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쌀쌀한 어느 봄날의 새벽, 사람들은 모두 다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깊은 새벽이었다. 그것은 그녀도 다름없이 깊이 잠들어 본인만의 꿈을 꾸고 있었다. 물론 그 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달지는 않은 꿈이리라. 표정부터가 완전히 찌푸려져 있었으니까.
무언가의 악몽이거나, 아니 악몽보다는 심기불편?
그것은 어쩌면 미래를 예언하는 불길한 기운이 맴도는 공기였다.
쾅쾅쾅
침대 맡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일렉 기타 소리와 드럼소리가 공기를 뚫고 방 전체에 울려퍼졌다. 갑자기 왠 한밤중의 콘서트가 열리나 싶은 듯 장황하면서 날카롭게 퍼지는 소리에 그녀는 잠시 뒤척거리다가 이내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걷어차고 전화를 받았다. 아닌 밤중의 전화에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야밤중 전화를 걸 정도로 무례한 이가 자신 주위에 누가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귓전에 전화를 대었을 때,
그 후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을 적중시켰다.
“ 누구냐. ”
“ 아이차-암. 이사나는 너무 나에게 까칠하답니다- 조금만 성정을 줄여줘요- ”
“ 새벽 4시에 전화해놓고 말은 태평하다 그렇지? ”
순간적으로 저 간드러진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핸드폰을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이사나는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웃음을 묻어내었다. 라타의 목소리는 언제나 자신의 주먹을 근질거리게 하는 신기한 특징이 있었다. 혹시 저 폭력충동 목소리도 그녀의 특수능력 중 하나인 것 아닐까?
생각해보면 그녀는 유능했으니 충분히 그런 능력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짜증나지만 어찌되었건 그녀는 대마녀의 자리까지 오른 영재였으니 말이다.
“ 하지만 저느은- 이 시간까지 잠도 못자고 일하는데에- 이 정도는 봐줘요오- ”
“ 끊는다. ”
“ 아아아아 이사나 잠시만요오- ”
“ 이 늙은 아줌마가 어디서 애교질이야. ”
이사나의 진심으로 징그럽다는 목소리를 듣자 라타는 푸흐흐. 하고 웃음소리를 흘려보냈다. 그 와중 그 웃음소리는 웬만한 남자들은 다 얼굴이 붉어지게 만들 만한 옅고 아름다운 목소리라 이사나는 그렇게 웃지말라며 다시 한 번 핀잔을 주었다. 이 새벽까지 그녀의 정신은 멀쩡한 듯 맑은 목소리여서 평소 힘들다고 징징 거리는게 진짜인지도 헷갈렸다.
“ 하지만 이사나. 이사나는 계속 유나스의 법칙을 어기고 있잖아요. ”
“ 그냥 내쫓던가. 귀찮게 굴지마. ”
이사나는 불친절함의 극치인 말투로 답하였다. 언제까지 독촉할 셈이던가.
“ 하지마안- ”
“ 애초에 너희들이 정한거지 의무도 아니잖아. 나한테 뭘 강요하려면 이득이라도 가지고 오던가. 너희들이 쓸데없이 날 물고 늘어지는 아쉬운 입장이면 무언가를 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줘야하는게 맞는 거 아니야? ”
한 순간에 냉랭해진 그녀의 말투에 라타는 말투에서 새어나오던 웃음기를 잠시 멈추고 침묵하였다. 역시나 피는 안 변한달까. 라고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중얼거린 라타는 잠시 으음- 하며 생각하는 척을 하였다. 뜸을 들이는 목소리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이사나의 목소리는 무언가를 궁시렁 거렸다.
대충 아 빨리 말하지 뭐하고 있냐- 같은 내용으로 들렸다. 라타는 혼자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쉽지 않은 상대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였다. 지금 제일 계약이 기대되고, 우선시 돼야 하는 것은 그녀였건만 현재 그녀만 계약을 하지 않고 뻐기고 있지 않던가. 어떻게든 그녀를 빠르게 끌어들여야 하였다. 잠시지만 한참 생각한 라타는 다시 웃음기를 목소링 들여넣어 입을 열었다.
