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몇달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
말하기 부끄럽지만 내가 방에 쳐박혀 일년반동안 폐인생활을 하던 그때부터 시작이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는 동안 나는 방에 쳐박혀있었다.
가장 큰 축제라는 대륙의 7대 대도시의 단합 축제를 연다고 시끌벅쩍할때에도 나는 한발자국 밖에 나가지 않았다.
기어오는 악몽, 이라는 교단이 무인들을 모아 불법적으로 세력을 늘린다고 세상이 시끌벅적할때에도 나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다.
막말로 어느 영화에서 나오다싶히 나는 우리 집에 틀어박혀 현실도피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부끄럽지만.
나름 그때는 절박했다.
왜냐면,
그때의 나는 언제나 '자살'하고 싶어 했었고, 그 마음을 이기는데에도 힘겨웠기 때문이었다.
밖에 안나간다는 것은 의외로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의외로 가장 힘든 것은 어둠의 공포였다.
밤마다 힘겹게 잠에 들고나면 악몽을 꾸곤 했다.
그렇다.
언제나 악몽의 시작은 똑같았다.
천장에 비춰진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밝았다.
“이번 16번째 대회 우승자는...!”
모두의 함성이 귓가를 때리고 있었다.
"안돼...안돼!!"
나는 바닥에 엎드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으려했다.
하지만 누군가 내 뒷통수를 찍어누르고 있다.
왼쪽 무릎이 아파왔다.
오른 팔꿈치가 아프다.
툭툭
바닥을 손바닥으로 친다.
항복한다라는 의미.
하지만 조여지는 힘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기, 잠깐...잠깐?!"
까득 거리며 비틀리는 소리는 근육을 타고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무릎이 비틀려간다.
왼쪽 무릎이,
그리고 오른쪽 팔꿈치가.
그리고, 그리고...
우득
뼈를 타고 울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선명한 소리.
“....으아아아!!!!!!!!”
이어지는 내 비명소리와 함께,
“이젠 비명이 아침 자명종 소리로까지 들리는군요.”
귓가에 친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교수님?”
"후우, 도련님. 무슨 짓을 저지르신 겁니까.”
이렇게 매일 시작되는 아침을 보내고 하였다.
".....후우."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본다.
L자 형태의 부엌에서는 보글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부엌에는 회색 베스트를 걸친 은색머리의 노인이 있었다.
키는 180대였고 짧고 뒤로 넘긴 백발의 머리였다.
“제가 또 잠꼬대를 했나요?”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 같았습니다.”
“악귀요?"
“언제나 그랬듯이.”
"언제나?"
"언제나."
삐이,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밥솥에서 증기가 빠졌다.
구수한 냄새가 마비된 후각을 자극시켰다.
교수는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
“식사 준비 다되었습니다.”
“.....예.”
나는 눈을 비비며 거실에 펼쳐진 이불 위에서 몸을 일으켜세웠다.
손을 더듬어 안경을 쓴다.
거실은 어제 내가 잠들었던 그 마지막 모습 그대로였다.
어디에도 스포트라이트는 없었고, 관중도 없었다.
"꿈이었구나."
벽에는 먼지가 자욱히 쌓인 트로피와 상장들이 걸려있었다.
그 유리 너머로 거실이 비춰졌다.
헝크러진 이불과 젖은 배개,
"하아....."
일어나 부엌의 식탁에 앉았다.
향긋한 향과 함께 뜨거운 김이 내 얼굴을 쪼이며 잠이 달아남을 느꼈다.
안경 유리에는 뿌옇게 김이 서렸다가 사라져간다.
때는 8월.
폭염의 끝자락이다.
아스라히 2층 단독주택의 발코니 창문 너머로 꺼져가듯 매미의 울음소리가 흩어져간다.
고층빌딩이 저 멀리 보이고 그 아래로 도시의 풍경이 보였다.
“지금 저녁이였어요?”
“도련님의 아버지도 무인답지 않게 늦게까지 주무시곤 하였지요.”
교수가 은색 스테인리스 숟가락으로 내 밥그릇을 가리켰다.
“구석으로 야채 밀지 마십시요. 다 보입니다.”
“보여요? 거기서?”
나는 당황해하며 교수에게 물었다.
"또렷히요. 도련님이 한켠에 쌓아놓은 다시마에 버섯까지 모두요."
"하아..다시마는 질색인데."
한켠에 밀어놓은 다시마와 버섯을 그릇 중앙으로 옮겼다.
“애호박.”
“.......”
나는 숟가락 뒤에 숨겨놓았던 애호박을 다시금 중앙으로 옮겼다.
내 앞에 앉아 교수, 제레미 러너 교수는 정갈히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교수님은 어릴때부터 우리 집에서 나와 같이 살며 집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셨다.
젊은 시절 대학에서 교수직을 재직한 적도 있으시다 하여 나는 편의상 어릴때부터 교수님이라 불러왔었다.
찌르르르...
황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갔다.
마치 세상이 다 불타오르는듯 했다.
발코니 창문 아래로 보이는 정갈히 다듬어진 정원의 잔디 또한 붉은색으로 불타듯 물들어가고 있었다.
푸드득
창문 앞으로 푸드득 소리와 함께 새들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은색의 머리가 보이는-.
"응?"
눈에 비친 것을 다시 보기위해 눈을 꿈뻑였다.
그것은 다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착각인가."
바짝 마른 입술로 멍히 중얼거린다.
이내 내 시선은 황혼이 비춰지는 바깥 세상에서, 창문 옆에 놓여진 벽거울로 옮겨진다.
