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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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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다른 세상2.
작성일 : 17-07-26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7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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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떨어질 같은 눈물을 두 눈에 가득 담은 채 수영은 좌장군의 옷깃을 잡고 따져 묻고 있었다. 좌장군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 여인의 말에 한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분은 이 모든 상황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계셨구나……. 허나, 이곳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드릴 수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마마, 얼마나 힘이 드셨사옵니까?”

 

 소상궁이 머리를 숙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수영의 눈에서 겨우 참고 있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나……, 난……. 흑, 흑…….”

 

 고개를 숙여 울고 있는 수영의 어깨가 들썩였다. 소상궁은 이 여인이 참으로 가엾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침전에서 이분을 뵈었을 때, 하늘같으신 주상 전하께서 이 여인 앞에 고개를 숙이셨다. 그때 이미, 이 여인이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라 짐작은 하였지만, 하늘에서 신룡과 함께 내려온 천신이라니. 헌데, 정작 이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시고 계시지 않은가. 게다가 등 뒤엔 상처까지 입으시고.... 소상궁은 어린 시절 궐에서의 첫날밤을 떠올렸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아침까지 울기만 했던 기억이었다. ‘이분도……. 이곳이, 참으로 낯설 것이다.’

 

 “마마, 눈물을 거두시옵소서. 모두 다 잘 될 것이옵니다.”

 

 수영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소상궁을 보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다 잘 될 것이라는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 했다.

 

 “대감, 궁궐 근처만이라도 돌아보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소상궁은 좌장군을 향해 간곡한 눈빛으로 부탁했다. 좌장군은 맹의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상 전하의 하명이 없이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궐 밖에 붉은 검을 던진 자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엇보다 다치신 몸으로 다시 궐 밖으로 나가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하오나, 마마. 궐 밖에 마마를 노리는 자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옵니다. 이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옵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수영은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묻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이들은 늘 날 천신이라 부르고 있었어. 난 지금에서야 그걸 깨달았구……. 어차피 깨어날 꿈속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들은 왜 날 천신이라고 부르는 거지? 꿈속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정말 일어난 일이라는 거야? 그 용들도, 그 하얀 나무도……, 그 나무를 쓰다듬던 사람도……?’

 

 좌장군은 난처했다.

 “맹의원께서 곧 주상 전하의 하교를 받아 오실 것이옵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시옵소서.”

 

 “좌장군은 내가 이곳에 올 때의 모습을 본 것처럼 이야기 했어요. 맞나요?”

 고개를 묻고 있던 수영이 겨우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예, 그러하옵니다. 소신이 직접 보았사옵니다. 마마.”

 

 “그날, 내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것이라면……. 그 때 내가 입고 있던 옷과 들고 있던 빽은 어떻게 되었나요?”

 

 “입고 있으셨던 옷은 내금위에서 보관하고 있사옵니다. 그때 입궁 전에 칼에 당하시고 정신이 없으실 때에 놓쳤던 것을 수하들이 거두어 두었사옵니다. 헌데 백이라 하심은……, 혹시 물건들이 들어있는 보자기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보자기? 네, 뭐 그런거요. 제 물건이 들어 있는 거 말이예요.”

 

 “그것이라면 역시 내금위에서 보관하고 있사옵니다.”

 

 “그럼, 그거라도 봐야겠어요. 가져다주세요.”

 수영은 충혈된 눈을 들어 최대한 좌장군을 쏘아 봤다. 눈을 마주친 좌장군은 금세 고개를 숙이고 금방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괜찮으시옵니까? 마마.”

 소상궁은 한 발짝 여인에게 다가갔다.

 

 “소상궁이라고 하셨죠? 울었더니, 눈이 퉁퉁 부었어요. 잠깐 밖에 나가서 눈을 식히고 싶어요. 같이 갈래요?”

 

 “마마…….”

 

 난처해하는 소상궁을 뒤로 하고 수영은 문을 열고 나섰다. 문밖에 2명의 나인이 이내 고개를 숙였다. 신발을 신고 댓돌을 내려서니 2명의 병사들이 와 수영의 앞을 막아섰다.

 

 “마마, 어디를 가시는 것이옵니까?”

 

 수영은 당황했다. 신발을 신을 때는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사람들이지…….

 

 “마마께오서, 방 안이 답답하시다 하셔서 잠시 주변을 산책하시려는 것이오.”

 

 뒤에서 소상궁이 댓돌을 내려서며 대답했다. 소상궁은 목숨을 다해 이 여인을 보필하라는 주상전하의 명을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이 여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었다.

 

 “소인, 좌장군께 이곳의 경계를 철통같이 지키라는 분부를 받았사옵니다. 밖은 위험하오니, 들어가시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마마.”

 

 “멀리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향화정의 연못 주변만을 걸을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상궁은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앞에선 내금위 병사들을 설득했다. 수영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자기편이 되어주는 소상궁이 고마웠다. 병사들을 붙잡고 있는 소상궁을 뒤로 하고 연못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되시면 따라오세요.”

