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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연애환담
작가 : 황도톨
작품등록일 : 201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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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퇴근 후 맥주 한 캔=진리
작성일 : 17-07-23     조회 : 503     추천 : 0     분량 : 5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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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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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움직이는 진언의 발이 염라궁 안으로 들어간 것은 이미 9시 10분이었다. 그 다음 정류장에서 바로 내려 택시를 탈까 했지만, 도로를 꽉꽉 메운 차를 보니, 그건 그다지 훌륭한 대안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뛰었지만, 아직 낫지 않은 다리 때문에 절룩거리며 뛰어봤자 벼룩이었다.

 

 

 거의 그런 일이 없었긴 하지만, 대학생 시절에는 수업에 늦었을 경우 뒷문으로 살금살금 들어가서 뒷자리 빈자리에 후다닥 앉았었다. 그리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굴었었다.

 

 

 지난 회사에서의 경우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라고 말을 하며 들어갔다. 보통의 경우엔 지하철이 멈춰서 라거나, 버스가 사고 때문에 차가 막혀서 라는 말이 따라 붙었다. 실제로 그런 이유가 아니면 진언은 늦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순수하게 자신의 잘못으로 지각을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일이 처음이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분위기에 진언은 더 망했다 싶었다. 혹시나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 살금살금 들어가서 시치미 뚝- 떼고 자리에 앉을 생각이었다. 재판에 방해가 된다는 그럴듯한 핑계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높은 용상에는 용포를 입은 염라가 삐딱한 표정으로 앉아서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오랜만에 보는 천왕차사가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고, 진언이 안으로 들어오자 염라가 힐끗, 진언을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째 뭐라고 하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쁜 시선이었지만, 지은 죄가 있는 진언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얌전히 자리에 가서 앉았다. 자리에 앉으며 살짝 시계를 보자 시간은 9시 13분. 13분 지각이었다.

 

 

 “천왕.”

 

 “네, 대왕님.”

 

 “그대가 말하기로는 분명 성실하고, 정직한 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제법 많은 내용이 적힌 수첩을 꺼내들고, 펜을 딸깍거리고 있던 진언은 움찔했다. 지건 분명 자기 얘기라는 필이 왔다. 슬그머니 눈을 들어 염라를 쳐다보지만, 그는 진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마치 천왕과 단둘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런데 이 성실한 자는 어찌 제 시간에 염라궁에 등청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힐끗

 , 곤란한 눈빛으로 진언을 쳐다보았다. 진언은 미안하다는 눈빛을 천왕에게 보냈지만, 알아들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염라는 이제야 진언을 쳐다보았다. 슬쩍 돌린 시선에서 책망과 살짝의 비웃음이 느껴졌다.

 

 

 “그러한가?”

 

 “그게...”

 

 

 천왕을 생각하면, 무슨 사정이 있어야했다. 지하철이 멈췄다던가, 버스가 사고가 나서 멈췄다던가, 버라이어티하게 지구가 멈췄다던가 하는 일이 있어야했다. 하지만, 이번 지각은 그야말로 진언이 아무 생각이 없이 지하철에 앉아 있다가 생긴 일이었다. 사정 따위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진언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두 번째 사과였다.

 

 

 “사과가 아니라 연유를 물었네.”

 

 “아.. 그게...”

 

 “사정이 있었는가?”

 

 “지하철을 잘못 내려서...”

 

 “허어~ 큰일이 아닌가? 기록관 나으리께서 글을 잊었다보군. 제 내릴 곳도 못 찾는 걸 보면.”

 

 “그건 아니고. 다른 생각을 하느라 내릴 곳을 지나쳐서...”

 

 “잡생각도 있으시고? 역시 천왕 자네 안목이 삼도천 저 어디로 소풍을 간 게 아닌가?”

 

 “황공하옵니다.”

 

 “아니, 그냥 그건 제 잘못이잖아요. 천왕님 탓이 아니라. 제가 오늘 지각했으니 더 늦게 퇴근할게요. 7시! 7시에 퇴근하겠습니다.”

 

 “내가 왜 자네를 7시까지 봐야하는가?”

 

 

 염라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톡톡, 팔걸이를 두드리던 손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멈춘 손에 턱을 괴고, 염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진언을 한번, 천왕을 한번 쳐다보았다. 진언은 진언대로 슬슬 열이 받고 있었다. 13분. 진언이 지각한 시간은 그만큼이었다. 물론, 지각한 건 자기 잘못이었다. 그건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래도 그걸 굳이 이렇게 다른 사람 있는 앞에서 조목조목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자기한테만 이야기를 하면 되지, 뭐 하러 죄 없는 천왕은 불러다가 쥐 잡듯이 잡고 있는 건가? 또! 자기가 늦은 만큼 더 일한다고 분명히 이야기 했는데, 그건 또 자기가 싫단다.