“ 으음... 이사나. ”
“ 왜. ”
“ 세이란은 벌써 고위귀족 악마와 계약을 마쳤어요- ”
“ ..걔가? ”
목소리에서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라타는 조금 미소를 지어보인뒤 말을 이었다.
“ 네에- 이사나가 다른건 지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요오- ”
“ 걔도 소환엔 관심 없다고 했었잖아. ”
“ 걔가 싫으면 뭐하죠-? 내가 누군데. ”
아, 예. 너 정말 잘나셨습니다.
이사나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잠시 핸드폰을 꽉 그러쥐었다. 얇은 폰은 불쌍하게도 그 악력에 과자처럼 부러지기라도 할 듯이 부들부들 떨었다.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심리전 이였다. 마치 지금 상황은 누구누구는 100점 맞아 왔더라- 라며 압박을 주는 흔하디 흔해빠진 상황 같아 보였지만 사실 그 이름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안다면 이사나에게는 그렇게 유치한 상황은 아니었다. 좀, 좀 많이 커다란 의미여서 이사나에게 어찌보면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협박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 이사나는- 충분히 마력도 많으니까 그 아이보다 훨씬 좋은 이를 소환해 낼 수 있을탠데.. 그럴탠데..... ”
“ .... ”
“ 이번에도 지려는 걸-까나-요? ”
쾅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라타는 조용히 입술을 끌어올렸다. 성공이라고 말하면 돼는것일까. 정말 그녀를 공략하는 것은 어렵디 어려웠다. 본인이 하고싶다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이는 아니었지만 또한,
본인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크면 자신이 밀릴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녀는 어렸다.
그녀는 과거의 또 다른 시그리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은 똑똑하다 해도 청소년의 심리이기에 라타는 그녀를 충분히 제 앞에 끌어다 놓을 수 있었다. 손에 놓고 지켜볼 수 있을 정도는 가능하였다. 그녀가 아직까지는 많이 타락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소녀였다. 특히 자신에게는 말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제 앞에서 안보이면 섭하지않던가?
아마도 책상을 내려친 듯 이사나는 잠시 욕설을 내뱉으면서 더럽게 아프네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내리친 손을 털면서 애꿎은 전화기만 으르릉 거리며 쏘아볼 그녀가 자연스레 상상되니 무엇인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이 비웃음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의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하였다.
“ 할게. ”
그렇지.
“ 하면 될거아니야. 짜증나게. ”
그래야지.
라타의 얼굴에는 잠시 회심의 눈빛이 스쳤다. 그 눈빛에는 기쁨인지 쾌감인지 모를 묘한 기운이 담겨 그녀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 아아- 고마워요 이사나- 역시 이사나는 내 사랑이야- ”
“ 난 진짜 언젠간 아줌마를 죽일 생각을 하고있어. ”
“ 영광이어라- ”
이사나의 태연하면서 소름끼치는 말투에도 라타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채 평소의 성격을 유지하였다. 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발랄하고 즐거운 하이톤 이기만 하여 이사나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나지막히 미간을 좁혀보였다.
라타는 쓸모없는 흐응- 따위의 반응을 하며 어디론가 자리를 옮기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이사나는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진작에 끊었겠지만 그랬다가는 이 망할놈의 늙은이는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전에 멋대로 끊었다가 그녀가 바로 집까지 쳐들어온 상황도 생기지 않았던가. 그런 일은 절대로 사정이였다.
아 물론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 세이란 바꿔줄게요. ”
“ 뭐? ”
“ 왜요? 둘이 얼굴도 요즘 거의 못 봤잖아요? ”
“ 내가 그 새끼 얼굴 볼 이유가 뭐가 있는데 ”
“ 아이 차암. 바꿔줄게요 인사라도 하고 끊어ㅇ... ”
라타는 핸드폰에서 울리는 뚜 – 소리를 듣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든 귀여운 아가씨네 라고 중얼거리며 라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어떤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쉽다는 말투로 말했다.
“ 이사나는 여전히 너 싫나봐- ”
그리고, 그녀는 가증스러울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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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뒷사정을 떠올리니 다시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사나는 임술을 꾹 다물고 마지막 선을 찍. 소리나게 그었다. 매사에 짜증만 내면 일찍 죽는다는 무언가의 믿거나 말거나가 떠올랐지만 지금 상황이 충분히 자신이 짜증을 낼 일 아니던가?
