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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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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꿈을 깨다.
작성일 : 17-07-23     조회 : 305     추천 : 0     분량 : 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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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쏴 -

 세차게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급한 발걸음을 옮기던 여인이 솟을지붕으로 한껏 위세를 드러낸 집 앞에 멈췄다, 여인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있는 힘을 다해 대문을 두드렸다.

 

 “대감 마님 계시느냐?”

 

 막 잠이 깬 문지기가 말을 이을 새도 없이 여인은 집안으로 들어서며 이 나라의 영의정을 불러댔다.

 

 “대감, 대감!”

 

 그녀의 고함소리에 문간방 노비들이 잠을 깨고 먼저 달려 나왔다. 모두들 아닌 밤의 홍두깨인가 싶어 소리 나는 곳을 유심히 살폈다.

 

 “통막골 무당 초란이 아녀? 초란이제?”

 “맞구먼 초란이, 아이, 근데 한밤중에 무슨 일이래?”

 

 “어인 소란이냐, 밤이 깊었거늘!”

 잠을 자지 않고 있던 집 주인이 문을 열고 나섰다.

 

 “대감, 드릴 말씀이……, 하, 하늘이!”

 

 힘주어 말을 맺는 여인을 바라보는 영의정의 눈이 빛났다.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초란을 안으로 불러 들였다.

 

 “들어오너라! 어서!”

 

 급히 문을 닫은 영의정은 초란을 앉히지도 않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말해보아라. 상세하게 말하라”

 

 “하늘이 열렸습니다! 천신(天神)이 나타났습니다!”

 

 ‘천신이?’

 초란의 입에서 ‘천신’을 듣는 순간, 영의정 서문기는 휘청하는 몸을 겨우 가누고 말을 이었다.

 

 “사……, 사실이냐?!”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지금 이 비가 그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대감!”

 

 “비!”

 

 “천수(天樹)의 물이옵니다. 천수와 함께 이 땅에 내린 것이옵니다. 모르시겠습니까?”

 

 듣고 있던 영의정은 미간을 좁혔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삼경 초에 천신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의 기운을 점치던 거울이 깨졌습니다! 대감! 그리고 엄청남 기운이 온 하늘을 뒤덮었지요,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천수(天樹)께 올리던 우물의 물이 거꾸로 솟고 있었습니다. 대감! 그 우물이 어떤 우물이옵니까? 그 우물의 물이 솟는 곳에 갑자기 하늘이 일그러지더니 광풍과 함께 엄청난 비가 쏟아졌사옵니다. 그리고 그 물이 다시 거꾸로 솟아 푸른 용으로 변하더니 환한 빛과 함께 이내 사라졌습니다. 대감, 이것이 그때 대감께서 보여주신 그 참언서(讖言書)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옵니까? 대감!”

 

 “천수께서……, 신단수(神檀樹)가 정말……, 다시……, 오시었는가?”

 

 천천히 하늘을 향하던 영의정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버님...... 저였습니까?..... 이 불초한 제가.......’

 

 “그분은 어디에 계시느냐?”

 

 “그것이…….”

 

 “어찌 그러느냐?”

 

 “천수(天樹)님께서는……, 궁에 계십니다.”

 

 “궁에?”

 

 “예……, 물기둥이 그곳에 떨어졌사옵니다.”

 

 “흐음…….”

 

 “이제 어찌하실 작정이십니까? 대감”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은 주인의 당연한 도리가 아닌가.”

 

 “허면........”

 

 “밖에 오성이 있는가?”

 

 “예! 대감마님”

 

 “준비하거라. 반드시 오늘밤 안에 찾아와야한다.”

 

 

 좌장군군에게 천신님을 맡기고 걸음을 재촉하던 주상은 금방 대근해지는 몸놀림에 나이를 한탄했다.

 

 ‘이제 이 땅에 발붙일 날이 얼마나 남았을꼬? 태조 대왕님이시여, 하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이 과업을 지켜낼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몇 번이고 기도를 올리며 걸음을 재촉하던 주상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필시 아까의 광경을 본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소식이 전해지고 있을 터! 내 생각이 짧았구나! 침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상전하, 어디에 계셨던 것이옵니까?”

