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반전한다.
스르릉
칼이 뽑혔다.
검은 빗물의 폭포속에서도 푸른색의 예기가 깃든 120cm의 검은 진검은 뚜렷히 보였다.
날이 살아있는 검이었다.
그리고 격렬히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검이었다.
동네 푸줏간에서 10년이상을 사용한 발골칼처럼, 군데 군데 이가 빠지고 금이가고 흠집이 났다.
그것은 실제로 뼈를 부수고 살을 가르는 ‘칼’이었다.
“아..안돼!”
여자에게 흑풍이 다가갔다.
그를 향해 나는 진흙이 범벅된 핏덩이를 토하고 버르적거리며 외쳤다.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어라?”
흑풍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는 자신의 발목을 움켜잡은 내 손을 바라보았다.
흑풍은 피식 웃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이제야 말다운 말을 하는듯한 어조인데? 같잖은 정의감이라도 되나?”
“도...도대체...!”
“뭐.”
칼을 어깨에 짊어지며 흑풍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우리들한테 왜 이러는거야! 왜, 우리들은 애초에 너희들과 상관없는 일반인이라고..!”
“아아, 잡소리, 잡소리.”
흑풍은 바로 칼을 들었다.
그 칼은 단숨에 아이와 함께 눈앞의 여직원을 내려치려고 하였다.
여직원의 눈이 커져갔다.
"어..엄마...!"
아이는 비에 젖은 앞머리 섶을 흔들며 새파랗게 질려갔다.
옆으로 내팽겨쳐진 캐릭터 우산이 젖어간다.
진짜 내려친다.
"....제..기랄..!"
더이상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이를 악문다.
리스크 따윈....아니 하다못해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아....!!"
그보다 먼저 모든 일은 일어났다.
여직원이 나를 바라보았다.
입술을 깨문 표정.
그녀는 품속에 있던 아이를 옆으로 매몰차게 밀치고-.
푸욱
진검은 그대로 여직원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륵....”
여직원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자각을 못한체, 자신의 가슴팍에 박힌 칼을 멍하게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고 자신을 찌른 남자를, 그녀는 피눈물과 함께 올려다보며 뭐라 말하려고 입을 벙긋했다.
서걱
그 다음, 그 마지막 말조차 듣기 귀찮다는 듯이 흑풍의 일섬이 그녀의 목젖을 갈랐다.
“목쳤다고 불만은 없겠지? 팔꿈치만 겨냥해 자르는게 더 귀찮을거 같아서 말이야.”
흑풍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아....”
장난감처럼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못하고 피분수와 함께 뒤로 쓰러졌다.
사냥총에 맞은 들개처럼 그녀는 좌우로 한두번 구르더니 행동을 멈추었다.
쏴아아...
폭우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그 폭우 아래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파묻힐 것 같았다.
비명소리도.
피비린내도.
모두다.
“도대체 왜....왜!!!”
바닥에 쓰러져 식어가는 시체가 식어간다.
방금 전까지 나하고 이야기했던 사람이란 걸 믿을수 없었다.
허망한 눈빛으로 검은 하늘을 바라보는 시체는 창백한 고무인형 그이상 그이하 아니었다.
“착각하는가 본데 이제와서 여기 관계없는 사람 따윈 없어. 우리 모ㅡ두 관계가 있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흑풍은 잠시 무리 속의 우두머리, 라파사를 바라본다.
그것은 무언의 물음이었다.
장신의 라파사는 마음대로 하라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흑풍은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걱정하지마. 금방이야. 이제, 곧....너도 이 모습 그대로 바닥에 눕게 해줄 테니까....!”
노도같은 기세가 나를 집어삼킬 듯이 덮쳐왔다.
“크윽!”
그의 신형이 파도처럼 나를 향해 몰아닥쳐왔다.
나는 물러서려하는 다리를 억지로 잡아채듯 눌렀다.
이를 악물었다.
물러나면 죽는다.
“죽어!”
손을 뻗었다.
타다다다
세걸음만에 무인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는것까지 보일정도로 가까워진다.
진흙을 더듬거렸다.
철퍽
진흙속에 파묻힌 망치를 움켜잡았다.
그사이 무인의 숨결이 느껴질정도로 그의 얼굴이 내 앞까지 치달았다.
그의 주먹이 뒤로 당겨지는 것이 보인다.
"크아아!!"
온힘을 다해, 움켜쥔 손아귀의 망치를 휘둘렀다.
“무슨 이딴 장난감을...!”
흑풍이 가소롭다는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망치는 주먹에 정면으로 부딪치고 튕겨 나왔다.
“끄아악!!”
몸에서 분리가 되버리듯 팔이 튕겨나갔다.
용케도 망치를 놓치지 않았다.
대신 손아귀의 살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다.
몸이 반바퀴 회전하며 뒤로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흙탕물에 얼굴을 쳐박았다.
입안 가득 진흙을 머금은 것을 내뱉을 생각도 못하고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래 꿈틀거려봐라, 이 버러지만도 못한!”
이미 그 거리를 흑풍은 번개같이 쫓아와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다시 주먹과 부딪쳐 튕겨나가는 망치였다.
징,하고 울리는 손바닥.
터져나가는 손바닥의 피부.
뒤틀려나가는 팔꿈치.
죽는건가?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뒤로 튕겨져나가는 팔을 다시금 부여잡았다.
망치를 다잡았다.
아니야...아니야...아직 남아있는 패는 있어. 아직....아직....!!!
"엄마...엄마아..."
아이는 진흙탕속에서 버르적거리며 식어가는 여직원의 시체를 향해 엉금엉금기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검은 무인들 사이에 소리없는 웃음이 지나간다.
"여기에 있는 이상 모두가 상관있다. 우리에게 자비를 바라지마."
흑풍이 헛수고 말라는 듯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 비웃음과 함께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설령 미신에 가까운 기술이라도.
모두가 무시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내 책임이야....내 책임이야!"
진흙 속에서 무릎을 짚고 몸을 일으켜세운다.
“.....아이만은 살려야 해, 아이만은 살려야해, 아이만은 살려야해!!!!!!”
애초에 내가 말렸으면 하다못해 아이는 안 올 수 있었다.
내가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아이는 지금 건물안에서 안전하게 있었을 것이다.
여직원의 마지막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나밖에 없었다.
도망칠 곳 따윈 없었다.
"시동어....!"
두근, 심장이 뛰었다.
하나뿐인 혈맥이 찢겨져나간다.
기이잉...
몸 안에 무언가가 꿈틀대다가 맥없이 꺼진다.
그것은 실없다고, 항상 비웃음을 받았던 것.
교수님조차 3류의 사술이라고 평가절하했던, 반쪽자리 무인인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
살아야했다.
"제발...제발!!!"
살고자하자면,
살고자한다면...!
"시동..어!!!"
그것이 설령 썩은 동앗줄, 아니 한오라기의 명주실이라도 움켜잡고자 하였다!
“....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