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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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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하늘의 나무.
작성일 : 17-07-24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5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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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어. 아……, 등이……, 윽!”

 맹의원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천신을 받쳐 뉘었다.

 

 “천신이시여, 아직 몸이 완전치 못하시옵니다. 등의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는 상당한 통증이 있으실 것이옵니다. 부디, 몸을 가벼이 움직이지 마시옵소서.”

 

 좌장군이 물병을 들고 도착했을 때 맹의원은 먼저 침 끝에 그 물을 묻혀 상처 부위를 시료했다. 그리고 남은 물은 숟가락에 담아 천신의 입 안으로 천천히 흘려 넣었다. 그러기를 십여 차례, 드디어 천신의 혈색이 조금씩 돌아왔다. 나뭇가지처럼 말라있던 몸에 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늘의 물이 역시 신단수(神檀樹)께 효험이 있구나. 헌데, 저 병의 물이 저토록 많이 남았던가?’

 

 겨우 정신이 든 수영은 엎드린 채로 주변을 살폈다. 좌장군이 문 쪽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의원 같아 보이는 사람이 역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아까……, 좌장군이라는 사람에게 끌려가다시피 숲길로 들어섰던 게 기억이 나는데……, 그리고 등에 뭔가를 맞은 것 같았어. 그리고……, 기억이 안나, 좌장군이라는 자가 날 이곳에 데리고 온 건가?’

 

 “저……, 등이 왜 이렇게 아픈 거죠?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너무 아픈데- 아아-”

 

 묻는 수영의 눈길이 좌장군을 향했다. 아무래도 같이 있었던 좌장군이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좌장군은 아까부터 문 앞에 꿇어 앉아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마치 석상처럼.

 사실 그는 지금 천신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물병을 들고 침전에 들어섰을 때, 좌장군은 나무토막처럼 바싹 말라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 여인을 보았을 때와 너무나 달랐다. 아니, 여인을 이 곳에 뉘일 때만 해도 뼈가 나뭇가지처럼 드러나진 않았었다. ‘그때 홍안의 발자국 소리를 오해하지 않고, 천신을 먼저 챙겼더라면…….’ 좌장군은 자신의 판단이 후회스러웠다. 스무 살 때부터 8년 동안 주상 전하의 곁을 지키면서 한 번도 자신의 판단을 후회 해 본 일이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흘렀고, 그 일은 모두 주군을 위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주군께 지켜내겠다 약속드렸던 여인이 신음소리를 내며 제대로 누워 있지도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분은 천신이셨다. 좌장군은 주군께 죄를 청하는 것보다 더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소인, 천신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여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고개를 땅에 박다시피 하고 외치는 좌장군의 몸이 떨렸다.

 수영은 갑자기 고개를 땅에 박고 죽여 달라 외치는 좌장군의 목소리에 놀랐다. 저 사람이 갑자기 왜?

 

 “저기요, 으……, 저기, 내 등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예요? 같이 있었으니까 알거 아니에요? 뭐예요? 네?”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아니, 왜 당신이 죽어요? 날 여기까지 데리고 온 사람도 당신인 거 같은데? 날 구해준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수영은 다시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에 몸부림쳤다.

 

 “으윽-”

 

 맹의원은 여인의 몸을 잡았다.

 

 “좌장군, 어서 이리와 천신님을 잡아 주게.”

 땅에 고개를 박고 있던 좌장군이 놀라 재빨리 여인을 받아 안았다. 천신은 마른 침을 삼키며 물을 찾았다.

 

 “물을 주십시오. 어서!” 좌장군의 초조한 표정이 드러났다.

 

 “이 일을 어쩐다, 병에 남은 물은 좀전에 천신님께서 다 마셔버리셨는데……. 기다리게 내 곧 대전으로 가 영의정이 가지고 온 물이라도 뺏어 올 것이니!”

 맹의원은 뛰다시피하며 침전을 나갔다. 좌장군은 괴로워하는 여인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물병을 쥐고 입을 적실 수 있는 한 방울의 물을 기대하며 물병을 기울였다. 그런데……, 물병이 묵직했다. 아니, 처음 물을 담았을 때의 무게 그대로 인 것 같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물, 물…….”

