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지옥연애환담
작가 : 황도톨
작품등록일 : 201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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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주식회사더헬
작성일 : 17-06-29     조회 : 457     추천 : 0     분량 : 7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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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언은 평소보다 10분정도 일찍 출근을 했다. 사무실로 들어오자 몇몇 사원만 출근 했을뿐, 사무실은 거의 비어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라고 말은 했지만, 누구도 좋은 아침 인거 같은 사람은 없었다. 그건 진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오기 인지 몰라도 2주정도 남은 회사를 잘 마치자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이걸 노동청에 부당해고로 고발을 해? 라고 생각해봤지만, 여기저기 알아보니 계약만료인 문서만 있을 뿐, 재계약을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진언이 뭐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포기하고 나자 차라리 편했다. 그냥 평소랑 똑같이 일하리라. 적어도 늬들이 월급 주는 기간에는 월급만큼 일을 하고, 당당하게 퇴사하리라. 그런 마음이었다.

 

 

 비록 퇴사 2주가 남은 시점이라 진언에게 주어지는 일은 잡일밖에 없었지만. 원래도 잡일이 많았지만, 괜히 퇴사할 사람에게 오래 걸리는 일을 주면 안 될 거 같았는지, 끝없는 잡일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이면지 도장 찍기, 스템플러 빼기, 양면지 정리하기, 보고서 오탈자 점검, 사무실 비품 재고파악, 거래처 주소지 확인 및 신 주소 변경 등. 새로 올 상무님 딸은 절대 하지 않을 그런 일들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은, 아무 생각 없이 해도 되는 일이라 멍 때리기 좋다는 거였다. 이것저것 생각이 복잡한 진언에게는 어떠면 딱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한지훈은 이별 선언 이후로, 되도록 진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 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무슨 일이든 진언과 같이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굴더니, 지금은 회사에 한 대리가 출근을 하는지 안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어쩌면 진언의 얼굴 보기가 껄끄러워 연차를 쓴 건지도 몰랐다.

 

 

 -알게 뭐야.

 

 

 진언은 쾅- 하고 이면지 도장을 세게 찍었다. 지훈과 헤어진 그날은 집 앞 편의점에서 혼자 소주 2병은 마셨다. 평소에는 1병이면 하늘과 땅이 바뀌는 데, 그날따라 취하지도 않았다. 한 병 반쯤 먹고 나서야 취해선 집에 들어가... 들어가.. 주정을 부렸던가?

 

 

 진언은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으면서 그날 일을 떠올려 봤다.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그건 확실하다. 기억에 반 이상이 자기가 웃고 있는 거였으니까. .. 좀 미친 듯이 많이 웃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호언이 누나 미쳤다고 말하는 걸 듣곤, 명치를 때렸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리고 중간은 기억이 없다.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느냐는 엄마의 말에 회식이라고 뻥 친 것도 기억이 났다. 그리고 또 기억이 없다...

 

 

 아침에 꿀물 한잔을 타주던 엄마의 얼굴이 어떤지 슬퍼보여서 기억이 없는 동안에 진언은 자기가 무슨 헛소리라도 한 게 아닐까 걱정이 됐다. 아침에 누가 명치를 때린데 가 아파서 학교를 못가게다고 엄살을 부리던 호언을 보면 별일 없었던 것 같기도 했는데...

 

 

 “진언씨, 점심 먹고 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우르르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저 뒤쪽에 다이어트 한다던 사원도 같이 가고 있었다. 다이어트가 실패로 끝났거나, 며칠 뒤에 진언이 없으면 혼자 어떻게 하나 싶어서 미리 저쪽에 붙은 걸 수도 있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진언은 혼자 도시락을 꺼내 휴게실로 갔다. 조용히 혼자가 더 낫겠다 싶었다.

 

 

 한 손으로는 밥을 먹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보고 있는 화면은 구직사이트였다. 남은 2주 동안 어떻게든 직장을 구하면 별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낸 진언은 재빨리 취준생으로 태세전환을 한 것이다.

 

 

 계약직이긴 해도 일단은 2년 경력이 있으니, 2년 전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을 거라고 생각 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괜찮은 곳을 입사하겠노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일주일째 면접 한번 못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여유로운 취준생이 아니라 생계형 취준생이다보니 자꾸 현실과 타협하게 됐다.

 

 

 차에서 자면 되니까 2시간 거리고 괜찮지 않을까? 연봉이 좀 낮긴 하지만 면접 시 협의를 하면 되지 않을까? 지금 하던 일이랑 전혀 다른 일이긴 하지만 연봉이 센데 이쪽으로 다시 시작하는 건...

