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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연애환담
작가 : 황도톨
작품등록일 : 201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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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삼도천의 돌탑 쌓는 아이
작성일 : 17-07-08     조회 : 448     추천 : 0     분량 : 5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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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염라라는 놈은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이었다. 어차피 인간이 아니기도 했지만. 이 조그만 아이 앞에서 자기 엄마가 애를 죽이고, 암매장하고, 그러고 나서 슬퍼하지도 않더란 이야기를 굳이 해야 하느냔 말이다.

 

 

 진언은 그런 마음으로 힘껏 염라를 째려봤지만, 염라가 자신 쪽을 쳐다보자 슬그머니 다른 쪽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욱하는 마음에 대들기는 했지만, 저 얼굴과 눈빛을 보면 욱했던 성질이 죽기는 했다. 쌍둥이들 대학 졸업까지, 딱 4년만 열심히 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도 안돼서 그른 거 같았다. 자고로 직장상사에게 찍히고 회사 잘 다닐 수 있는 비법은 없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염라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진언이 아이를 달래주는 동안 기다려주기는 했다. 아이의 입에 물린 사탕이 반쯤 녹고 나서야 아이의 눈물이 그쳤다.

 

 

 “아휴! 이제 하나도 안 우네! 역시 남자네! 사나이네!”

 

 

 어릴 적, 쌍둥이들 달래기 스킬로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만든 진언이었다.

 

 

 “우리 씩씩한 어린이는 이름이 뭘까?”

 

 “나우진이요.”

 

 “우리 우진이는 몇 살?”

 

 “8살”

 

 “우와~ 그럼 학교도 가는 형아겠네!”

 

 “.. 학교 안가요.”

 

 

 곧잘 대답을 하던 우진은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응? 왜?”

 

 “엄마가 가지 말랬어요. 학교 가면 살 것도 많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된다고.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혼자 갈 수 있는데...”

 

 

 우진은 학교가 가고 싶었던 모양으로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보아하니 애 엄마는 학교에 보내면 돈이 든다고 입학을 유예시킨 모양이었다.

 

 

 “그만 하면 됐다.”

 

 

 어느 정도 우진이 울음은 그친 거 같자, 이미 인내심이 극한에 다다른 염라가 짜증스럽게 말을 던졌다.

 

 

 “제 부모가 슬퍼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부모보다 먼저 죽은 아이는 삼도천에서 돌탑을 쌓는 것이 관례. 그러니, 죄인 나우진은..”

 

 “의의 있습니다!”

 

 

 진언의 손이 번쩍 들렸다. 염라대왕은 당장 진언을 씹어 먹어도 부족하겠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진언은 그 눈빛을 못 본 척, 오직 정면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부모를 슬퍼하게 만든 죄로 그 돌탑을 쌓는 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근데 부모가 슬퍼하지 않는데 돌탑을 쌓으라고 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봄날에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이 날뛰는 인간아. 나는 너에게 기록을 하라고 했지, 혼백의 변호를 하라고 그 자리에 앉혀 놓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염라대왕님, 제가 여기 온 첫날. 첫 재판에서 부당한 것을 보면 나서야 한다고 판결을 내리셨지 않나요?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하면 눈을 파내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불쌍한 사람을 보고 도와주지 않는 입을 꿰매 버린다고 하셨잖습니까?

 

 

 지금 제 앞에 어려움에 처한 불쌍한 어린애가 있습니다. 당연히 도와줘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불의를 행하고 있다는 것이냐?”

 

 “물론 염라대왕님께서 불의...를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 아이가 처한 상황이 지금 불쌍한 처지에 놓여있으니, 도우려는 겁니다.”

 

 

 네 존재 자체가 불의라고 말하고 싶은 게 진언의 심정이었으나,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고 진언은 돌려 돌려 말했다.

 

 

 “저승의 재판은 이승에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이 재판과는 무관하다.”