자신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런 노가다라던가, 반협박의 의무는 하기싫어 몸을 비틀며 최대한의 딴짓거리를 찾아내려 용을 쓸 것이다. 그런것에 비하면 본인은 성실한 편이라고 느꼈다. 최소한 본인은 지금 다 완성하지 않았던가. 성질을 죽이고 작업한 한달 여 만의 결과는 이사나는 뻐근한 목을 빙빙 돌리며 잠시 스트레칭을 한 뒤 지그시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보았다.
그 광경은 마치 어느 예술가의 한 작품마냥 웅장하고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거의 학교에 있는 운동장 수준의 넓이를 자랑하는 크기와 이리저리 휘갈겨 있는 듯 보여도 정밀하게 계산되어 그려진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무늬들과 도형은 티나지않는 조화를 이루어 안정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마법진’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하려면 제대로 자신이 상위권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분야에서 자신의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선택한 길은 매우 간단하였다.
‘크고 많이’
잘해봤자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소용없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과시하듯 자신의 결과물이 보여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 진가를 깨닫고 칭찬을 쏟아놓은뒤 박수를 친다.
그 한 가운데에서 신사처럼 모자를 벗어 우아하게 인사를 하는 사람은 ‘눈에 띄는’ 사람밖에 없었다. 그 결과물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 사람들은 거의 보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자신은 그 현실을 아주 잘 알았다.
보통 소환 마법은 딱 자신정도의 크기의 마법진을 그려 소환시켰다. 허나 그건 자신의 한계가 아니었다. 그녀는 충분히 이 정도의 능력이 되었고 그만한 가치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본인의 성격상 조그마한 사이즈는 만족할만한 거리도 되지 않는 하찮은 크기였다. 악바리와 끈기의 결과물은 자신이 절대 지지 않을 것 이라고 우렁차게 외치고 있었다. 이제야 꽤나 만족스러웠다.
소환마법은 적어도 반나절, 길다면 하루 넘게 걸리는 대 마법이었다. 자신이 그린 마법진에 넣어준 마력에 따라 소환되는 급이 천차만별 이였으며 마법진이 클수록 마력을 많이 넣을 수 있었다. 물량과 마력의 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인내심과 자신의 체력도 담보로 필요했지만 말이다.
이사나는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훑고 정중앙에 앉았다. 중앙에는 괴기스럽게 보일만큼 더욱 빽빽하고 세밀한 무언가가 잔뜩 그려져있었다. 앉았다가는 금방이라도 뒤집어 삼켜질 것 같은 그러한 분위기였다. 환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광경을 보고 거품을 물고 쓰러지지 않을까 싶다. 그녀가 봐도 솔직히 이건 역 할 정도로 징그럽게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지극히 적나라하였다.
허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아니었다.
어느 사이에 본인의 피곤함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처음 펼쳐보는 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그녀라도 긴장되었다.
본인의 목표는 상당히 엄청났다.
본인은 이 작업을 8시간 안에 끝낼 것이다.
그것이 쓸데없이 고고하기만 한 그녀의 좋은 표정을 볼 수 있는 방법 일
것이리라.
이사나는 조용히 제 손에 마력을 담았다. 진하게, 하지만 고급스럽게 빛나며 얌전히 손에 놓인 마력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는 바닥에 그 손을 마주 대었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지는 마력들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쭉쭉 그녀의 손을 벗어나 마법진을 진한 남빛의 색깔로 매우기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과도한 양임을 알려주듯 그녀의 손 틈으로 미어져 나오는 마력은 징그럽게 보일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마치 슬라임처럼 점성이 있다는 것 또한 그것을 증명하였다.
다른 마녀가 본다면 경악하면서 미쳤냐고 하겠지만 그녀는 시간이 없었다. 한시 한초가 급한 지금 무언가를 가리겠는가. 아마 본인의 마력이 저 끝까지 가득 찰수록 한 겹 한 겹씩 채워져 색은 점점 진하며 붉게 변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탐욕이라고 자랑과 과시라도 하듯이 빠르게 농도를 변화시켰고 본인이 보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현재 시각 오후 2시 27분.
그녀의 의식이 시작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