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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저물 때
작가 : 새하
작품등록일 :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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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남의 그림자 (2)
작성일 : 17-07-03     조회 : 286     추천 : 1     분량 : 4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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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여자 그림자가 없어.”

 “…….”

 “그 것 마저도 아주 완벽해.”

 

 시엔은 제 결좋은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천숑은 비틀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뒷모습들을 컨테이너 안에서 창문으로 보는 여자의 눈이 있었다.

 

 여자는 제 책상에 놓인 낡은 책을 폈다.

 

 [하늘의 신, 옥황상제는 지상을 혼란케 하는 괴물들을 잠재우기로 마음먹었다. 괴물들은 인간을 잡아먹고 도륙하고 괴롭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귀한 몸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후계자이자 아들인 감정의 신 에게

 

 “나의 아들아, 지상에 가서 인간들을 괴롭히는 7가지 괴물들을 봉인하고 오너라. 그러면 네 너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 라고 말하였다. - 1페이지]

 

 [그리하여 감정의 신 새오는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러자마자 자신의 신전에 공물을 바치던 인간여자, 아사녀에게 반해버려 사랑을 고백한다. 그 후 둘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고 결국 정을 나누게 됐다. 하지만 새오는 떠나야할 몸이었다. -3페이지]

 

 [그렇게 새오는 아사녀를 제 제단에 두고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길을 떠나게 된다. 산 두어개를 넘어 갈 쯤 새오는 혼자선 벅찬 과업이라고 깨달았다. 이를 어찌해야하나 고민할 때 무리에서 쫓겨난 도깨비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5페이지]

 

 “이야~ 이상한 책이네? 아니, 중간 중간 내용도 없고 내용도 안 적힌 장도 있잖아!”

 

 여자는 낯익은 목소리에 책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침대 밑에 누워있던 그림자는 길쭉하게 늘어나더니 사람형체로 변해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5 페이지 다음엔 내용도 안 적혀있고! 아 맞다. 그 남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기억이 안나!”

 “…….”

 “근데 이상하다. 내가 낯익다면 그건 몇 십 년 전 인간인데. 그러면 늙었어야하는데.”

 

 여자는 그림자의 말을 무시하고 집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그림자는 쫑알거리다가 입을 빼죽 내밀었다.

 

 “또또! 내 말 무시하지! 어렸을 땐 그래도 듣는 시늉이라도 해줬는데! 이젠 아예 무시야?”

 “…….”

 “우씨. 나랑 만난 날 상하이로 가는 배를 태워 준 게 누군데 그래?”

 “…….”

 “왜, 왜 그렇게 쳐다봐! 물론 그 배가 조폭들 배긴 했지만…….”

 “치치, 그래서 그동안 내 삶이 순탄했나?”

 

 여자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그림자, 치치의 빼죽 나온 입이 쏘옥 들어갔다. 대신 툴툴거리며 다시 침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흥! 그래도 그때 그 조폭 놈이랑 잘 만나서 이제까지 나름 잘 먹고 살았으면서!”

 

 치치의 말에 여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 스승을 생각했다. 스승은 어린 나이에 밀항을 시도한 자신을 데리고 산 남자, 조폭이었다. 어린 아이, 그것도 장차 힘을 못 쓸 여자애를 조폭이 정상적인 생각으로 데리고 살 이유는 없었다. 다른 부적합한 이유가 아니라면. 여자를 키운 조폭은 나름 정상적이었다. 특이한 성격 때문에 여자가 꽤 힘들게 살았지만, 덕분에 지금까지 홀몸으로 잘 버티고 살 수 있었다.

 

 툭!

 

 여자는 책을 던짐과 동시에 침대를 팍 찼다. 잠을 자기 위해 불청객인 치치를 내쫓아 보내는 것이었다. 스프링이 망가진 침대 위에서 보풀이 잔뜩 일어난 이불을 덮은 여자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걸 본 치치는 또 툴툴거렸다.

 

 “치이, 나쁜 년!”

 “…….”

 “악몽이나 꿔라!”

 “…….”

 “옛날엔 나한테 이런 거 저런 거 잘도 말했으면서…….”

 

 여자의 귀에 치치의 투덜거림도 흐리게 들리다가 결국 들리지 않게 됐을 때, 여자는 기묘한 것을 보기 시작했다.

 

 쾅!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부셔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넘어지지 않게 기준을 잡으며 앞을 봤다. 거대한 공작이 제 깃털을 펼치며 부리를 위협적으로 내밀고 있었다. 깃털에 있는 화려한 무늬엔 파란색으로 빛이 박혀있었다.

 

 ‘그만해라! 나를 죽일 셈인가? 이 나를?’

 

 신기하게도 공작이 사람의 말을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여자는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검은색의 그림자들이 촉수처럼 길게 뻗어 나왔다.

 

 푸슉!

 

 검은색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공작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 뒤 천천히 공작의 몸에서 그림자들을 빼내자 그림자들 끝에 파란색 빛이 동그랗게 맺혀있었다.

 

 털석!

 

 ‘으윽…….

 

 여자는 쓰러져버린 공작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목례를 했다.

 

 ‘죄송합니다.’

 

 공작은 대답대신 힘겹게 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거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날개의 가장 큰…… 무늬를 가져가…….’

