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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저물 때
작가 : 새하
작품등록일 :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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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탐욕의 그림자 (4)
작성일 : 17-07-13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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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이 꿈인가…….’

 

 눈앞에 큰 호랑이와 씩씩거리는 도깨비를 본 새오가 한숨을 뱉었다. 제 옆에 있던 도깨비는 방방 뛰며 손가락질을 했다.

 

 ‘새오님! 얼른 이 자식을 봉인해버려야 합니다요!’

 

 도깨비의 두터운 손가락 끝엔 고개를 푹 숙인 호랑이가 있었다. 몸집이 거대하게 크진 않았지만, 오래 산에 살아서 산신 급이었다. 힘이며 능력이며 출중했지만 조금 멍청한 것이 흠이었을까. 그를 증명하듯 호랑이 근처엔 신성한 힘이 울렁거렸지만, 모지리 같이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

 ‘…….’

 ‘말을 해야 알 것 아니냐.’

 ‘새오님 저런 놈의 말은 들을 필요 없습니다!’

 

 쿵쾅거리며 난리치는 도깨비를 무시한 채 새오가 빤히 호랑이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처럼 눈물을 닦던 호랑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자식 놈들이 전부 인간한테 잡혀 갔습니다…….’

 ‘헉! 그런 잔인무도한!’

 ‘돌려주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제 자식이라고 해도 안 믿어주고…….’

 ‘역시 인간들이란!’

 

 들을 필요 없다며 난리치던 도깨비는 어느새 호랑이 옆에 앉아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새오는 호랑이의 촉촉한 눈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녕 네 자식들이더냐?’

 ‘아무렴요…….’

 ‘아이고 새오님. 위로 할 줄 모르시네. 자식을 왜 못 알아봅니까요!’

 

 도깨비가 낄낄거리며 손을 저었지만 새오는 무표정이었다.

 

 ‘왜 사람인 어린 아이들이 네 자식이더냐.’

 

 새오의 말에 호랑이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이내 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모습은 다르지만 내 자식이오! 내 자식!’

 ‘아니, 이 놈 갑자기 왜 이래? 새오님! 물러서십시오!’

 

 호랑이의 온 몸이 빨게 지더니 마침내 몸집도 2배로 더 커졌다. 그 상태도 위압적인 눈빛을 뛰며 새오에게 달려들었다. 도깨비는 급히 새오에게 손을 뻗었고 제 뒤가 절벽임을 안 새오도 그 손을 잡으려고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낯선 하얀 천장과 호화스러운 샹들리에를 향해 뻗은 제 손이었다.

 

 “이런…….”

 

 한숨을 뱉으며 몸을 일으킨 새오는 주변을 훑어봤다. 제 몸은 성인 세 명이 누워도 될 만큼 커다란 침대 위에 있었다. 호텔이었는지 화려한 디자인이었는데, 홍콩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넓었으며 룸 안에 다른 룸도 몇 개 더 있어보였다. 벽면엔 도금으로 장식되어있었고 중간 중간 화려한 샹들리에와 조명이 보였다. 침대 왼쪽엔 큰 창문이 있었는데, 밤 8시를 알리는 야경 쇼를 하고 있었다.

 

 “일어났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가운 차림으로 걸어오는 시엔이 보였다. 반쯤 벗고 있어도 무방하다고 말 할 만큼 상반신이 드러나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하얀 목선을 쓸고 깊은 쇠골에 머물렀다가 다시 넓은 가슴으로 떨어졌다. 시엔은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으로 쓸며 침대에 걸쳐 앉았다.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꿈 꿨어?”

 “왜 내가 다 벗고 있지?”

 “무슨 꿈 꿨어?”

 

 서로 하는 말에 대답 없이 묻기만 했다. 새오는 시엔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호랑이 꿈.”

 “태몽 아닐까?”

 

 새오는 당장 닥치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가만 보면 요새 저 놈 때문에 말을 많이 했다. 평소처럼 입을 다물면 되는 일이었다. 새오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시엔은 빙긋 웃으며 하얀 이불을 들췄다. 새오의 작고 단단한 나체가 드러났다. 정작 몸 주인은 무표정이었지만.

 

 “뭐 안 먹고 싶어?”

 “…….”

 “배 안고파?”

 

 배고프냐는 말에 새오는 아까 추태를 보인 제 모습을 떠올렸다. 이내 시엔의 여유 만만한 표정을 보곤 옆에 있던 베개를 발로 세게 찼다.

