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아아악!”
인간의 살을 뜯어먹는 낯선 소리가 룸 안에서 울려 퍼졌다.
“와, 왕씨!”
왕씨의 목덜미의 반절이 사라져있었다. 타로의 입엔 핏덩어리가 된 살점이 물려있었다. 새오는 급히 뒤를 돌아봤다. 타로의 유약했던 눈동자는 어느새 붉은 빛의 광기 어리게 변해있었다.
‘근데 그 때 놈이 멧돼지라는 걸 어떻게 알아보신 겁니까요?’
‘눈빛을 봐야지. 제정신이 아닌 탐욕스러운 눈빛이었어.’
타로의 눈빛을 본 새오는 꿈에서 들었던 한 말들이 귓가에 울렸다. 세간에 퍼졌던 뒷소문은 개소리 였구만. 돼지 같은 씌렌을 훑어본 새오는 혀를 차며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어떻게 처리하고 봉인해야할지 감이 오는데, 문제는 봉인할 곳인데…….
“나와.”
“언제 날 불러주나 했지!”
새오의 그림자인 척 했던 치치가 하품을 하며 움직였다. 새오의 손 근처에 그림자들이 원형으로 모이더니 회전을 시작했다. 새오는 구로 변한 그림자를 세게 던졌다.
슈웅!
그림자는 밧줄같이 길게 늘어나더니 살을 씹고 있는 타로를 포박했다. 그 상태로 새오가 손가락을 까닥이자 룸 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룸 안에 사람과 물체 대신 각각의 그림자와 그림자가 없는 새오 그리고 타로만 남게 됐다.
“마, 마시따…….”
“제정신이 아니군.”
새오는 온 몸에 갈색털이 나기 시작한 타로를 쳐다봤다. 살점을 다 삼킨 타로는 또 먹기 위해 바닥을 짚었다. 바닥엔 제 몸을 만지던 왕씨 대신 바닥에 쓰러진 왕씨의 그림자만 있었다.
“더, 더 먹고 싶-.”
퍼억!
타로가 더듬거리며 말할 때 그림자가 더 길게 늘어나더니 뺨을 갈겼다. 타격으로 정신을 차렸는지 꿈틀거렸다.
“답답해! 이거 풀어!”
꾸에에엑! 타로가 고개를 젖혀 짐승울음소리를 길게 뱉더니 미친 듯이 움직였다. 이내 점점 몸집이 커지더니 입고 있던 속옷이 찢겨지고 몸에 잔뜩 털이 났다. 얼굴도 넓적하고 길게, 코와 입은 쭉 앞으로 늘어나더니 돼지 코와 날카로운 이빨이 났다.
“완벽한 돼지새끼군.”
새오가 중얼거리며 말하자 멧돼지로 변한 타로가 으르렁거렸다.
“누구냐 넌!”
“너를 잠재우러 온 그림자.”
“지랄 마! 다시 봉인 될 것 같으냐?”
역시 이 멧돼지는 그 신화처럼 봉인 된 존재였다. 어떤 계기로 봉인이 풀어져서 이렇게 인간인 척 했던 것이다. 새오는 그 계기가 궁금했지만, 일단 멧돼지를 잠재우는 게 문제였다. 새오는 눈을 감고 손에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츠츠츠,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림자가 손안에 모였고 멧돼지는 네 발을 굴리더니 그대로 새오에게 몸통박치기를 하려고 달려들었다.
쾅!
멧돼지의 박치기 때문에 그림자로 된 벽에 금이 갔지만, 재빠르게 피한 새오는 멀쩡했다. 멧돼지는 푸슉푸슉 콧김을 뱉으며 머리를 털었다.
“여긴 어디에요? 응? 왜 그림자밖에 없죠?”
멧돼지가 타로의 목소리를 내며 불쌍한 척을 했다. 마치 자신은 아직 약한 인간이라는 걸 과시하기 위한 것처럼. 새오는 무표정으로 활로 변한 그림자를 잡았다. 그 상태로 활시위를 당겼다.
“이곳은 그림자가 머무는 곳.”
피슝!
“끄아악!”
그림자와 오묘한 빛이 섞인 큰 화살이 멧돼지의 미간에 박혔다. 멧돼지가 발광을 하며 움직일 때 새오는 다시 오른손에 기운을 모아 활을 만든 후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그림자가 저물 때까지 넌 도망치지 못해.”
피슝!
화살이 매섭게 날라 갔다. 이번에 화살은 빈 허공을 통과했다. 멧돼지가 순식간에 없어졌기 때문에. 새오의 눈이 살짝 커졌을 때 뒤에서 큰 소리가 났다. 어느새 나타난 멧돼지가 다시 새오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쾅! 콰직!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온전히 피하지 못한 새오는 손에서 생겨난 거대한 그림자들로 멧돼지를 막았다. 하지만 보통 힘이 아니라 그림자들이 부들거렸고 멧돼지는 발을 구르며 그림자에 박은 머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너! 우리를 봉인한 놈과 비슷한 힘을 쓰는 구나!”
