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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못하는 로맨스
작가 : 피콕그린
작품등록일 : 201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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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못하는 로맨스 02 - 비싼 달에 태어나셨네요
작성일 : 17-07-17     조회 : 294     추천 : 0     분량 : 4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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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싼 달에 태어나셨네요

 

 영제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빳빳하게 얼어붙었던 서우의 몸이, 곧 한숨과 함께 풀렸다.

 

 “너 여기서 뭐하니? 종례한지가 언젠데.”

 “....”

 “넌 야자도 안하잖아. 책 빌리러 온거야? 여기 폐쇄됐어. 곧 재보수 한다고. 위험하니까 그만 나가.”

 “책 빌리러 온거 아닌데.”

 “그럼 반납하러 왔어?”

 

 영제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웃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하고, 황당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다.

 서우는 떨어뜨린 책을 도로 들어 서가에 꽂았다. 그녀는 영제가 단순히 도서관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고 생각했다.

 영제가 자신에게 꽃바구니를 보낸 ‘그’라고는, 목걸이를 선물한 ‘그 남자’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이 시간에 왜 여기까지 오셨는데요?”

 

 영제가 서가에 삐딱하게 기댄 채 물었다. 서우는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피했다. 묘령의 남자의 지령에 따라 이 시각에 도서관을 방황하고 있다는 말 따윈, 친하지도 않은 학생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책 빌리러 왔어.”

 “지금 사서 선생님도 안계신데.”

 “난 교사니까 얘기 안하고 빌릴 수 있어.”

 “그럼 빌리세요.”

 

 어쩐지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이럴 때 장구채라도 있었다면 저 뻔뻔한 등짝을 한 대 갈겨주는건데!!

 

 “그러는 넌 여기서 뭐하고 있니? 책 빌릴거 아니면 빨리 나가! 열람실이나 가던지!!”

 “지금 나가려구요.”

 

 영제가 서가에서 몸을 떼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학생이라해도, 덩치 큰 남학생과 늦은 시간에 단 둘이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단 한 살 차이라고 해도, 성인은 성인이다. 특히나 사복 차림인 영제에게선 고등학생의 미성숙함따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학생이라서 그런 걸까? 서우는 자신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영제를 흘깃 쳐다보았다.

 

 “참.”

 

 뒷문으로 향하던 영제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서우가 미처 꼭 닫지 못한 창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영제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그녀가 항상 영제를 편하게 대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저그런 고등학생으로 인식하기엔 지나치게... 정말 지나치게 오만한 표정. 그리고 그런 차가운 표정이 완벽하게 잘어울리는, 아름다운 얼굴.

 그 얼굴이 서우를 똑바로 응시하며 다시 앞으로 다가왔다. 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몇걸음 물러섰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학생한테 이렇게 쫄면 안 돼!!

 

 “깜빡할뻔 했네.”

 

 영제가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였다.

 

 “손.”

 

 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영제의 말이 다소 짧다는 인식을 하기도 전에.

 영제의 손가락이 서우의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갔다. 움찔 놀란 서우는 손바닥에 놓인 무언가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엔 작은 팬던트가 놓여있었다. 작고 굉장히 반짝거리는.

 

 “되게 비싼 달에 태어나셨더라구요.”

 

 영제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도서관을 나섰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한참이나 멀어지고 나서야, 서우는 정신을 차리고 팬던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뭐지? 귀걸인가? 내가 떨어뜨렸나? 귓불을 어루만졌지만 귀걸이는 제자리에 그대로 걸려있었다. 그녀에겐 이런 디자인의 귀걸이가 없었고, 심지어 이건 귀걸이도 아니었다.

 

 !!!!!!

 

 헉.

 서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빠른 걸음으로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뛸 때마다 별관이 무너질 듯 삐걱거렸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별관을 나서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영제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본관 교무실로 뛰어왔다. 꽃바구니는 여전히 그녀의 자리에 거대한 비석처럼 놓여있었다.

 서우는 수국 사이에서 얇은 상자를 꺼냈다. 심플한 은줄목걸이를 꺼낸 그녀가, 떨리는 마음으로 팬던트를 끼워넣었다. 둘은 한 세트였다.

 

 ‘되게 비싼 달에 태어나셨더라구요.’

 

 서우는 영제의 말을 곱씹었고, 그제야 그녀가 태어난 4월의 탄생석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다이아몬드.

 

 “말도 안 돼. 진짜 말도 안 돼...!!”

 

 서우가 다이아목걸이를 쥔 채 중얼거렸다. 얼결에 받은 생애 첫 다이아몬드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그녀의 뒤통수를 쳤다.

 

 나한테 꽃바구니를 보낸 사람이... 윤영제였어?!!!!!

 

 서우의 집은 한남동 재개발 지역의 연립빌라다. 일명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가파란 계단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한다.

 서우는 스무살부터 이곳에서 대학 동기인 윤나와 자취 중이다. 자유로운 영혼인 윤나는 웨딩플래너로 일하는 중인데, 정작 본인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충동적으로 결혼했다가 얼마전 이혼한 쫑낸 신입 이혼녀였다.

 무거운 꽃바구니를 끙끙대며 들고 올라온 서우가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을 열자, 영나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왔다.

 

 “네 이년!!! 어느 놈한테 받았는지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내거 아니야.”

 

 서우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아무리 오래된 친구사이라고 해도, 자신이 지도하는 고등학생에게 고백을 받았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잠깐, 따지고보면 정식으로 고백받은 것도 아니잖아? 요즘 애들은 그런 식으로 연애하나?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말들만 잔뜩 떠벌리면서 정작 중요한 본론은 피하는?!

