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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저물 때
작가 : 새하
작품등록일 :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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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남의 그림자 (1)
작성일 : 17-07-02     조회 : 291     추천 : 1     분량 : 6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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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남의 그림자

 

 

 “꺼흑-. 꺽-.”

 

 황금으로 장식된 방안, 암여우의 털로 만든 이불 위에 죽어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땐 천지회라는 거대한 범죄조직을 이끄는 회장이었지만, 지금은 한낱 힘없는 노인일 뿐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노인 근처엔 재산과 후계권을 노리려고 형형한 눈빛을 띄우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그림을-. 완성-. 해-. 야-.”

 

 죽어가던 소리를 내던 노인이 제대로 된 낱말을 뱉어내자 주치의가 안경을 쓰고는 귀를 기울이라는 신호를 내비췄다. 그러자 룸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빛이 변해 담배를 피우려던 손을 내려놓고 노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에 보답하듯 노인은 벌떡 일어났다.

 

 “환상의 그림을 완성해야해! 온갖 동물을 그대로 그림에 새겨 넣는 그림!”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주치의가 걱정스럽게 진찰기를 들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의 눈빛은 죽어가던 사신이 비쳐있지 않았다. 누구보다 생생하고 굵직한, 노인은 제 전성기 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노인은 진찰기를 내미는 의사의 손을 뿌리쳤다.

 

 “그림을 완성하는 자에겐 내 모든 걸 주마! 부! 권력! 이 천지회까지!”

 

 말에는 무게가 실리는 법. 말을 한 이는 중국을 넘어 아시아와 정부까지 장악하고 있는 범죄조직, 천지회의 회장이었다. 여파를 실감할 수 있듯 룸 안에 있던 회장의 아들들과 손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림? 그림이라니.”

 “죽기 전에 멋진 그림을 보고 싶나 보지.”

 “회장님!”

 

 천지회의 회장은 다시 풀썩 침대위로 쓰러졌다. 다시 힘없는 볼품없는 노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다들 웅성거림을 잠시 멈추다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림을 그려 바치자, 명화를 바치는 건 어떠냐 하며 수근 거렸다. 그 중 가만히 아무 말도 안하는 이가 있었다. 아무 말도 안하는 이를 보던 자들은 수근거렸다.

 

 “시엔, 저 놈은 여전하군. 관심도 없어.”

 “그러면 우리야 좋지 않나? 신경 쓰지 마라!”

 

 노인이 누워있는 침대 바로 앞에 무표정으로 서있는 남자, 시엔. 검은 머리에 검은 눈. 연예인이 아님에도 옆모습의 콧대와 턱 라인이 완벽해 조각칼로 베어놓은 듯한 외모. 직업과는 다르게 맑은 눈에 긴 속눈썹. 노인의 손자들은 기생오라비라고 이죽였지만, 노인의 아들들은 시엔을 보면 눈을 피하기 십상이었다. 그런 시엔을 보던 간부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암만 해도 션 형님과 너무 닮았어.”

 “아들이잖소.”

 

 션은 노인을 도와 삼합회인 천지회를 세운 시엔의 아버지였다. 션이 죽었다는 소문과 함께 나타난 것이 시엔. 그 때문에 노인의 아들들은 시엔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시엔 저 재수 없는 놈. 후계권에 관심 없는 양 해놓고 계속 쳐다보고 있는 군.”

 “시끄럽다.”

 

 천지회의 회장의 오른팔, 마샤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마자 모두들 겁먹은 표정으로 마샤오의 흉흉한 눈빛을 피했다. 오직 시엔만이 여유롭게 힐끗 쳐다보곤 눈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마샤오는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던 션을 쏙 빼닮은 시엔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꺼내준……. 다고…….”

 

 노인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다시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제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자는 없었다. 오직 시엔만 노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손을 뻗었다. 가죽만 남은 노인의 가슴을 한 번 쓰다듬자, 다들 어리둥절한 눈으로 시엔을 쳐다봤다. 시엔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거두며 말했다.

 

 “무사한 걸 봤으니 자택으로 돌아가야겠군.”

 

 시엔은 남색의 긴 코트를 펄럭이며 뒤돌아 입구로 나가버렸다. 그의 뒷모습은 영락없이 노인의 후계권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시엔이 건물을 나서자 연락을 받은 그의 비서, 천셩이 고개를 숙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건물을 나온 시엔은 바로 차안으로 들어갔고 천셩은 급히 차 안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시작했다.

