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갑자기 부엌은 왠일이십니까?"
제레미 교수가 마당 청소 중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나를 보고는 베란다 너머로 말했다.
"아...하하, 그게. 좀 배가 고프더라고요. 안쓰던 머리를 써서 그런가."
나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교수는 그런 나를 향해 창문 너머에서 물었다.
"배고프시다고요? 제가 뭐라도 해드릴까요?"
"아니예요. 교수님 다른 일 보셔도 되요."
"음...정말요?"
교수는 유치원생이 혼자 라면을 끓여먹겠다고 부엌에 서성이는 것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정말이고 말고요."
나는 정말 걱정하지 말라는듯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그 우측 오븐을 열어보시면 아까전에 만들어놨던 피자와 치킨 따로 덜어 뎁혀놓은게 있습니다. 그거 가져가시면 될꺼예요. 도련님께선 그 조합을 좋아하시죠?"
"잘먹을께요."
교수는 다시금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정원 청소를 다시 시작하는지 삭삭, 하는 빗자루질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교수가 자세히 보기전에 재빨리 쟁반에 먹을 것들을 담았다.
다행히 오븐에서 꺼낸 음식의 양은 둘이 먹기에 충분히 많았다.
"아차, 마실 꺼, 마실 꺼가..."
"그쪽 찬장에 보면 있으실 꺼예요, 도련님."
"아, 감사합....으악!!"
화들짝 놀라 뒤를 보았다.
뒤에는 다시금 창문에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나를 쳐다보는 교수가 있었다.
"거, 거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정말 도움 안 필요하신지...?"
나는 정색하며 단호히 말했다.
"정말, 정말 도움 필요 없어요. 교수님."
"거참. 알겠습니다."
교수는 흐음, 이란 뒷끝있는 숨소리를 내며 다시금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한번 교수와 눈이 마주칠때마다 지은 죄가 있기에 입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어서 부엌을 벗어나 2층으로 올라가야했다.
"저기, 도련님?"
"으악!!!"
쟁반 위 접시에 담겨져 있던 치킨과 피자, 음료수가 들썩였다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어이쿠, 왜그리 놀라십니까."
나는 이제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을 찍어누르며 창문 밖에서 쳐다보는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밤이다 보니....이번엔. 도대체. 왜.요?"
"야밤에 너무 많이 드시는거 아닌가 해서."
"성인 남자인데 이정도는 먹어야죠."
나는 슬쩍 쟁반위에 얹혀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과 피자를 바라보았다.
솔직히...좀 많았다.
2인분이랍시고 담았으니까.
"제가 알기론 운동 그만두신 이후론 급격히 본래 드시던대로 식사량을 줄이신걸로 기억하는데."
"과거는 극복하라고 있는거니까요."
"그게 그런 뜻의 말이었던가요? 뭐 열심히 하시던 그때로 돌아가시려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만."
그걸 끝으로 교수는 다시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 교수님이 불시에 부엌을 쳐다보는 일이 없게 소리나지 않게 조심스레 부엌창문을 닫았다.
"후우."
.....20년 가까이를 같이살면서 오늘 밤만큼 스트레스 받은 적은 없었다고 단언컨데 잘라 말할수 있었다.
이게 다 누구 덕분이다.
나는 뜬금없는 야식을 요구한 누구를 떠올리며 2층을 노려보았다.
"그 요리에는 소스는 안챙겨도 돼? 요즘 현대인은 소스는 잘 안먹어?"
"아, 잊을뻔했네. 거기 바베큐 소스 챙......뭐?"
아래를 보니 쪼그려 앉아 찬장 아래쪽을 뒤적거리는 은발의 소녀가 보였다.
"...여기서 뭐 하는...!"
"응? 바베큐 소스를 꺼내라고? 이거 맞나? 선대여?"
아슈나는 양손에 소스병을 가득히 안아들면서 태연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 쓰...야...너...!!!"
나는 숨이 막히다못해 돌아버릴꺼 같았다.
창문과 붉은 눈동자의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터질듯이 말했다.
"미쳤어? 지금 교수님이 널 보시면 어떻게 하려...!"
"친구라 하지 않을까."
"당신처럼 튀는 외모의 친구가 있을리 없잖아!"
"아쉽네."
"나도 아쉽....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런가? 하여튼 너무 늦길래 들고 오는거 도와줄까 했지. 선대여."
나는 기가막혀 입을 벌린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너무 올라간 목소리 톤의 끝을 간신히 잡아 끄집어 내리며 쪼그려 앉아 소스병을 끌어안고 있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도대체 언제 내려온거야? 부엌에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보여 내려온다면 분명 나한테 보였을텐데."
"난 살성이니까 그정도쯤은."
"바베큐 소스병 끌어안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지마...."
어깨를 피며 자부심 있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울거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 닫혔던 부엌 창문이 드륵 열렸다.
"도련님, 왜이리 시끄러우시죠. 쥐라도 나타났습....어억?"
나는 열리던 창문을 바로 찍어 눌러버렸다.
"그, 그렇죠. 쥐..! 쥐다!! 쥐쥐!!!쥐쥐쥐!!!"
"커억! 도련님?"
"쥐가 탈출하려고 해서요!"
"쥐라니요!! 그럼 잡아야죠! 어디 있습니까, 제가 관리하는 집에 쥐라니 이런 치욕이...!!"
교수가 단박에 창문을 뜯고 밀어닥칠듯이 창틀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당황해 열리려는 창문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열지마요, 열지마! 지금 다 잡아가요! 창문 열면 도망가니 열지말고 혹여나 안열리게 창틀 꽉 잡고 있으세요!!"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도련님!"
나는 덜컹거리는 창문을 뒤로 하고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아슈나를 재빨리 잡아끌었다.
"쥐가 이층으로 갔어요! 이건 제가 처리할께요!"
"저기, 선대여. 난 쥐가 아니야. 알지?"
아슈나가 귓속말로 소근거렸다.
나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체로 이층을 향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정말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하루라고 나는 생각했다.
더불어 앞으로 정말 어떻게 될지 걱정되었다.
"후...앞으로 어떡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