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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작가 : 오새롬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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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13화
작성일 : 17-06-26     조회 : 456     추천 : 0     분량 : 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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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퇴근하기 까지 1시간 남짓의 시간이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물체의 답을 찾기는 힘들어 보였다. 보이지 않는 구석에 작은 조각을 숨기고 다시 한 번 사내에게 받은 자료들을 읽어본다. 501호 여자와 경비 아저씨가 미리 알고 있던 사이라는 것, 아저씨의 퇴직을 위해 자신의 민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사를 강행한 것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쯤 승강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움직임이 들려왔다. 그의 집에 먼저 들리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걸 보면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은 그녀에게 중요한 무언가 인 것 같다. 현관문이 닫히는 것과 함께 더 이상 엿들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상자를 보고 어떤 반응이라도 내비칠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 숨죽이고 있던 그의 집에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어떤 표정으로 문을 열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괜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서둘러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그녀가 아닌 퇴직한 경비 아저씨였다.

  “아저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적잖이 당황한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어찌된 영문인지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아저씨의 모습은 생각보다 멀쩡해 보인다.

  “그때 이 집에 휴대폰을 놓고 간 것 같아서 와봤어. 통화할 사람이 없어서 없어진 줄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생각이 났네.”

  이미 아저씨의 휴대폰은 아들이라는 사람을 통해 돌려준 지 오래였다. 아직도 직접 전달받지 못했던 것일까?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저씨 아들이라는 분에게 연락이 와서 휴대폰을 받아가셨는데요. 아무 얘기 못 들으셨어요?”

  “내 아들이 찾으러 왔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내 아들은 지금 장가가서 외국에서 살고 있거든.”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다시 돌려보기에도 겁이 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속이고 있었다.

  한참동안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묘한 침묵만이 계속되어 갈 때 쯤 또 다시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조심히 문을 열고 밖을 살피자 퇴근 후 찾아 온 그녀가 현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그녀가 도착할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시간이다.

  “저희 집에 택배상자가 보이지 않아서요. 거실에 두고 가신 것 맞나요?”

  그가 해결하고자 벌였던 일들이 또 다른 의문점을 만들어 놓고 갔다. 5층에 올라온 사람이라곤 아저씨와 여자밖에 없었다. 분명 501호 현관문이 열리는 것을 엿듣고 있었기에 미궁에 빠진 일들은 혼란만 가중 시켰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생각에 잠긴 그를 밀쳐내고 집에 온 경비 아저씨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다. 경비 아저씨의 아들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얘기처럼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가 썩 좋은 느낌 같진 않았다. 수습하러 나설 수 있는 이라고는 나뿐이라는 생각에 서둘러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선다. 여자를 보고 당황한 아저씨도 싸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제가 시간을 잘못 맞춰 온 것 같네요. 없어진 물건들은 내일 다시 찾으러 올게요.”

  현관문을 닫고 재빨리 승강기에 올라탄 그녀를 잡기 위해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서둘러 뒤를 따라나선다. 천천히 문이 닫히자 굳어있던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아저씨는 지금 왜 계시는 거예요? 혹시 어디서 이상한 얘기 듣고 일부러 마주치게 한 건 아니죠?”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승강기는 이미 1층에 다다랐다.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 아파트 밖을 빠져나가는 그녀에게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떠나간 그녀를 잡기에는 너무도 냉담해 보인다. 그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어느 정도이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이토록 악화 된 것일까? 질문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저씨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자리에 앉은 아저씨에게 사과의 말부터 전한다.

  “요새 새로운 직장에 다니느라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피곤하다고 집으로 가버렸네요.”

  애써 미소를 지어보지만 깊은 생각에 빠진 아저씨는 한숨으로 일관했다. 다른 말을 걸기에도 어려운 상황에 괜한 긴장으로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옆에 놓인 음료수 한 캔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전환해본다. 그의 손을 통해 전달 된 미적지근한 음료수가 마음을 움직였는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아저씨가 질문했다.

  “혹시 그 아가씨와 사귀는 사이인가?”

