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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을 죽이다
작가 : 다채
작품등록일 : 20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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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작성일 : 17-07-19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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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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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도이의 체온이 느껴지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잠이 덜 깨 비몽사몽한 채로 가만히 있다가, 어제 도이가 직접 치료해 주었던 허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어설프게 감겨진 붕대가 손바닥에 쓸려 헐렁거렸다.

  창문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 한 줄기가 희게 빛났다. 이맘때쯤에 소모가 나를 깨우러 방문을 열고 들어왔었는데 오늘은 오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고요한 방 안에 혼자 남겨져 있으니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뒤뜰로 나갔다. 내 예상대로 도이는 무술 훈련을 하고 있었다. 검을 높이 치켜든 채로 사람 형태의 볏짚을 끊임없이 노려보면서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볏짚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는 더미들에 살포시 앉았다. 도이가 나를 힐끔 보더니 볏짚을 가볍게 베어냈다. 순식간에 두 갈래로 잘라진 볏짚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내 발밑에서 너덜거리는 볏짚을 보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가볍게 한 번 휘두른 것뿐인데 사람 몸통 만하게 두껍던 볏짚이 놀라울 정도로 쉽게 갈라졌다.

 

  “뭐야? 네가 뒤뜰에 다 나오고.”

  “그냥.”

  “싱거운 녀석.”

  “소모는 어디 있어?”

  “왜?”

  “이야기 좀 하려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층에서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늘한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창문 너머로 소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님, 어디 가세요?”

  “서재.”

 

  소모의 목소리는 주위가 얼어붙을 정도로 싸늘했다. 한 마디 툭 내뱉고는 재빨리 창문 앞에서 사라진 소모를 보고 도이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에 나까지 찬밥신세잖아.”

  “미안.”

  “도대체 누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도이가 부스러진 볏짚 더미들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칼등에 팔을 걸친 도이가 나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모한테 화풀이를 해 버렸어.”

  “웬 화풀이?”

  “그냥······.”

  “똑바로 말 해.”

 

  고개를 숙인 나의 어깨를 칼집으로 툭툭 치며 도이가 짜증을 냈다.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왜?”

  “너도 알잖아. 사람들이 소모를 어떻게 대하는지.”

 

  도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장 길로 들어간 거야? 누님을 데리고?”

  “어쩔 수 없었어. 소모가 가고 싶어 해서······.”

  “그럼 말려야 할 거 아냐!”

 

  도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 멱살을 잡아끌었다. 우악스런 도이의 손아귀에 이끌려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새끼들이 얼마나 포악한 줄 알아? 아무리 누님이 가고 싶다 해도 네가 말렸어야지.”

  “미안.”

  “하여간 분별력 없는 새끼. 조금이라도 생각이라는 걸 해보란 말이야.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미안하다고 했잖아.”

 

  졸려오는 목덜미에 두려움을 느끼고 뒷걸음질 치자, 도이가 성큼성큼 따라붙었다. 도이의 일그러진 얼굴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왔다.

  주춤 뒤로 물러서며 발을 내빼려는데, 그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리가 고꾸라졌다. 칼에 찔린 듯한 고통에 작은 비명을 질렀다. 뒤로 자빠지려는 나를 도이가 재빨리 허리를 받치며 잡아주었지만, 결국 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둘 다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괘, 괜찮아?”

 

  얼떨결에 도이를 덮치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도이가 바닥에 몸이 닿기 바로 직전에 재빨리 몸을 비틀어 스스로 내 밑에 깔린 것이다. 나를 위해서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미안해졌다.

 

  “빨리 비켜.”

 

  도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이에게 손을 뻗었다. 도이가 내 손을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나를 힐긋 째려보더니 보란 듯이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안한 마음에 나는 쭉 뻗은 손을 냉큼 거두었다.

 

  “도련님!”

 

  그 때, 화단에 물을 주고 있던 하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겁에 질린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도이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하인을 쳐다보았다. 다급하게 입을 여는 하인이 나를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저, 그······ 상임님께서 돌아오셨는데······.”

