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같은 아침이라 생각했다.
“피곤하다....”
내 귀로 들리는 내 목소리가 지독히도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어릴때부터 힘이 약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아버지는 힘이 강했다.
남들이 펴지 못하는 것도 단번에 폈고, 문틀에 박힌 못도 맨손으로 단번에 뽑아내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닮고싶다, 라고 여러번 생각했는지 모른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비리비리한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해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어볼 곳은 없었다.
스승도 없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무인이 되고싶었지만 무인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싶히 했다.
눈을 가린 손을 들었다.
황금빛 새벽의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피부에, 가느다란 손목이 보였다.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초식招式을 읊조렸다.
“남상濫想”
총 4음절로 이루어진 초식어 중 첫 2음절. 나의 시동어.
이 단어를 뱉음으로써 나의 암시 기술은 시작이 되었다.
암시.
교단전쟁시절때에도 내공을 다룰 수 있는 정통무인은 기술로도 취급안한 아류작.
교수의 말마따나 자기최면을 거는 암시일 뿐이다.
“삼매三昧”
4음절 중 마지막 2음절. 암시를 본격적으로 발현시키는 격발어.
강해질수 있다...라는, 그런 얄팍한 자기암시를 거는 나만의 4음절 주문.
기껏해야 1초? 2초....? 약간의 무력을 강화시킬 정도의 기술.
영구적으로 인간을 초월한 근력을 내는 내공이란 존재에 비하면 정말 티끌만도 못한 기술이다.
교수의 3류 사술 취급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빌어먹을 혈도.....”
혈도血島.
사람이 내공이란, 우주에 퍼진 자연의 힘을 갈무리 하여 체내에서 다룰때 그 힘이 흐르는 길이다.
그것은 마치 핏줄처럼 람의 몸에 퍼져있으며 막강한 무력을 발휘하는 무인일수록 이 길은 굵고, 세밀하게 전신으로 퍼져있다고 한다.
이것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개발이 불가능하다.
무인의 자식은 대다수가 혈도를 타고난다고 하였고 그럼하에 가문이란 것도 생기지만, 가끔 가다가 나같은 혈도라곤 전혀없는 돌연변이도 나온다.
나에게 내공이란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공이 부족하다면 외공, 신체라도 단련하고자 하였다.
죽을듯이 했다.
절망을 할 시간이 있다면 그 절망을 할 시간에도 전진하고자 하였다.
최대한 내가 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였다.
남들이 비웃던 말던 하루 6끼씩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것들을 다 개워낼 정도로 매일 단련에 단련을 거듭했다.
하지만.....이제 침대에서조차 똑바로 누워있지 못하는 병신의 몸이 되었다.
한때의 챔피언이나 그런것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이제 나에게 남은것은 절뚝거리는 몸뚱아리뿐.
그리고 오늘도 평소와 같은 아침이라 생각했다.
열린 창문으로 이른 새벽의 바람이 들어와 내 이마를 간지럽혔다.
황금 아침햇살에 의해 나는 부시시 감았던 눈을 다시 뜬다.
“.....아.”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들렸다.
눈이 떠진다.
숨이 몰아쉬어진다.
묵은 숨이 뿜어짐과 함께 입술을 비집고 신음소리가 나왔다.
"으윽..."
몸이 왜이리 아프지.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프다.
잠시 움직이려하니 온몸에 전기충격이 내달리는것 같다.
목도 아프다.
창문을 보니 한뼘정도 열려있고 거기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 ......"
눈을 떠서 처음 본 것은 새하얀색의 천장이었다.
"......"
약간은 빛을 바랜 벽지로 이루어진 천장.
마치 하루종일 눈뜨고 잔것인마냥 뻑뻑한 눈을 돌려 옆을 보았다.
방문이 한뼘정도 열려있었다.
찌개 끓는 소리는 저 열린 방문 틈을 통해서, 아랫층으로부터 들린듯했다.
“.....여기가 어디더라.”
배를 드러낸 체로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집이구나.”
입으로 내뱉은 혼잣말이 공허히 트로피만 가득한, 가구라곤 책상밖에 없는 텅빈 방안을 울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동문서답이었다.
온몸에 힘이 없어 눈동자만을 굴려 옆을 보았다.
선반에 놓여진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10분전이다.
“오늘은 또 며칠이지.....”
시간도 장소도 기억이 뒤죽박죽하다.
마지막에 내가 무엇을 하다가 잔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 큰일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
아니다.
어차피 별거 없었겠지.
강제은퇴당한 폐인 운동선수에게 별일이 있을리가.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킬 때였다.
“....어?”
무형의 것이 몸을 밀친것처럼 나는 침대에 다시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한박자 뒤에,
“아...!!”
전신을 태워버릴 듯한 통증과 함께 사지의 근육이 수축됨을 느꼈다.
마치 기지개를 펴다가 온 몸에 쥐가 나는 느낌이었다.
“끄악...!!!”
마치 스캔을 하듯이 오른쪽 발가락부터 시작하여 통증이 왼쪽 어깨로 대각선으로 치고올라오기 시작했다.
척추의 마디마디 하나가 냉수를 급격히 마시듯이 통증이 스쳐지나가며 느껴졌다.
"뭐, 뭐야!"
몸부림 끝에 드러난 팔뚝은 삼두근과 이두근이 재각기 전기충격을 당하는 듯 펄떡거리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해갔다.
온몸이 불타버릴꺼 같다.
사지의 모든 근육이 마치 갓 잡아올린 물고기들이 소리없는 아우성과 함께 펄떡이며 죽어가듯 미쳐날뛴다.