 좌장군은 한 손으로 천신의 몸을 받치고 한 손으로 물병을 잡고 여인의 입에 물을 흘려 넣었다. 천신은 물병의 물을 흡입하듯 그대로 들이켰다. 그때였다. 여인의 머리카락이 하얀색으로 변해 넘실거렸다. 그 긴 머리카락이 한 올도 빠짐없이 하얀색이 되어 바닥에 흘러내렸다.

 

 ‘대체, 이분은…….’

 

 --

 

 “초란아, 정신이 드는 것이냐?”

 오성의 다급한 목소리에 초란이 실눈을 떴다.

 

 “붉은 범……, 붉은 범이……. 아악, 안 돼!”

 

 “정신 차려 보거라, 초란아, 초란아!”

 오성은 눈을 크게 뜬 채 허공을 바라보고 헛소리를 되뇌이는 초란을 일으켰다. 초란의 몸이 떨렸다.

 

 “어찌 된 것이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말해 보거라, 초란아, 정신 차리거라!”

 오성은 초란의 뺨을 때렸다. 하얀 뺨이 붉어질 즈음 초란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떨고 있었다.

 

 “나, 나리, 부……, 붉은 범이 제 목을 물어뜯을 듯 달려들었습니다. 바, 밖에, 밖에…….”

 

 “밖엔 아무도 없다. 정신 차리거라. 좌장군 이무가 이곳을 다녀갔던 것이냐?”

 초란은 좌장군이라는 말에 몸을 움츠렸다. 오성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초란이 이토록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범이라니……, 산짐승이라도 보았단 말인가?’

 

 “좌……, 좌장군이 왔었습니다.”

 

 “허면, 우물의 물을 가져 갔느냐?”

 

 “…….”

 울 것 같은 얼굴로 초란이 고개를 저었다. 오성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우물이 있는 뒷마당에서 의원이 누워있는 초란의 맥을 짚어보고 있었다. 오성은 초란을 쓰러뜨린 자가 좌장군일 것이라 짐작했다. 초란을 이리 쓰러뜨렸다면 필시 우물의 물을 가져갔을 것이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고개를 저으며 초란이 일어서려 했다. 오성은 휘청이는 초란을 안았다. 초란의 걸음이 뒷마당을 향했다. 붉은 범이 이빨을 드러내고 자신을 향해 달려 들던 기억이 생생했다. 허나, 우물을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오성이 옆에 있었다.

 

 “덮개를 밀어주시겠습니까?”

 오성이 우물의 덮개를 밀었다. 달빛에 잔물결이 하얗게 일던 우물이 어두웠다. 아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오성은 초란을 향해 소리쳤다.

 

 

 ---

 

 초란은 오성의 놀란 소리에 우물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우물 안이 말라 있었다.

 “좌장군이 와서 우물의 물을 다 퍼 간 것이 아니냐?”

 

 초란은 고개를 저었다.

 “좌장군은 작은 물병을 들고 있었습니다. 또 이 우물이 그냥 퍼간다고 이리 바싹 마를 우물이옵니까?”

 

 “그렇다면, 대체 어찌 된 것이란 말이냐?”

 

 대답대신 초란은 천천히 대궐을 향해 돌아섰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신점이 나올 때의 행동이었다.

 “대궐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사옵니다. 필시 대감께 일이 일어났을 것이옵니다.”

 

 그때 영의정 서문기는 대전에서 임금을 속이고 문무백관들을 우롱한 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서문기 대감,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 물병에 물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소, 지금 지엄하신 주상 전하 앞에서 무엇 하는 것이오?!”

 

 서문기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산산 조각 난 물병 사이로 물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그 자리엔 그릇 조각만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영의정의 뒤에서 좌참찬과 우참찬이 끼어들어 대신들의 항의를 막아섰다.

 “대감, 지금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하니, 잠시 뒤로 물러서는 것이 어떨까합니다.”

 

 그때 서문기는 주상의 행동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뭔가가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과감한 행동을 할 주상이 아니다. 허면...... 신단수가 살아난 것인가?’

 

 - -

 맹의원은 천신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기다리며 얼마나 기원을 드렸던가. 이제 겨우 그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멀리 대전 앞에서 고개를 쭉 빼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박상선이 보였다.

 

 “이보시오. 박상선!”