 

 띵!

 

 베개가 떨어짐과 동시에 벨소리가 울렸다. 시엔은 그런 새오를 버릇없는 아이처럼 바라보다가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현관문이 열리자 트레이를 끌고 온 호텔리어가 있었다.

 

 “룸서비스 도착했습니다.”

 “이쪽으로. 저긴 말썽꾸러기가 있거든요.”

 “네?”

 “버릇없게 배게도 던지고 하루 종일 굶었는데 배 안 고프다고 때을 쓰지 뭐에요.”

 

 시엔의 농담에 호텔리어는 어색하게 웃으며 안쪽 룸의 테이블에 음식들을 차렸다. 잠시 후 시엔이 나가려는 호텔리어의 손에 팁을 쥐어줬다. 호텔리어는 잘생긴 시엔의 얼굴 홀린 듯 보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룸에서 나갔다. 시엔은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새오의 근처로 걸어왔다.

 

 “어린이. 밥 먹어야죠.”

 “닥쳐.”

 

 참다못해 욕을 뱉은 새오가 알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엔이 현관 쪽에 있을 때 입을 만한 옷을 찾아보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가려고 창문을 열자 시엔이 그 손을 잡았다.

 

 “그러고 나가게?”

 

 시엔이 새오의 알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새오는 어느새 깍지를 껴잡은 손을 거칠게 쳐냈다. 다시 창문으로 나가려고 하자 시엔이 입꼬리를 올렸다.

 

 “능력으로 순식간에 집에 갈 수 있는 건 아는데. 힘들지 않을까?”

 

 맞는 말이었다. 멧돼지를 해치우느라 있는 힘은 다 썼다.

 

 “식사 하고 가.”

 “…….”

 “맨 몸으로 나갈 순 없잖아. 교양 없이.”

 

 자신도 모르게 울컥한 새오는 턱으로 반쯤 벗겨진 시엔의 가운을 가리켰다.

 

 “거의 헐벗고 호텔리어와 대화하는 것보다 교양 있겠지.”

 “하하, 나한테 교양 운운하는 거야?”

 

 새오는 대답 대신 급히 시엔을 지나쳐 음식이 차려진 룸으로 걸어갔다. 짙은 갈색의 큰 테이블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테이크부터 볶음밥과 스프 종류들까지 있었다. 난생 처음 진수성찬을 본 새오가 가만히 서있었다.

 

 “저기 앉아.”

 

 등 떠미는 손에도 새오가 가만히 있자 시엔은 제 손으로 가운을 벗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쳐다보던 새오에게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나도 벗고 먹어주려고.”

 

 새오는 어깨를 으쓱하는 시엔을 지나쳤다. 하지만 창가에 비친 시엔의 나체가 보였다. 넓은 어깨부터 단단한 허리와 촘촘히 박힌 근육들. 탄탄한 허벅지와 긴 다리. 그리고 알알이 박힌 복근 근처에 술렁이는 갈색의 무언가. 자신도 모르게 시엔을 살펴보던 새오는 고개를 돌렸다. 시엔의 배에 멧돼지 문신이 보였다.

 

 “이거? 아까 보니까 생겼던데?”

 

 새오는 아무 말 없이 시엔의 배에 손을 살짝 댔다. 그러자 문신처럼 새겨진 멧돼지가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도망가듯 시엔의 등에 다시 새겨졌다. 기묘하게도 움직이는 그림 같았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나?”

 “음……. 나도 처음이라서 이런 건 처음 봐.”

 “처음?”

 “응. 근데…….”

 

 말끝을 흐리던 시엔이 멍하게 보던 새오의 손목을 잡았다.

 

 “내 몸이 만져지는 것도 처음이야.”

 

 시엔의 이끌림에 따라 손이 은밀한 밑으로 슬슬 내려갔다. 마침내 거대한 물건에 손이 닿을 쯤 새오가 손을 뿌리쳤다. 그 후 얼른 자리에 앉았다. 저 거대한 물건을 마주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책임 안 져?”

 

 새오가 닥쳐라는 말을 억지로 삼키자 시엔이 하하, 하고 작은 웃음을 뱉으며 알몸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러든 말든 진수성찬을 훑어본 새오는 포크와 나이프를 잡고 급히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슥슥, 끽!

