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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연애환담
작가 : 황도톨
작품등록일 : 201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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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흔한 헬조선의 직장인
작성일 : 17-06-23     조회 : 737     추천 : 0     분량 : 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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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이 끝도 없어져있었다. 좁은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언은 꼭 지옥불 앞에 줄 선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출근 하는 이들의 얼굴은 죽을상이었다. 어제 술이라도 마신듯 연신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서 있는 아저씨, 지하철에서 채 끝내지 못한 화장을 도착하기 전에는 꼭 마치려는 지 연신 입술을 칠하고 있는 아가씨, 밤에 뭘 했는지 연신 하품을 하며 느적느적 앞으로 가고 있는 남자까지. 어느 하나 상쾌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는 걸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그런 마음은 진언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진언을 기다리고 있는 건, 성공을 위한 프로젝트나, 미래를 위한 진급 같은 건 없었다. 끝없는 복사와 잡일, 그리고 시시때때로 들리는 '미스김, 여기 커피 한잔.' 역시 카페에서 일을 해본 사람이 타준 커피는 다르다며 말하는 그 말들이 처음에는 칭찬인 줄 알고 베시시 웃었을 때도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자기가 생각해도 커피는 여자가 타줘야 제 맛이지 라는 말이 구시대적임을 알고 돌려 말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삑- 소리가 나고 진언도 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 했다. 후불 교통카드가 알리는 액수가 제법 높다. 저 액수가 6만원이 넘어가야 진언의 월급날이 다가온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는 좀 나은 표정으로 출근하고 있을 거라는 걸 진언도 알고 있다.

 

 

 문득, 분홍 에나멜구두의 코가 까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도 모르게 우뚝 멈춰서버린 진언의 어깨를 누군가 거칠게 치며 지나갔다.

 

 

 "에이씨!"

 

 

 자기가 치고 지나갔음에도 사과 한마디가 없다. 진언도 굳이 사과를 들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반짝이던 예쁜 에나멜 구두의 연한 베이비핑크가 어느새 때가 타고, 코가 까져 있는 것을 빤히 쳐다볼 뿐이다.

 

 

 처음에는 참 예뻤었다. 남자친구인 지훈이 생일선물로 사준 신발이었다.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간다는 말 모르냐며 가볍게 눈을 흘긴 진언이었지만, 예쁜 구두를 보며 팔짝팔짝 신나서 뛰었던 것도 진언이었다. 진언이 너무 좋아하자,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며 쑥쓰러워했던 지훈이었지만, 진언의 귀에는 그게 들리지도 않았었다.

 

 

 "진짜... 좋은 건 아니었나보네."

 

 

 그 어여쁘던 구두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렇게 코가 까져버렸다. 어여쁜 핑크색 뒤에는 저렇게 보기 흉한 거무튀튀한 색상이 숨겨져 있었다.

 

 

 진언은 흘러내리려는 핸드백을 다시 추슬러 메고 또각또각, 다시 걷기 시작했다.

 

 

 출근길. 안 갈 수는 없었다. 월급을 받아서 월세도 내야하고, 공과금도 내야하고, 시장도 봐야하고, 토끼라고 하기에는 징그러운, 나이차이 제법 나는 고3 동생 문제집도 좀 사주고, 엄마랑 동생들이랑 넷이서 오순도순 외식이라도... 거기까지 돈이 되려나?

 

 

 잘 걷던 진언의 발걸음이 또 느려지기 시작했다. 원래 마트 캐셔 일을 하던 진언의 모친은 얼마 전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덕분에 마트 일을 무급 휴직중. 그럭저럭 굴러가던 진언네 가계부는 덜컹 정지되어 버렸다. 조금씩 넣고 있던 적금이 제일 먼저 올 스톱이 되고, 먹을 것 입을 것이 제일 먼저 줄었다. 세 식구 숨만 쉬는데 필요한 게 한 달에 백 오십인데, 2년 계약직인 진언이 벌어오는 돈은 이것 저것 떼고 나면, 저 돈이 되지 않았다.

