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에서는 또라이 질량보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먼저 어느 회사든 또라이는 존재한다. 또라이의 지위가 어디인지는 랜덤하다. 회사 사장이 또라이일 수도 있고, 부장이나 차장이 또라이일 수도 있고, 어제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또라이일 수도 있다.
또라이의 강약 또한 랜덤한데, 보통 강력한 포스의 또라이가 하나가 존재하면 다른 또라이는 거의 없다. 이정도면 견딜 만한데? 의 소형 또라이가 두어 명 존재하는 회사도 있다. 그런데 보통 최강의 또라이가 사라지면, 소형 또라이의 또라이력이 급성장하며, 강력한 또라이가 된다. 즉, 회사 내 또라이들의 또라이력 최종 합은 비슷한 합이 유지 된다는 것이다.
또라이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데, 무작정 화를 내는 직장상사형, 갑자기 결정을 내리는 오너형, 무작정 사고를 치는 고문관형 등등이 있다.
만약, 에이~ 우리 회사에는 또라이가 없어. 라고 한다면, 그 회사의 또라이는 그 말을 하는 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즉, 어느 회사든 또라이는 존재하며, 지옥도 예외가 없었다. 지옥의 또라이는 진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괴한 형을 내리는 놈이었다. 주로 신체훼손을 좋아했으며, 안 그래도 발발 떨고 있는 죄인을 겁주는 걸 좋아했다. 게다가 엄격하기가 이루어 말할 데가 없어서, 1짜리 죄를 가지고 10짜리 벌을 내렸다.
- 저 놈은 사디스트가 분명해!
진언은 입사 3일 만에 결론을 내렸다. 첫날에는 메모지 빼곡하게 재판의 진행과정을 적었지만, 나중에 2주에 한번 제출하는 보고서에는 A4용지 1장 이내로 적어야 된다는 말에, 자신만의 약어를 적으며 간략하게 적어갔다. 특히, 죄인이 받은 벌을 적을 때는 더욱 간략하게 적었다. 그렇지 않으면 적는 동안에 진언의 상상력이 자기 마음대로 발휘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이미 3명의 손목을 자르고, 2명을 똥물에 튀긴 염라는 다음 죄인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아래쪽 책상에서 자신이 적은 걸 보고 있던 진언은 힐끗 위의 염라를 쳐다보았다.
첫날 이후로 염라는 진언을 거의 무시했다. 거의 에 포함되지 않는 건, 처음 등청할 때, 진언이 앉아 있는 걸 힐끗 보는 것뿐이었다.
사실, 그건 진언에게도 편했다. 첫날에 염라가 자신의 입사를 달가워하지 않으며, 자신을 무시하고 있고, 자기가 그리 좋지 않은 첫인상까지 심어줬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친근한 직장상사와의 관계는 포기했다. 괴롭히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딱 쌍둥이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조용히 회사생활을 한다는 게 목표였다.
정확하게는 쌍둥이들이 자기처럼 학자금대출로 사회에 첫발을 딛는 순간, 이미 빚쟁이가 아닌 게 목표였다. 이 회사 연봉에, 모친의 팔이 나아서 이전처럼 회사 복귀만 한다면, 게다가 쌍둥이들이 약간의 알바로 보탬이 된다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그래. 까짓 거. 지옥이면 뭐 어때? 지상에 회사도 지옥 같은 거 매 한가지지 뭐. 상사가 염라대왕이면 또 뭐 어때? 회사에 또라이는 늘 한명씩 있는 거지 뭐.
진언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꾹 참고 돈 좀 모아서 연차 쌓아서 이직하면 되는 거다. 그리고 계약서 쓴 것처럼 평생 아무한테도 말 안하고, 살면 되는 거였다. 사실 이런 이야기 해봤자 누가 믿어줄 리도 없었다.
-이력서에 염라대왕 밑에서 일을 했다고 쓸 순 없겠지?
진언은 다시 한 번 힐끗, 염라를 쳐다봤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얼굴만은 참 잘도 생겼다 싶었다. 햇볕을 쬐지 못해서 그런지 조금 창백하다 싶은 하얀 피부에, 지금은 감겨있지만 쌍꺼풀 없이 길게 찢어진 눈, 오뚝한 코는 베일 것처럼 날카로웠고, 도톰한 붉은 입술까지. 정말 지금 사극 찍고 있는 배우라고 해도 믿을 얼굴 이었다.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감겨 있던 염라의 눈이 스르륵 열렸다. 그러자 염라를 쳐다보고 있던 진언의 눈과 정면으로 딱- 시선이 맞춰졌다. 깜짝 놀라 눈을 돌리는 것도 잊은 진언은 그대로 염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3초쯤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다가 먼저 표정이 변한 것은 염라였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너는...”
