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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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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달밤의 추격.
작성일 : 17-07-23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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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달빛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남자가 한 발자국 다가섰다.

 그는 나를 천신님이라고 부르며 간곡히 부탁하고 있었다. 자신은 저승사자가 아니라는 것과,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더 있다가는 사람들의 눈에 띌 것이라고, 제발 나보고 이곳에서 나가자고 했다. 나는 이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몇 가지만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천신님이라구요?”

 

 “그러하옵니다.”

 

 “댁은 저승사자가 아니구요?”

 

 “그러하옵니다.”

 

 “그럼 당신은 누구인가요? 여기는 대체 어디구요?”

 “소인은 내금위 겸사복 좌장군 이무이옵니다. 하옵고 이곳은 창경궁의 비원이옵니다.”

 

 “내금위……? 창경궁의 비원? 그러니까 여기가 그……, 창경궁?”

 

 ‘창경궁이라면 조선의 궁궐 중에 가장 아름답다던 곳? 서울 갈 때마다 들르고 싶었지만, 매번 비켜갔던 그곳인데, 정말 이곳이 창경궁인가?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 봤던 그 비원의 모습 같기도 해.’

 

 “정말 아름답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그가 다시 한 번 애원했다.

 

 “하오나, 천신님. 지금은 이곳에서 더 지체할 시간이 없사옵니다. 이곳은 대왕대비 마마와 좌장군 마마께서 기거하시는 곳이라, 궁인들의 왕래가 있을 것이옵니다. 어서 빨리…….”

 

 고개를 돌렸을 때 어둠에 가려졌던 그의 옆모습이 달빛에 밝아졌다. 갓 아래 날카로운 콧날과 선명한 입술선. 그리고 큰 키. 한 180은 되려나. 순간 수영은 그 남자가 저승사자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저자가 저승사자가 아니라면. 만져지겠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좌장군이 고개를 돌렸을 때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천신이 성큼성큼 그에게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곧 바로 그의 양 뺨에 손을 갖다 댔다. 한 번도 여인의 손길이 얼굴에 닿은 적이 없던 좌장군은 흠칫 놀라 뒤로 두 발자국 물러섰다. 여인도 놀라는 눈치였다.

 

 “무...무엇을…….”

 

 “만져지네? 허상이 아니야? 그럼, 정말 사람이세요? 저승사자는 안 만져질려나? 만나 본 적이 없어서……, 아무튼 생생한 느낌이야. 꿈인지 잘은 모르겠는데 살아있는 사람은 분명한 것 같아.”

 

 여인의 손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좌장군은 차라리 달빛을 등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인가 혼잣말을 하던 여인이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물어보지도 않고 손을 갖다 대서.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당신을.”

 

 좌장군은 난처했다. 이분을 어찌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때 정원의 나무들이 움직였다.

 

 ‘인기척이다.’

 

 좌장군은 생각보다 행동이 빨랐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천신의 몸을 돌려 세워 가까운 나무 아래로 몸을 숨겼다.

 

 “쉿! 잠시만.”

 

 순식간에 나무 아래로 옮겨진 수영은 짧고 굵은 쉿! 이란 말에 저절로 숨을 죽였다. 왜 내가 이 남자의 말을 듣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켜보자 싶었다.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남자의 어깨 너머로 한 무리의 궁녀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수영은 그 모습이 꼭 영화나 드라마 속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곳이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 같다고는 생각 되지 않았다. 수영은 처음부터의 기억을 떠올려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엘 들어가 씻고 잔 기억이 없어. 그런데 이상한 바람에 휩싸였던 기억만은 또렷해. 그럼 이건 꿈은 아닐 확률이 높아. 바람에 휩싸인 다음 난 어떻게 된 거지?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사람은 이 사람이야. 이 사람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여인의 어깨를 잡은 채로 고개를 돌려 사라지는 궁녀들의 뒷모습까지 확인한 좌장군은 말을 이으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하마터면 여인의 얼굴에 닿일 뻔했다. 여인이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관모를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구나…….’

 

 “천신님.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셔야 하옵니다. 제가 주상전하가 계시는 곳으로 모시겠사옵니다.”

 정신을 수습한 좌장군이 말을 이었다.

 

 “주상전하가 계시는 곳?”

