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산 로드의 실크 레스토랑은 더위를 피하려는 여행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곳은 카오산 로드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서 많은 손님으로 붐볐다.
붉은 태양을 닮은 땡모반 주스로 갈증을 달래고 있는 지아와 레이첼은 한낮의 더위를 수다로 이겨내는 중이다.
“지아. 말도 안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
레이첼이 이슬이 맺힌 잔을 테이블 위에 ‘탕’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려놓았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그녀들을 째려보았다.
“진짜야. 레이첼. 그래서 너에게 묻는 거야. 넌 의사잖아. 의사로써 내 병에 진단을 내려줘. 뉴욕에선 이런 환자 없었어? 거긴 외계인도 살 것 같던데?“
레이첼은 금발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푸른 눈을 반짝였다.
“오 마이 갓. 지금 장난 치는 거지? 어떻게 상대방의 생각이 들려? 그것도 키스 할 때만 들린다고?“
“그래. 미치겠어. 그래서 연애도 제대로 못해.“
지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
고등학생시절, 또래 친구들 보다 성숙한 편이었던 지아는 키도 크고 피부가 갈색에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학생이었다. 잘 씻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항상 향긋한 향기가 흘렀다.
버스에서 남학생들은 그녀가 긴 머리를 쓸어 올리기만 하면, 풍성한 호르몬 향기를 내뿜었다.
지아는 아버지가 경찰이어서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남자를 제대로 사귀어보지 못했다. 그녀가 한번이라도 데이트를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아버지가 남친의 신상을 탈탈 털어 직접 전화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지아는 지방에 있는 사립대에 갔고 그때부터 자유로워 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애인이 생겼는지, 그녀를 품에서 보내주었다.
지아는 용돈을 벌기 위해 과외를 했다. 학생들을 가리키면 실력이 탈로 날것이 뻔했기에 일부러 나이 많고 공부에 관심이 없지만, 젊은 여대생에게 과외를 받기 원하는 부잣집 도련님을 타깃으로 삼았다. 물론 액수도 중요했다.
지아는 친구의 친구 사촌 오빠를 소개 받았고,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야릇한 향기 때문에 코를 막았다. 남자는 여자 인형이랑 키스 할 것처럼 생겼다.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가며 인사를 하자 남자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입을 조금 헤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녕.“
“네!“
“저는 지아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아! 네, 네, 반갑습니다. 저는 박 정수라고 합니다.“
“어머, 말 놓으세요. 저보다 두 살이나 위 시잖아요.“
“아, 그럴까요? 좀 친해지면 나중에……. 놓을게요.“
정수는 지아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말했다.
“아…… 더워, 에어컨 틀까요?“
그녀가 치마를 나풀거리며 긴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남자가 그녀를 뚫어지라 응시하며 입을 떡 벌렸다.
“왜요? 제 옷에 뭐가 묻었나요?“
지아가 상의를 펄럭거리며 머리를 또 한번 쓸어 올렸다. 그러자 남자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그녀는 빤히 정수를 바라보았다.
정수는 그녀의 시선이 자신 하체로 왔다는 것을 느꼈는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책상에 앉았다.
“저 잠시만 화장실 좀!“
정수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도망치듯 화장실로 갔다.
그날부터 지아는 정수를 놀리는 맛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녀가 맨다리를 꼬고 앉으면 정수의 뜨거운 숨 때문에 방안 공기가 2도씩 올라갔다. 나시티라도 입으면 정수의 눈이 불타 올랐다. 미니 스커트를 입은 날에는 에어컨 온도를 두 배로 내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수가 사고를 쳤다.
그날도 지아는 치마를 입은 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습도 때문에 불쾌지수가 높은 날이었다.
“선생님. 잠시만요.“
그녀는 책상에서 일어나 침대에 털썩 앉았다. 정수는 힐끔거리며 그녀의 다리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는 더워서 머리를 몇 번이고 쓸어 올렸다.
그런데 그순간, 지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 봤다. 왜냐하면 정수가 그녀 앞에 우뚝 서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지아!“
“네? 왜 그러세요?