 ‘…….’

 ‘울지 말고……잘 지내…….’

 

 공작이 마침내 날개까지 땅바닥에 내려놓자 여자는 그제 서야 제 뺨을 만져봤다. 줄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왜 내가 울고 있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생생한 촉감. 여자가 멍하게 눈물을 닦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드디어 마지막 봉인이네?’

 

 뒤를 돌자 아까 본 시엔이라는 남자가 피식 웃고 있었다. 시엔은 여자의 손을 잡아 끌어 제 가슴팍에 내려놨다. 그러자 파란 빛이 가슴에 스며들더니 와이셔츠 아래 파란색으로 문신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시엔의 뒤에 거대한 빛이 생겨났다. 눈이 부신 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네 소원을 말할 차례인가?’

 ‘…….’

 ‘뭘 말할 거야? 네가 그림자가 없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할 거야?’

 

 자신의 비밀이 언급되자 여자는 눈을 살짝 떴다. 여전히 거대한 빛 때문에 시엔이라는 남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슬픈 표정이었다. 구슬프고 원망이 담겨있는 듯 한.

 

 ‘아니면 다시…….’

 

 여자는 대답대신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시엔이라는 남자의 뺨에 닿을 쯤 거대한 빛이 갑자기 두 사람을 가로질렀다.

 

 슈욱!

 

 그 여파로 여자가 휘청거리며 넘어지려고 할 때.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며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후우, 후우, 숨을 고르며 머리를 짚었다.

 

 벌써 5일 째였다.

 알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이.

 

 맨 처음에는 멧돼지를 죽이더니 호랑이, 사슴, 뱀 차례차례로 동물들을 죽였다. 마침내 오늘은……. 여자가 침대 밑에 있는 책을 집어 들다가 꿈에 여파인지 손을 떨어 다시 떨어트렸다. 그러자 책이 펼쳐졌는데 아까는 아무 것도 없던 페이지에 글자가 쓰여 진 것이 보였다.

 

 [한편 아사녀는 이불을 푹 눌러쓰고 언젠가 올 새오를 기다렸다. 하지만, 새오의 임무는 막중했기에 시간이 걸렸고 이사녀는 그저 새오를 기다리다 못해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101페이지]

 

 아까는 5페이지가 보이더니 이번엔 그보다 한참 뒤인 101페이지에 새로운 문장이 써있었다. 여자는 다시 책을 집어 드는 대신, 제 머리를 짚고 말을 뱉었다.

 

 “치치, 그 새끼 어디 사는지 알아와.”

 “거봐! 이럴 때만 나한테 말하지?”

 

 옷걸이 그림자에서 스르륵 나온 치치는 고개를 세게 저으며 대답했다.

 

 “싫어! 하라면 할 줄 알아?”

 “…….”

 “뭐! 뭐!”

 “…….”

 “뭐 줄 건데?”

 “…….”

 “나 고기 먹고 싶어.”

 “…….”

 “히히! 그럼 알아가지고 온다! 안녕!”

 

 치치가 창문으로 스르륵 나가버렸다. 여자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봤다. 달빛이 이상하게도 선명하고 붉어보였다. 이상하게도. 그게 어디서 많이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엔이라는 놈을 만나서 물어봐야했다. 그놈은 자신이 평생 궁금해 하는 걸 알고 있다. 잘하면 그놈에게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꾸욱.

 

 여자는 주먹을 꽉 쥐며 가만히 창문 밖을 바라봤다.

 

 **

 

 [환상의 그림을 그릴 예술가를 찾습니다. 어떠한 사례라도 해드립니다. 참가하시고 싶은 분은 JC 금융주식회사 65층 사무실로 서류 작성 후 접수해주십시오. -JC 금융주식회사 기획운영팀-]

 

 고층 타워, JC 금융주식회사 앞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 전단지를 가지고 있었다. 의심스러운 문구가 잔뜩 쓰여 있는 전단지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짓이라 여기지 않는지 전부 웃음꽃을 피우며 줄을 서고 있었다. 다만 건물 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살아있는 동물을 어떻게 종이에 넣는 단 말이야?”

 “나는 처음에 생생하게 잘 그리라고 비유하는 건가 싶었다니까?”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줄을 스쳐 여자를 지나갔다.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던 여자는 전단지를 구겼다. 봉인이라……. 꿈에서 나온 동물과 자신. 동물을 죽이자 나온 빛과 그 빛을 흡수한 놈. 여자가 멍하게 있을 때 치치가 다른

  이들 몰래 속삭였다.

 

 “야, 줄 안서?”

 “…….”

 “내가 그놈에 대한 거 다 조사했는데 왜 그래?”

 

 그림자의 말대로 집을 방문했던 시엔이라는 놈은 세상을 무법지대로 만드는 천지회의 계열사의 회장이었다. 게다가 홍콩과 주식시장을 주름잡는 ‘합법’ 적인 회사.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보던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이거 밤에 와야겠구만. 여자가 뒤돌아서 가려고 할 때 팔을 붙잡였다.

 

 “어머! 언니! 왜 이제 와!”

 

 고개를 돌려 보니 여자의 집 근처에서 사는 소녀, 랑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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