 

 

 점점 커트라인이 낮아지는 것도 같은 건 착각은 아니리라.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하며 스크롤을 올렸다.

 

 

 “주식회사더헬?”

 

 

 터치한 회사는 아마도 인력대행사 같은 곳인 것 같았다. 뭔가 하는 일이 두루뭉술하게 적혀 있어서 수상쩍기도 했지만, 그 아래에 적힌 구인요건은 진언의 현재 상황에 딱 맞았다.

 

 

 서울에서 흔치 않는 출퇴근 30분 거리에, 딱 2년 경력직을 구하고 있었다. 게다가 진언이 지금 받고 있는 연봉보다 훨씬 높았고, 진언이 받고 싶어 하는 연봉보다 더 높았다. 월 2회 당직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수당만 준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이제 쌍둥이들도 다 컸고 말이다.

 

 

 “업무내용이 전반적인 기록.. 및 관찰이라... 사람들 일하는 거 데이터 기록하는 건가? 인사과 비슷한 건가?”

 

 

 진언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일단은 이력서를 넣어보자 싶었다. 이미 일주일동안 뿌린 이력서만 해도 20군데는 될 터인데, 하나 정도 더 넣는다고 달라질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제출서류도 이력서 밖에 없어서 자기소개서를 끙끙거리고 쓸 일도 없었다. 사실, 그게 무슨 자기소개서인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자기소설서라고 하는 거 더 나을 판국이었다.

 

 

 다른 괜찮은 곳은 없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밥을 먹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 뭘 먹으러 갔는지 아직도 조용했다. 밥을 너무 오래 먹었네 싶어 얼른 치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잠시 기다려봤지만, 화면엔 대출이나 보험이라는 단어는 뜨지 않았다. 혹시 이력서 낸 회사 인가 싶어서 얼른 받았다.

 

 

 "네, 김진언입니다."

 

 

 최대한 어여쁜 목소리. 어째든 목소리가 첫인상 아니던가?

 

 

 "네, 안녕하세요. 여기는 주식회사더헬입니다. "

 

 

 이력서를 낸지 채 10분도 되지 않는 곳이다!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오다니!

 

 

 "아, 네 안녕하세요."

 

 "이력서 검토해보고 연락드렸는데요, 혹시 면접 가능하실까요?"

 

 "네! 아.. 근데 아직은 제가 재직 중이라서 가능한 날짜를 말씀해주시면 회사에 말을 해서 빼야 하는데요. 그렇게 조정이 가능할까요?"

 

 "네, 물론입니다. 음.. 일단.. 모레 정도 괜찮으실까요?"

 

 

 어쩐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남자 목소리였다. 살짝 웃음기 어린 목소리 같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그런 게 느껴졌다.

 

 

 "제가 1시간 안으로 다시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아, 그럼 출근은 2주 후부터 가능하신가요?"

 

 "네."

 

 

 남자는 아직 면접도 보지 않았는데, 마치 진언이 자기네 회사로 출근을 확정지은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마치 당연히 합격이라는 듯이.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

 

 

 그리고, 진언이 아직 확인전화도 안했지만, 당연히 모레 볼 수 있을 거라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

 

 

 깜박, 깜박. 진언의 눈이 깜박였다. 첫 면접 전화였다. 게다가 제법 괜찮은 조건이었다.

 

 

 "앗싸! 김진언 아직 안 죽었네!"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혼자 진언은 기쁨의 댄스를 췄다. 솔직히, 아무도 없어서 참 다행인 춤사위였다.

 

 

 

 

 

 

 

 

 

 

 

 진언의 4층 건물을 한번 올려다보고,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지도상으로나 주소 상으로는 여기가 맞았다. 하지만 여러모로 여기가 맞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름한 4층 건물의 4층.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는 것 같았다. 1층엔 카페가 2층엔 어쩐지 수상해 뵈는 마사지 방이 있었고, 3층에는 어째서인지 사찰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4층이 오늘 진언의 면접 장소였다.

 

 

 물론 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저기엔 어쩐지 수상한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이름의 다단계라든가, 더 수상한 도를 아십니까 따위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가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진언이었고, 이미 회사는 반차를 내버린 상황이었다. 혹시나 이틀을 더 기다렸지만, 면접을 보러 오는 곳도 아무데도 없었다. 원래 재직 중에는 면접이 안 들어오는 거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자기가 재직 중인데도 어디서 부를 만큼 뛰어난 스펙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수상해 보여도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까짓, 안되면 뛰쳐나오면 되는 것 아닌가?

