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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만나다
작가 : 시아
작품등록일 : 201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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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수상한 사람의 등장
작성일 : 17-06-13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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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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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쉽게 꿈 속으로 가지 못했다. 늦은 오후에 먹은 아메리카노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일까. 생각의 늪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어려운 밤이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고 있을 때, 뜻밖의 연락이 왔다.

 

 "어, 도희야."

 

 - 너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야밤에 다짜고짜 전화와서 한다는 얘기가 무엇일까. 도희의 성격 상 실없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묘한 떨림이 있다.

 

 - 후. 모를줄 알았다. 어제 너 찾아온 애 있잖아, 주희진.

 

 "희진이가 왜?"

 

 갑자기 왜 이렇게 불안하지. 가위라도 눌린 듯 숨이 안쉬어지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차가운 시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 방금 우리 동네에 불 나서 소방차 오고 난리도 아니었거든. 그런데.. 나도 방금 엄마한테 들은건데... 그 집이 주희진 집이래.

 

 이 정도면 인연일까 악연일까. 하루 아니 이틀만에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다이나믹 해졌을까. 정말 신이란 사람이 있다면 가서 캐묻고 싶은 심정이다.

 

 - 저기.. 지안아?

 

 "도희야.. 나중에,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 어, 어.. 알겠어.

 

 

 ***

 

 

 오늘처럼 고요한 이 세계가 고마운 적은 처음이다. 펑펑 울어도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이 세계로 온 것이다.

 

 "무슨 일이야."

 

 아, 그러고보니 이 사람들이 있었지.

 

 "누나. 우니까 더 못생겼어."

 

 울음을 멎게 할 정도로 건방진 꼬맹이와 그 형.

 

 "어제 말도 끊고 가버리더니. 오늘은 왜 울고 있어?"

 

 아이를 달래주면 더 울어버리듯이,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누군가의 따스한 말 한마디에 울음이 더 터져버렸다. 쯧쯧거리는 꼬마와 여전히 표정은 냉담하지만 머리를 긁적이는 형. 뜻하지 않게 그들은 위로가 되고 있다.

 

 "울만큼 다 울었으면, 이제 얘기해봐."

 

 "어제 말했던 그 친구 집에 불이났대."

 

 "그럼 죽었다는 거야?"

 

 "그건.. 모르겠어."

 

 그러고보니 불이 났다고 사람이 다 죽는건 아니잖아. 갑자기 묘한 안도감이 든다.

 

 "멍청이 누나."

 

 남의 속도 모르고 꼬마녀석은 오늘도 짖궂은 장난을 친다. 아니 오늘은 팩트일 수도 있겠다. 진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알면 됬어. 그것보다 어제 형이 하려던 얘기가 더 궁금한거지?"

 

 "응. 어제도 말했지만, 나한테 여긴 꿈 속이야. 잠에서 깨면 자연스럽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그 정도는 우리도 눈치챘어. 그럼 어제 못했던 얘기 마저할게. 살인이란 개념조차 없던 우리 세계에서 살인이 두 번이나 일어났고,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 사람들 사이에 불신감이 생기기 시작한거야."

 

 "불신감?"

 

 "원래 우리 세계는 거짓말 하는 사람이 없었어. 당연히 입 밖으로 내는 말은 진실이었고 사람들은 당연히 그 말을 믿었지. 하지만, 두 번의 살인이 있고난 뒤로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거야. 살인에 이어 불신감이란 개념도 생겨난거지."

 

 "그게 이상한 일이야?"

 

 정말 몰라서 물은건데도 두 사람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내가 사는 현실에선 그보다 더한 것이 많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마 그 말을 들으면 두 사람의 표정이 더 어두워질 것 같아 관뒀다.

 

 "우리 세계에서는 그래. 무엇보다 그 사실이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

 

 진지한 표정을 보니 그러한 것 같았다. 내 일도 아닌데 괜히 등골이 오싹해졌다.

 

 "물론 너희 세계에서 살인은 다음 날 가십거리 정도겠지만. 우리도 처음에 너희 세계에 갔을 때 그 점에 놀라긴 했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흔하게 보이는 것. 만약, 우리 세계 사람들이 전부 너희 세계로 간다면 하루도 못 버티고 미칠거야."

 

 "그렇겠지. 그래서, 뭔가 집히는 거라도 있어?"

 

 수사반장이라도 된 듯한 말투로 묻는 내 모습을 보니,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기분은 금방 자취를 감췄다. 두 사람은 그런 단순한 나를 보며 콧방귀를 끼더니,

 

 "우리도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의심하고 있어."

 

 "누나도 어제까지는 의심의 대상이었지. 근데 이제 확실해졌어. 누난 아니야, 왜냐면 그러기엔 너무 멍청하거든."

 

 아니 저 꼬맹이가. 진짜 사람 성질 돋우는 데는 뭐 있다니까.

 

 "그래서, 니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내가?"

 

 "응. 그 친구도 니가 돕기로 한 거 아니였어?"

 

 "그렇긴 한데.. 내가 뭘 도울 수 있지?"

 

 두 사람은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정말.. 이 사람들이!

 

 "아! 누나는 그냥 말을 전해줘. 그 누나친구에게."