 

 “그러하옵니다. 소장을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그래, 가보자, 어차피 꿈이라면 따라가다가 깰 것이고, 꿈이 아니라면……, 이 사람에게서 뭔가 듣게 되겠지.’

 

 “그래요, 일단은 가요.”

 

 

 경복궁 -

 

 “주상전하, 영의정 서문기가 입시를 청하옵니다.”

 

 “서문기가?”

 

 ‘이 자가 직접 오다니?’

 

 “들라 해라.”

 

 ‘무엇을 염탐하러 온 것이냐? 서문기’

 

 “주상전하. 간밤에 무고하셨사옵니까? 신 영의정 서문기, 삼경 즈음에 이곳 궁궐에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걱정이 많아 야심한 시간임을 무릅쓰고 달려왔사옵니다.”

 

 “그대는 어찌 그 시간까지 깨어있었단 말이오? 국사가 다망하다고는 하나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지, 안 그러면 몸 상하오.”

 

 ‘말을 돌리는구나.’

 

 “미욱한 신을 걱정하여 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허나, 전하. 지난 밤에…….”

 

 “그런 일은 없소. 아마 그대가 잘못 본 게지.”

 

 “헌데, 어찌 궁궐의 수비가 이토록 삼엄하옵니까? 평소와 다르지 않사옵니까?”

 

 ‘쉬이 물러설 자가 아니지,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

 

 “그것은 내 간밤에 자객이 드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하도 생생하여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궁궐의 수비를 강화하라 이른 것이라오.”

 

 “어찌 그런 꿈을……. 옥체 미령하시와, 그런 꿈을 꾸신 듯 하오니, 내의원에 일러 진맥을 하여보심이 어떠하올런지요?”

 

 “안 그래도 아침에 내의원을 불러볼 작정이오. 이리 별일 아닌 일에 달려와 주니 고맙기는 하나, 영의정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어야지 않겠소.”

 

 ‘자객의 침입까지 걱정하고 있다면 필시 초란의 말이 맞을 터. 이곳에 신단수가 있구나!’

 

 “하오면 소인 물러가겠사옵니다. 전하.”

 

 ‘서문기가 직접 왔다. 뱀 같은 자가 아닌가? 분명 무슨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천신을 이 침전 안에 모셔야 한다. 그자가 찾기 시작한다면 이 곳 이외엔 어디든 안전하지 않을 것이야.’

 

 “좌장군은 아직 보이지 않느냐?”

 

 궁 밖을 나서던 서문기는 늘 주상 곁을 떠나지 않던 좌장군군을 떠올렸다.

 ‘그가 주상 곁을 떠난 적이 있었던가?’ 순간 서문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찌 하오리까? 대감마님.”

 어느새 오성이 주군의 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좌장군 이무를 찾아라. 주상의 최측근인 그가 궁 안에 없다. 분명 그가 있는 곳에 신단수가 있을 것이다.”

 

 “예!”

 

 오성의 뒤를 따라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흩어졌다. 모두들 사람 같지 않은 몸놀림이었다.

 

 

 ---

 

 여기가 서울일 리가 없어. 이 남자를 따라 나선 후 본 거라곤 낮은 기와집들 뿐. 흔한 빌딩하나가 없었다. 가로등도 안 보였다.

 

 ‘저 달조차 없었다면 걷지도 못했을 거야.’

 

 “여긴 어디죠?”

 

 “…….”

 

 이 남자는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자기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젠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아까 이상한 통로를 하염없이 기어서인지 어깨도 욱신거리고 배도 고파왔다.

 

 “어디까지 가는 건데요? 언제까지 걸어야 하냐구요?.”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걷던 그가 갑자기 멈춰 섰다. 껌껌한 중에도 키가 커서인지 그의 어깨에는 달빛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가만히 서있던 그가 방향을 틀어 골목 안으로 뛰어 들었다.

 

 “뭐지?”

 

 골목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골목 안에서 들리는 굉음을 듣고 멈칫했다. 그 소리는 가까이 오다가 다시 멀어지고, 또 가까워지다가 다시 멀어졌다. 골목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발이 안 떼어졌다.

 

 ‘저건……, 혹시……, 칼 부딪히는 소리 같은데……, 에이, 설마…….’