 

 

 마른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진언은 용감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오른발과 오른팔이 동시에 나가긴 했지만 말이다.

 

 

 건물 안은 더 수상스럽게 어두침침했고, 뭔가 방치된 느낌이 들었다. 2층의 마사지 방은 문이 굳게 잠겨 있었고, 3층의 절도 마찬가지로 문이 잠겨 있는 것 같았다. 4층에 올라가기 전에 살짝 고개만 내밀어 보니, 4층은 문이 열려있었다. 아마도 도어락은 열려 있고, 투명한 유리문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절로 다시 침이 꼴깍 삼켜졌다.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혼자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부르짖으며 진언은 계단을 올라갔다.

 

 

 “시, 실례합니다~”

 

 

 살며시 유리문을 열자 복도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사무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화이트와 우드톤의 사무실은 편안한 분위기로 보였고, 책상은 서너 개쯤 되어 보였다.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였다. 사실, 밖에서 봤을 때도 사무실은 그리 크지 않을 것 같긴 했지만, 정말 소기업인거 같아서 조금 실망을 하긴 했지만.

 

 

 “안녕하세요, 김진언씨죠?”

 

 

 다들 외근이라도 갔는지, 혼자 사무실에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갈색 머리카락에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는 진언을 보자 눈꼬리가 보기 좋게 휘며 웃었다. 누가 봐도 호감을 가질 만한 인상에 잔뜩 긴장해서 움츠러들었던 진언의 어깨가 조금 이완됐다.

 

 

 “네, 안녕하세요. 김진언입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진언을 보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쪽으로 오라며 진언을 안내했다. 응접실인 것 같은 조그만 테이블로 안내된 진언은, 남자가 차를 내어 오겠다며 사라지자 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이상한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작긴 해도 사무실은 사무실인 것 같았고, 무엇보다 저 남자의 인상이 너무 좋아 사기꾼 같은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길 찾기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아뇨, 요즘은 어플 같은 거 잘 되어 있어서 잘 찾아왔어요. 주소도 정확하게 알려 주셨고요.”

 

 

 당연히 믹스 커피가 나올 줄 알았는데, 남자의 뜻밖에도 핑크빛의 음료는 들고 나왔다. 살짝 맛을 보자 새콤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이건 뭘까 싶어서 한 번 더 쳐다보는데, 그런 진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남자는 생긋이 웃었다.

 

 

 “냉오미자차예요. 요즘 낮에는 날씨가 더운 것 같아서요.”

 

 “아, 네. 감사합니다.”

 

 

 새큼달큼한 향과 냄새에 면접의 어색함과 불편함이 조금은 작아지는 것도 같았다.

 

 

 “음.. 그럼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하세요?”

 

 “지금 회사가 다음 주까지는 출근을 해야 되서, 다다음주 월요일부터는 출근이 가능합니다.”

 

 “그렇구나. 그럼 그때 출근하세요.”

 

 “네?”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 하시구라요.”

 

 

 너무 많이 생략된, 아니 사실 전부다 생략 되어버린 면접에 진언을 눈을 깜박였다. 눈앞의 남자는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어.. 그.. 면접... 이...”

 

 “네, 끝입니다.”

 

 

 어리둥절한 진언과는 달리 눈 앞의 남자는 상큼하기만 했다. 오미자차처럼.

 

 

 역시 다단계나 도를 아십니까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다시 들었다. 뭐하나 질문 들은 것도 없는데 합격이라니? 출근이라니? 보통 뭐라도 묻지 않나 싶었다.

 

 

 “어... 그... 질문이나, 면접이나.. 뭐 그런 건?”

 

 “저희는 김진언씨에 대해서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에 김진언씨가 매우 매우 적합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출근하시라고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에 대해서 어떻게 아신다는 건가요?“

 

 “이력서를 내셨으니까요.”

 

 

 남자는 고작 2장짜리 이력서로 진언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진언의 표정을 보며 남자는 다시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 마치 질문 많은 5살 꼬마에게 인생은 고작 질문으로 완성될 수 없단다 라는 뜻을 전하는 연장자 같은 미소를.

 

 

 “그럼 제가 질문을 좀 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정규직입니까?”