 

 분명 먼저 잘못한 건 진언이지만, 점점 화가 나고 있는 것도 진언이었다. 게다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진언이 지각한 시간보다 더 걸리는 것 같았다.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할까요?”

 

 “네가 뭘 할 수 있는가?”

 

 “제가 늦은 시간만큼 더 일하고 가겠습니다.”

 

 “왜 늦은 것은 자네인데, 내가 재판을 더 해야 하겠는가?”

 

 “그동안 했던 재판 기록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러면 염라대왕님께서는 퇴근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건 당직때 하는 일 아닌가? 그럼 당직때는 무얼 하려고 하는가?”

 

 “그럼, 염라대왕님께서는 제가 어쩌길 바라시는 겁니까?”

 

 “늦은 건 자네인데, 왜 내가 고민해야 하는가?”

 

 

 따박따박 되돌아오는 질문에 진언은 또 다시 열이 받고 있었다. 저 잘생긴 머리통에는 뭐가 들어서 저렇게 잘도 사람 열 받게 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 걸까?

 

 

 “그렇게 따지자면, 염라대왕님 잘못도 있죠! 왜 사람 설레게 만들어서 출근길에 다른 생각하게 만듭니까? 왜 쓸데없이 잘생겨서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게 만듭니까? 왜 지옥에 염라대왕이라면서, 백마 탄 왕자님처럼 사람을 구해줘서 사람 싱숭생숭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지각을 한건 염라대왕님 잘못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지... 않.. 습....”

 

 

 말을 쏟아 내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분명 진언의 가슴속에 있던 말을 쏟아내긴 했지만, 그게 쏟아내선 안 되는 말인 거 같았다.

 

 

 침 한번 꼴깍 삼키고, 천왕을 쳐다보자 붉은 카펫에 대한 논문이라도 쓰는 것 마냥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카펫만 쳐다보고 있던 천왕이 눈이 동그래져선 고개를 들고 진언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침 한번 꼴깍 삼키고, 염라는 쳐다보자, 천왕만큼은 아니었지만 분명 평소보다는 조금 커진 눈으로 입을 살짝 벌리고, 진언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침을 꼴깍 삼켜도, 이제는 더 쳐다볼 사람도 없었다. 슬그머니 카펫 한번 쳐다보고, 슬그머니 기둥 한번 쳐다봐도 아직도 두 사람은 조용하기만 했다.

 

 

 “제 말은 그게 아니고, 그게.... 레드썬! 잊어요! 아무 일 없었어요!”

 

 

 진언은 그대로 염라궁을 뛰어나가려다가 멈칫, 멈추었다. 뛰쳐나갔다가 죽을 뻔 한 게 바로 어제였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두 사람 다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진언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춤주춤 나가려던 다리를 멈추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대로 시선이 그대로 따라 붙었다.

 

 

 자기를 쳐다보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듯 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진언은 무시하고 수첩을 폈다. 그리고 볼펜을 쥐고 뭐라도 적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김진언 죽어라. 바보 멍청이. 머리에 똥만 찼냐? 너야말로 입을 꿰매야 돼. 등등. 주로 자기 비하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뒤로 정신을 차린 염라와 천왕은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허둥지둥 천왕이 밖을 나가고, 염라가 가늘게 눈을 뜨고 진언을 쳐다보긴 했지만, 진언은 못 본 척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죄인이 들어오고, 재판이 이어지고, 염라의 신체절단 판결들이 이어졌다.

 

 

 진언은 고개 한번 들지 않고 수첩에 코를 박고 재판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점심시간에도 뒤도 안돌아보고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탕비실 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점심을 먹으라고 내어준 방에서 누가 들어오지 않을까 문을 노려보며 밥을 먹었다. 시간에 딱 맞춰서 밖으로 나오고, 6시가 되자 은근히 쳐다보는 염라의 시선을 무시한 체, 딱 6시 13분에 인사를 하고 퇴근했다.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이 역시 무시했다.

 

 

 그리고 드디어 해방.

