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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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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하늘의 물.
작성일 : 17-07-24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5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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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집으로 돌아가던 초란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어미에게서 들었던 붉은 기운! 그들이 나타나면 하늘이 일그러지고, 일기가 바뀌며 땅이 요동치는 기운이 느껴질 것이라 하셨다. 그런데 지금 궁 북쪽 숲속에서 그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대감께 가봐야겠다.’

 

 문 앞을 나서던 오성의 눈에 멀리서 걸어오는 초란이 보였다.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하얀 얼굴에 쪽을 진 고운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오성은 초란을 열 살 때부터 알았다. 십 년 전 서문기를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릴 때부터 초란의 신기는 대단했다. 동네 사람들을 향해 거침없이 신점을 쏟아냈던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초란을 두려워했으나, 자신의 주인만은 초란을 곁에 두고 아꼈다. 자신을 만나기 전부터 주인은 초란과 그 어미를 알고 지낸 듯 했다. 아니, 그 어미의 어미까지도…….

 

 “이곳으로 오는 길이었느냐? 알고 온 것이냐? 신단수가 칼에 맞았다.”

 

 “그에 일이 있어난 모양이군요. 궁궐 북쪽 숲속에 이상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대감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어서 들어가 보거라.”

 

 “예, 나리.”

 

 “대감, 초란이옵니다.”

 

 “들어오너라!”

 

 열자 폭의 병풍 아래 영의정 서문기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은은한 먹 향이 방안을 메웠다.

 

 “붉은 옷을 입고, 붉은 검을 쓰는 자를 아느냐?”

 

 “그들이라면……, 대감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신단수를 향해 검을 던졌다.”

 

 “허면, 지금 신단수는?”

 

 “좌장군 이무가 신속히 궁으로 옮겼다. 허나……, 목숨이 위태롭지 않겠느냐?”

 서문기의 미간이 좁혀졌다.

 

 “…….”

 

 초란은 말없이 눈알을 굴렸다. 흰자위가 드러나자 빨간 입술이 떨렸다. 몇 마디 말들이 입에서 흘러나왔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앞에 앉은 서문기는 초란의 하는 양을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이 보이느냐?”

 

 뒤로 젖혀졌던 고개가 제자리를 찾자, 초란이 입을 열었다.

 

 “신단수의 목숨은 아직 붙어있사옵니다. 허나…….”

 

 “무엇이냐?”

 

 “검에 덴 상처가 점점 깊어질 것이옵니다. 또……,”

 

 “또?”

 

 “그들이 다시 궁으로 찾아들 것이옵니다!”

 

 ---

 

 노인은 숙였던 고개를 바로 들지 않고, 허리를 굽힌 채 말을 이어 갔다.

 

 “매일 밤 하늘님께 다시 신수(神樹)를 내려 달라 청하고 또 청하였사옵니다. 소인의 이 기원은 선대조께 이어 받은 것이옵니다. 소인, 이 소임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사옵니다. 헌데, 지난 밤 꿈에 하늘이 열리고 큰 비와 함께 신룡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그 신룡의 품에 안겨 있는 하얀 나무를 보았사옵니다. 하늘님께서 이 나라 조선을 버리지 않으신 것이옵니다.”

 

 수영은 바로 앞에 엎드린 노인의 얼굴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흰 머리에 이마와 눈가의 주름이 나이를 짐작하게 했다. 헌데 그 좌우로 노인보다 더 낮은 자세로 몸을 엎드린 사람들이 있었다. 한 사람은 녹색 옷을 입고 양 손을 소매에 넣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누더기에 가까운 옷을 입고 흰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좌장군이라는 사람은 ……? 그건 그렇고 너무 아프다. 살면서 평생 이런 아픔은 처음이야. 머리 아픈 건 기본이고 등에 통증이…….’

 

 수영은 눈을 감았다. 통증 때문에 엎드려 눌린 얼굴이 한껏 찌푸려졌다.

 

 “맹의원!”

 

 “주상 전하, 시료를 끝냈으니, 조금 기다리셔야 하옵니다. 의식이 돌아오셨으니, 이제 신열이 온 몸을 데울 것이옵니다.”

 

 “저리 아파하시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 죄를 어이 할 것인가?”