 

 “저희가 진언씨를 해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3개월의 수습기간은 있습니다. 그 동안 진언씨는 잔류하시던지, 그만두시던 지를 정하실 수 있습니다. 수습기간동안에는 그만두실 수 없습니다.”

 

 “연봉은 공고에 나온 그대로 인가요?”

 

 “그대로입니다. 수습시간에도 100프로 지급 됩니다. 수습기간에도 저희가 진언씨를 채용한 것은 변함이 없으며, 똑같은 일을 하실 거니까요. 다만, 그 기간은 서로 시험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로썬... 진언씨의 생각할 시간일 뿐이겠지만요.”

 

 “주식회사더헬은 정확하게 뭘 하는 회사인가요? 그리고, 저는 뭘 하면 되나요?”

 

 “음....”

 

 

 처음에로 남자는 생각에 빠졌다. 몰라서 답을 미루는 것 아니고, 그거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저희가 하는 일은 말하자면.. 사람이 바르게 살도록 하는 겁니다.”

 

 

 남자는 이게 알겠지? 라는 표정이었지만, 진언은 무슨 개소리야? 라는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언씨가 하는 일은.. 음...”

 

 

 남자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진언이 사람이 바르게 살도록 하는 일하는 회사는 대체 뭔가를 아직도 고민하는 중에 말이다.

 

 

 “혹시 승정원 사관을 아십니까?”

 

 “임금님 행동 기록하는 그거요?”

 

 “네. 그거랑 비슷합니다.”

 

 “제가.. 사장님 자서전 비슷한 걸 쓰는 건가요?”

 

 “음.. 뭐 사장님... 비슷한 분의 행동도 들어는 가겠지만, 전반적인 저희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는 겁니다.”

 

 

 남자는 다시 이제 알겠지? 라는 표정이었지만, 진언은 다시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든 글을 쓴다는 것 같았는데, 자기는 문장력이라고는 1도 없었고, 일기도 숙제이외에는 적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엄청 빨리 뭔가를 쓸 수 있을 만큼 워드프로세서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근데 그런 직군에 왜 자신을? 그것도 10분 만에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차 한 잔 마시자 바로 면접에 합격이 된단 말인가?

 

 

 “왜 저를? 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거죠?”

 

 

 분명 얼굴을 30대 초반정도로 보이지만, 이상하게 분위기나 말하는 투가 60대 이상의 연장자 같은 남자가 진언의 표정의 보고 말했다. 호로록- 자신 몫의 차를 한 모금 마신 그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진언씨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화려한 글 솜씨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엄청난 학벌과, 화려한 스펙과 찬란한 이력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저희가 진언씨에게 맡길 일을 하는데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사항이긴 때문입니다.

 

 저희는 진실한 사람이 곧은 마음으로 거짓되지 않게 기록하기를 원합니다. 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성실하게 기록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게, 저희가 진언씨를 원하는 이유입니다."

 

 

 말을 마친 남자는 다시 차를 마셨다. 진언의 그의 말을 멍하니 듣다가, 곧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의 말이 엄청난 칭찬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진언의 빨간 얼굴을 짐짓 못 본 척, 차 한 잔을 마시고 멀리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회사를 다니기 전, 수없이 면접을 봤었다. 어디든 진언을 깎아 내리기에 바빴다. 아버님이 안계시네요?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겠어요? 학점이 높긴 한데, 토익은 좀 모자라네요? 요즘은 다 유학파던데, 외국은 안나가봤어요? 아르바이트 이력을 왜 이렇게 많아요? 대학 시절은 돈 보다 공부를 해야지.

 

 

 이력서 한줄, 자기소개서 한 단어 가기고 진언을 헐뜯기에 바빴었다. 그래가지고 취업하겠어? 네까짓 게 우리 회사에? 라는 말투들. 한없이 자신을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던 말들이었다.

 

 

 그리고 결론은 그거였다. 넌 이정도 밖에 안 되니까, 우리는 돈도 이만큼만 줄게. 넌 이만큼이나 모자라니까 일을 좀 더 해야겠어. 진언의 월급을 깎기 위해서 진언의 인격을 얼마나 깎고, 또 깎았던가.

 

 

 처음이었다. 진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곳은. 꼭 당신이면 좋겠다고 말하는 곳은.

 

 

 “다다음주 월요일. 출근 하겠습니다.”

 

 

 먼 산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그제야 진언을 쳐다봤다.

 

 

 “잘 부탁합니다. 진언씨. 저는 천왕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빙그레 웃었고, 그런 그의 미소를 보며 진언도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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