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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작가 : 오새롬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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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21화
작성일 : 17-07-06     조회 : 446     추천 : 0     분량 : 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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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말도 안 통하는 그 노인네 말하는 건가? 그 인간은 자기가 죽음을 택했어. 어차피 감정조절장치만 나에게 준다면 살려 둘 목숨이었거든. 자살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지.”

  오래 전 의사의 죽음이 자신의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어디라도 슬픔을 표출 할 곳이 필요했다. 사람의 목숨을 그저 수많은 것 중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지 감이오지 않는다. 아무런 말없이 양 쪽 주먹을 쥐고 의사를 노려보자 책상위에 놓인 모형을 이리저리 살피던 원장이 말을 건넸다.

  “이깟 모형으로 날 어떻게 해 볼 생각이었나 보군. 역시 어린아이의 생각은 너무도 단순한 것 같아. 하나만 제안하지. 내일 이 시간까지 감정조절장치를 가지고 오게. 만약 허튼 생각을 한다면 세 번째 희생자는 당신이 될 거야.”

  죽음 앞에 분노와 두려움이 짝을 이루고 힘없는 다리는 도무지 몸을 지탱할 기운이 없어 보인다. 아무 탈 없이 병원 밖을 나와 차안에 쓰러지듯 앉았다. 오늘 밤 일어난 상황들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서지 않는다.

  선택을 내리기 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고 그 사이에 모든 결정을 하긴 힘들어 보였다. 이미 기계에 대한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버린 상태이다. 단 한명이라도 그를 도와 위험에서 구출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휴대폰을 들어 곧장 떠오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잠시 동안 안정을 찾아준다.

  “간호사님. 제가 지금 집 앞으로 가겠습니다. 잠시만 시간 좀 내주세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서둘러 용건을 마치고 핸들을 돌려 간호사의 집으로 향한다. 아저씨와 여자가 모두 감정조절장치에 대해 노리고 있다면 정직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 줄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 없이 많은 차들을 지나 달려온 곳에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서 있는 간호사의 모습이 보인다.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차에 태우고 아무 말 없이 작업실로 향했다. 도착하기 까지 그의 얼굴에 번진 핏자국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를 기다려 준다. 긴장감이 풀리지 않는 와중에도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몇 분 뒤, 편집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작업실에 도착한다.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공간을 보게 된 간호사는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곳곳을 살폈다. 좁은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기로 한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 잘 들으셔야 돼요. 돌아가신 의사선생님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알아냈어요.”

  오래 전부터 의문으로 남았던 사건의 범인을 찾았다는 얘기에 차분하던 간호사도 서둘러 이야기를 재촉한다.

  “역시 선생님은 자살하신 게 아니었군요. 그럼 도대체 범인은 누구죠? 경찰도 별 다른 타살 증거를 찾지 못했잖아요.”

  “의사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새로 부임한 지금의 원장이에요. 그 사람이 모든 걸 바꿔놨어요. 간호사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셔야 돼요. 안 그러면 다음 차례는 제가 될 거예요.”

  늦은 밤에 찾아와 다급히 부탁을 요청하는 모습이 장난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얼굴 곳곳에 위협의 흔적이 보인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말들을 정리할 새도 없이 방안에서 감정조절 장치를 꺼내 들었다.

  “잘 보세요. 간호사님은 지금 불안정한 마음으로 제 얘길 들으셨겠지만 금방 안정을 되찾게 되실 거예요.”

  곧장 코드를 연결하고 기쁨과 즐거움의 버튼을 최대치로 돌려놓는다. 오랜 시간 잠에 취하는 일이 없도록 짧은 시간동안만 작동시켜 기계의 효과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들에 당황하던 간호사의 표정이 어느새 안정을 찾은 듯 평화로워 보인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곧장 슬픔과 분노를 돌려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조절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감정의 변화를 경험한 간호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의사선생님이 남기고 간 선물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런 물건을 저한테 쉽게 보여줘도 되나요? 그보다 이 물건과 병원 원장이 연관되어 있다는 건 무슨 뜻인 거죠?”

