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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저물 때
작가 : 새하
작품등록일 :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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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탐욕의 그림자 (1)
작성일 : 17-07-07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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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탐욕의 그림자

 

 ‘새오님!’

 

 덩치 큰 도깨비가 히죽히죽 웃으며 새오를 불렀다. 새오는 미간을 찡그리며 제 모습을 살펴보려고 했다. 도깨비가 두루마리를 펼쳐 보여주지만 않았다면. 두루마리엔 먹으로 그려진 그림이 있는데, 시야가 흐려 잘 보여 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선명히 보여 지는 건 붉은 눈을 부라리며 있는 멧돼지였다. 도깨비는 털이 잔뜩 있는 손가락으로 멧돼지를 가리켰다.

 

 ‘요 녀석 기억나십니까? 맨 처음 잡은 놈인데, 아주 힘들었잖아요!’

 

 새오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도깨비는 히죽히죽 웃으며 입맛을 다졌다.

 

 ‘그 때 새오님이 인간으로 둔갑한 멧돼지 놈을 한 눈에 알아보시곤 딱! 하니 유인해서 잡아 버리셨는데. 근데 그 때 어떻게 알아보신 겁니까요?’

 

 새오는 대답 없이 눈을 끔뻑거리며 도깨비를 쳐다봤다. 도깨비도 눈을 깜빡이다가 눈빛, 하고 중얼거리더니 다른 말을 꺼냈다.

 

 ‘아참, 이제 한 놈만 잡으면 되지요?’

 ‘그래.’

 

 새오는 저절로 대답하는 제 입이 신기했지만, 꿈이라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과업을 마치시면 그 인간한테 가십니까?’

 ‘그래야지.’

 ‘그런 인간은 새오님께 어울리지 않는……. 아닙니다요!’

 

 새오는 대답 대신 미간을 찌푸리며 도깨비를 쳐다봤다. 도깨비는 불호령 같은 새오의 눈빛에 서둘러 두루마리를 펼쳐들었다. 그림 속엔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어먹는 멧돼지가 있었다. 새오는 더 자세하게 보기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보이는 건.

 

 “후우!”

 

 컨테이너 박스인 제 집의 천장이었다. 새오는 벌떡 일어나 뻗었던 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내 욕설을 뱉으며 침대 밑에 있는 책을 주워 펼쳤다. 놀랍게도 새로운 페이지가 새롭게 쓰여 있었다.

 

 [새오는 요술을 부리는 도깨비와 계약을 한 뒤 산을 다시 넘었다. 그러자 탐욕스럽게 산을 먹어치우는 것도 모자라 인간들을 잡아먹는 멧돼지를 발견했다. 새오는 침착하게 멧돼지를 유인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하여 고운 자수가 들어간 두루마기를 쓰고 조심스럽게 멧돼지에게 다가갔다. -7페이지-]

 

 [멧돼지를 힘겹게 봉인하자 두루마리엔 멧돼지가 형형한 눈으로 새오를 째려보고 있었다. 이로서 봉인의 두루마리에 들어갈 첫 번째 그림이 그려졌다. -10페이지-]

 

 새오는 유심히 10 페이지를 보다가 책을 덮었다. 벌써 4일이나 지났다. 지난 시간동안 어떻게 동물을 찾고 어떤 방법으로 봉인해야할지 계속 생각했지만 나온 답은 없었다. 놈이 준 책은 백지 상태로 변하지도 않았다. 방금 전까지는.

 

 “후우…….”

 

 이젠 봉인할 동물이라도 찾으러 동물원이라도 가볼까. 일단 오늘은 집 밖을 돌아 다니자고 마음 먹었다. 길을 나서기 전 늦은 점심이라도 때워야했다. 새오는 근처에 사는 먹거리 노점을 하는 여자에게 먹을거리를 사자고 생각했다. 늦은 저녁부터 노점을 하니 아직 집에 있을 것이다.

 

 끼익.

 

 밥을 먹기 위해 문을 열었자 보이는 것은 노점상 여자가 애타게 딸을 찾으며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랑 어디 있니! 랑! 랑!”

 

 랑이라면, 주식회사에 줄을 설 때 만났던 여자였다. 곡성에 눈을 비비며 집에서 나온 장씨. 그리고 그 주변에 살던 노숙자들은 노점상 여자를 보며 수근거렸다.