거기에는 의자에 힘없이 앉아있는 내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부스스한 짧은 검은 머리.
퀭한 눈, 불과 1년 반전에는 꽉찼었을 반팔, 반바지는 펄럭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피부와 얇은 팔다리.
상처 투성이의 정강이와 주먹.
전형적인 20대의 맛이 간 백수로군.
나는 씁쓸히 중얼거린다.
"여전히 집중을 잘못하시는군요."
앞을 보니 교수가 식사를 멈춘체 나를보고 있었다.
"집중이요?"
"예전 무언가에 몰두할때의 도련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죠. 그거 기억나십니까, 라면 올리시고 훈련일지 쓰시다가 불내실뻔한 일......."
"아, 그건 솔직히 물 많이 올려놔서 좀 졸일려고 한거예요."
"도련님은 집중력 하나만큼은 최고이셨지요. 몰두. 집착. 마치 하나의 뾰족한 송곳을 보고있는거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하더라도 산만하시군요."
여기까지 왔으면 더이상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하고싶으신 이야기가?"
“전부터 고민했습니다만은 이야기할 기회가 도통 생기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오늘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교수님.”
나는 무슨 말인지 눈치채고 바로 말을 끊으려하였다.
하지만 한발 먼저 그는 말했다.
“이제 방황은 그만하고 다시 길을 걷는게 어떻겠습니까.”
"일년 반 동안 질리게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늦었어요."
왼쪽 무릎은 끊임없이 시큰거렸다.
허리도 욱신거린다.
안경을 고쳐쓰며 눈가를 매만졌다.
교수가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들었다.
“제가, 도련님에게 다시 격투기와 같은 운동을 하라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신체적인 조건은 그냥....일상생활에 부담이 없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길을 걸으라는게 어떤 길을 말하는건데요.”
“도련님의 아버지처럼 무인의 길을 걸으라는게 아닙니다. 그저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를 하고,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제발, 교수님.”
교수의 말이 멈추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제가 처음 운동을 시작한 게 언제였었죠?"
"잊어버릴리 있겠습니까, 제가 권유를 해서 시..."
"7살. 도시를 지키는 무인이 되고싶어 지원했다가 혈도 퇴화된 장애인이라며 내쳐졌던 7살때부터 였어요.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밑부터 시작하라니요.”
“도련님.”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도련님."
“교수님은 또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꺼잖아요."
"물론입니다. 도련님이 어떻게 되셨던 간에, 그리고 설령 그때 그 날과 같은 일이 있었을지언정 아버님과 저는 도련님을 결코 부끄럽게 생...."
"난 그때 항복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차라리 긍지를 버릴지언정 혀깨물고 죽었어야 했다고요!!”
나는 폭발했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이야기는 둑이 터져나가듯 쏟아져나왔다.
“그 개같은 새끼는 내가 분명 탭하는걸 봤어요, 내가 바닥에 엎어진체 개같이 비굴하게 바닥을 치면서 풀어달라고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내 팔과 무릎과 허리를 박살내놨다고요!!”
“그렇다면 도련님은 이대로 손놓고 죽음을 기다리겠다는 겁니까?"
교수는 언제나 그랬듯이 잔잔히, 그리고 조곤조곤 말을 할 뿐이었다.
"아니에요. 아직...아직 길은 남아있어요."
"무슨?"
나는 눈알을 번뜩이며 숟가락을 움켜잡는다.
"남상濫想"
"잠깐, 도련님 그건 안...!"
교수의 눈이 경악으로 커지며 내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삼매三昧."
하지만 그보다 한박자 더 빠르게 격발어가 시동되었다.
동시에 손에 쥐어져 있던 쇠숟가락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처럼 구겨져버렸다.
"저에게...저에게는 내공은 없지만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암시暗示가 있으니까! 이걸로...어떻게든 그 놈을 찾아 복수하고 그리고...그리고!"
식탁 위에는 형체를 알수없이 우그러지다 못해 손가락 모양까지 뚜렷히 난 쇠뭉치가 굴러갔다.
교수는 그 뭉치를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다음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은 쓸쓸함, 그리고 실망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도련님, 제가 그렇게 누누히 말씀드렸는데 아직도 이런 3류 사술을...."
"보시다싶히 효과는 있.....!"
교수는 내 말을 가로챘다.
"효과야 있겠죠. 그 옛날 무인들이 전쟁을 벌이던 시절에 개발된 초식중에 하나이니. 하지만 무인의 목숨이 파리만도 못한 시절에조차 사장되었던 3류 사술입니다. 왜그렇겠습니까? 그들이 인권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운동가여서 그랬겠습니까?"
"......."
"정신차리십시오. 그건 마약입니다. 다신 그런거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를 깨물다 못해 잇몸에서는 비릿한 피맛이 났다.
뼈가 부서질 듯이 쥔 주먹 손톱밑으로 피가 고여가며 까맣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마저도 오른손 주먹은 벼락맞은 쥐처럼 덜덜떨며 주먹하나 제대로 쥐지 못하고 있었다.
“제 몸 상태 아시잖아요. 이런 거말고는 희망은 없어요.”
나는 늪지대의 안개같은 무거운 한숨과 함께 무너지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도련님.”
교수는 안경을 벗어 눈가를 주무르며 말했다.
“밤이 늦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하기로 하고.”
2층을 가리키며 그는 말했다.
"주제를 바꿔서 여쭤볼게 있습니다."
"예?"
그 다음 나오는 교수의 말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우리 집 앞에 은색...머리를 하신 분이 서있던데...혹시 아시는바 있으십니까?"
"....예?"
나는 멍청히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