하지만, 염라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죄인이 당도해버렸다. 진언이 얼른 고개를 돌려 죽은 이를 쳐다보고, 오늘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하겠다는 듯, 펜을 고쳐 잡자 염라는 더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먼저 염라궁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인왕차사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처음 진언의 면접을 본 천왕차사와 지금 들어온 인왕차사, 그리고 아직 보지 못한 지왕차사. 이렇게 세명이 염라의 직속부하로 수많은 지옥의 일들을 관장한다고 했다.
항상 생글생글 웃는 천왕은 천상과 지옥을 오가며 하늘의 일을 보며, 무뚝뚝하기 짝이 없다는 지왕차사는 지옥의 대소사를 관장한다고 들었었다. 그리고 인왕차사는 이승에서 죽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진언이 가장 자주 본 사람은 인왕차사였고, 오늘 인왕차사가 데리고 온 사람은 어린 꼬맹이였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초등학생을 넘지는 않아 보이는 아이였다. 이런 어린 애가 벌써 죽은 건가 싶어 진언은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왔다.
“이런 어린 아이를 어찌 데려왔느냐? 부모보다 먼저 죽은 아이는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한 죄로 삼도천에서 돌탑을 쌓아야 할 것인데?”
염라는 어린아이가 죽은 것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째서 이 아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가만 생각하는 듯 했다. 그의 말대로 부모보다 먼저 죽은 아이들은 제 나이만큼의 세월 동안 삼도천에서 돌탑을 쌓아야했다. 강한 바람이 불면 삼도천의 돌탑들이 우르르 무너지고, 아이들은 다시 돌탑을 쌓아야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아직 죄를 많이 짓지 않은 아이들 인지라, 이승에서 산 나이만큼 시간이 지나면 삼도천을 건너 다시 환생을 할 수 있었다.
보통은 염라의 앞에까지 오지 않고 그 흐름대로 일이 진행되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이 아이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실은 아이를 죽인 것이 이 아이 엄마입니다.”
인왕차사의 말에 진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염라의 표정까지도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이미 사정을 알고 있는 인왕사자마저도 난처한 표정이었다. 가만히 아무 표정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은 본인인 아이 하나였다.
“원래 삼도천 돌탑 쌓기라 함은 먼저 죽어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죄로 쌓는 탑인데, 죽인 것이 자기 엄마이다 보니…….”
인왕은 말하기를 주저하며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 지상에 가장 자주 가는 인왕차사는
인간들에게 가장 정을 많이 느끼고 있었고, 공감도 가장 많이 하는 편이었다. 아이의 눈치를 보며 인왕이 제대로 말하지 못하자 염라는 답답증이 이는지 인왕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인왕은 더욱 안절부절 못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고하라.”
“그것이…….”
“제대로 말도 못하는 그 혀, 내 키우는 해태에게 간식으로 주랴?”
“황공하옵니다. 실은 아이의 어미가 아이를 죽이고, 시신을 3일간 가방에 넣어 방치하고, 전혀 죽은 아이를 애도 하지...”
“으아아아아악!!!”
염라의 눈치를 보던 인왕이 견디지 못하고, 고하기 시작하자 그의 입에서는 잔인한 단어들이 줄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듣고 있던 진언은 큰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후다닥 뛰어나가서 얼른 아이의 양쪽 귀를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이건 뭔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인왕이 진언을 쳐다보고, 저건 또 뭐하는 짓인가 싶어 염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진언을 쳐다보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애가 듣잖아요!”
인왕의 말에 창백해졌던 안색이 지금은 화가 나서 붉어져 진언이 인왕을 한번, 그리고 염라를 한번 쳐다봤다. 애가 들을까봐 고하지 못하던 인왕은 난처한 표정으로 진언을 한번 보고, 더욱 난처한 표정으로 염라를 쳐다봤다.
“너야말로 지금 뭐하는 짓이냐?”
물론, 사디스트께서는 진언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애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안 그래도 엄마가 자길 죽인 불쌍한 애인데!”
진언은 엄마가 아이를 죽였다는 말을 할 때는 그 이야기를 아이가 또 들을 까봐 작게 목소리를 죽여서 이야기를 했다. 그 대목에서 염라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혼의 재판에는 불쌍하고 불쌍하지 않고는 필요 없다. 너는 당장 제자리로 돌아가서 주어진 일을 계속 하도록 하라.”
“안돼요!”
단호한 염라의 말에 진언은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어린애를 보호하는 건 어른의 의무예요. 그리고 어린애는 그런 잔인한 말들을 들을 이유도, 필요도, 의무도, 책임도 없어요.”
“그런 어린애가 아니라 죽은 혼이다.”
“어린 혼이죠.”
“조잘 조잘 잘도 떠드는 구나. 고 입을 꿰매 버리면 더 이상 못 떠들 터인데?”