 

 고작 생각해낸게 통신병이냐. 거의 스마트폰과 같은 직급이라니.

 

 "그리고 할 게 하나 더있어. 그건 내일 얘기하도록 하지. 곧 알람시계가 울릴 것 같으니."

 

 

 ***

 

 

 침대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 거울에서 나는 괴물 한 마리를 만났다. 내 눈이 왜 없어졌을까.

 

 "지안..아? 얘 좀 봐, 너 눈이 왜이러니."

 

 엄마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

 

 

 학교에서 만난 도희는 예상했지만 더 신명나게 웃어댔다. 희진도 같이 만났는데, 어제 집에 불이 난 건 맞지만 어머니가 요리하다가 실수로 낸 불이라 벽지와 바닥을 조금 태운 정도라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전화라도 해보고 잘걸. 괜히 혼자서 마음고생한 격이 되었다. 물론 그것도 꿈에서 두 사람을 만난 뒤로는 괜찮아졌지만.

 

 "그래서 어제 그 중요한 얘기는 들었어?"

 

 도희와 희진에게 어제 꿈에서 있었던 일을 말로 옮겼다. 그러고보니 굳이 통신병이란 직급을 안 줘도 나는 이미 통신병이 되어 있었다.

 

 "헐. 살인과 불신은 현대사회 필수요소 아니었냐?"

 

 "되게 바른사회구나. 그 세계는."

 

 어제 내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는 친구들의 반응에 '역시나. 내가 이상한게 아니었어.' 라고 스스로 위안삼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도 고목과 다른 세계의 연결점은 딱히 찾지 못한 것이다. 그 두 사람도 어림짐작으로 관련이 있을거다 정도였지, 확실하게 이건 이래서 이렇게 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목은 오늘도 같은거지..?"

 

 항상 이 질문을 희진에게 할 때마다 조심스럽다. 괜히 분위기에 산통깨는 것 같고.

 

 "응.. 그런데 오늘 순찰아저씨에게 이상한 얘기를 들었어."

 

 "무슨 얘기?"

 

 "내가 순찰아저씨를 찾아가서 물어본 어제 저녁 즈음에 한 남자가 찾아왔대. 그러더니 그 나무가 있는 숲을 잠시 둘러봐도 되겠냐고 물어봤다는거야."

 

 "그래서?"

 

 이젠 나보다도 도희가 더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어봤다.

 

 "뭐 딱히 어쩔 도리가 있는 건 아니라서 방문증을 주면서 괜찮다고 했대. 그러면서 내가 생각났는지 여긴 무슨 일로 가려고 하는지 물어봤는데, 남자가 그냥 찾을 게 있다고만 말하고 갔다는거야."

 

 "남자 인상착의는 안 물어봤어?"

 

 "그냥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었고,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고 했어."

 

 딱히 단서같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그렇지만 고목이 있는 숲을 굳이 늦은 시간에 가야 될 이유가 있었을까?

 

 "좋아. 우리도 오늘 기다려보자."

 

 "에? 저녁까지 그 숲에 있자는거야?"

 

 "지금 별다른 방도가 없잖아. 우리의 목표는 그 남자를 만나는거야."

 

 "어휴, 한지안. 그럴 정성을 취직에 쏟아부었으면 넌 공무원 합격했을거다."

 

 어깨를 으쓱하며 숲으로 향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그 남자는 오늘도 올 가능성이 높다. 그 남자가 고목이 말한 다른 세계의 사람이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이 사건과 관계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니까.

 

 

 ***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아직도 우리는 숲에 잠복중이다. 도희는 시간낭비같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내심 궁금한지 까페에서 사 온 딸기스무디를 먹으면서 고목 근처에 앉아있다. 희진은 숲 들어오는 입구 쪽 나무들과는 대화가 된다며 궁금한걸 물어보고 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냥 멍하니 고목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안아, 도희야. 누가 오는 거 같대."

 

 멀리서 희진이 뛰어왔다. 분명 나무가 얘기해줬겠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수도 있어서 우리는 최대한 피크닉 나온 친구들처럼 딴청을 피우고 있기로 했다. 저녁에 피크닉이라는 말은 좀 오류가 있긴 했지만. 머지않아, 한 사람이 고목 근처로 다가왔다. 우리가 고목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실례지만,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지.."

 

 "아, 저희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머리가 좀 아파서 피크닉 나온거에요."

 

 공부에서 갑자기 피크닉으로 뛰는 건 뭐니, 도희야.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자, 그 사람은 생각보다 온화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죠, 제가 요새 이 근처에서 하는 실험이 있어서. 실례가 안된다면 오늘 해도 져가는데 피크닉은 여기서 그만하시는게 어떨까요?"

 

 아주 공손해 보이지만, 결론은 여기서 나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험? 혹시 이 사람이 어제 왔다던 그 남자인가.

 

 "실험이요? 구체적으로 어떤 실험이에요? 저희 중에 의과생도 있고 공대생도 있는데."

 

 "아.. 그건 아직 말해드리긴 어렵고, 식물과 관련된 거에요."

 

 혹시 그 실험 때문에 고목과 꽃들이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세 명이 같은 생각인지 서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필코 오늘은 알아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실험 성공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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