“사랑해!“
“네?“
“사랑한다고!“
“왜요?“
“널 정말 사랑해!“
"그러니까! 왜 사랑하냐고요."
정수가 성큼 다가왔다.
지아는 놀라서 발로 정수를 세게 밀쳤다. 그녀의 발이 정확히 과외선생의 배를 찼고 과외선생이 침까지 튀기며 방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과외선생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미안해! 지아! 나 도저히 못 참겠어! 처음 본 날부터 그랬어!“
갑자기 정수가 훌쩍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가 들썩거리고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흐느껴 울었다.
“제발……. 나 좀 살려줘…….“
지아는 놀란 눈으로 과외선생을 내려다 보다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내가 그렇게 좋아요?“
순간, 지아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좋아?“
너무 놀란 과외선생이 눈만 동그랗게 뜬 채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그렇게 좋냐고요.“
과외선생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어요?“
과외선생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아 학생이 시키는 거라면 뭐든지!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어요!“
“치, 거짓말!“
“진짜야.“
“좋아요. 그럼 좀 떨어져서 입술만 대고 키스해 봐요. 아주 부드럽게요.”
정수는 몸을 떨며 그녀에게 입을 내밀었고, 둘은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그는 그녀의 생각보다 키스를 꽤 잘했다.
[오늘 널 가질 거다. 널 정복하고 내 걸로 만들 거다. 널 내 노예로 만들어서. 인형처럼 가지고 놀거다.]
지아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두 눈을 번쩍 떴다. 분명 정수의 목소리였다.
“뭐라고요?“
지아가 놀라서 그를 밀쳤다.
“지아. 왜 그래?“
“오빠.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나를 키스 인형으로 만든다고요?“
“응? 무슨 소리야. 난 그런 소리 안 했는데?“
[지아가 내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걸 어떻게 알았지?]
정수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씩씩거리며 그녀에게 다시 다가왔다.
“더는 하지 마요. 갈래요.“
[너 미쳤니? 나를 이렇게 흥분하게 만들어 놓고 어딜가? 절대 못 가!]
“뭐라고요? 또 말했죠?“
“응? 왜 난 아무 말 안 했는데?“
“지금! 나를 절대로 집에 못 가게 한다고 했잖아요!“
“지아. 너 혹시 학교에서 독심술 배우니?“
[뭐지? 이 여자는? 왜 내 생각을 읽지?]
“내가 언제 오빠 생각을 읽었어요? 어머……! “
지아도 놀라고 정수도 놀랐다.
“오빠 지금 아무 생각이나 하나 해봐요.“
“무슨 생각?“
“빨리요!“
[생각이고 뭐고 너의 부드러운 손으로 나 좀 만져주면 좋겠어. 미치겠어! 정말!]
“오빠 지금 나 좀 만져달라고 생각했죠!“
정수가 놀라서 소처럼 ‘워어어’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
지아의 예전 이야기 때문에 레이첼이 너무 웃어서 눈물을 흘렸다.
“이날부터였어. 한국에서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레이철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지아가 땡모반을 시원하게 마셨다.
“진짜야? 오 마이 갓! 여기 엑스맨 나셨네. 만약 진짜라면…….“
“진짜라면?“
“의학적으로 보면 신경전달물질인 카테콜라민의 영향일수도 있어. 즉, 운동을 하면 미주신경이 억제되고 교감신경이 흥분되거든. 카테콜라민이 증가하기 때문에 심박수가 증가하고. 그런데…….“
“그런데?“
“깜빡 속을 뻔했잖아! 누가 만화가 아니랄 까봐. 장난치지마.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아. 하지만 너의 이야기는 재미있었어. 새로 그리는 만화니?“
“아니야. 진짜야. 이건 실화라고. 사실 뭐, 나도 믿겨지지 않으니까…… “
“그런데 그 첫 남자와는 어땠어?“
“그 남자는 내 첫 남자가 아니야.“
“그래? 이야기 좀 해봐. 재미있다 얘. 한국 남자와는 데이트 경험이 없거든.“
레이첼이 땡모반을 원샷 하고는 그녀에게 바짝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