“…….”
“본래 네 힘은 아니군! 힘을 쓰는 게 미숙해! 누구에게 받았나? 역시 그 놈에게 받았나?”
푸슉거리는 멧돼지의 말에 새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알 수 없는 힘과 신화에서 나오는 동물들을 봉인하는 신의 아들. 새오와 아사녀. 그리고 자신. 연결고리가 난잡하게 이루어져있었다. 왜 자신이 이렇게 얽혀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귀찮고 복잡한 건 딱 질색이었다. 새오는 좀 더 멧돼지와 겨루는 그림자 기운에 집중했다.
“상관없다! 이 인간 몸 안에 있는 게 익숙하지 않았거든!”
“…….”
“널 죽이고 그 몸을 내가 쓰면 되겠군!”
멧돼지가 그림자에 머리를 때고 다시 세게 박자 그림자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멧돼지의 강력한 힘에 점점 그림자가 흩어지더니 마침내 새오의 손바닥이 드러났다. 멧돼지는 탐욕스럽게 새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새오는 급히 손가락을 까닥였다.
휘슝! 푸슉!
“커헉…….”
아까 허공에 떨어진 화살이 다시 날라 와 멧돼지의 심장에 박혔다. 화살은 아까보다 더 커지고 강력해 져있었다. 한 번에 꿰뚫림을 당한 멧돼지는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후…….”
힘을 분배하느라 고생했던 새오는 숨을 거칠게 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멧돼지도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인간 따위에게…….”
“…….”
“지다니…….”
“넌 내가 인간으로 보이나?”
“그, 러, 면?”
멧돼지가 쌕쌕거리며 힘겹게 말을 뱉었다. 새오도 힘겹게 손을 뻗었다. 꿈에서 본 것처럼 해보자. 새오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손에서 나온 그림자들이 여러 개의 촉수로 변해 멧돼지의 배를 향해 뻗어갔다.
푸슉!
그림자들이 멧돼지의 배와 심장을 꿰뚫었다. 그 상태로 멧돼지 안을 헤집더니 그림자들이 한줄기로 나왔다. 긴 그림자의 끝엔 갈색의 큰 빛이 떠있었다. 새오는 숨을 힘겹게 뱉으며 주변을 훑어봤다.
파스스…….
점점 그림자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구축한 ‘그림자만 머무는 세계’ 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세계 즉 그림자만 있는 공간은 보통 인간들이 볼 수 없는 즉 새오와 적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세계를 구축한 새오의 힘이 약해지면 공간도 망가졌던 것이었다.
“후우…….”
공간이 망가지기 그 전에 이 멧돼지의 힘을 봉인해야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봉인할 만한 것이 없었다. 넓은 기운을 품을 수 있는 항아리 같은 물건도 없었고 이 기운을 감당할 만한 존재도 없었다. 꿈에서 나온대로라면 놈에게 봉인해야하지만 놈도 여기에 없었다. 새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거대한 힘을 억지로 흡수했다간 미쳐버리게 되니 조심해라!’
스승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림자와 실제 사람들과 벽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오는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과 고뇌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긴 그림자가 갈색 빛을 품고 새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푸욱!
“크흑!”
새오는 입술을 깨물며 바닥에 깔린 카펫을 움켜잡았다.
‘강력한 힘을 쓰지 않으며 버틸 수 있는 존재.’
스승의 말처럼 자신이 그런 존재일까? 이 힘을 버틸 수 있을까? 부들부들 떨던 새오는 제 오장육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기이한 감각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배가 고팠다.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깊은 허기짐. 그리고 특별한 것을 먹고 싶다는 욕망. 굶주림.
“배고파…….”
새오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비명이 울렸다.
“꺄아악!”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와 달리 난장판이 돼있는 룸이 보였다. 인간으로 돌아와 쓰러져있는 타로와 깨진 술병. 넓은 수영장 안에 룸을 지키던 부하들이 빠져 피를 뿌리고 있었다. 여자를 껴안던 보스 씌렌은 겁에 질려 새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오의 뒤를. 새오는 고개를 돌렸다.
‘생각해보면 그 노란 눈도 섬뜩해.’
결 좋은 검은색 머리카락. 하얀 얼굴에 박힌 선명한 이목구비.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노란 눈동자. 그와 대비되는 붉은 입술.
“다, 당신은!”
씌렌이 덜덜 떨며 소리 지르듯 말했다. C 급 조직인 씌렌은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우습게도 범죄조직에 급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전통이 깊고 범접할 수 없으며 중국 정치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천지회. 그 조직을 같이 세운 남자의 아들이며 유일무이한 후계자로 언급된 남자.
“안녕?”
시엔이 새오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새오가 힘겹게 고개를 올리자 시엔은 다리를 접어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여기서 뭐해?”
“배고파…….”
