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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저물 때
작가 : 새하
작품등록일 :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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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탐욕의 그림자 (5)
작성일 : 17-07-15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4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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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곳이 없을텐데?”

 

 시엔의 불길한 말처럼 새오가 집 앞에 도착하니 이웃들이 땅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아이고, 갈 곳이 없는데 재계발이라니!”

 

 땅을 짚고 통곡하던 이웃들 앞엔 노란 띠가 둘러져있었다. 띠 안엔 완전히 허물어진 새오의 집과 허물기 시작한 이웃의 집들이 있었다. 띠 밖엔 국가에서 허가 받은 재개발 공지 안내판이 있었다.

 

 “우린 어디로 간디야!”

 

 불법 이민이나 범죄자들 아니면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이 없어져도 뭐라 반항할 수 없는. 그래서 공사하다가 버려진 컨테이너 박스에 살고 들 있었다. 이웃도 자신도. 무리하게 힘을 써서 그런지 한참 숨을 고른 새오가 머리를 짚었다. 그 때 새오보다 먼저 집으로 온 랑이 다가왔다. 랑은 괜찮았는지 평소처럼 똑같이 새침한 표정을 띄고있었다. 다만 희미하게 피곤함이 깃들어져있었다.

 

 “전화 받으라는 데요?”

 

 랑이 조금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새오는 랑을 유심히 살펴보자 랑은 어깨를 으쓱이며 괜찮으니

  받으라는 손짓을 했다. 새오는 핑크색으로 범벅된 휴대폰을 받았다. 전화할 사람은 뻔했다.

 

 -배는 이제 안 고프겠네.

 “너.”

 -앞으로 이렇게 연락해야겠다. 생각보다 좋아하네?

 “무슨 개수작이야.”

 -개수작 정도는 아니고, 그냥 자기 목소리 많이 듣고 싶어서.

 

 새오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던지려는 충동을 참았다.

 

 -입을 옷은 있어?

 

 있을 리가 없었다. 집이 한순간에 없어졌으니까.

 

 -내가 모든 걸 제공해주겠다고 했잖아. 그렇지?

 “…….”

 -내가 좀 많이 외로워서.

 “…….”

 -옆에 누가 없으면 잠을 못자.

 

 전형적인 개소리였다.

 

 -안 오면 우리 자기 배고플 때 물려주는 손가락으로 도장 찍으려고.

 

 “무슨.”

 -재개발 허가 도장. 거기다 관광업소 지을 거야.

 “상관없어.”

 “저는 상관있는데요?”

 

 전화를 훔쳐듣던 랑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해? 새오는 랑을 한 번 흘겨보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교양 없이 식탁보로 몸 가리고 있지 말고 그냥 와.

 

 새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훑어봤다. 허름한 구석에 어울리지 않는 외제 차 앞, 서있는 매현이 보였다.

 

 ‘나는 눈이 여러 개니까.’

 “그 말이었나…….”

 

 새오가 대답처럼 중얼거리자 전화 너머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와서 할 것도 있잖아.

 “할 것?”

 -이 멧돼지 더 살펴봐야하지 않겠어? 안 움직일 때도 있어.

 

 아깐 경황이 없었어 문신처럼 새겨진 멧돼지를 대충 봤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움직이는 건 둘째 치고 자신 안에 멧돼지를 넣었을 땐 감당하지 못했는데, 정작 놈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놈을 살펴보긴 봐야했다.

 

 “그래.”

 

 순순히 대답해서 그런지 시엔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도 해야지. 글자 읽을 줄은 알지?

 “뭐?”

 -근데 계약서가 영어로 써 있는데 어쩌지?

 

 퍽!

 

 성질을 긁는 희롱에 새오는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그 후 아차 싶어 고개를 돌리자 울먹이는 랑이 보였다.

 

 “36개월 약정인데…….”

 “…….”

 “그래도……. 나 구해줬으니까 봐줄 게요…….”

 

 새오는 난생처음 도망치기 위해 급히 뛰었다. 매현이 서있는 외제차 근처로. 새오가 다가오자 매현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저번엔 죄송했습니다.”

 “…….”

 “그분이 절 조종하실 땐 제가 정신을 차리기 힘듭니다.”

 

 매현이 주머니에서 안대를 꺼내 오른쪽 눈에 착용했다. 정확히 말하면 노란 색 눈동자가 있는 쪽이었다. 새오는 작게 혀를 차며 매현이 문을 열자 차 안에 앉았다. 매현도 급히 차 안으로 들어가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분께서 오기 전 심심하면 이걸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매현이 운전을 잠시 멈추고 내민 건 신화가 적히는 책이었다. 집에서 이것 하나만 건졌나보지. 새오는 받아 들고 책을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부분이 적혀있었다.

 

 [멧돼지를 봉인한 새오는 두루마리를 펼쳤다. 하얀 종이 안, 멧돼지는 홀로 날뛰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에 새오는 붓을 들어 잡초와 풍성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 그리고 잉어가 가득 든 연못을 그려주었다. 그러자 멧돼지는 더 이상 날뛰지 않고 얌전히 먹이를 먹었다. - 25 페이지]

 

 [새오는 멧돼지에게 ‘외롭지 않게 해주마.’ 라고 말한 뒤 산길을 다시 나섰다. 다른 것들을 봉인하기 위함이었다. 산길을 넘어 두 번째 산에 오르니 울고 있는 호랑이가 나왔다. -26페이지]

 

 산 너머 산이구만. 새오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음 장을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27페이지는 공백이었다. 도대체 책이 어떻게 써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려려니 했다. 어차피 제 존재도 사람의 머리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갑갑한 마음에 창문을 톡톡 두들기자 매현이 살펴보고 있었는지 창문이 내려갔다.