어디서 으르렁 거리는 늑대의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염라의 협박어린 말에 진언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그래도 아이의 귀를 막고 있는 손을 떼지는 않았다.
“밖에 뉘 있느냐?”
염라의 호령에 대기하고 있던 신장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3미터쯤 되는 키에 우락부락한 모습에 손에는 각각 커다란 칼과 창을 들고 있었다.
“저기 기록관이 영 말귀를 못 알아듣는 듯 하니 데려가서 자알~ 들리도록 귓구멍을 좀 뚫어주도록 하라.”
염라의 명에 신장은 고개를 한번 끄덕 하더니, 진언을 향해서 다가왔다. 염라의 말에 기겁을 한번 하고, 자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신장을 보며 한 번 더 기겁한 진언을 창백한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무표정한 아이는 제 귀를 막고 있던 진언이 뒤로 물러나자 귀를 문지르며 그런 진언을 쳐다보았다.
“아니 되옵니다.”옆에서 안절부절 하고 있던 인왕이 깊게 읍을 하며, 소리쳤다.
“기록관은 인간의 몸, 이승에 속한 자이옵니다. 저승의 벌을 내릴 수 없사옵니다.”
“인왕. 내 생각에는, 네가 미친 것 같은데? 지금 나에게 안 된다고 하는 게냐?”
염라는 숙이고 있는 인왕의 뒤통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진언은 아무리 봐도 그 미소는 비열한 악당의 그것과 비슷했다. 어째 비릿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미소였다.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지엄함을 대왕께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기록관의 일은 하늘의 옥황상제께오서도 아시는 일인지라 기록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있다면 천상에도 기별이 가는 지라, 신중을 기해야 함을 알려드립니다.”
옥황상제도 실존 인물이라는 말에 진언은 살짝 놀랐지만, 결국 인왕의 말을 들어보니 저 무시무시한 사디스트께서 진언에게는 함부로 벌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인 것 같았다.
신체절단의 벌을 내릴 수도 없고, 진언도 모르게 뒷배에 엄청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진언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슬쩍 염라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는 제 마음대로 상황이 굴러가지 않자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분을 삭히는 듯, 눈을 감고 있던 염라는 잠시 후에 눈을 떴고, 대기 하고 있던 신장에게 나가보라 일렀다. 신장이 나가고 나서 더욱 기세등등해진 진언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염라를 바라보았다. 염라가 굳은 표정으로 노려보자 금세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말이다.
“기록관은 재판을 재개할 수 있도록 자리에 앉으라.”
“그럼, 애 앞에서 그런 이야기 안하실거죠?”
“그건 내가 정한다.”
“하지 말라니까요!”
다시 한 번 진언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염라가 무서운 표정으로 진언을 노려봤다. 이번에는 질 수 없다는 진언도 턱을 올리며 염라를 마주 쳐보았다.
염라는 기가 막혔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일개 인간이 염라대왕 무서운 줄 을 모르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 손끝으로 부릴 수 있는 신장을 보고 겁을 먹더니, 지금은 저리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서 있다. 출근하기 시작해서 근 며칠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수첩에 코만 박고 살더니, 오늘은 왜 저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고 있는 거란 말인가?
“전 괜찮아요, 누나.”
여기에 와서 처음 입을 연 아이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엄마가 저 싫어한 거, 저도 알고 있어요.”
풀 죽은 아이의 목소리처럼, 아이의 목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붉은 카펫 뒤에 떨어졌다.
우는 아이를 보자, 진언은 당황해선 얼른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조그만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보자 진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괜히 옆에 있는 인왕을 째려보았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인 인왕도 진언의 눈빛에 괜히 미안해져선 같이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얘, 울지 마. 응? 뚝! 누나가 과자 사줄까? 누나가 당 떨어질 때 먹으려고 둔 가방에 사탕 있는데 사탕 줄까?”
고개를 숙이고 말간 눈에서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고 있던 아이가 사탕이라는 말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아이가 사탕이라는 말에 반응하자 진언은 얼른 가방에서 청포도맛 사탕 하나를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혹시 혼이라서 못 먹으려나? 싶어 인왕을 쳐다보자 인왕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언이 사탕을 까서 아이의 입에 물려주자 그제야 아이는 눈물을 그쳤다.
“봐요. 얼마나 착한 애예요. 이런 어린 애가 죄를 저지르면 무슨 죄를 저질렀겠어요. 재판을 필요 없지 않아요?”
진언이 염라를 쳐다보았지만, 무표정한 염라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착한 애 아니에요.”
물기어린 가느다란 목소리에 진언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쪽 입안 가득히 사탕을 문 아이가 진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나쁜 애예요. 엄청 나쁜 애예요.”
그친 것 같았던 아이의 눈물이 다시 툭- 하고 한 방울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