 

 목을 쭉 빼고 간신히 들여다 본 골목은 어둡고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사이엔가 소리도 멎었다. ‘대체 이 남자는 어디에 있는 거야. 아무도 없고 깜깜해서 점점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그때였다.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검은 그림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꺄-악!, 뭐……, 뭐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쳐 빠르게 물러났지만, 몇 초 만에 그 그림자는 다시 내 눈 앞에 와 섰다. 결국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나서야 달빛으로 그 그림자가 사람 형상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이야? 귀신이야?’ 분명 팔다리는 있는데, 얼굴이 안보였다.

 

 “보……, 복면을 쓴 건가? 누……, 누구세요?, 사람이야? 귀……, 귀신이야?”

 

 “그대가 신단수인가?”

 

 “뭐……, 뭐라고?”

 

 “주인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이 말을 뱉고선 거의 땅바닥에 붙어 있던 나를 한 번에 들쳐 업었다. 그리곤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빠른 속도에 겁을 먹어서인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거꾸로 매달려 있어서 피도 쏠렸다. 젠장. 뭔 놈의 꿈이 이리도 기냐……, 아까 그 남자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믿고 따라 오라매! 안그랬음, 지금 창경궁 비원이나 실컷 구경하고 있을 건데!!

 

 창경궁을 나서면서부터 좌장군은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북쪽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두 갈래로 갈려 한 무리는 순간 기를 감췄고, 다른 무리는 서쪽에서부터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벌써 움직인 것인가?’

 

 가던 길을 멈춘 좌장군은 따라 오던 여인의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껌껌한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기를 모아 올렸다. 왼쪽 허리에 찬 청운검이 ‘웅-’하고 울었다.

 

 ‘온다!’

 

 눈을 흡 뜬 좌장군은 칼을 뽑아 골목 안의 어둠을 갈랐다.

 두 놈이었다. 두 개의 칼날을 동시에 쳐 내면서 그 검의 주인을 헤아렸다. 둘 다 보통 검은 아니었다. 그들은 좌장군의 빠른 칼을 받아 내며 뛰어 올라 골목을 벗어나려 했다. 그럴 때마다 좌장군은 보폭을 넓혀 그들의 뒤를 베어 내고, 피하는 그들을 뒤로 물렸다.

 

 ‘골목을 벗어나선 안 된다. 그분께 피를 보일 수 없다.’

 칼을 말아 쥔 그의 손에 검기가 서렸다. 몇 걸음 만에 공중으로 몸을 띄운 좌장군의 검이 달빛에 빛났다. 칼 부딪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꺄아아아, 이것 놔, 이거 놓으라고!!”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 피가 거꾸로 쏠리고 있던 탓에 집나갔던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그 복면에게 매달려 돌다리 위를 건너고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발버둥 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머리를 빳빳이 들고, 반대쪽 다리를 버둥거릴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피 쏠리는 걸 참으면서 겨우 치켜든 시야에 어디서 많이 본 어깨가 들어왔다. 저승사자 같은 갓을 쓰고, 검푸른 옷자락을 휘날리면서 저승사... 아니, 나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그 이무라는 남자. 그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멈춰라!”

 

 돌다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는 나를 업은 남자의 머리 위를 날아 앞을 막아섰다. 순간, 복면을 쓴 사내의 몸이 흔들렸다.

 

 “더는 갈 수 없다. 그분을 내려놓아라.”

 

 복면을 쓴 자는 나를 놓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내 어깨를 더 세게 잡았다. 아까 좁은 통로를 길 때 생긴 통증이 몰려 왔다.

 

 “아아, 윽-”

 

 신음 소리가 그냥 흘러나왔다. 이젠 하다하다 아프기까지 하구나. 그런데 진짜 아프다?

 그때였다. 큰 고함소리와 함께 나를 둘러매고 있던 남자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 듯했고, 그 반동으로 공중으로 솟은 내 몸을 누군가 받아 안았다. 이무였다.

 

 “괜찮으십니까?”

 

 어깨 통증보다도 순식간에 일어난 이동으로 이번엔 이무라는 남자의 몸에 매달려 있는 내가 너무나도 놀라서 토끼 눈을 하고 있는데, 그가 조용히, 꼭 들어야 할 것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곧 한 놈이 더 올 것입니다. 지금부턴 무조건 뛸 것이니,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리곤 돌다리 아래로 나를 안고 뛰어 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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