 

 “오늘은 어떠셨습니까?”

 “건강하게 잘 있던데?”

 “네?”

 

 병든 노인의 상태가 건강하다니? 천셩은 또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시엔을 힐끗 보고 한숨을 뱉었다.

 

 “다른 분들은요?”

 “몰라. 뭐 지랄했겠지?”

 

 과묵할 것 같은 얼굴과 달리 신랄하게 입을 놀린 시엔은 턱을 괴며 지루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 상태로 유리창 밖을 보며 멍하게 있었다. 백미러로 시엔을 살펴보던 천셩은 안절부절못했다. 시엔을 모신지 8년이나 됐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상사였다. 다른 이들은 맞아가며 형님형님 하고 정을 붙이는데 시엔은 모든 것을 알려주지도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시엔이 흘리는 말에 눈치를 채 모셔야했다. 게다가 후계권에도 관심이 없어보여 답답함은 배로 됐다. 천셩이 한숨을 삼키며 오늘은 시엔에게 무엇을 먹여야할지 고민했다.

 

 “넌 그림자가 저물 때를 알아?”

 “신화 말씀하십니까?”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요즘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내용이 뭔데?”

 

 천셩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어깨를 두어 번 풀며 대답했다.

 

 “옥황상제의 아들인 새오가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인간을 괴롭히는 일곱 가지 괴물들을 봉인하는 내용 아닙니까?”

 “더 자세히.”

 “새오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자신을 따르는 인간 아사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러 가야해서 아사녀에게 돌아오면 너와 결혼하겠다 하고 괴물을 봉인하러 갔는데…….”

 “갔는데?”

 “참을 성 없었던 아사녀가 도망쳐버려서 약속장소에서 새오가 아사녀를 기다리다가 신의 벌로 인간이 되어 버린 이야기 아닙니까?”

 “그 신화의 교훈은 뭔데?”

 “교훈이라하면…….”

 

 말을 흐린 천셩은 오늘 시엔의 기분이 영 이상한 것 같아 시엔이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리며 대충 입을 열었다.

 

 “아사녀가 참을성이 없어서 비극이 일어난 것 아닙…….”

 

 퍽!

 

 시엔이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운전석을 거세게 찼다. 천셩은 놀란 표정으로 아무말이나 뱉어냈다.

 

 “오늘 식사는 마조림과 설합 어떠십니까?”

 “네 성의 없는 대답 덕분에 마를 조린 것이나 개구리 옆구리 같은 건 보기도 싫어졌다.”

 “평소엔 맛있다고 드셔놓-.”

 

 쾅!

 

 시엔이 다시 거세게 운전석을 발로 차자 천셩의 입은 싹 다물어졌다. 하지만 시엔의 표정은 화가 난게 아니라 그러면 그렇지, 라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하긴. 이걸 제대로 맞춘 인간은 없었지.”

 “그럼 교훈이 뭡니까?”

 “알 거 없어.”

 

 어쩌라는 건지. 천셩은 입을 빼죽 내밀며 운전에 다시 집중했다. 시엔은 다시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 눈이 커졌다.

 

 “저기, 저거 뭐지?”

 

 시엔의 말에 천셩이 오른쪽 유리창 밖을 쳐다봤다. 선착장, 페리 근처의 다리 밑에 거지들이 더럽게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지들이지요.”

 “하하, 넌 나를 병신으로 봐? 저 다리에 그려진 그림 말하잖아.”

 

 천셩은 차를 잠시 멈춘 뒤 고개를 빼들고 다리 기둥에 그려진 벽화를 쳐다봤다. 스프레이로 아무렇게나 그린 용이었는데, 황금색 눈빛이나 위엄을 강하게 표현해 진짜 용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아~ 저 그림말이지요? 요근래 유명합니다. 저 다리 밑에 사는 문신사가 그린 그림인데, 유명해져서 그런지 문신 수입이 꽤 짭짤하다고-. 어디 가십니까?”

 

 천셩의 말이 끝나기 전에 시엔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천셩은 안전벨트를 풀며 급히 시엔을 따라가기 바빴다. 하지만 시엔의 긴 다리 보폭은 천셩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든 말든 시엔은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형씨, 한 푼 줘!”