 

 ===

 

 

 “오성에겐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냐?”

 

 “예. 대감, 아직이옵니다. 아마, 내일 저녁은 되어야 도착할 것이옵니다.”

 

 초란은 영의정의 초조해 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천신이 오기 전까진 조선의 실질적 권력자요, 예언서를 지키는 후손으로 늘 진중하고, 엄숙하게 행동했던 주인이었다.

 

 “헌데, 부여에 계신 큰 형님께 맡겨 두신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대감.”

 

 “오성이 오면 알게 될 것이다. 그보다 이틀 후면 보름이다. 신단수가 비록 여인으로 왔으나, 보름을 아무 일 없이 그냥 넘어가겠느냐?”

 

 “그것은 알 수 없지요. 이미, 신물로 나타난다던 예언서의 내용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셨습니까? 하오니, 보름달이 떴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 역시 확신할 수 없게 되었사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허나 그날 그 붉은 자들이 궐에 나타날 것이라 점치지 않았느냐?”

 

 “그러하옵니다. 대감.”

 

 “그렇다면…….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신점을 한 번 쳐 보거라.”

 

 “예, 대감. 그리하겠사옵니다.”

 

 ===

 

 “마마께선, 어딜 가신 것이냐?”

 향화정에 도착한 좌장군은 비어 있는 댓돌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향화정 뒤편의 숲에서 그리고 지붕에서 8명의 수하들이 뛰어 내렸다.

 

 “장군께서, 방을 나서시고 얼마 안 있어, 마마께서 소상궁과 함께 산책을 다녀오신다고 방을 나가셨습니다. 연못 주변만 걸으시고 곧 돌아오겠다고 하셔서……. 준석과 현태가 함께 뒤를 따르고, 태식, 영우가 여덟 보 떨어진 곳에서 지키고 있을 것이옵니다. 장군.”

 

 “내가 이곳을 철통같이 지키라는 하지 않았더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냐? 안에 들어 계신 분이 안 계시는 데, 빈 집만 지키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냔 말이다. 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라라.”

 

 “예, 장군.”

 

 

 ---

 

 

 “마마, 저기 저곳이 보이시옵니까?”

 소상궁은 뒤를 따르는 자들을 의식하며 수영의 정면에 있는 작은 문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어디……? 안 보이는데요?”

 

 “마마님이 서계신 곳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있사옵니다.”

 

 “아……, 저기 작은 문 말인가요?”

 소상궁이 가리킨 문은 빛 한 점 없는 칠흙 같은 동굴 속으로 통하는 통로 같아 보였다.

 

 “그러하옵니다. 저곳을 지나면 나인들의 처소로 통하는 문이 사방에 열려 있을 것이옵니다. 그 중에 동쪽 문을 지나 곧장 달리시옵소서.”

 

 “동쪽 문?”

 

 “저 작은 문을 통과한 후 오른쪽으로 열려 있는 문이옵니다. 그곳으로 달리시오소서. 그곳엔 침방이 있사온데, 숨을 만한 곳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잠시만 몸을 감추고 계시오면 제가 이들을 따돌리고 곧 마마를 찾으러 가겠사옵니다.”

 

 소상궁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다.

 

 “근데, 저 사람들을 어떡하구요? 저……, 달리기는 자신이 없는데……. 금방 잡힐 거예요.”

 

 “염려 마시옵소서. 작은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사방으로 문이 나 있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기가 어렵사옵니다. 저들은 둘이니 소인이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여 보겠사옵니다. 소인을 믿어보시옵소서.”

 

 “그래요? 그럼, 알겠어요.”

 

 수영은 한껏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긴장감이 몰려왔다. 향화정의 연못 주변은 잡목이 많아 별빛마저 가려져 어둠이 짙었다. 보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달빛에 겨우 가까이 있는 사람의 얼굴 정도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청등을 들고 옆을 비스듬히 따르는 소상궁이 없었다면 수영은 자기 앞에 있다는 작은 문도 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소상궁은 대체 뒤를 따르는 병사들을 어떻게 따돌리려고……?

 

 “아악!”

 

 짧은 비명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소상궁이 발을 접지른 양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청등을 겨우 붙잡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소상궁!”

 

 깜짝 놀란 수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상궁에게 달려가려고 하자, 소상궁이 한쪽 손을 허리춤에 엉거주춤 올리며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

 

 멀찌감치서 뒤따르던 나인들과 내금위 병사들이 달려와 소상궁을 부축했다. 소상궁은 일어설 듯 다시 넘어지면서 병사들의 시야를 몸으로 가렸다. 그리고는 치마 뒤로 손을 마구 저었다.

 

 ‘마마! 어서요!’

 

 수영은, 소상궁의 기개에 감탄하면서 서서히 뒤로 걸음을 물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작은 문이 있는 쪽으로.

 

 ===

 

 “주상 전하, 궁중에 도는 소문이 사실이옵니까?”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중전.”