 

 “거, 젊은 딸년 있잖아. 삼삼하게 생긴. 걔 없어졌대.”

 “벌써 없어진지 며칠이 됐으니.”

 “에이, 친구 집에 간 거 아닌감?”

 

 새오는 시끄러움에 늦은 점심 대신 현관문을 닫은 것을 선택했다. 다시 문이 닫힐 쯤.

 

 “이 친구야 요즘 그런 말 몰라? 돼지새끼가 사람을 잡아먹는 거?”

 

 거슬리는 말이 새오의 귀에 박혔다.

 

 “돼지새끼?”

 “아, 그게 상해에서 온 마약장이 두목을 말하는 건데-. 억! 깜짝아!”

 

 입을 털던 노숙자는 제 바로 뒤에 무표정으로 듣고 있는 새오를 보고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뭐, 뭐야! 벙어리! 뭐 볼, 볼일 있어?”

 “계속 말해.”

 “뭐? 아니, 그보다 말 할 줄 알았어?”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새오의 목소리에 입을 벌려 놀라했다. 심지어 딸을 잃은 노점상 여자까지. 그럴 만도 한 것이 새오가 2년 째 이곳에 살았지만, 말을 한 마디도 안 해서 다들 벙어리나 문신장이로 불렀으니까. 그러든 말든 새오는 고개를 돌려 노점상 여자에게 턱짓했다.

 

 “랭 씨 랑이 맨 마지막으로 있던 곳이 어디지?”

 “란, 란콰이펑에 놀러간다고 했어…….”

 

 노점상 여자, 랭씨는 어버버 거리다가 대답했고 다들 그 장면을 놀랍게 쳐다봤다.

 

 “시상에, 딸년을 잃어버려야지만 문신장이의 말을 들을 수 있던 거여?”

 “그러게……. 목소리 한 번 더 듣고 싶으면 딸을 아니, 넌 자식이 없으니 그 두 짝이라도?”

 “아서라, 이 양반아!”

 

 수군거리던 노숙자들은 전부 실소를 뱉었다. 물론 제 은밀한 곳들을 손으로 가리며.

 

 결국 그 날 페리 근처에 사는 이들은 문신장이가 말을 할 줄 알았다고 소문이 돌았다.

 

 **

 

 미러볼이 빠르게 움직이며 오색 빛을 뿜어냈고 그 아래 높은 무대에 있는 디제이는 신나는 음악을 뽑아냈다. 낮은 무대에 있는 사람들은 몸을 흔들어대며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안에서 긴 머리 여자가 춤을 추다가 아차 하며 두리번거렸다.

 

 “이제 슬슬 나 가야할 시간인데! 타로! 타로! 어디 갔어?”

 “타로? 걔 속 안 좋다고 춤 안 춘다고 하던 것 같던데?”

 

 긴 머리 여자 옆에 있단 단발머리 여자는 춤을 추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요즘 기운이 없어 보여.”

 “그럴 만도 하지. 저번 주에 오디션에 떨어졌잖아.”

 “그래서 다이어트 엄청 하던 것 같던데? 어! 저기 있다!”

 

 긴 생머리 여자가 손가락으로 멀리 있는 화장실을 가리켰다. 화장실 입구엔 클럽 이름인 ‘드래곤 마우스’ 의 로고가 박혀있었고 갈색머리 남자, 타로가 서있었다. 타로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급히 칸으로 향했다. 문을 간신히 닫고 변기를 잡더니 우웩, 하고 모든 걸 게워 냈다.

 

 “으으…….”

 

 타로가 하루 종일 술 몇 모금과 다이어트 약 밖에 먹지 않았기에 나올 건 신음밖에 없었다. 타로는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넣어 더 구역질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변기의 물을 내리고 비틀거리며 세면대로 나왔다.

 

 촤아아!

 

 수도꼭지에 나오는 물로 세수를 하기 시작한 타로는 슬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삐쩍 말라 이목구비가 굉장히 날카로워 보이는 갈색머리 남자가 보였다. 눈앞에 비친 자신을 보며 타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조금만 말랐으면 뽑았을 텐데. 아쉬워, 응?’

 ‘너는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라 관리 잘 해야 하는 거 알지?’

 

 타로는 얼마 전 들었던 말들을 떠올리며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러자 차고 있었던 은색 뱀 모양 귀걸이도 찰랑거리며 움직였다.