  “요새 들어 친해지긴 했지만 정식으로 교제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마치 여자 친구의 아버지 앞에 허락을 받기 위해 있는 것처럼 굳은 자세로 대답한다. 또 다시 깊어진 한숨소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혹시 501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신가요? 워낙 비밀이 많아 보여서요.”

  지난 번 술자리 이후 한 차례 연락도 없이 지낸 것이 화근이었던 걸까? 아저씨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속절없는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지만 아무 말도 듣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는 아저씨를 따라나선다.

  아파트 입구에 저녁 근무를 맡고 있는 동료에게 들러 인사를 하고 떠나겠다며 그에게 먼저 인사를 전한다. 아직 아들이라고 밝힌 사람의 정체와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서 일절 알아내지 못한 그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무거워지는 그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결국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중요한 말을 전달한다.

  “501호 여자 말이야. 아무래도 뭔가 비밀이 많은 것 같아.”

  아저씨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은 생각보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들이었다.

  “어느 날은 새벽에 큼지막한 택배상자가 수십 개가 오질 않나 한창 바쁠 일요일에 몇 개씩 상자가 배달되더군. 정말 자기가 주문한 택배라면 12시가 넘어서 게다가 다른 회사는 모두 쉬고 있는 일요일에만 도착한다는 게 아무래도 이해가 되질 않거든.”

  아저씨가 의심하는 것 역시 택배와 관련 된 일들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 만으로는 모든 것을 파헤치기는 힘들 것 같다. 무리한 대화를 강행하다가는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어 보인다.

  정중히 그에게 찾아 온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최대한 빠른 시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분명 비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은 여자였으며 의심을 품은 사람은 경비아저씨와 그 둘 뿐이었다. 궁금한 점을 알아내기 위해선 아저씨와 더 많은 공유가 필요한 듯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하루 종일 벌어진 일들을 정리한다. 정리라고 단정하기에도 우스울 만큼 답이 나온 일들은 하나도 없었다. 거실 한편에 놓인 감정조절장치로 다가가 무거워진 마음에 조금 더 불을 지핀다. 소설을 쓸 때처럼 안 좋은 감정을 조금 더 고조시키면 무언가 떠오를 것 같았다.

  과하지 않게 감정의 버튼을 하나 씩 돌리다 익숙한 촉감이 그를 붙잡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 넣어둔 나뭇조각을 꺼내 기계의 버튼과 맞춰본다. 조금 더 거칠고 낡아 보였지만 분명 감정조절장치의 버튼임은 확실해 보였다. 그녀의 집에서 발견 된 버튼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잠깐 사이에 그가 만든 상자를 가지고 가버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생각을 정리 해보지만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서둘러 아저씨가 있을지 모르는 집 앞 경비실로 향한다. 어쩌면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위험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5층으로 내려오는 승강기를 잡기 위해 기다리는 몇 초가 진실을 하나 둘 숨기고 있는 느낌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곧장 비상계단을 통해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동료와 함께 담소를 나누던 아저씨는 경비실 앞에 앉아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저씨. 아무래도 일이 잘 못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괜한 의심병일지도 모르지만 저한테 지켜야만 하는 비밀이 있거든요. 근데 그게 501호랑 연관이 있어 보여요.”

  진실을 이해하기 힘든 머리만큼 그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다급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다 검은 봉지에 넣어둔 소주 한 병을 꺼내 그에게 건넨다.

  “청년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나? 사실 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네. 내가 상관하지 않아도 될 일인 것 같고.”

  이미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풀기를 포기해 버린 듯한 모습에 빨라진 심장을 더욱 채찍질한다.

  “아저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저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냥 지금 알고 계신 일들만 이야기 해주시면 안 될까요? 며칠 전 만난 남자도 아저씨 아들이라면서 저한테 접근했다고요.”

  어쩌면 진실을 알기 원하는 그보다 상관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말이 더 일리 있을지 모른다. 다만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갈수록 감정조절장치와 연관 된 사람들이 늘고 있었다. 또 그 기계에 대한 비밀에 다가가다 보면 돌아가신 의사선생님에 대한 의문도 해결 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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