왼쪽 무릎은 완전히 펴지더니 급기야 부러트리려고 작정한 듯이 있는 힘껏 펴지기 시작했다.
"마..맙소사! 이게 무슨!”
이를 악물고 통증을 견디며 왼쪽 발목을 잡았다. 보기에 우스꽝스러워보였지만 나는 필사적이었다.
진짜, 이대로 놔두다간 스스로 골절당할것만 같았다.
그 느낌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관절에 한계치까지 가해지다가 꺾...
“그것만큼은 죽어도 싫어..!!”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갔다.
이마를 가로질러 땀방울이 흘러 눈꼬리에 맺히고 깜빡일 때마다 바지에 후둑 떨어졌다.
까각..까가각..
허벅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팽창하며 있는힘껏 다리를 피기시작했다.
그걸 제지하는 팔뚝에도 핏줄이 빠직거리며 튀어나온다.
눈에 핏발이 서갔다.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까가가각
손톱 밑에는 핏물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서서히 손은 놓쳐가고 있었다. 무릎관절이 비명을 질러가기 시작했다.
“이...이젠 더 이상....!”
손아귀에 힘이 덜덜 떨리며 발목을 놓쳐가고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되어갔다. 그리고,
“도련님?”
“예?”
고개를 돌리자 방문 앞에는 음료수를 들고 있는 교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서있었다.
"뭐하고 계십니까?"
“아니 그러니까.”
“이젠 공부하기 싫다고 자학까지 하시는?”
“그러니까, 그게.”
나는 침대위에서 온몸으로 왼쪽다리를 부둥켜안은 자세로 어버버했다.
“그 바보같은 자세좀 어떻게좀 해주십시오. 도저히 봐줄수가 없습니다.... 제 제자가 아무리 멘탈이 망가졌다곤 하더라도 림보 선수를 지망하고 있다곤 생각 안했는데.”
나는 발작적으로 내 왼쪽 다리를 가리키면서 말을 하려했다.
“그게 아니라 교수님!! 이 왼쪽다리가 갑자기 쥐 나듯이 경련이 나면서...!!”
교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응? 하면서 눈썹을 올렸다가 내렸다.
“이 다리가...! 그러니까!”
그리고 왼쪽다리는 방금 전까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툭하고 이불 위로 떨어졌다.
“....다리가 무슨?”
“아니 다리가...”
“현 도련님, 제발 공부하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십시오. 아침부터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아까전엔 건물 전체가 쿵, 하고 울리지를 않나....”
“이 무슨 학원가기 싫은 초등학생 꼴이....하아, 알았어요."
"내려가 세수 하십시오. 전 또 무슨 난리가 났나 했더니."
교수는 혀를 끌끌차며 다시 계단으로 내려갔다.
“아..분명 다리가.....”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내 왼쪽 다리를 바라보았지만 다리가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
무언가 개운치 않는 느낌이 있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찝찝한 느낌. 말이 안되는 걸 눈치를 못채고 멍청히 바라보고 있는 느낌.
“아 그리고,”
교수가 계단을 내려가다 머리만을 내민 체로 외쳤다.
"바지는 갈아입으셔야겠어요. 어제 무엇을 하신건지 모르겠지만."
"...바지?"
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속옷부터 시작해서 내 하반신의 옷들은 갈기갈기 찢겨져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톱니바퀴를 지닌 무언가가 씹다가 거칠게 뱉은 것인양.
그 사이로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뽀얀 속살이 보이고.
".....아."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계단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교수는 아래층으로 내려간 이후였다.
"......맞아."
잊고 있었다.
"그래...."
거대한 검은색의 괴물.
녹색의 스파크.
하얀색의 거인.
씹혀지던...촉감.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가는게 느껴진다.
식은땀이 나기시작했다.
잊고 있었다.
내 몸을 내려다본다.
".....내...피부가 이렇게 깨끗했나?"
오늘따라 유달리 낯설어 보이는 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어렸을때부터 해온 거친 운동에 온 몸에 긁히고 까진 흉터들이 많아야했다.
특히 무릎이라던가 팔꿈치, 손등 같은 부위.
씹다 뱉은 껌처럼 뜯어먹히다가 뱉어진 하반신.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엉망진창인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어떻게 그것들을 잊고 있었지....?”
나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중얼거렸다.
다시 내 몸을 만지고, 더듬거렸다.
어디서부터 악몽이었는지..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실은 흉터라던가...그런게 있었다는게 착각이었나?
“맞아, 어제 그러니까.”
정신없이 생각하려했다.
어디서부터 생각을 시작해야할지 몰랐다.
창문 밖을 내다본다.
집앞에 서있는 나무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며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보이는 공터에 부서진 자국이라던가 아스팔트 조각따위도 없었다. 그냥 매끄러운 아스팔트 주차장이 전부이다.
정면을 바라보았다.
공터에 핏자국같은 건 당연히 보일리 만무하다.
생각이 끊어지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갑갑해서 나도 모르게 발을 쿵쾅쿵쾅 구르며 머리를 긁었다.
“....어?”
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발을 쿵쿵 다시 바닥에 굴러본다.
“......”
발을 붙이고 똑바로 서본다. 허리를 일직선이 되게 일부러 쭉 펴본다.
수초, 수분이 지났다.
아래층에는 이제 수저를 놓는 소리와 밥솥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탱탱, 하며 밥을 푸기전 주걱으로 밥솥을 두드리며 밥알을 떨어트리는 소리도 난다.
방문까지 걸어본다.
한 발자국,
그리고 한 발자국.
나는 천천히 몸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하다.
착각이 아니었다.
“......통증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