 

 

 - 맥주! 이런 날은 맥주가 필요해!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마트로 걸어갔다. 뭐 급할 것도 없는데 급한 느낌이었다. 하루 종일 고구마 백만 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얼른 집에 들어가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맥주 한 캔 시원하게 하면 그 목멤이 넘어갈 것 같았다. 아직 술맛이라는 건 잘 몰랐지만, 회사에서 답답한 일이 있을 때,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잔의 맛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바구니에 담으려는데, 누군가 진언을 불렀다.

 

 

 “어머, 진언씨!”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전 회사의 강주임이었다.

 

 

 “맞다! 진언씨, 이 동네 산다고 했었지? 전에 편의점에서도 한번 봤잖아.”

 

 “강주임님, 안녕하세요.”

 

 “퇴사하고 첨이지?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다른데 다니나봐?”

 

 “네, 퇴근하고 오는 길이예요.”

 

 “어휴, 그래도 잘됐다. 금방 다른 자리 구해서. 나도 은근히 신경 쓰였었거든. 어때? 지금 회사는 괜찮아?”

 

 “네, 좋아요.”

 

 

 다사다난, 파란만장한 입사 2주차이지만, 진언은 그냥 뭉뚱그려서 좋아요. 라는 대답을 했다. 회사에 잘생긴 또라이가 하나 있다던가, 그 또라이한테 자기가 좀 반한 것 같다던가, 그 또라이한테 오늘 자기가 실언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 따위는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우린, 진언씨 나가고 나서 지금 아주 난리야 난리. 새로 온 인턴은 일은 더럽게 못하면서, 불만만 많고. 진언씨 일하는 거 반도, 아니 1/3도 못한다니깐. 거기다가 한 대리님까지 퇴사하신대지. 아~ 나도 때려치울까봐.”

 

 “한 대리님.. 퇴사 하신대요?”

 

 “응. 어디 좋은데 스카우트라도 된 건지, 과장님이랑 이야기도 다 끝낸 모양이더라고. 회사에서 밀린 연차 다 쓰고 나가라고 했는지, 요즘 회사도 잘 안 나와. 덕분에 우리만 죽어나지 뭐.”

 

 “그렇구나...”

 

 

 지훈은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흙수저 둘이서는 답도 없다고 말하더니, 자기는 흙수저에 벗어나려고 열심히 하는 가보다 싶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헤어지고 나서 바빠서 지훈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물론 그날은 술 먹고 꽐라가 되긴 했다. 가끔 생각나고, 우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옥의 파란만장한 회사생활에 전혀 생각도 못하긴 했었다.

 

 

 절대로 잘 먹고 잘 살지 말라고 지훈에게 말하긴 했지만, 진짜 그런 마음인건 그때뿐이었던 듯, 좋은데 스카우트 됐다는 이야기에 진언의 마음 한편에 잘됐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사려고 맥주?”

 

 

 강주임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진언을 쳐다봤다. 퇴근 후 마트. 빈 바구니에 냉장고 앞.

 

 

 “네.”

 

 

 진언은 괜히 뻘쭘해져서 웃었다. 무슨 하루 종일 술 마시는 술주정뱅이 꼴을 들킨 부끄러움 이었다. 그런 진언을 보며 강주임은 또 웃었다.

 

 

 “이거 먹어봐. 맛있어.”

 

 

 강주임은 외국맥주 캔 하나를 꺼내 진언의 바구니에 담고, 자기 바구니에도 2개 담았다. 한국 맥주보다 천 원 정도 더 비싸 진언은 쳐다도 안보는 제품이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강주임앞에서 도로 집어넣기도 뭣해서 그냥 웃었다.

 

 

 “안주는 뭐 먹어?

 

 “전 그냥 엄마 해주시는 걸로요.”

 

 “좋겠다~ 난 내가 해야 하는데. 매일 뭐 먹을지 생각하는 것도 일이라니깐. 난 오늘 제육볶음 할 건데. 아! 그럼 소주도 사야겠다. 우리 애 아빠는 소주 먹거든.”

 

 

 강주임은 냉장고에서 소주도 3명을 꺼내 바구니에 담았다. 제육볶음을 한다더니, 바구니 안에는 이미 양념된 고기 팩이 들어 있었다.

 

 

 “또 뭐 살 거 있어?”

 

 “아뇨. 없어요.”

 

 “난 양파만 사면 돼. 같이 나가자.”

 

 

 강주임이 나고 나면, 되돌려 놓으려고 했던 외국맥주 하나가 덩그러니 진언의 바구니 안에 들어 있었다. 강주임이 옆에서 양파를 고르는 동안 잠깐 맥주를 쳐다본 진언은 그냥 계산하기로 했다. 천 원 정도, 오늘 수고한 자신에게 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새로운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지옥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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