 

 “저는 아직 이승의 사람입니다. 제가 죽고 나서 재판을 받을 때, 이 일로 눈알이 파이고, 입이 꿰매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으득- 하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듯도 했다. 꼬박 꼬박 말대꾸를 하는 누군가의 입을 지금 당장 꿰매버리고 싶은데, 이승의 인간이라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에 열 받은 누군가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눈빛으로 사람을 태워 죽일 수 있다면, 지금 당장 태워 죽이려는 눈빛으로 누군가를 쳐다보는 시선도 느껴지는 듯 했다.

 

 

 적어도 진언에게는 저 소리와 눈빛이 다 들리는 것 같았다.

 

 

 “삼도천 돌탑은, 부모보다 먼저 죽은 제 업보를 씻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남은 부모를 위해 공양을 올리는 의미도 있다.”

 

 “그런 부모 같지도 않... 아, 아니. 어째든, 꼭 얘가 그걸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도 부모인데 싶어, 진언은 우진의 눈치를 보며 우진 모친의 험담을 하려다 말았다.

 

 

 “저승사자 아저씨, 공양이 뭐예요?”

 

 

 우진 인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죄를 씻어주고, 복을 비는 거란다. 쉽게 말하면 기도 같은 거지.”

 

 “그럼 제가 그 돌탑이라는 걸 쌓으면 우리 엄마가 복을 받은 거예요?”

 

 “그렇지.”

 

 “그럼 저 할게요. 염라대왕 아저씨, 저 그 돌탑 쌓을게요.”

 

 

 우진은 겁도 없이 염라에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기껏 안 된다고 변호해주던 진언은 놀란 얼굴로 우진을 쳐다보았다.

 

 

 “우진아, 있잖아. 네가 그걸 꼭 할 필요는 없어. 적어도 누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누나가 저 무서운 아저씨한테 잘 말해서, 네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지 잘 말해서 안할 수 있도록 누나가 노력해볼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볼래?”

 

 “근데, 제가 그거 하면 울 엄마가 복 받을 수 있다고 저승사자 아저씨가 말해줬어요. 그럼 저 그거 할래요.”

 

 

 어느새 사탕을 다 먹은 아이가, 여전히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처음과는 달리 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깃들어 있었다. 아이의 목소리에 물기는 어느새 다 말라 있었다.

 

 

 “엄마가요, 자기는 박복한 년이랬어요. 할머니한테 박복한 년이 뭐나고 물어보니까 울 엄마 같이 복이 없는 사람이랬어요.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애 낳아서 힘들게 사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저한테 엄마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효도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이모가 그랬는데, 엄마는 자기 발로 복을 차버렸다고 했어요. 엄마 좋다고 따라다니던 의사 아저씨랑 결혼 안하고, 저를 낳았다고요. 엄마는 절 안 낳고, 그 아저씨랑 결혼했으면 행복했을 거래요...

 

 

 엄마가 절 안 이뻐하고, 그런 건 다 복이 없어서 그래요. 엄마가 불행해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돌탑도 쌓고, 그러면 우리 엄마가 복이 많아져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저는 엄마가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머릿속에서 생각이 잘 정리 되지 않는지 아이의 목소리는 더듬거렸고, 앞뒤도 딱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꼭 그러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보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모습에 진언은 더욱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랑이 부족하게 자란 아이는 제 엄마 탓은 하지 않고, 제가 엄마를 불행하게 만든 탓이라고 했다. 저를 죽게 만든 엄마이건만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작 8년을 살고, 그 8년도 부족한 애정으로 자랐지만, 앞으로 8년을 엄마의 부족했던 애정을 엄마의 행복으로 채워주겠다고 말했다.

 

 

 너무 예쁜 아이의 마음에 진언은 자기도 모르게 우진을 꼭 안아주었다.

 

 

 “죄인, 나우진을 들으라.”

 

 

 그런 진언의 등 뒤로 염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언이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염라의 낮고 분명한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죄인 나우진은 삼도천에서 돌탑을 쌓는 형을 내리겠다. 단, 이승에서의 생의 고단함을 생각해 그동안 산 생의 절반으로 형을 감해주겠다. 또한, 형을 다 산 이후에는 즉시, 다음 생에서 인간으로 환생을 하도록 한다.”