 

 “전하, 천신님의 등에 꽂혔던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좌장군 이무가 검을 뽑아낼 때까지도 사그라들지 않는 열기 때문에 검 끝에 손을 댈 수조차 없었사옵니다. 이는 신물(神物)이옵니다. 전하.”

 

 “신물(神物)……, 허면?”

 

 “아마도 그들일 것이옵니다. 전하.”

 

 “그래, 그들이겠지……, 먼 옛날 신단수를 베었던 자들! 그들만이 신단수를 해할 수 있는 신물(神物)을 가지고 있을 테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검이 꽂힌 자리를 메우고 침으로 주변 자리의 독기를 뽑아내는 시료를 하였사오나, 이것으로는 천신님의 상태를 장담할 수가 없사옵니다.”

 

 “허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신단수께 바치던 하늘의 물. 그것이라면…….”

 

 “그들이 신단수를 베기 전에 막았다던 그 우물의 물말인가?”

 

 “그러하옵니다. 그 물은 신단수께서 이 땅의 만물을 살리실 때 머금으셨던 물이 아니옵니까?”

 

 “그 물이라면…….”

 

 “영의정 서문기의 무녀 집 앞마당에 있는 그것이옵니다. 전하.”

 

 주상은 눈을 감았다. 맹의원, 아니 맹도사는 자신이 어린 세자로 있을 때부터 대전을 드나들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흰머리가 길었다. 아바마마의 임종을 앞둔 어느 날 소식이 없던 맹도사가 한참 만에 대전을 찾았다. 그는 숨소리가 고르지 못한 성상의 귓전에 대고 ‘하늘의 물’을 찾았다는 얘길 전했다. 누워 계시던 성상의 숨소리가 천천히 잦아들 던 그 때 아바마마의 절실한 눈이 자신을 향했다. 그리고는 곧 눈을 감았다. 그 후 임금이 된 세자는 맹도사를 통해 돌아가신 아바마마와 그 선대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들 모두가 찾으려 했던 그것이 이제 자신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소인, 성상 전하의 뜻을 받자와 태백산에서부터 그 우물의 지류를 찾았사옵니다. 그 지류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흩어져 각각 한 곳에 머무르고 있었사옵니다. 그 가운데 서쪽으로 흘러 모인 곳이 바로 통막골에 있는 무당의 집이옵고, 그곳은 대대로 영의정 서문기의 집안과 연이 닿아 있는 곳이었사옵니다. 전하.”

 

 “다른 곳의 우물은 궁에서 먼 곳에 있는 것이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북쪽은 함경도에, 동쪽으로는 경상도에,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에 있사옵니다. 전하.”

 

 “방법이 없구나……, 좌장군 이무를 들라 해라.”

 

 

 

 ---

 

 

 좌장군 이무는 강령전 앞에서 주군의 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신님을 업고 이곳까지 한 달음에 달려왔을 때 어혜도 갖추지 않으시고 버선발로 뛰쳐나오시던 주상 전하의 용안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 죄를 어찌 청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침전에 누일 때까지도 의식을 잃고 계시던 천신님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맹도사라 불리는 의원이 옆에 계시긴 했으나, 천신님의 등에 꽂힌 검은 흔히 볼 수 있는 검이 아니었다. 검의 몸체에서부터 칼자루까지 온통 붉은 빛이 돌았다. 그리고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검기가 느껴졌다. 보통 검기라는 것은 쥐고 있는 주인이 있을 때나 뿜어져 나오는 것인데, 이 검은 달랐다. 지금 당장 천신님의 몸에서 이 검을 뽑지 않으면 더욱 살을 파고 들것 같았다. 더구나 여인의 몸이 아닌가?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좌장군은 단전에 기를 모았다. 검자루를 감아 쥔 손이 타는 듯 했지만 멈추지 않고 수기(手氣)로 바람을 일으켰다. 잠시 열기가 식는 틈을 타 단번에 검을 뺐다.

 

 “좌장군은 침전에 듭시라는 명이오.”

 

 박상선이 급히 댓돌에 내려서며 주군의 명을 전했다. 좌장군 이무는 생각을 멈추고 황급히 침전 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여인의 상태를 살폈다. 여인은 한 쪽 어깨에 여러 개의 침을 꽂은 채 엎드려 있었다. 좌장군의 고개가 숙여졌다.

 

 “주상 전하,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니라. 이분을 살려야 한다. 영의정 서문기의 집을 알고 있느냐?”