 

 

 또 발걸음이 축축 처지고 만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이처럼 피부에 와 닿은 적이 없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나고 자란 게 여기 헬조선인데, 다른 나라는 어떤지 알게 뭐람.

 

 

 느릿느릿 지하철 계단을 오르자, 드디어 지상이다. 답답한 지하를 빠져나왔다는 느낌는 없었다. 지상으로 나와 봤자, 매연에 미세먼지. 여기저기에선 마스크를 쓰고 바삐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시 한 번 둘러봐도 희망에 두근거리는 사람이나, 활기찬 아침은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저마다 가기 싫은 표정으로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좀비처럼 걷고 있을 뿐이었다. 진언 역시도 한숨 한번 내어 쉬며 걸을 뿐이었다.

 

 

 땅바닥만 보고 걸었더니, 또 한 번 구두코가 거슬렸다. 어떻게 살살 문질러서 다시 붙이면 안 되려나? 아니면 비슷한 색상으로 칠하면 좀 더 신고 다닐 수 있으려나? 괜히 쓸데없는 생각만 오고갔다.

 

 

 "안녕하세요?"

 

 

 번쩍- 밝은 목소리가 진언의 귓가에 울렸다. 고개를 슬쩍 들자 방긋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생글 생글 웃는 얼굴로 회사 앞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진언을 보고 있었다.

 

 

 "어휴~ 예쁜 아가씨가 얼굴이 왜 이렇게 죽상이야? 이거 하나 먹어요."

 

 

 작은 요구르트 한 병이 진언의 손에 쥐어졌다.

 

 

 "저 돈 없는..."

 "서비스야, 서비스. 우리 딸 같아서 그래. 우리 딸도 아침에 출근하는데 어찌나 죽을상을 하고 출근 하던지, 내가 좀 웃으라고 했더니 신경질만 빽 내고 가잖아. 어휴~ 고 기집애 누구 성질을 닮아서 그런지 몰라. 아가씨라도 이거 하나 먹고 기운 내."

 "고맙습니다."

 

 

 진언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요구르트 아줌마는 또 생글생글 웃으며, 진언을 바라보였다. 어쩐지 쑥스러워서 진언은 조금 미소를 머금었다.

 

 

 "어휴~ 거봐~ 웃으니까 좀 예뻐?"

 아줌마의 말에 진언을 좀 더 입 꼬리가 올라갔다. 요구르트 뚜껑을 까서 한 모금을 넘기자 달달함이 진언의 혀에 닿았다.

 "달다..."

 

 

 또 한 번 씨익~ 진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달달한 한 모금에 기운이 났다.

 

 

 "잘 먹겠습니다."

 

 

 진언이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총총 걸음으로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진언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 그거 장까지 살아서 간다는 그거 하나 주세요."

 "없어요."

 

 

 빨간 타이를 맨 남자 하나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하자, 요구르트 아줌마는 그를 쳐다도 안보고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럼 그 캡슐..."

 "없어요."

 "네?"

 

 

 이번에도 역시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없다는 말이 날아왔다. 남자는 뭔가 잘 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끔벅거리며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자격도 충분하고, 인성은 이미 검증 되었고, 저런 솔직한 미소를..."

 "아니, 아줌마 그럼 뭐 있..."

 

 

 혼자 중얼거리던 아줌마에게 재차 말을 걸려던 남자는 휙- 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아줌마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째려보자 하려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장사 끝났소."

 

 

 진언에게 말하던 수다스런 아줌마와는 180도 달라진 말투의 아줌마는 남자에게 차갑게 말하곤, 어서 꺼지란 포스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뽀글뽀글 파마에 빨간 립스틱의 요구르트아줌마에게서 미칠 듯이 풍기는 카리스마에 남자는 어쩐지 주춤주춤 물러났다.

 

 

 남자가 물러난 것을 보곤 요구르트 아줌마는 진언이 들어간 회사 건물을 다시 바라보았다.

 

 

 "우리 왕께오서도 마음에 들어 하셔야 될 터인데.... 허긴, 제가 맘에 안 들어도 어쩌겠누?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을."

 

 

 아줌마의 얼굴에 다시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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