 

 “그럼 누구건데? 니가 왜 들고 온 건데?”

 “우리 학교 어떤 여자 선생이 이벤트로 받은건데, 하나 준거야.”

 “보통 비싼게 아닌거 같은데.. 이걸 그냥 줬다고?”

 “응.”

 

 서우는 윤나의 시선을 피하며 제 방으로 들어왔다.

 

 “근데 진짜 예쁘다. 이거 십만원은 훨씬 넘을 거 같은데?”

 “무슨 꽃 따위가 그렇게 비싸?!”

 “내가 일주일에 만드는 부케만 몇갠데. 이런 수입 꽃들은 한송이에 만원도 넘어간다구. 이건 그냥 꽃바구니가 아니라 엄청 공들인 작품이야, 작품!!”

 

 윤나가 예리한 시선으로 꽃바구니를 살폈다. 서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방을 저리 치웠다. 영제가 남긴 카드와 선물은 가방 속에 있었다.

 

 “아무튼 누군지 부럽다! 너두 남이 받은 꽃바구니 챙겨오지 말고 올해 안으로 남자 잡는거야!! 동거인은 벌써 갔다왔는데 이건 스물여덟 먹어서까지 모쏠이니 원.. 이 쬐깐한 집에 뭔놈의 불균형이 이렇게 심해?”

 

 윤나가 꽃꽂이를 하겠다며 꽃바구니를 들고 나간 후, 서우는 침대에 걸터앉아 가방을 끌어안았다.

 목걸이 상자를 보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이아 팬던트를 건네던 영제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모른 척 돌려주자. 선생님한테 이게 무슨 장난이냐고, 돈지랄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불우이웃이나 도우라고 화도 좀 내고 얼버무리면, 대충 넘어갈거야. 그럴 거야..

 서우는 애써 편한 쪽으로 생각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면 오늘 있었던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단순한 방향으로 풀릴 것 같았다.

 물론 일은 그녀가 생각한대로 단순하게 풀리지 않았다.

 

 다음날. 등교시간 십분을 남긴 재명고등학교 교문은 뛰어가는 학생들로 번잡했다.

 서우 또한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향해 뛰었다. 미처 다 말리지 못한 긴머리가 블라우스에 감겨 질척였다.

 그 때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서우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교문 앞에 주차한 세단 뒷좌석에서 내리는 남자는 영제였다.

 

 “고등학생이 벌써 기사 딸린 차나 타고 다니고. 세상 참 불공평해요, 그쵸?”

 

 뒤를 돌아보니 서우보다 두 살 많은 수학교사 태준이 서있었다.

 태준은 여자들이 그닥 끌리지 않는 류의 미남이었는데, 아랍계 피를 한 방울 섞은 듯한 이국적인 외모 탓에 본명보다 압둘라라는 변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그러게요. 기사는 바라지도 않으니 경차라도 한 대 있었으면 좋겠는데.”

 “윤영제가 한선생님 반이죠?”

 “네.”

 “말썽부리지 않아요? 미국에서도 퇴학당했다던데.”

 

 그런가? 서우는 괜히 코를 긁적였다. 그러고보니 같은 반 학생인데도 윤영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뭐.. 지금까진 괜찮아요. 저도 담임 맡은지 얼마 안 돼서.”

 

 그 때 교문으로 들어서려던 영제가 고개를 돌려 서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섰다. 왜 나는 항상 반사적으로 찌질하게 행동하는가?

 

 “왜 그러세요?”

 

 당황한 태준이 물었다.

 

 “누가 절 부른 것 같아서요. 아니네요. 갑시다!!”

 

 서우는 힘차게 말하고 앞장서 걸었다. 제발 그러지 않길 바랐는데, 영제는 교문 앞에서 서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영제가 나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태준은 영제를 향해 “오냐”하고 노친네스럽게 대답하고는 앞장서 걸었다.

 교문에서 학교 정문까지는 또 세월이다. 재명고등학교는 대학교 못지않은 캠퍼스로 악명이 높았다.

 졸지에 영제와 나란히 걷게 된 서우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넌 어제 그게 무슨 장난이니? 날카롭고 건조하게 쏘아붙여야하는데, 그녀의 성격상 그게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왜 얘까지 아무 말이 없는거지? 고백 받은 건 난데, 왜 내가 답답해야 되는 거냐구!!!

 

 “오늘 수업 끝나고 얘기 좀 하자.”

 

 숨막히는 침묵을 참지 못한 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영제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오늘도 아홉시에 별관에서 볼까요?”

 

 얜 진짜 뭐지?!

 

 “아니. 점심 먹고 교무실로 와.”

 

 발끈한 서우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제가 얼굴을 찌푸렸다.

 

 “교무실..이요?”

 “그래. 선생님이랑 학생이 만나는 장소!! 뭐 잘못됐니?”

 “아뇨. 전 괜찮은데 선생님이 난감하실까봐.”

 

 무슨 얘가 이렇게 당황하질 않지? 서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영제가 먼저 정문으로 들어섰다.

 같이 계단까지 올라가고 싶지 않아서, 서우는 1층의 여자화장실로 방향을 틀었다. 그 때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목걸이 안 했어요? 마음에 안들어요?”

 

 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비어있는 쇄골을 만지작거렸다.

 

 “되게 오래 골랐는데.”

 

 영제는 좀 풀죽은 얼굴로 서우의 목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계단을 올라갔다. 할 말을 잃은 서우는 얼굴이 벌개진채 여자화장실로 도망치듯 숨었다.

 진짜 뭐냐고. 기껏해봐야 스무살밖에 안 먹어서, 왜 저렇게 사람들 들었다놨다 하는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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