 

 솨아-.

 

 미지근하지만 나름 시원한 밤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밤거리와 장사를 하는 노점상들이 한눈에 보였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타로! 빨리 와! 왜 어제 연락이 안됐어?”

 “나 어제 술 많이 마셨나봐! 어제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나! 깨어나 보니까 이상한 곳이어서 얼른 집으로 왔지!”

 

 삐쩍 마른 갈색머리 남자가 친구들에게 달려가는 것이었다.

 

 휘이-.

 

 다시 한 번 밤바람이 불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강한 움직임을 멈췄고 사람들의 그림자도 당연하게 벽이나 바닥에 멈춰있었다. 새오는 제 옆 좌석을 힐끗 쳐다봤다. 차문의 그림자인 척 하는 치치와 그늘하나지지 않은 빈 좌석. 새오는 빈 좌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당연하게도 빈 좌석엔 아무 것도 그늘지지 않았다.

 

 “하…….”

 

 어릴 때나 하던 짓이었다. 새오는 헛웃음을 작게 뱉으며 턱을 괴었다. 다시 길거리에 사람들이 보였다. 정확히는 그림자들을. 왜 나는 다르게 태어났나, 라는 질문의 답은 들어 본적이 없다. 누가 해준 적도 없다. 그러니 뭐라도 해서 답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들어 계속 이렇게 찾는 게, 사는 게 맞나 싶지만…….

 

 새오는 희미한 담배냄새와 네온사인의 빛에 서서히 취해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달콤하고 희미한 씁쓸한 내음이 퍼지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붉은 색과 하얀 색 아네모네들이 잔뜩 펼쳐져있는 작은 꽃동산이었다. 동산 바로 아래는 소나무와 오솔길이 보였다. 오솔길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걸어오는 여자가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구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결 좋은 검은 색 긴 생머리. 선녀처럼 곱고 단정한 이목구비에 지나치게 붉은 색 입술. 그리고 새초롬한 눈매에 박힌 창녀 같은 눈빛. 어울리지 않게 허름한 무명옷.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자신이 아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까마귀를 시켜서 여기 오란 이유가 뭐…….’

 

 툴툴거리며 까마귀와 오솔길을 걸어오던 아사녀는 눈앞에 펼쳐진 꽃밭에 말을 잇지 못했다. 볼이 살짝 발그스름해지며 천천히 꽃밭을 향해 걸었다. 살짝 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여 눈을 감았다. 퍽 고와 사람이 아닌 선녀처럼 보였으나 도도하게 올라간 눈매가 가시 있는 꽃 같았다.

 

 ‘좋네.’

 ‘…….’

 ‘나를 위해 준비한 거야?’

 

 아사녀는 두 팔 벌려 아네모네를 가득 껴안았다. 마치 각별한 연인을 맞이하듯이.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아사녀의 팔과 머리에 잔뜩 묻어 나왔다.

 

 ‘아, 당신은 인간세상에서는 보이지 않지. 깜빡했어.’

 ‘…….’

 ‘누군가에게 꽃을 받아본 건 처음이야.’

 ‘…….’

 ‘몸을 팔라고 돈을 많이 받아보긴 했지만.’

 

 아사녀가 씁쓸하게 웃자 잔잔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자 꽃잎들도 달달한 향기도 바람에 흩날려 아사녀 주변을 맴돌았다.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아사녀가 꺄르르 웃어댔다.

 

 ‘하하, 위로하는 거야?’

 ‘…….’

 ‘보기보다 착하네.’

 ‘…….’

 ‘노래 불러줄래?’

 

 꽃 한 송이를 따 귀에 꽂은 아사녀가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한쪽을 쳐다봤다. 잠시 바람 지나치는 소리만 들리더니 소쩍새가 작은 목소리로 감미롭게 울기 시작했다.

 

 

 “으음~.”

 

 희미한 콧노래에 눈을 뜨자 이번에도 낯선 천장이었다. 이번엔 아까 그 호텔보다 더 화려하게 천장에도 황금 장식이 박혀있었다. 새오는 본능적으로 이곳이 어디인 줄 알았다.

 

 “깼어?”

 

 나른하고 낮은 목소리. 새오가 몸을 일으키자 하얀 침대에 있는 자신과 걸쳐 앉은 시엔이 보였다. 시엔은 아까와 달리 핏 좋은 검붉은 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넥타이도 각과 색 맞춰서 조화로웠고 젖어서 나폴 대던 머리카락은 빳빳하게 세워져 제대로 세팅되어 있었다. 흡사 잡지의 모델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와 달리 자신은 여전히 큰 식탁보를 입고 있었다.

 

 “자기 취향을 모르겠어서 몇 개 사왔어.”

 

 시엔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엔 침대를 둘러싼 수십 개의 쇼핑백이 있었다. 그것도 죄다 명품 로고가 박혀있었다. 새오는 벌써부터 일이 꼬였다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시엔은 해맑게 웃으며 제일 유명한 브랜드 쇼핑백을 집어 들어 침대에 내용물을 쏟아 부었다.

 

 “치마? 아니면 바지?”

 “벗어.”

 “뭐?”

 

 새오는 대답 대신 시엔의 마이를 거칠게 잡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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