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창밖을 바라보던 수영은 컴컴해진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낯설었다.
‘내가 있던 곳은 밤하늘이 이렇게 아름답지 않아.’
수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몇 번의 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 세상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살던 곳이 아니야. 이곳은……. 난 정말 어떻게 된 거지? 꿈이 아니라면……, 조선 시대 같은 이 세상에……, 내가 왜 있게 된 거야? 이곳이 정말 현실인거야?’
수영은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더 확실하게 이곳이 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알고 싶었다.
더 확실하게, 자꾸만 반복되는 이곳이, 꿈이 아니라는 증거를…….
만약에 그 증거가 없다면, 이곳은 그냥 꿈속이 될 테니까.
“마마, 밤공기가 차갑습니다. 아직 몸이 완쾌되지 않으셨사옵니다.”
좌장군은 여인의 몸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강녕전에서 임시 거처로 마련된 이곳 좌장군까지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동안에도 등에 통증이 아직 남으신 듯 가마에서 내릴 때에는 힘겨워하시는 얼굴에 땀이 베어 있었다.
“마마, 그만 창을 닫으시고 편히 앉으시옵소서. 곧 의원이 탕약을 들일 것이옵니다.”
좌장군이 옆에 서 있는 소상궁에게 눈짓을 주고 걸음을 물릴 때였다.
“좌장군 이무라고 했죠?”
여인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멈춰선 좌장군이 여인의 얼굴을 향하다 급히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지금이 몇 시쯤이에요?”
“시각을 여쭈오시는 것이라면, 술시(戌時)이옵니다.”
“술시?”
수영은 친구들과 사주관상을 보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점을 보는 사람이 술시는 저녁 7시부터 9시 사이라고 했었다.
“내가 술시에 태어났다고 했으니까……. 지금이 저녁……, 8시쯤인가?”
“술시의 반을 지나고 있을 것이옵니다. 마마”
아까 낮에 짧은 인사를 나눴던 소상궁이 옆에서 허리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궁궐 밖을 보고 싶어요. 지금.”
허리를 숙이고 있던 소상궁은 놀란 눈으로 좌장군을 바라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좌장군이 입을 열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마마, 지금은 밤이 깊었사옵고, 또,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으셨사오니…….”
안된다고 말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수영은 좌장군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최대한 단호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좌장군님. 전 이곳이 어딘지 잘 몰라요, 아니, 모르겠어요. 이곳이 꿈인지, 아님 다른 세상인지……. 이런 혼란스러운 상태로 계속 궁궐 안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제가 나가서 확인해 볼 게 있어서 그래요. 잠시면 돼요.”
“하오나, 마마, 어제 마마를 습격했던 놈들이 아직 더 있을지 모를 일이옵니다. 이곳 향화정에 내금위의 병사들을 곳곳에 배치해 두어 누구도 범접치 못하게 경계를 세워두고 있는 것이 모두 그 때문이옵니다. 아직 범인을 잡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궁 밖을 나서신 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일이옵니다. 마마.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좌장군은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천신의 명이 거두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영은 등의 통증보다,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 지도.
“하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칼에 맞았다고 했죠? 그 사람들 누구예요? 난 그날 밤 내내 쫓겨 다녔는데, 그 사람들이 그런거에요? 왜 나한테 칼을 던진 거죠? 날……, 죽이려고?”
순간 수영은 자신이 쫓기던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래, 내가 누워 있었던 이유가 등에 칼을 맞았기 때문이었지, 그런데 왜 그들이 날 쫓았던 거지? 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은……”
좌장군이 말을 흐리는 사이 밖에서 맹의원이 탕약을 준비해들고 입시를 물었다.
“마마, 맹의원이옵니다. 잠시 들어가겠사옵니다.”
소상궁은 맹의원이라는 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생각시 시절, 어머니처럼 모시고 따르던 상궁마마께서 하시던 얘기였다.
