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야, 우리 그냥 집에서 기다리는 게······.”
“싫어.”
단호한 소모의 대답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휑하던 길가를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니 저편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 길이 보였다.
나는 소모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플 법도 한데 소모는 나를 보며 싱긋 웃기만 할 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벌써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이 더해질수록 소모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피부가 새하얗게 질릴 정도였지만, 소모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낯짝도 두껍지.”
솥뚜껑만한 쟁반을 머리에 이고 가던 여인이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하여간 저 뻔뻔스런 성격은 지 애비랑 똑같다니까.”
“어디서 걸레 냄새 안 나니?”
길거리에 서서 머리 장식품을 구경하고 있던 여인들이 성큼성큼 다가와 소모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며 말했다.
“호위무사 노릇 해주던 동생님은 어디 가신건가?”
덥수룩한 수염을 늘어뜨린 사내가 소모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모가 걸음을 멈추자, 사람들이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위협적인 분위기에 나는 재빨리 소모의 손목을 붙잡고 달렸다. 뒤에서 시끄러운 야유소리가 수도꼭지를 틀 듯 터져 나왔다.
등 뒤로 식은땀 한 줄기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발걸음이 빨라짐에 따라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날카로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이 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무작정 달렸다. 뒤에서 소모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겁먹은 내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
“손 좀 놔줘, 쇼.”
소모의 차분한 말투를 듣고 울컥 짜증이 몰려왔다.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로 무작정 길을 걷고 있는데,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소모의 손을 놓은 탓에 다행히도 소모는 넘어지지 않았다.
손바닥이 자잘한 나뭇가지들에 긁혀 따끔거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풍성하게 뭉쳐있는 가느다란 풀들과 이끼가 낀 거대한 나무들이 떡하니 서 있었다. 엉겁결에 숲 속으로 들어온 듯 했다.
“쇼.”
소모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손이 닿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찌릿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화들짝 놀란 소모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랬어?”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 소모는 그 시장 길에 발을 들였다. 마치 겁 없는 토끼가 호랑이 굴에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어째서?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소모의 무모한 행동을 이해하려 해 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뭘?”
소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렇게 될 줄 너도 알고 있었잖아. 설마 저런 반응이 나오리라고는 몰랐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뭐라고?”
“저 꼴 좀 봐. 너만 보면 모든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해. 온갖 성희롱을 해대면서 소곤거린다고. 심지어 오늘은 너 어깨를 치기까지 했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내가 이리도 화가 나는 건지, 울컥거리는 기분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상황을 뻔히 알면서 왜 그러는 거야. 널 죽일 듯이 미워하는데, 무섭지도 않아?”
“무서워할 이유는 또 뭔데?”
잠시 당황한 듯 보이던 소모가 이내 표정을 바꾸고는 차갑게 대꾸했다.
“도대체 내가 왜 우리 동네 사람들을 무서워해야 하는 거냐고.”
“뭐?”
“잘 들어, 쇼. 나는 잘못한 게 없어.
그런데 왜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처럼 숨어 지내야만 해? 사람들은 내가 상임 녀석의 자제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하지만, 사실 나도 피해자야.”
눈을 부릅뜨며 말을 해대는 소모의 모습에 나는 하려던 말을 잊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원망 섞인 소모의 눈초리가 심장을 관통했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태어날 적부터 사람들의 원망을 샀고, 외부와는 철저히 고립된 채로 자라왔어.
홀로 지붕 위로 올라가 처음으로 돌담 너머에서 뛰어 놀고 있는 또래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 가슴 속 깊이 사무쳐오던 그 기분을 네가 알기나 해?
지금까지 남들과 다를 것 없다고 믿었던 내 인생이 너무 비참하다고 느껴졌던 그 어린 아이의 심정을 네가 아냐고.”
날카롭고 굳건해 보이는 목소리와는 달리, 소모의 동공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벌겋게 충혈이 된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너무 이른 나이에 알게 됐어.
그래, 네 말대로 처음에는 그저 무서웠어. 나를 볼 때마다 일그러지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겁을 먹었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위축되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억울해서 못 살겠더라고. 잘못은 모두 상임이 했는데 왜 내가 멸시를 받아야 해? 나는 사람들하고 잘 지내고 싶단 말이야. 계속 이렇게 외톨이로 지내긴 싫어.”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감쌌다. 땅 바닥에 내려앉아 있던 낙엽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둥근 원을 그려댔다. 그 중 한 낙엽이 소모의 머리 위로 춤을 추듯 떨어졌다.
나의 시선이 낙엽을 따라 소모의 머리에 멈추었다. 살포시 내려앉은 자그마한 낙엽이 소모의 연갈색 머리와 어울렸다. 낙엽을 떼어주려 소모에게 손을 뻗자, 소모가 손을 들어 천천히 낙엽을 떼어냈다.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소모가 말했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손에 쥐어진 낙엽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심장이 빠르게 뛰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과 물결이 가라앉아 잠잠해진 호수처럼 고요했다. 무언가가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황폐한 사막에서 발가벗고 누워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 넓적한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서 있기가 힘들었다.
“네 말이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도에 휩쓸리듯 몰려오는 무력감에 저절로 몸이 축 쳐졌다.
소모가 나를 따라 바위에 살포시 앉았다. 소모의 머리에서 풍겨오는 부드러운 꽃향기에 힘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결코 인위적이라고 볼 수 없는, 소모다운 향기였다.
“미안.”
“알면 됐어.”
소모가 허리를 젖혀 드러누우며 대답했다.
“사람들이 너를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나서 그랬어. 네 말대로 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저런 대접을 받으니까 속상해서······.”
“알았다니까.”
소모가 한 손으로 내 옷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놀란 눈으로 소모를 바라보자, 소모가 다시 한 번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엉거주춤 허리를 뒤로 젖히자, 소모 옆에 나란히 드러눕는 자세가 되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소모의 얼굴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거리며 눈알을 굴리는데, 가까이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힐끔 소모를 마주보았다. 소모의 눈이 반쯤 접히고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는 것을 보고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쇼.”
“응?”
“너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소모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내가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점이었고, 소모 또한 이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분위기와 감성.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깊이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숨기고 싶은 점이라는 것을 서로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주하기 두렵고 겁이 나서,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외톨이들만의 비밀스런 사정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이가 아닌 다른 또래를 만나 친해졌어. 몇 번이고 상상하면서 바래왔던 거였지만, 절대 이루어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였는데 말이야.
넌 정말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야, 쇼. 친구와 논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것일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난 좋아.”
햇빛에 반짝이던 소모의 눈망울이 점차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런데 점점 내 삶에 만족을 해갈수록, 상임에 대한 증오가 더할 나위 없이 커져만 가. 이런 행복을 왜 난 이제야 느껴야 하는 건지, 상임만 없었더라면 이 행복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갔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나는 소모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울분이 쌓여 있었을까. 자신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손을 벌벌 떠는 소모를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며 토닥이기를 수십 번, 드디어 진정이 된 듯한 소모가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보았다.
“상임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어깨를 토닥이던 손이 멈칫했다.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어 소모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소모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는 무책임한 어른들이 너무 많아. 권력의 대를 잇기 위해서, 혹은 다른 권력자와 친선을 맺기 위해서 아이를 낳지. 결국 그 아이는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 거야.”
소모의 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비추었다. 당황스러움과 충격이 고스란히 묻어난 얼굴이었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소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내 맘 알지, 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