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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못하는 로맨스
작가 : 피콕그린
작품등록일 : 201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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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못하는 로맨스 06 - 계약 연장 불가
작성일 : 17-07-17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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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계약 연장 불가

 

 김대학의 핸드폰엔 서우가 트레이닝복 상의를 벗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늘씬한 허리와 상아색 브래지어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위가 센 사진이었다.

 대학의 핸드폰에 저장된 자신의 사진을 보는 순간, 서우는 이성을 잃고 대학의 머리를 후려쳤다.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짓을 하니!?! 머리를 얻어맞은 대학은 기분나쁘다는 듯 서우를 노려보며 빈정거렸다.

 

 “볼 것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화내요?”

 

 그 순간 서우의 손이 다시 날아갔다. 다른 교사들이 달려와 말릴 때까지, 서우는 인정사정없이 대학을 후려치고 있었다.

 

 “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렸죠? 어떤 상황에서건 손이 나가는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고!!!!”

 “하지만 교감선생님...”

 “지금이 무슨 70년대에요? 어떻게 교사가 학생한테 이런 폭력을 휘두를 수가 있습니까?!!!”

 “저 학생이 몰카를 찍었다구요!!! 그것도 교사 몰카를요!!!”

 “물론 그건 백번 천번 잘못한 행동입니다.”

 

 오교감의 시선이 대학에게 옮겨갔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대학의 집안은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재명고등학교의 주요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래도 잘못된건 잘못된거예요!!! 말로 혼내고 그 자리에서 사진만 삭제했다면 가볍게 넘어갔을 일을, 어떻게 학교폭력으로 키울 수 있냔 말이에요?!!!”

 “가볍게 넘어갈 일이요..? 학생이 교사의 탈의 몰카 찍는 행위를 어떻게 가볍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이 나이 남학생들 아시잖아요? 가벼운 호기심으로 한 행동이에요.”

 “그건 남학생들에 대한 모욕이죠!!! 모든 학생들이 대학이처럼 변태같은 짓을 저지르진 않아요!!!”

 

 ‘변태’라는 말에 대학이 풋, 하고 웃었다. 서우는 대학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교권이 떨어졌다는 기사를 수도 없이 읽었지만, 이렇게 직접 뼈저리게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학생은 잠깐 나가있어요.”

 

 오교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학이 교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느낌이 불길했다.

 

 “한선생 행동도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에요.. 여자로서 수치스러우셨겠죠.”

 “....”

 “그래도 이런 일에서 포커스는 몰카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에게 휘두른 폭력입니다.”

 “....”

 “안그래도 저희가 상담할 때가 되긴 됐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서우 선생님과의 계약은 이번 달까지만 진행하는걸로 알고 있을게요.”

 “교감선생님..”

 “이 사건이 아니여도 이렇게 할 생각이었어요. 아무래도 체육교사는 여교사보다 남교사가 더 낫기도 하구요.”

 

 영제와 나겸이 달려왔을 때 이미 대학은 자리를 떠난 후였다.

 교장실로 뛰어들어가려는 영제를, 나겸이 간신히 붙잡았다. 교장실 안에서 오교감과 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불공평해요. 제가 아무리 여자여도 누구보다 오랜 시간 체육인으로 살아왔는데...”

 “알아요. 한선생이 어렸을 때부터 운동했던거. 촉망받는 체조선수였잖아요.”

 

 담임이 체조선수였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서온재단의 오랜 후원을 받았던 체육 영재였기도 하구요. 그래도 그건 다 지난 얘기죠.”

 

 심지어 우리 집안의 후원을 받았었다고..? 놀란 영제는 화를 내는 것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뿐이에요. 그 옛날 한선생이 딴 메달들이 지금와서 체육교사란 직업에 도움이 되는건 아니에요.”

 “전 교사란 직업이 좋아요.. 여기가 아니면 있고 싶은 곳도 없어요, 교감선생님.”

 “누구나 원하는 곳이 있어요. 그렇다고 다 꿈의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건 아니에요.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로 정리하겠습니다.”

 “학기 초에요. 이제 막 진로상담을 시작했는데 지금와서 담임이 달라지면 애들도 혼란이 있을거고...”

 “새학기 시작한지 한달도 안 됐어요. 지금 바꾸는게 최선이지도 모르죠. 그만 나가주세요.”

 

 교감은 단호했다. 서우는 할 말을 잃고 눈물을 삼켰다.

 계약 연장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그것도 부당한 일을 당한 직후 일방적으로 잘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교장실 밖에 있던 나겸이 영제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여기서 마주치면 서로 불편해. 가자.”

 

 영제는 가까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당장 교장실로 뛰어들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냐고 교감에게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나겸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나서기보다 침묵하는 쪽이 더 현명했다.

 이윽고 교장실이 열리고, 눈이 벌개진 서우가 힘없이 걸어나왔다. 그녀는 교장실 문을 닫자마자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영제는 복도 모퉁이에 숨어서, 흐느끼는 서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불쌍하네, 담임...”

 “....”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한서우가... 담임이 아닌거네?”