‘우리 상감마마를 지키시러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 계시단다. 그분을 뵈면 자손이 번창하고, 삼대가 큰 대업을 이룬다고 하지, 너도 뵙게 된다면 꼭 크게 절을 올리거라.’
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누더기 옷을 입은 노인이 소상궁의 앞을 지나고 있었다. 소상궁은 마음으로 깊은 절을 올렸다.
“마마, 지금 이곳을 나서셔서는 아니 되오십니다.”
밖에서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짐작하고 있던 맹의원 역시, 여인의 출궁을 막았다.
“맹의원이라고 하셨죠?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어요. 저를 살려주셨다고 들었는데……, 고맙습니다.”
수영은 아픈 등 때문에 고개를 조금만 숙였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어딘가 친숙한 느낌 때문인지 이 노인에게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옵니다. 마마, 소인은 그저 하늘의 물을 드렸을 뿐이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늘께서 이루신 일이옵니다.”
수영은 맹의원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이 궐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있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저를 지키는 사람들이 여럿이라고 들었어요. 그분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확인할 것이 있어요. 제가 계속 이곳에 있기를 원하신다면, 지금 저를 궁 밖으로 보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맹의원은 난처했다. 그러나 천신님의 의지가 확고해보였다.
“소인 어찌 천신님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허면,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주상 전하께 아뢰고 올 때 동안만 말씀이옵니다. 주상 전하께오서는 천신님을 아주 많이 기다려오셨사옵니다. 지금 이리 출궁하오시면 전하께오서 크게 걱정하실 것이옵니다.”
“네, 기다릴게요.”
강녕전으로 향하던 맹의원은 천신이 깨어났을 때를 떠올렸다. 주상 전하를 알아보시는 듯 눈길을 두시더니, 몸을 일으키시고 이곳이 어디인지를 물으셨다. 그리고 아주 오랜 벗인 자신조차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때 맹의원은 천신의 환생이신 이 여인이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래,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 않은가. 지금은 이 세상을 알아 가시는 것이 필요하실 게야.”
걸음을 재촉하던 맹의원의 입에서 기도가 흘렀다.
“환웅 천황이시여. 부디 오늘밤 신단수를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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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주상 전하 계시는가?”
맹의원은 박상선을 향해 물었다. 박상선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댓돌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어화와 함께 놓인 중전 마마의 비단신이 놓여 있었다.
“주상 전하께오서 아프신 천신님을 급히 향화정으로 모신 이유가 이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맹의원.”
맹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만인지상의 임금이라 할지라도 모든 권력의 정점이 될 수는 없었다. 십육 년 전 새로 맞은 중전은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올리면서 우의정 김명기와 손을 잡고 권력의 한 축을 쌓아가고 있었다. 혹여라도 돌아가신 중전 마마의 성인이 된 대군들이 세자 자리를 찬탈할까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그런 중전의 귀에 천신의 소식이 들어가지 않았을리가 없었다.
“늦어지실까?”
맹의원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강녕전을 올려다보았다.
“이대로 불이 꺼지진 않을 것입니다. 의원. 조금만 기다려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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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장군님?”
수영은 문 밖을 지키고 있는 좌장군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마마.”
소상궁이 열어주는 문을 지나 좌장군이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좌장군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마마, 소인에게 존칭을 붙여 부르지 마옵시고. 그저 관직이나, 이름을 호명하여 주소서.”
좌장군은 자신을 ‘님’자를 붙여 부르는 천신에게 법도에 맞지 않음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앞에 선 여인이 조금 당황하는 듯싶었다.
“아……, 그런데, 저……,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냥 부른다는 게 좀 어색해서요.”
수영은 당황스러웠다. 하긴 그냥 ‘좌장군’, 아니면 ‘이무씨’, 뭐 이렇게 부르는 것도 참 어색하다 싶긴 했다.
“아니옵니다. 마마. 그저 하대하시옵소서. 소신 종2품 내금위의 벼슬일 뿐이오니, 편히 부르시옵소서.”
“난, ‘좌장군님’이나, ‘이무씨’라고 부르는 게 편한데……, 그렇게 불러도 돼요? 그럼?”