  “뭐라고?”

 

  하인이 나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하인의 말을 듣는 순간, 도이가 무섭게 반문했다.

  상임이라면 도이의 아버지? 나는 도이를 쳐다보았다. 도이의 동공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상임님과 집 안에 함께 계셔요. 그런데 분위기가 좀······.”

  “누님!”

 

  하인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이가 집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도 도이를 뒤따라갔다.

  평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말만 나오면 정색을 하는 소모였다. 그런 소모가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하니,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집 문을 열고 제일 처음 보인 것은 붉은 제복을 입고 있는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허리를 곧게 세운 채로 미동 없이 서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는 똑같은 붉은 제복에 검은 색 베레모를 쓴 배불뚝이 남자가 소모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를 노려보는 소모의 오른쪽 뺨이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누님!”

 

  도이가 소모를 향해 달려갔다. 배불뚝이 남자의 콧수염이 씰룩였다. 저 자가 바로 아이들의 아버지인 듯 했다. 도이가 남자를 사납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누님한테 무슨 짓이야!”

  “버릇없는 것들······. 한동안 집을 비워놨더니 아주 개판을 만들어 놓았더구나. 감히 내 집에 멋대로 사람을 들여?”

 

  남자가 눈을 굴려 나를 노려보았다. 얼굴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딱 봐도 성격이 더럽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남자가 통통한 손을 들어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샛노란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댁은 누군데 뻔뻔하게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거요?”

  “아······.”

  “당신하곤 관계없잖아.”

 

  소모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콧수염을 만지던 남자의 손이 멈칫했다.

  소모의 눈은 증오로 가득 차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눈을 부릅떴는지 충혈 된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기까지 했다.

  남자가 소모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러자 도이가 재빨리 움직여 소모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이의 손에 칼이 쥐어진 것을 본 붉은 제복의 사내들이 재빨리 도이에게 칼을 겨누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도이는 자신에게 겨누어진 칼날들을 보고 황당해하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소모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자식에게 칼을 겨누는 부모라니. 입이 살짝 벌어진 나를 남자가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구경났습니까? 냉큼 나가지 않고 뭐 하는 거요.”

  “움직이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 쇼.”

 

  도이가 이를 갈며 말했다. 맛이 간 눈을 보니 이미 이성은 저 멀리 날아간 듯했다. 재빠르게 칼을 휘둘러 자신에게 겨누어진 칼들을 치운 도이가 칼끝을 세워 남자의 얼굴에 겨눴다.

 

  “어리석은 녀석.”

 

  나는 숨을 멈추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천천히 내 목을 긋고 있었다. 눈을 굴려 옆을 바라보니, 덩치 큰 붉은 제복의 사내가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도이가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당신 미쳤어? 쇼한테 뭐하는 거야!”

  “내보내.”

  “예.”

  “최대한 정중히 모시도록.”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나의 팔을 억세게 잡아끌었다.

 

  “야, 안 멈춰?”

  “이 두 녀석 방문을 자물쇠로 잠가버려.”

  “뭐야, 이거 놔!”

  “누님!”

 

  소모가 한 사내에게 붙잡혀 방 안으로 끌려갔다. 도이도 마찬가지였다. 사내들 여럿이 발버둥 치는 도이에게 달라붙어 무릎을 꿇리고 있었다.

  도이가 사내들의 우악스런 손길에 그만 머리를 땅에 박았다. 괴로움에 몸을 비틀며 절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도이야!”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도이에게 다가가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나의 팔을 붙잡은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만찮은 힘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자, 사내가 주먹으로 복부를 강타했다.

 

  “헉…….”

 

  토가 기도까지 쏠렸다. 배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리자, 사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끌고 문 밖으로 나갔다.

  마당을 지나 대문 밖으로 향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는데, 사내는 내가 일어설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개처럼 질질 끌고 갔다. 땅에 쓸려 무릎이 다 까지며 피가 철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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