 “잘 빼입었어? 응?”

 

 시엔은 거지들의 말을 다 무시하다가 걸음을 멈칫하고 지갑을 꺼냈다.

 

 “문신사의 집이 어디지?”

 

 대답은 더러운 강물에서 빨래를 하는 억센 여자가 대답했다.

 

 “오른쪽으로 쭉 꺾어 들어가면 있수다!”

 

 시엔은 지폐 몇 장을 꺼내 땅바닥에 뿌리곤 다시 길을 나섰다. 돈을 땅에 뿌린 이유는 거지들이 돈이 떨어진 땅에 집중하여 자신에게 엉겨 붙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억센 여자의 말이 진짜였는지 시엔의 발끝은 문신사의 집 앞에 도착한 듯 했다. 허름하고 손으로 직접 조립한 듯 조잡한 컨테이너 박스에 대충 물감으로 휘갈긴 글자가 보였다.

 

 ‘문신’

 

 시엔은 가볍게 손으로 노크를 하려고 했지만, 문이 열리는 게 먼저였다.

 

 끼익-.

 

 컨테이너 박스에서 문을 열고 나온 이는 검은 머리 여자였다. 여자치곤 짧은 남자치곤 긴 검은 머리는 얇은 어깨에 닿을 듯 말듯했다. 시원한 이목구비를 지닌 것과는 달리 단호한 무표정을 띈 여자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고 고개를 들었다.

 

 시엔이 감탄하듯 여자를 감상할 때 여자의 시선 끝에도 시엔이 있었다. 조각 같은 이목구비와 야해 빠진 입술과 눈빛. 황금색 눈동자를 살짝 가리는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묘한 생김새에 여자는 시엔을 마냥 쳐다보다가 쉰 듯 한 낮은 저음에 정신을 차렸다.

 

 “영업해?”

 

 검은 정장을 입은 시엔이 주머니에 손을 넣곤 고개를 까닥였다. 여자는 손가락 네 개를 펼쳐보았다.

 

 “4000 달러?”

 

 400달러를 말하려던 여자는 턱없이 높은 가격으로 부른 시엔을 쳐다보다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 후 턱짓으로 안에 있는 낡은 침대를 가리켰다. 시엔은 내부를 눈으로만 훑어보며 침대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네가 눕는 곳이야? 아늑하네?”

 

 여자는 성희롱 같은 말을 씹고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한 큰 타투 바늘, 니들을 들었다. 그 후 옷을 벗으라는 손짓을 하자 시엔은 옷을 벗었다. 순식간에 넓은 어깨와 촘촘하고 부드럽게 박힌 근육이 조화를 이루는 상체가 드러났다. 이런 질 좋은 몸은 난생 처음 본 여자는 시엔의 몸을 슬쩍 살펴보았다. 그 시선을 눈치 챈 시엔은 턱을 괴며 교태를 부리듯 입꼬리를 올렸다.

 

 “어디를 해줄 건데?”

 

 여자는 무표정으로 시엔의 몸을 돌리게 해 날개뼈 근처에 소독솜으로 문질러댔다. 시엔은 시원한 소독액 냄새를 맡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그림으로 새길까?”

 

 여자가 손가락으로 벽에 있는 그림들을 가리켰다. 거대한 사방신부터 작은 꽃까지 다양했다.

 

 “난 꽃. 꽃이 좋아.”

 

 니들을 든 여자가 잠시 멈칫했고 그걸 잡아먹을 듯 빤히 보던 시엔이 나른하게 미소지었다.

 

 “꽃을 딱 한 번 밖에 못 받아봤거든.”

 

 여자는 시엔을 빤히 보더니 밑그림을 옮기지도 않고 바로 니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색은 알아서 해줘. 나한테 잘 어울리는 거로.”

 

 여자는 대답 대신 계속 니들을 움직였다. 시엔은 계속 입을 열었다 닫았다.

 

 “내 이름은 시엔이야. 너는?”

 “…….”

 “몇 살이야?”

 “…….”

 “언제부터 이걸 했지?”

 “…….”

 “대답이 없네. 말을 못하진 않지? 욕 잘할 것 같은데?”

 “…….”

 “아프잖아. 살살해.”