 “선생도 아닌거지.”

 

 영제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울고 있는 서우가 안쓰럽고 당장이라도 다가가 안아주고 싶었지만, 학교엔 보는 눈이 많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생각해보니, 서우의 실직이 영제에겐 아주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한서우가 학교에서 잘린다는건 사제지간이라는 허들이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생각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겸아, 오랜만에 몸이나 풀러 가자.”

 

 서우가 계약직 교사에서 잘렸다는 소식은 순삭간에 학교 전체로 퍼져나갔다.

 서우를 따르던 학생들은 울며 달려왔지만, 서우의 계약 해지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다른 계약직 교사들은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계약은 해지됐지만 정식으로 학교를 그만 둘 때까진 아직 이주가 남았다. 선생이면서 선생이 아닌 이 시간이, 서우에겐 가장 고통스러울 터였다.

 서우는 학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옥상으로 숨어들었다. 종례시간 전까진 엉망이 된 얼굴을 가라앉혀야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속을 삭히고 있는데, 갑자기 옥상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비명소리와 함께 등장한 얼굴은 놀랍게도 김대학이었다. 서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교사로서 권위없는 행동이긴 했지만, 지금은 저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김대학을 따라 몇 명의 학생이 옥상문으로 들어왔다. 역광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남학생인 듯했다.

 

 “뭐야? 니들 미쳤어?!”

 

 김대학이 자신을 옥상으로 밀어넣은 남학생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때 역광 속에 얼굴을 숨긴 남학생이 김대학의 가슴팍에 발차기를 날렸다. 서우는 헉, 하고 숨을 참았다.

 김대학에게 발차기를 날린 인물은... 놀랍게도 윤영제였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자빠진 김대학 위에 올라탄 영제는 짧고 굵은 주먹 몇 방을 더 선사했다.

 처음보는 영제의 모습에, 서우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말썽부리지 않아요? 미국에서도 퇴학당했다던데.’

 

 태준의 말이 떠올랐다. 윤영제에게 저런 폭력적인 면이 있었던가..?

 짧은 난도질을 끝낸 영제가 김대학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곁에 있던 나겸이 기다렸다는 듯 김대학의 교복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 니들 미쳤어?!!”

 

 김대학은 최후의 힘을 다해 몸을 틀었지만, 이미 넋이 나갈대로 맞은 후라 나겸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교복바지를 벗기자 빨간색 삼각팬티가 드러났다. 팬티를 본 나겸과 영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변태새끼 맞네.”

 

 찰칵! 영제가 처참한 몰골의 김대학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미친새끼들아!!! 하지 말라고!!!!”

 

 김대학이 울부짖었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이어나갔다.

 

 “왜? 남 찍는거 좋아하잖아. 그럼 찍히는 것도 좋아할거 아냐?”

 

 그제야 서우는 영제가 왜 저런 짓을 저지르는지 깨달았다.

 자신 때문이다. 제 딴에 자신의 복수를 하겠다며 저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학교에서 또 작품활동 해봐. 나도 똑같이 작품 만들어줄테니까. 당장 꺼져.”

 

 목적을 달성한 영제가 마지막으로 김대학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김대학은 주섬주섬 교복바지를 입더니 꽁무니가 빠지게 옥상에서 도망쳤다.

 

 “어떻게 할 거야? 이 사진? 내 인스타에라도 올려볼까?”

 “됐어. 이 정도로도 충분해.”

 “아깝네. 오랜만에 좋아요 좀 많이 받아보나 싶었는데...”

 

 나겸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둘은 몇 마디를 더 나누고는 옥상을 떠났다.

 그제야 다리 힘이 풀린 서우가 완전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난 왜 이 모양일까..? 아무리 짤렸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직은 교산데. 저런 엉망진창인 상황에 나서서 뭣들 하는 짓이냐고 무섭게 호령했어야 하는건데..!! 서슬퍼런 눈으로 김대학을 두들겨패던 윤영제의 포스에 눌려 나서기는커녕 숨느라 바빴다니..

 자학을 하던 서우의 위로,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자, 윤영제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여기서 숨어서 뭐해요?”

 “...난..”

 “무슨 체육교사 몸이 그렇게 둔해요? 여기 들어오자마자 알았어요. 선생님 여기 숨은거.”

 “...너.. 나 때문에 그런거니?”

 “당연한거 아니에요? 선생님 때문이 아니면 내가 이 피곤한 짓을 왜 해.”

 

 영제가 서우의 앞에 쪼그려앉았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김대학이 아주 잘못한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무슨 뜻이야..?”

 “김대학 때문에 선생님이 잘렸으니까.”

 “....”

 “잘리면.. 이젠 내 담임 아니잖아요. 내 선생님도 아니고.”

 “....”

 “그냥, 누나잖아. 정확히 말하면.. 그냥, 여자.”

 

 그냥 여자.

 감히 그런 말을 하는 학생을, 서우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너무 뛴 나머지 말문이 막혀서.

 

 “미안하지만.. 난 그 쪽이 더 좋은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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