  “잘 들으세요. 지금의 원장과 그의 딸이라는 여자, 그리고 그때 병원에 찾아왔다는 아저씨가 모두 이 이계를 노리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들이 생략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목숨을 걸고 이것만 찾고 있다고요.”

  돌아가신 의사선생님이 남기고 간 물건의 값어치는 꽤나 커보였다. 늦게나마 진실을 알아버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짧아질수록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기회들은 점차 줄어들었다. 한참동안 사지를 떨며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이마에서 조금씩 피가 떨어진다. 대충 손으로 털어 냈지만 점점 깊어지는 상처는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안쓰럽게 바라보던 간호사가 근처에 있던 가방에 있던 비상약들을 꺼내 상처 난 그의 얼굴을 살핀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겨를은 없었다. 급한 마음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하지만 한번 시작된 치료를 쉽게 중단시키지 못한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요.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흉터가 깊어질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밤새 생각해보기로 하죠.”

  다친 아이를 돌보 듯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깟 상처쯤이야 대충 덮어버리면 그만이었을 테지만 안전한 상황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자신을 걱정해주는 손길이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솟아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지켜보던 간호사도 말없이 그를 안아준다. 지금의 감정은 기계로도 숨길 수 없을 만큼 큰 파도가 되어 밀려오고 있었다.

  “간호사선생님. 저희 가족들이 저를 두고 떠났을 땐 혼자 있는 게 너무 무서워서 빨리 죽기를 바랐어요. 근데 지금의 전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다 큰 어른의 몸을 하고서 어린아이가 잃어버린 엄마를 찾듯 숨까지 헐떡이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에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아무 말 없이 그를 안아주던 간호사의 눈가에도 약간의 눈물이 고였다. 아마도 이 위기가 그에게는 얼마나 큰 공포이자 괴로움일지를 알고 있는 듯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새로운 원장선생님은 분명 내일 아침 병원에 오실 거고 그 사이에 제가 어떻게든 처리해보도록 할게요.”

  아무 계획도 없이 마냥 울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무엇보다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이 시급해보였다. 마음 속 응어리를 조금씩 풀고 있는 그를 대신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천천히 떠올린다. 새로운 원장과 일을 한지도 몇 년이 지났기에 어떤 것을 약점으로 이용해야 할지 알아내는 일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한 없이 약해진 그를 달래며 마음 속 그림을 그려낸 간호사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내일 많은 사람들이 있을 시간에 병원으로 오세요. 아마 점심시간 직전이 가장 북적거릴 거예요. 나머지는 제가 생각한 계획대로만 하면 돼요.”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닦으며 간호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직은 100%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내기가 힘든 상황이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 아지트까지 함께 올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설령 다른 맘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도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서럽게 눈물만 흘리다 어느 새 아침이 밝아왔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그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건넨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꼭 사람이 많은 시간에 와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몰라요. 우리 둘이서 꼭 진실을 밝혀내는 거예요.”

  여자로써 감당하기 벅찬 진실에 부딪쳐보기로 마음먹은 간호사의 모습은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어린 시절 원장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자신의 곁에서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던 따뜻한 모습이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그를 여전히 다독이며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만으로 한없는 미안함이 느껴졌다.

  잠깐 동안 당부의 말을 남기고 병원으로 떠난 집안은 공허함만 가득하다. 혼자 남아있는 것이 두려워 감정조절장치로 마음을 조절하려 했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폭발해 버릴 폭탄처럼 언제든 터져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다가가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다가온 결전의 날에 겁쟁이처럼 울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천천히 기계에 다가가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버튼을 돌려놓는다. 좀처럼 멎지 않을 것 같던 눈물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감정조절장치가 어떤 의미이기에 이토록 많은 것들을 잃어가며 소유하려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돌아가신 의사선생님이 특별한 말없이 선물한 물건이 이토록 값어치 있는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설명서 안에 조금이라도 자세한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 번 훑어본 내용들을 다시 한 번 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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