 

 여자가 세게 니들를 움직이자 시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이 퍽 권위적이고 세련돼 부하들이 보면 겁을 먹을 만한 표정이었지만 여자는 태연했다. 시엔은 여자를 빤히 보다가 또 입을 열었다.

 

 “나 과묵하게 생겼는데, 말이 많다고 생각했지?”

 “…….”

 “맞아. 나 말 많아. 안 그러면 지루해서 죽어버렸을 걸.”

 “…….”

 “내 비밀이 뭔줄 알아?”

 

 문신이 작아서 그런지 금방 완성이 됐다. 빨간 색의 예쁘고 작은 꽃 문신. 완성 한 여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시엔과 눈이 마주쳤고 시엔은 눈꼬리를 휘어 웃어보였다.

 

 “문신을 새겨도 다음날 아침이면 깨끗해져.”

 “…….”

 “그럼 문신을 왜 했냐고?”

 “…….”

 “문을 열었을 때 느낌을 받았어.”

 

 침대에 놓여진 시엔의 손이 여자의 턱을 쓰다듬었다.

 

 “이런 얼굴은 처음 봤거든.”

 “…….”

 “한껏 망가트리고 엉망진창으로 울리고 싶은 얼굴.”

 

 탁!

 

 시엔의 손을 쳐낸 여자는 무표정이지만 동요했던 걸 속일 수 없었다. 그걸 발견한 시엔이 여자를 나른하게 쳐다볼 때 여자는 급히 시엔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내가.”

 

 시엔의 말에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옷걸이에 걸어둔 시엔의 자켓 안주머니에 든 것을 꺼냈다. 돌돌 말려진 낡은 책과 지갑이었다.

 

 “두 개 다 가져.”

 

 여자는 지갑과 낡은 책을 보다가, 낡은 책을 펼쳤다. 모든 페이지가 다 백지였다.

 

 “날 찾아오기 전까지 다 읽어놔. 알았지?”

 “…….”

 “꼭 다 읽어.”

 

 여자는 시엔의 말을 또 무시한 채 지갑에서 100달러 4장을 꺼냈다. 시엔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거 다 가져.”

 

 툭!

 

 거절 대신 여자는 시엔에게 지갑과 재킷을 던졌다. 시엔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재킷과 지갑을 받았다. 대신 문을 열자마자 그 광경을 본 비서, 천셩이 입을 벌리며 부들거렸다.

 

 “감히! 누구에게!”

 “차는?”

 “방금 주차하고 왔습니-.”

 “가자.”

 

 시엔은 재킷을 입으며 태연하게 문을 향해 걸었다. 막 문 밖으로 나왔을 때 지갑을 다시 여자에게 던졌다.

 

 “이름이 뭐야?”

 “…….”

 “내 마음대로 불러도 돼?”

 “내 이름을 아는 자는 죽어.”

 

 처음 여자가 입을 열었지만, 시엔은 태연하게 받아쳤다.

 

 “죽었다는 거야, 죽일 거라는 거야?”

 “둘 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와 여자의 대답이 동시에 났다. 비서, 천숑은 씩씩거리며 여자의 집, 컨테이너 박스에 손가락 질을 했다.

 

 “저 버릇없는 년! 누구한테!”

 “가자.”

 

 시엔은 쾌활한 미소를 머금으며 길을 걸었다. 여태껏 천숑이 보지 못한 상쾌하고 흐뭇한 표정이었다. 천숑은 그런 시엔을 보다가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왜 저 곳을 가셨습니까?”

 “환상의 그림을 완성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네?”

 

 환상의 그림? 발걸음을 멈춘 천숑은 아까 회장실 문 너머 회장이 뱉은 말을 떠올렸다.

 

 “그럼 저 여자가 환상의 그림을 완성할 여자라는 겁니까?”

 “…….”

 “암만 봐도 버릇없고 평범한 여자인데요?”

 “평범하다고?”

 

 시엔은 천사를 조롱하는 인간처럼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봤다.

 

 “그림자가 없는 여자가?”

 “네?”

 

 너무 황당한 말에 천숑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자 시엔은 고개를 더 돌려 컨테이너 박스를 바라봤다.

 

 “저 여자 그림자가 없어.”

 “…….”

 “그 것 마저도 아주 완벽해.”

 

 시엔은 제 결좋은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천숑은 비틀거리며 그 뒤를 따라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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