 

 “예,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 당장 영의정의 집으로 가서 통막골 무녀의 집을 알아 내거라. 그리고 그곳에 있는 우물의 물을 담아 오거라. 지체할 시간이 없다!”

 

 “예, 전하! 명을 받들겠나이다.”

 

 좌장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임금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서문기 그자가 하늘의 물을 내어주겠소?”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지금은 좌장군 이무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맹의원은 좀전에 자신조차도 건드릴 수 없었던 신물을 단번에 잡아 빼내던 좌장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맹의원은 좌장군이라는 자를 자세히 살폈다. 팔척이 넘는 키에 단단한 몸집, 크고 고집스런 눈매가 하늘로 말려져 있었다.

 

 ‘하늘 사람인 나조차도 다룰 수 없는 신물이었다. 헌데……, 그라면 천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명을 받은 좌장군은 홍안을 불러 물을 담을 병을 챙겼다. 침을 꽂고 엎드려 계시던 천신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숨소리도 약했다. 좌장군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급하다. 홍안은 나를 따라라.”

 

 “예! 좌장군.”

 

 --

 

 오성은 멀리서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궁으로 향하는 주인의 가마를 멈춰 세웠다. 높지 않은 기와들 사이로 말을 탄 좌장군의 모습이 보였다.

 

 “대감, 좌장군 이무가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가마를 멈추어라.”

 

 좌장군이 자신을 찾아 올 줄 서문기는 이미 초란의 신점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초란의 당집 우물의 물을 원한다는 것도. 서문기의 눈썹 꼬리가 올라갔다. 그에겐 다른 속셈이 있었다. 말에서 내린 좌장군이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서문기는 좌장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디를 이리 급히 가는가?”

 

 “대감께오선 어디를 가시는 것이옵니까?”

 

 “내가 먼저 묻질 않았는가? 상전의 물음에 먼저 답을 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좌장군.”

 몸을 뒤로 젖히며 서문기가 되물었다.

 

 “대감을 찾아가는 중이었사옵니다.”

 

 “아침부터 나를? 무슨 일이 있는 겐가? 좌장군이 움직였다면 필시 주상 전하의 일일 것인데, 혹여 주상 전하께 좋지 못한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그렇지 않사옵니다. 대감, 헌데, 대감께오선 어디를 가시는 중이시옵니까?”

 

 “조참(朝參)이 있는 날이지 않은가? 이 나라의 영의정이니 부지런히 궁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네. 자네도 나를 찾아온 것이니, 걸으면서 이야길 하세.”

 

 좌장군은 거드름을 피우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영의정의 눈빛이 거슬렸다. 평소에도 어심을 어둡게 만드는 자였다.

 

 ‘어느 고을에서든 무당 하나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구나, 영의정에게서 알아내야 할 무당이라면 분명 영의정의 사람일 것이다. 이자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당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야.’ 좌장군은 영의정 서문기를 빨리 보내고 통막골 쪽으로 말머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아니옵니다. 대감, 소인, 조참(朝參)에 늦으실까 염려되어 찾아온 것이니, 이만 다른 대감들께도 가보아야겠습니다.”

 

 좌장군의 고개가 숙여졌다. 그때였다. 뒤로 한껏 몸을 누이고 있던 영의정이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좌장군 이무의 숙인 머리에 대고 속삭였다.

 

 “그 우물을 찾으러 가는 것이라면 관두게. 그 물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네, 이 길로 궁으로 가, 주상 전하를 뵐 것일세. 그러니 나를 호위하여 따라오시게나.”

 

 좌장군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자가 무슨 꿍꿍이인가?’

 

 몸을 세우는 좌장군에게 영의정이 옷춤 아래 물병을 꺼내 보였다.

 

 ‘저것이 진정 그 우물의 물인가?, 그리고 내가 그것을 찾을 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의심하는 좌장군을 재촉하는 서문기의 말이 이어졌다.

 

 “어서 따라오시게, 늦으면 그분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지 않은가 말일세.”

 

 ‘이자는 이미 천신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 허나 이자의 말만 믿고 궁으로 돌아간다면…….’

 아파하던 여인의 모습이 좌장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좌장군은 홍안을 불렀다.

 

 “지금 당장 대궐로 달려가 서문기 대감이 우물의 물을 가지고 있다고 전하거라. 나는 통막골로 갈 것이다.”

 

 “예! 좌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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