 

 “이정도면 괜찮은데, 얼마나 빼란 거지? 다시 한 번 토할까? 매일 토했더니 효과가 있는 것 같던데…….”

 

 ‘그러지 말고 특별한 걸 먹어봐! 살 안찔 걸?’

 

 속삭이는 것 같은 낮은 저음에 타로는 고개를 들었다. 거울엔 놀란 표정의 자신과 제 옆에서 무표정으로 손을 닦는 검정머리가 있었다.

 

 “지, 지금 뭐라고 했어요?”

 

 타로가 다급히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입구로 나가려는 검정머리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타로는 급히 검정머리를 뒤쫓아 갔다. 화장실 문을 급히 열고 뒤쫓아 갔지만,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잘 보이지 않았다. 타로가 잘못들은 거겠지 싶어 뒤를 돌려고 할 때였다.

 

 ‘저기 오른쪽 끝에!’

 

 또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오른쪽 출구 복도를 걷는 검정머리가 보였다. 타로는 어리둥절해하다가 급히 뛰어가 출구로 나갔다. 그러자 검정머리는 중얼거리며 한숨을 뱉고 있었다.

 

 “여기도 아니고…….”

 

 허탕만 치는 군. 란콰이펑에 클럽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새오는 제 검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이곳이 으쓱해서 납치당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건만. 새오는 아직 가보지 못한 클럽을 헤아리며 클럽 골목을 나가려고 했다. 으쓱한 소리만 아니었으면.

 

 “꺄악!”

 “소리 내지 못하게 입 막아!”

 

 작은 목소리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리들이었다. 새오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움직임이 느껴지는 주차장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벽에 등을 대고 고개를 살짝 내밀자 마스크를 쓴 남자들이 긴 머리 여자의 입을 막고 차 안으로 쑤셔 넣고 있었다. 새오는 벽의 그림자에 녹아들어가며 따라갈지 잡혀갈지 고민할 때.

 

 “메이!”

 

 화장실에서 봤던 빼빼 마른 갈색머리 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질렀다. 이런 멍청한! 새오가 미간을 찌푸릴 때 갈색머리 덕분에 여자를 납치하던 남자 몇이 이쪽을 쳐다봤다.

 

 “타로 도망-. 읍!”

 “다, 당신들 뭐야! 메이을 왜……. 시, 신고 할-.”

 

 마스크를 쓴 남자 중 대머리가 턱짓을 했다. 그러자 마스크를 쓴 남자 두 명이 갈색머리 남자, 타로에게 다가왔다. 타로는 부들부들 떨다가 신고하려고 핸드폰을 꺼냈지만, 빠르게 다가온 마스크를 쓴 남자들이 손과 몸을 붙잡는 건 금방이었다.

 

 “뭐야! 이거 읍-.”

 “어이, 그거 데리고 와.”

 

 긴머리 여자를 기절시킨 대머리 남자가 타로를 향해 턱짓했다. 그러자 타로를 붙잡고 있던 마스크를 쓴 남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남자인데요?”

 “반반하니 그쪽 취향인 놈들이 좋아할 것 같아. 데리고 와.”

 “읍읍!”

 

 타로가 미친 듯이 반항했지만 며칠 내내 굶은 상태에서 완력이 센 남자 두 명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남자들의 손에 묻혀진 액체에 몽롱한 표정을 짓던 타로는 몸에 힘을 잃더니 마침내 눈을 감았다. 남자들은 손쉽게 차 문까지 타로를 끌고 와 차 안에 쑤셔 넣었다. 대머리남자는 그걸 보며 납치한 사람들의 수를 세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음? 저거 뭐지?”

 “네?”

 “우리가 저런 놈을 납치 했었나?”

 

 대머리 남자의 손가락 끝엔 검은 머리 여자가 정신을 잃은 채 손발이 묶여 있었다. 마스크를 쓴 남자들은 검은 머리의 몸을 만져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인데요?”

 “흠……. 뭐,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니 잠시 헷갈렸나보군. 자, 가자!”

 

 대머리 남자가 보조석에 타자 마스크를 쓴 남자 한 명이 급히 운전석에 앉았다.

 

 곧이어 차는 출발했고 납치사건이 벌여진 골목엔 어둠만 드리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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