 박상선은 맹의원을 보자마자 크게 놀랐다. 의원의 옷을 잡아끌며 대전 뒤로 돌아갔다.

 

 “이곳에 오시면 아니 되오. 지금 막 주상 전하께서 영의정으로부터 승기를 잡으셨소. 이 때 의원께서 보이시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됩니다. 어서, 강령전으로 돌아가시오. 어서.”

 

 “허나, 지금 천신님이 위독하시단 말이오.”

 

 “좀전에 좌장군이 다녀갔소. 천신님께서 회복되신 것이 아니었소 ?”

 

 “잠시 정신이 드셨소이다. 헌데, 또 다시 그 물을 찾으시오. 어서 영의정의 물을 가지고 가야하오.”

 

 박상선은 맹의원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맹의원, 내 말을 잘 들으시오. 그 병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소.”

 

 “그것이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요. 주상 전하께서 좌장군이 다녀 간 후, 천신께서 회복되신 거라 여기고, 영의정의 물병을 바닥에 내동댕이 쳐 깨뜨렸소이다. 헌데, 물이 없었소. 그저 물병만이 깨졌다오.”

 

 “그게 무슨…….”

 

 “지금은 나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소만, 분명한 것은 지금 영의정의 눈에 맹의원이 띄면 안 된다는 것이오. 물병은 깨졌고, 그 물은 이 대궐에서 이제 찾을 수가 없으니, 어서 강령전으로 돌아가 천신을 돌봐 주시오. 주상 전하께 내 곧 아뢰리다.”

 

 “허, 이런……!”

 

 맹의원은 강령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서문기가 주상 전하 앞에서 거짓으로 물병을 들고 신단수의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는 서문기도 모르는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서문기의 물병의 물이 사라졌다면……, 혹시?’

 

 그때였다. 강령전 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맹의원은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익숙한 기운이다. 이것은 신단수(神檀樹)의 기운이 아닌가!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눈물이 맺힌 맹의원은 강령전을 향해 달렸다.

 

 좌장군은 천신을 한쪽 팔 안에 안고 있었다. 여인의 하얀 머리카락이 좌장군의 팔에 흘러내렸다. 이제 신음 소리가 사라지고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이구나.’

 

 좌장군은 조심스럽게 여인의 머리를 받쳐 자리에 누이며,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했다. 부드러웠다. 마치 봄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지나는 것처럼.

 

 ‘통증이 가라앉은 것 같구나. 저 물병의 물 때문인가?, 헌데 맹의원이 병 안의 물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좌장군은 미간을 모으며 옆에 놓인 물병을 들었다.

 

 ‘어? 묵직하다? 분명, 물병을 다 비우셨는데?’

 

 물병을 흔들자 찰랑거리는 소리 병 안에서 들렸다. 좌장군은 가만히 물병을 내려 놓았다.

 

 ‘이 물을 다 마시고 천신께서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셨다. 그리고 신음 없이 편히 잠드셨다. 그렇다면 저 물은 그냥 물이 아닐 것이다.’

 

 그때 마침 맹의원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신단수(神檀樹)께오서……, 신단수께오서…….”

 

 문 앞에서부터 천천히 무릎을 굽혀 앉던 맹의원의 몸이 이내 바닥에 닿았다. 한동안 엎드린 채로 흐느끼던 맹의원이 천천히, 감격이 어린 눈빛으로 여인의 머리맡으로 다가와 앉았다.

 

 “이분은 말일세, 좌장군. 그냥 여인이 아니라네. 이분은 하늘이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내려 주신 나무. 신단수(神檀樹)일세.”

 

 “나무……, 신……단수?”

 

 “들어 본 적 없는가? 먼 옛날 아주 먼 옛날. 이 곳에 단군 왕검께서 조선을 처음 세우시던 때, 그 나라가 시작되기도 전에 말일세, 하늘이 이 땅의 백성을 사랑하시어 나무 한 그루를 내려주셨다네. 그 나무가 이 땅의 백성들과 더불어 사랑하며 살아가는 곳에 하늘 사람들을 보내어 보살펴주셨지. 신단수가 있는 곳엔 서로가 서로를 널리 이롭게 하려는 하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네.”

 

 좌장군은 맹의원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 여인은 어제 내리는 비와 함께 이 곳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 여인이 나무라? 그것도 아주 오래 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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