 

 박상선은 용포가 젖은 채로 침전에 들어서는 주상에게 ‘주상전하, 납시오’란 큰 소리 대신 낮은 목소리로 아뢰었다. 평소에도 입이 무거우신 주상이시다. 무엇을 들으려고 묻는 것이 아니었으나, 오늘은 이내 주상의 말이 이어졌다.

 

 “상선, 아까 궁 안에서 일어난 일을 보았는가?”

 박상선을 향하지 않은 채 주상이 물었다.

 

 “무엇을 말씀이시옵니까?”

 

 “다시 묻지, 상선, 아까 궁 안에서 일어난 일을 들었는가?”

 

 ‘주상의 말에 의심이 묻어있다.’

 

 잠시 망설이던 박상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정전 앞에서 일어났던 괴이한 일에 관한 것이라면 보고 또 들었사오나, 신은 보고들은 것이 없사옵니다. 주상전하.”

 

 궁 살이 50년을 넘긴 박상선이었다. 두 분의 임금을 뫼시는 동안 그가 갖게 된 것은 늙은 이의 지혜가 아니라 빠른 눈치였다.

 

 “자네가 해주어야 할 일이 있네.”

 

 “분부 내려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 광통교 밑 움막을 찾아서 맹가라는 의원을 데려오라.”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전하”

 

 발걸음을 뒤로 물리는 박상선을 눈으로 쫒으며 주상의 생각은 이어졌다.

 

 ‘박상선이 보고 들은 것을 지금쯤 그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밤에 그들이 올 것이다!’

 

 “여봐라, 지금 당장 내금위장을 불러라.”

 

 ---

 

 “정신이 드셨습니까, 천신님?”

 

 “추……워, 여기가 어디지? 아무것도 안보여”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곳은 태조 대왕의 어진을 모셔두는 곳이옵니다. 지금 상황이 급박해 초 한 자루 제대로 태우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거기, 누구……?”

 

 “내금위 겸사복 좌장군 이무라 하옵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어렴풋이 사람 형체가 보였다. 갓을 쓰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형체는 호……, 혹시 저•승•사•자?

 

 ---

 

 “아아아아악-

  엄마야, 나 아직 갈 때 아닌데요, 나 나나나나나 아직 시집도 못갔는데요! 사람 잘못 찾아 오 신거예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 저승……? 아, 아니옵니다. 그것이 아니오라…….”

 

 말을 이으려던 찰나 좌장군은 멀리서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걸음을 느꼈다. 이곳은 지금의 주상께서 마음이 번잡할 때마다 들러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시는 곳이라 다른 궁집들과는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곳으로 향하는 걸음이라면……, 분명 이곳을 노리는 자다!

 

 “쉿!”

 

 몇 발자국만 더 가까이 온다면 천신의 목소리가 밖으로 들릴 것이다. 좌장군은 몸을 세워 밖을 향했다. 어느 새 발걸음은 전각을 돌아오고 있었다.

 

 “누구냐?”

 

 “홍안이옵니다. 좌장군”

 목소리를 한껏 낮춘 홍안이 걸음을 멈추었다. 홍안은 그가 아끼는 수하였다. 몸이 날래고 눈치가 빨랐다.

 

 “무슨 일이냐? 오늘 밤 너는 주군의 침전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어명이옵니다. 좌장군, 여기.”

 

 홍안으로부터 받아든 어명을 본 좌장군은 홍안을 돌려보내고 급히 천신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어명을 받는 즉시 천신님을 침전으로 모시라는 어명이었다.

 

 ‘궁 밖으로 얘기가 전해질 것을 염려하셨을 터, 어서 천신님을 뫼셔야 한다.’

 

 순식간에 도착한 좌장군은 어둠 속에서 천신을 찾았다. 그런데 그분이 없다!

 분명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제단 아래 몸을 웅크리고 계셨었는데……, 혹시!

 

 향을 피우는 제단 아래의 벽이 열려 있었다. 유사시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비밀통로였다.

 

 ‘아뿔사. 이곳으로 떨어지신게로군!’

