야기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가깝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요? 요즘 시대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게다가 처음 이 자리에서 만났을 때부터 함부로 알릴 수 없는 내용들을 저에게 곧장 전하셨다는 게 의아하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가볍게 여긴 증거목록에는 다른 사람에게 밝혀서는 안 될 이야기들도 숨겨져 있었다. 진작 이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부탁을 외면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태연하게 앉아 시선을 회피하던 사내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이미 눈치 채셨을지 모르지만 저희 아버지와 501에 살던 분은 경비 일과는 상관없이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어렴풋이 짐작했던 사실을 아들이란 사람을 통해 듣게 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알고 지냈던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두 사람 다 그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떨쳐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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