뭘 하긴 뭘 하냐, 니가 말하는 봉인인가 뭔가 하고 있다, 하는 말 대신 자신도 모르게 말이 뱉어졌다. 새오는 그때서야 알게 됐다. 제 몸을 제 멋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씹고 싶어. 삼키고 싶어. 어서 뭔가 먹고 싶어!”
제정신이 아닌 눈빛으로 새오가 중얼거리자 시엔은 나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내 선뜻 손가락 두 개를 살짝 벌린 새오의 입에 물려주었다.
와득!
새오는 섬섬옥수를 제 두 손으로 잡아 깨물며 빨아대기 시작했다. 정말 굶주려 죽기 전인 짐승새끼 같이. 시엔은 애완동물을 다루는 것 같이 새오의 머리카락을 아주 다정하게 쓸어주었다.
“맛있니?”
“…….”
“천천히 먹어야지. 체하면 아파.”
“…….”
“작고 통통한 혀 좀 봐……. 귀여워라…….”
“…….”
“여기도 그러니?”
시엔이 반쯤 들려있는 새오의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더 은밀한 곳으로 손을 뻗었다. 이내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곳에 손가락이 닿을 때.
와득!
입에 넣어진 손가락이 깨물려지자 시엔은 눈이 가늘어졌다.
“이런……. 혼난다?”
지지 않겠다는 듯 새오가 쌔액쌔액, 숨을 뱉으며 노려보자 시엔은 피식 웃었다. 새오의 입에서 거칠게 손가락을 빼내더니 두 팔로 새오를 안아 들었다. 힘이 빠진 새오는 입맛을 다지며 축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새오를 시엔은 다정하게 바라보며 속삭였다.
“내 것도 잘 빨아줄 수 있지?”
“미, 친……놈…….”
살짝 정신을 차린 새오의 배에서 갈색빛이 빠져나왔다. 갈색 빛이 둥둥 뜨더니 시엔의 배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새오는 놀라운 광경에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자신을 들고 있는 손에서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 느껴졌다. 시엔은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너……뭐, 야…….”
“나? 그림을 담는 종이.”
쪽.
시엔은 파르르 떠는 새오는 눈꺼풀에 입을 가볍게 맞췄다.
“이제 확신이 들어.”
“…….”
“넌 내가 찾던 낭군님이라는 걸.”
“미……친…….”
새오는 정신을 잃어가는 상태에서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대하는 시엔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걸. 억지로 힘을 짜내 고개를 저었지만, 마음 속 깊은 욕망은 굶주림을 더 표현하게 만들 뿐이었다. 새오가 다시 힘을 주어 손가락을 빨아대자 시엔은 보채는 아이를 다독이는 것처럼 굴었다.
“이제 먹으러 가자. 너는 날. 나는 널.”
“놈…….”
“아낌없이 다 먹여 줄 테니까 체하지 말고 삼켜야해. 알겠지?”
“…….”
“나도 씹어 삼켜줄 거니까.”
제 은밀한 곳을 매만지는 시엔에게 닥쳐 라고 말하려던 새오가 정신을 잃었다. 시엔은 그걸 가엾게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체력이 이렇게 약해서야…….”
세 번 밖에 못 할 것 같은데. 시엔이 중얼거릴 때 시엔의 근처로 다가온 매현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시엔님. 처리 다 했습니다.”
시엔이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두렵게 보는 씌렌과 그 옆에 쓰러져있는 긴 머리 여자. 그리고 깔끔해진 룸이 보였다.
“이런. 넌 이런 것 까진 안 해도 될 텐데. 뭐…….”
잘했다고 중얼거린 시엔이 매현과 함께 룸을 빠져나갔다. 그걸 두려운 시선으로 보던 씌렌이 헉헉 거리며 숨을 골랐다.
“이, 이런……. 바, 밖에 아무도 없나?”
하마터면 자신이 꾸린 조직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씌렌은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이봐! 아무도 없나?”
조직의 몰살이 예상돼서 그런지 씌렌이 불안한 표정으로 육중한 몸을 일으키려 할 때.
푸슉!
씌렌의 머리가 노랗고 긴 빛으로 꿰뚫렸다. 희미한 의식으로 씌렌이 눈동자를 굴려 옆을 쳐다봤다. 무표정의 긴 머리 여자, 얀이 있었다. 아까 부하들이 바친 여자였다.
“이……게…… 무슨…….”
휙!
긴 머리 여자, 얀이 거침없이 손을 움직이자 노랗고 긴 빛이 뽑아졌다.
풍덩!
씌렌이 그대로 쓰러져 수영장에 빠졌다. 긴 머리 여자, 얀은 그걸 내려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년은 누군데 우리를 봉인하려고 할까……. 게다가 시엔 그 놈…….”
중얼거리던 얀은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하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얀의 머리에서 노란색 기체가 빠져나왔다. 얀의 눈동자는 고유의 색, 갈색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얀의 몸 위에 노란 기체가 뱀 모양처럼 움직이더니 공중으로 뻗어 사라져갔다.
“일단 저 계집의 능력을 알아 봐야 겠어…….”
룸 안에 낮고 불길한 음성을 흩날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