 

 질 좋은 채끝살이 잘 안 썰어질리 없었다. 다만 한 번도 나이프를 안 써본 이에겐 어려울 뿐이었다. 진짜 살을 베는 나이프는 잘 썰려지던데……. 새오가 나이프를 내려놓고 다른 것을 먹으려고 할 때 시엔이 손을 뻗었다. 새오가 난장판으로 만든 스테이크가 치워지고 다 썰린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가 바로 앞에 놓여졌다.

 

 “젓가락질은 잘 하지?”

 

 시엔이 젓가락을 가리키자 새오는 얼른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먹고 얼른 가려는 마음은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와 볶음밥에 식어갔다. 당연하긴 했다. 특 VIP 손님이 5성급 호텔의 쉐프에게 특별히 주문해 직접 만든 음식이었다.

 

 “맛있어?”

 “…….”

 “편식하지 말고 이것도 먹어야지. 고기만 먹으면 어떻게 해.”

 

 어린 아이를 챙겨주듯 말하는 시엔을 무시 할 만큼 음식이 입에 맞았는지 새오는 풀어진 표정이었다. 그와 달리 시엔은 와인만 홀짝이며 새오를 유심히, 온 몸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끈적한 눈길을 애써 무시하던 새오는 포크를 세게 움직이며 시엔을 쳐다봤다. 어서 너도 먹으라는 눈빛을 쏘며.

 

 “왜 안 먹냐고? 배고파서.”

 

 시엔의 대답은 이상했다. 하지만 눈빛은 솔직했다. 배고픔을 참으며 먹이를 핥아보는 늑대 같았으니까. 시엔은 혀로 제 붉은 입술을 쓸어댔다.

 

 “안 추워?”

 “가지고 있는 옷 없나.”

 “속옷은 무슨 색이 좋아? 난 빨간 색이 좋던데.”

 “…….”

 “좋아하는 옷 스타일 말해봐. 다리 꼬지 말고.”

 

 시엔이 꼬이진 새오의 다리를 유심히 쳐다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리로 가려진 은밀한 곳을.

 

 “후……. 걸칠만한 옷 정말 없나?”

 

 요근래 제일 길게 많이 말을 뱉고 있지만, 상대방은 계속 지껄이고 싶은 말만 했다. 이놈 원래 대화 방식이 이렇군. 새오가 식사를 중단하려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와 동시에 시엔이 의자에 놓여져 있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받아.”

 

 새오는 얼른 옷을 입기 위해 쇼핑백을 받았다. 급히 쇼핑백을 열어보자 하얀 상자만 들어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자를 열자 최신형 스마트폰이 들어있었다.

 

 “앞으론 그걸로 연락 해.”

 “…….”

 “연락 할 일이 많을-.”

 

 퐁당!

 

 새오가 가차 없이 핸드폰을 물 잔에 넣어버렸다. 화끈한 대답에 벙찐 시엔에게 새오가 쏘아붙였다.

 

 “옷 내놔.”

 

 뭐라 더 약 올리려던 시엔은 새오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운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내 대답해주려고 할 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잠깐만 기다려.”

 

 시엔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벗어둔 가운을 입으며 룸 밖으로 나갔다. 룸 안에 새오 혼자, 아니 치치와 단 둘이 남게 됐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치치는 꺄악 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이게 무슨 진수성찬이야!”

 “가자.”

 “뭐? 나 며칠 굶었엉! 음냠!”

 “…….”

 “그리고 저 시엔이라는 놈, 꿀꺽, 앞에선 힘을, 냠, 잘 못쓰겠단 말이야!”

 “뭐?”

 

 치치는 대답대신 손으로 이것저것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보던 새오는 시엔의 지시로 의자에 놓여진 여분의 테이블보를 집어 들었다. 그것으로 몸을 둘러 대충 가리고 창문을 열었다.

 

 휘잉~

 

 밤바람이 차갑게 뺨을 스쳤지만, 새오는 거침없이 42층에서 뛰어내렸다.

 

 “우씽!”

 

 치치는 음식을 꾸역꾸역 삼키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룸에 더러워진 식탁 빼고 아무도 없게 되자 룸의 방문이 열렸다. 쇼핑백 몇 개를 가져온 시엔이었다.

 

 “이런…….”

 

 시엔은 혀를 차면서 테이블에 있는 와인잔을 들었다. 창문에 기대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을 홀짝였다.

 

 “갈 곳이 없을텐데?”

 

 시엔의 불길한 말처럼 새오가 집 앞에 도착하니 이웃들이 땅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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