 

 “잠깐만요! 아직..”

 

 “그러겠습니다.”

 

 

 뭐라고 항변을 하려는 진언과 달리 우진은 얼른 무릎을 꿇었다. 구박받으며 살아서 그런지 눈치는 있는 모양으로 어설프게나마 염라에게 절을 올리기까지 했다.

 

 

 “염마대왕님. 근데, 저기...“

 

 

 인왕이 우진을 데리고 나가려는데, 우진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쭈삣거리며 염라의 눈치를 살폈다. 염라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보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이제.. 우리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 될까요?‘

 

 “네가 돌탑을 열심히 쌓으면 네 어미는 네 덕으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허나, 네 어미가 행복할지 안할지는 나도 알 수 없느니라.”

 

 

 우진은 염라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듯, 눈을 깜박이며 잠시 생각하는 듯 했지만, 인왕의 재촉에 결국 밖으로 나갔다. 재판이 끝나자 기다리고 있다는 듯 동자 하나가 차를 들고 와 염라에게 올렸고, 염라는 기품 있는 모습으로 차를 한잔 마셨다. 진언은 그런 염라를 한번 노려보곤 자기 자리에 앉았다.

 

 

 “천왕차사에게 기별을 넣어 당장 염라궁으로 들라 이르라.”

 

 

 빈 다기를 들고 나가려는 동자에게 염라는 그렇게 일렀고, 이후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방금 일어났던 일들을 수첩에 갈기듯이 쓰던 진언은 분통이 터지는 듯 다시 볼펜을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볼펜 밑으로는 염라대왕 개새끼라는 글이 보였다.

 

 

 “아니, 꼭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까?”

 

 

 염라는 감고 있는 눈을 살짝 뜨며, 귀찮다는 듯 진언을 쳐다보았다.

 

 

 “작고, 어리고, 불쌍한 아이잖아요. 그 고사리 손으로 꼭 돌탑을 쌓게 만들어야 했었냐구요.”

 

 

 이번에는 염라의 눈이 가늘게 실눈을 떠서 진언을 쳐다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은 여전히 열릴 줄을 모르고 무슨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게 ‘너는 떠들어라 나는 안 들을란다.’ 라는 것 같아서 진언은 더 약이 바싹 올랐다.

 

 

 “도대체가 사람이, 아니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말이죠. 인정이라는 게 있고, 측은지심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딱딱 에프엠대로 할 거 같으면 사실 재판이라는 게 뭐가 필요 있습니까? 인공지능으로 다 자동처리 하면 되지.”

 

 

 진언이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천천히 염라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진언의 말이 끝나자 아주 느릿하게 염라의 입이 열렸다.

 

 

 “그래. 다 떠들었느냐?”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가 웃었다. 눈앞에 망아지를 둔 늑대의 미소였다. 아주 맛난 살코기를 어떻게 씹어 즐겨 줄까하는 미소. 피가 뚝뚝 흘러내릴 것만 같은 포식자의 미소였다.

 

 

 “너는...”

 

 

 빨간 입술이 열리고, 더 새빨간 혀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천왕차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느릿한 눈동자가 천왕을 노려보았다. 막 망아지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즐거운 순간을 방해받은 늑대의 눈빛이었다.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늑대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방해꾼은 자기가 불러들인 거였다.

 

 

 “방년 8세, 나우진이라는 아이가 지금 삼도천에 돌탑을 쌓고 있다. 3년 반이 지나면 탑쌓기가 끝날 것이다. 삼신할미에게 이르러 그 아이의 형이 끝나면 좋은 곳에 점지해주라고 이르게.

 

 꼭, 제 어미가 사랑을 듬뿍 주는 곳이어야 하네.”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천왕은 길게 읍을 하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진언은 끔뻑끔뻑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 우리 기록관 나으리, 좀 더 떠들어 보시겠나?”

 

 

 느긋한 포식자가 나른한 눈을 하고 상황파악 안 되는 망아지를 쳐다보았다.

 

 

 “그게, 저...”

 

 

 불쌍한 망아지는 그저 바들바들 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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