“이무씨……, 라니……. 아, 아니, 마마, 부, 부디 편하게 하대하시옵소서.”
좌장군은 생전 들어보지 못한 ‘씨’라는 호칭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과묵하고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만 행동하던 사람이 말까지 더듬는 모습을 보니 수영은 웃음이 나왔다.
“큭-”
상전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좌장군과 소상궁이 동시에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오신 후로 한 번도 웃음을 보이신 적이 없으셨다…….’
좌장군은 자신 때문에 등을 다치신 천신이 웃는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천신을 향한 눈길을 거두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청을 드렸다.
“천신님, 소인을 좌장군이라 불러주시옵소서.”
“천신?”
“그러하옵니다. 마마.”
“방금 날 ‘천신님’이라고 불렀나요?”
“예, 마마, 그러하옵니다.”
수영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고 보니, 좌장군이라는 사람은 자신을 줄곧 ‘천신’이라 불렀었다. 이곳으로 옮겨 오기 전에 임금이라는 분과 그 의원도……. 수영은 갑자기 이곳의 사람들이 자신을 ‘천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지각하기 시작했다.
“왜 날 천신이라고 부르는 거죠?”
속으로 천신의 웃음을 되뇌며 마음을 놓고 있던 좌장군은 예상치 못한 여인의 질문에 당황했다.
“그것은…….”
“당신은 처음 날 봤을 때부터 천신이라고 불렀었어요. 그러데 난 한 번도 천신이라고 불린 적이 없었어요.”
수영은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마, 그것은……. 주상 전하께서 처음 부르신 이름이옵니다.”
“주상 전하께서요?”
“그러하옵니다. 이틀 전 밤에 하늘이 열리고 아홉 마리의 신룡이 내려와 사라진 자리에 마마께서 누워 계셨사옵니다.”
수영은 갑자기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그때 내가 봤던 게 꿈이 아니었단 말이예요? 그, 용처럼 보였던 게 정말 용이었다구요?!”
“예, 마마. 하늘에서 내려주신 신룡이라 하셨사옵니다. 주상 전하께서 그리 부르셨사옵니다. 그리고 마마님을 ‘천신님’이라 부르셨사옵니다. 마마.”
수영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잊고 있었던 등의 통증이 다시 아려왔다.
“아, 머리야……. 그러니까……, 내가……, 수업을 가던 길에……, 만난 바람이…….”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아 뭔가를 중얼 거리던 여인이 갑자기 아무 말이 없었다. 좌장군은 초조했다. 그리고 걱정스러웠다.
“마마, 괜찮으시옵니까?”
“그럼, 혹시……. 하- 지금 당장 밖에 나가봐야겠어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마마, 아직 주상 전하의 하교가 없으셨사옵니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문을 열어젖히려는 여인을 좌장군이 막아섰다.
“마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곧 맹의원이 당도할 것이옵니다. 그때 가셔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좌장군은 자신의 가슴팍에서 고개를 숙이고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여인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여인의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내가 왜 밖에 나가고 싶어 한 줄 알아요? 이게 현실이라는 증거를 한 번 찾아보려구요. 지금 내가 있는 이 상황이……,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요, 처음엔 현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치만 난, 난! 분명 조선 시대 사람이 아니거든요.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일 리가 없는 거거든요! 궁 안에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그때 궁 밖에서 본 것들이 아직도 그대로인지, 아니면 내가 아는 서울의 모습인지 확인해 보려고 했어요! 그래야 꿈인 게 확실해 질 거니까.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했다구요! 그런데……, 이게 정말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면요……? 난, 집에 갈 수 없다는 거잖아요? 꿈일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아파도 참고, 배고파도 참았다구요! 어차피 꿈이면 깨버리는 그만이니까……. 집으로도 돌아갈 수 있고, 엄마가 해주신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꿈이……, 아니면요? 이런 곳에……, 다른 세상에 내가 온 거면요? 나, 난 어떻게 되는 거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