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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작가 : 오새롬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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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20화
작성일 : 17-07-05     조회 : 456     추천 : 0     분량 : 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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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아시다시피 저는 당신과 일면식도 없을뿐더러 알고 싶은 것은 그 아파트에 사는 몇몇의 사람일 뿐인데, 다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요. 당신이 저에게 정답을 물어다 줄 최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의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자연스럽게 그와 연락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아무런 경계심도 품지 않았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돌려주기 위해 약속 장소에 나갔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먼저 연락을 할 만큼 사내에 대한 의심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연락처를 알게 된 것 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잘한 궁금증을 모두 털어버리자 핵심적인 몇 가지의 질문들이 남아 그를 재촉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에 관해서, 또 무엇을 알고 싶어서 저에게 접근 하신 거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진실들을 말해주세요.”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서 당장이라도 싸울 것 같은 기세에도 사내의 입 꼬리는 서서히 올라간다. 아마도 그가 아직 어린이와 같은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진실을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먼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고요.”

  어떤 진실이 앞에 놓여도 선택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으로써 낼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용기이다.

  “저는 어떤 분의 부탁을 받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분과 경비아저씨, 한 여자, 그리고 당신까지 모든 사람이 한가지의 물건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물건의 정체는 모르지만 전부 그것을 노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들에서 멀어지는 것. 그게 제가 부탁받은 일입니다.”

  사내는 물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곧장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한 임무를 전달 한 사람까지 알아차릴 만큼 구상해놓은 계획은 거의 완성 단계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당신의 정체가 탄로 났다고 해서 저에게 순순히 비밀을 말해주는 이유가 뭐죠?”

  처음 아저씨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당장 도망갈 수 있는 출구는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고 곧장 잠적했다면 숨겨진 이야기를 밝힐 의무도 사라진다. 뭔가 생각한 것이 있는 듯 여유롭게 맥주를 따르다 이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단순하군요. 물건에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값을 쳐주는 게 뭔지 아십니까?”

  자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에 쥐인 맥주병으로 그의 머리를 있는 힘껏 가격한다. 맥없이 쓰러져버린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TV 옆에 놓인 모형을 뜯어 가려는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의사에게 가져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조각난 유리를 집어 들고 사내의 허벅지를 찌른다.

  제법 큰 몸집으로 엉킨 전선을 풀다 몇 번을 더 관통한 유리조각 사이로 많은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버틸 수 없는 공격을 저지하다 무릎을 꿇고 만다. 몸을 가누기 힘든 두 사람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시작된다. 지켜보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이었기에 어떻게든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의 목을 조르려 가까이 다가오지만 이미 많은 피를 흘린 상태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더 이상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상대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렸다. 집안 곳곳에 붉은 피가 번져 갈 때 쯤 잔인했던 전투도 끝이 난다.

  먼저 공격을 당했지만 조금 빗겨 맞은 덕분에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감정조절장치를 대체한 물건에 이토록 처절한 생존본능이 발휘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 모형이 없어짐과 동시에 의사에게 전달된다면 별 볼일 없는 목숨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미리 준비된 방어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어간 순간 이었다.

  온통 피로 물들어 버린 거실에 숨을 헐떡이는 사내가 점점 정신을 잃는다. 어떻게든 목숨은 살려둬야 할 것 같아 크게 박힌 유리조각들을 제거하고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물론 몸이 회복된 순간부터 다시 그를 노릴 수 있는 적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는다. 어느 정도 피가 잦아들자 곧장 듣지 못한 대답을 위한 질문을 던진다.

  “네가 기계를 가지고서 누구에게 가려고 했는지 알고 있어. 아까 말한 의뢰자가 이걸로 뭘 하려고 했던 거지?”

  모든 사건의 시작은 의사로부터였다. 처음부터 감정조절장치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눈치 챈 지 오래이다. 단지 우울함과 불안을 치료하는 기계로만 알고 있었기에 사람을 써가면서까지 이 물건을 가지려고 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 까지가 내가 들은 전부야.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보던지. 근데 말이야. 나를 이곳에 묶어놓는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할까? 경찰이 찾아올까봐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오래 전부터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일을 처리해 온 탓에 이런 정도의 일로는 쉽게 당황하지 않았다. 의사의 진짜 속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네가 얼마를 받기로 했건 간에 더 많은 돈을 주도록 하지. 어떻게든 의사에게 이 기계를 전달하고 머릿속에 있는 계획을 알아내야만해. 내가 널 죽이지 않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니까.”

  애초부터 예상하지 못한 싸움이었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흥분의 감정은 선을 넘어가 버렸다. 돈 다발 몇 개로 살아가는 녀석 정도는 가볍게 조종 할 수 있다는 게 현실이다. 죽음과 현금 사이에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다. 죽기 싫어서가 아니다. 오로지 돈을 얻기 위해 주인을 바꿔버린 사내는 자신이 어린 시절 보며 자라온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짜 기계를 실은 차에 두 사람이 앉았다. 혹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은 피를 흘린 탓에 무작정 그를 공격할 수는 없었다. 조금 먼 길을 달려 병원 앞에 도착한다. 허튼 짓을 막기 위해 의사가 준 돈의 두 배를 선금으로 주었다. 사내가 내리고 정확히 10분 뒤에 원장실에 침입하기로 한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의사의 목적을 알고 난 뒤에 누굴 먼저 찾아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오늘부터 그가 해야 할 일은 진실을 향해 곧장 전진하는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척 지내고 싶어도 몇 몇의 사람들은 이미 그를 노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 사람들의 속내를 알아내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원장실로 찾아갈 순간이 다가왔다. 얼마나 정확하게 일을 처리 해 놓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머리뿐이다. 다양한 상황들을 구상해놓은 상태로 원장실로 향했다. 발걸음 옮길 때마다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내 병원이 있는 층에 도착해 출입문을 열었다. 다행히 병원이 운영되지 않는 시간이라 사람의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속도를 높여 복도 끝에 위치한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첫 번째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놓여있을 것이다.

  흥분과 긴장감이 뒤섞여 잠시 동안 망설이다 문을 연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원장은 이미 사내에게 제압되어 있어야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했나? 명품을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싸구려도 구분 못할 바보는 아니지.”

  의사의 얼굴은 어떠한 공격을 받은 흔적도 없이 깨끗한 모습이었다. 사내의 등에 날카로운 주사가 꽂혀 있는 걸 보니 가짜 기계를 전달받은 게 탄로 나 곧장 보복을 당한 것 같다.

  “자네가 이 사람을 고용한 모양인데, 남의 하수인을 함부로 낚아채는 건 반칙 아닌가? 이 사람은 안타깝게도 영원히 깨지 못할 것 같군.”

  얼핏 잠든 것 같아 보이는 사내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쓰러져 있는 모습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 익숙하다. 서둘러 주사기를 빼고 의자에 앉혀보지만 더 이상의 호흡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일 만큼 잔인한 사람의 입가엔 희열을 느끼고 있는 듯 옅은 미소가 흐른다.

 악화되어버린 상황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서있기도 힘든 순간이었지만 후회할 시간은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 목숨을 갖고 놀다 버리는 장난감 정도로만 생각하는 모양인데, 돌아가신 의사선생님도 이런 식으로 죽였나?”

  분노와 슬픔으로 뒤섞인 그의 얼굴엔 잔인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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