 

 좌장군은 초에 불을 붙여 들고 통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아아아아아-” 비명도 제대로 안나왔다. 너무 컴컴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내 간절한 마음을 들어주셨는지, 훌쩍 문을 열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저승사자도 시집 못간 것들은 안 잡아간다던 울 엄마의 말이 맞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란 말이냐, 저승사자가 나간 뒤에 벽을 잡고 일어서려고 했는데 순간 벽이 밀려버렸고 나는 이곳으로 굴러 떨어졌다. 팔에 상처가 났을 거야. 무릎도 까졌을 것이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위로 다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거였다. 겨우 엎드릴 수 있을 정도의 좁은 통로 끝에 희미한 빛이 보였다. 기어 갈 수 있을까? 그런데 대체 여긴 어디지? 꿈이라면 제발 깨자, 깨!

 

 좁은 통로를 기어가던 좌장군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곳은 주상전하와 그 가족들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비상통로로 체구가 크고 어깨가 넓은 좌장군 같은 무사는 뒤따르지 못하도록 고안되었던 것이다.

 

 ‘앞질러 가서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겠군, 제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나오셔야 할 터인데.’

 

 그때 수영은 한 시간 째 통로를 기어가고 있었다. 곧 보일 것 같았던 빛은 방향을 꺾고 또 꺽어 가며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다.

 

 ‘꿈일 거야. 꿈이지, 같은 길이 계속 반복 되고 있잖아! 이런 게 꿈이지. 그런데 이 꿈을 언제까지 꿔야 해! 이제 그만 기고 싶단 말이야--’

 

 사경이 가까워지도록 좌장군은 소식이 없었다.

 ‘무슨 일이 먼저 난 것인가? 홍안은 분명 어명을 전했다고 했다. 어명을 받은 좌장군이 머뭇거린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금위장 들라하라.”

 

 주상은 내금위장을 불러 궁 안의 수비를 강화했다. 오늘 밤에 반드시 그들이 올 것이고, 그들로부터 천신님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침 조회에서 신하들이 밤사이의 일과 궁궐 수비를 강화한 일에 대해 물어 올 것이나, 지금은 그런 것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바깥의 상황은 어떠하더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궁궐 안의 수비 병력을 증강하여 궁 안을 샅샅이 뒤지고 있사옵니다. 만약 수상한 자들이 나타난다면 바로 보고가 올 것이옵니다.”

 

 “그렇겠지. 좌장군이 보이거든 바로 침전으로 들여보내거라.”

 

 “예. 전하”

 

 ‘예상대로라면 궁의 수비를 강화하기 전에 좌장군이 천신님을 모시고 이 침전에 와야 했다. ’‘도대체 어찌된 것이냐? 무야.’

 

 ---

 

 ‘빌어먹을, 도대체 이 꿈은 언제나 끝나는 거야, 기어도 기어도 끝이 보이질 않잖아. 어흑-

 이제 정말 배도 고프고, 팔꿈치고 다 까지고, 무릎도 아파서 더는 나갈 힘이 없는데……. ‘

 

 그때였다. 자포자기한 채 힘없이 팔을 뻗은 곳에 돌기가 잡혔다. ‘뭐지, 이건?’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그 튀어나온 뭔가를 밀어야 산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걸 밀면 드디어 이 꿈이 끝날 거라고…….

 

 ‘덜컹-, 스르르’

 

 내 팔이 머리 위로 올려졌다. 마지막 힘을 다해 밀어냈던 문이 바깥에서 누군가가 잡아 올린 것처럼 젖혀졌다. 달빛이 쏟아졌다. 캄캄하고 무서웠던 그 좁은 곳을 벗어날 수 있다니. 이제 이 꿈도 곧 끝이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는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긴 도대체…….’

 

 홀린 듯 발걸음을 뗀 곳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배경이 펼쳐졌다.

 개구리 소리, 풀벌레 소리만 있는, 아무도 없는 연못, 고요한 그 연못에 작은 집과 아치형의 다리가 걸쳐 있고, 둥근 달이 연못 가까이 내려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직, 꿈인가 봐…….”

 

 “마마, 이제 오셨사옵니까? 좌장군 이무.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내 뒤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크셨사옵니까? 이제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게 꿈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두 번째 만나는 저승사자도 있을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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