 

 임금은 초저녁부터 찾아와 술을 권하는 중전을 물리지 않았다. 언제나 인자한 눈빛으로 중전을 대하던 임금이었다. 어린 나이에 궐에 들어와 중전이라는 무거운 자리에 앉은 뒤부터 그 어떤 시선에도 책잡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한 여름의 봉숭아 꽃 같던 청순하고 순수했던 여인이 이제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인데도 자신과 같은 나이로 느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늘 세자의 보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임금은 모르지 않았다. 해서 중궁전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을 웬만한 일들은 눈감아 주고 있는 중이었다.

 

 “소첩, 듣는 귀가 있사옵니다.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 오셨다는 것이 사실이옵니까?”

 

 임금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중전을 향하던 인자한 눈빛도 거두었다.

 

 “중전은 신경 쓸 일이 아니오. 그만 돌아가시오. 내, 오늘은 좀 피곤하구려.”

 

 “하오나, 마마, 궐 안에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을 수군거리고 있사옵니다. 소첩, 일의 전말을 알아야 전하를 보필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혹여, 그 일이 사실이라면…….”

 

 중전은 말끝을 흐리다가 다시 힘을 주어 말했다.

 

 “정말로 하늘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옵니까?”

 

 임금은 내리깔고 있던 눈을 들어 중전을 쏘아보았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임금의 눈빛이었다.

 

 “중전, 내 한 번만 더 말하리다. 중전이 신경 쓸 일이 아니오! 그만 돌아가시오!”

 

 부드러운 저음이었지만, 칼날 같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중전은 섬찟함을 느끼며 주안상을 물리며 침전을 나왔다.

 

 ‘전하의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하늘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란 말인가? 허면 우리 영이는 어찌 되는 것이란 말인가?! 천신의 예언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은 끝이 날 것이다!’

 

 중전은 주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세자가 열어갈 세상이 사라질지도 모른 다는 불안감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우의정 대감을 만나야 한다!’

 

 댓돌을 내려서며 뭐라 중얼 거리던 중전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교태전으로 돌아서자, 맹의원은 굽혔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다행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듯싶었다.

 

 “박상선, 주상 전하께 입시를 고하여 주시게.”

 

 “예, 의원!”

 

 ===

 

 ‘이곳이 침방인가? 불이 하나도 없으니 당최 어두워서 보이질 않네. 사람이 있긴 한 거야?’

 

 수영은 마치 아무도 없는 경복궁을 혼자 헤매는 느낌이었다. 곧 뒤를 따라 오겠다던 소상궁은 소식이 없었고, 동쪽 문으로 달려 침방이란 곳엘 도착하긴 한 거 같은데, 사람 사는 흔적이 없으니 괜히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거기 누구 없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으……. 더 이상 여기 혼자 못 있겠다. 저쪽 문으로 일단 나가자. 이곳 지리에 익숙할 거니까 소상궁이 날 찾겠지.”

 

 수영은 어깨를 털며, 침방을 벗어났다.

 

 ==

 

 “소상궁, 지금 마마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

 

 연못으로 달려온 좌장군은 숨도 고르지 않고, 천신의 행방을 물었다. 소상궁은 좌장군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옆을 부축하고 섰던 내금위 병사들은 소상궁의 작전을 눈치 채고서 이미 천신의 뒤를 쫓는 중이었다. 이들을 따돌리고 천신을 따르려던 소상궁의 작전은 수영이 작은 문을 넘어서면서부터 들켜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송구하옵니다. 좌장군. 소인의 죄는 달게 받겠사옵니다.”

 

 좌장군은, 소상궁의 입에서는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처럼 소상궁 역시 자신의 주인을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좌장군!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인가?”

 

 “맹의원님!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천신님께서 향화정을 나서신 듯합니다. 지금 수하들이 행방을 찾고 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흐음, 그리 되었군…….”

 “그런데 주상 전하의 하교는 받으셨사옵니까?”

 

 좌장군은 주군의 하교가 떨어져서 천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맘 편히 도와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네. 전하께서는…….”

 

 ===

 

 “안 보여……. 젠장, 대체 여긴 어딘 거야? 폰이 있으면 조명이라도 켜보는 건데……. 아놔.”

 

 여러 문을 통과하면서 수영은 슬슬 짜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여기가 거기 같고, 저기가 또 저기 같아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횃불을 든 병사들이 반대편 담벼락에 나타났다. 수영은 몸을 담장 밑에 웅크리고 앉아 병사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병사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여기만 맴돌 순 없어. 저 사람들을 따라가 보자.’

 

 최대한 조심스런 발놀림으로 앞선 사람들을 뒤쫓던 수영의 눈앞에 2층 석단 위에 커다란 지붕을 두 단으로 얹고 높게 세워진 웅장한 집이 나타났다. 근정전이었다.

 

 “현판에 뭐라고 쓰인 거지? 근.정.전……. 여기가 근정전?”

 

 수영은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횃불을 들고 이곳으로 들어왔던 병사들도, 지키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수영은 홀린 듯이 근정전 안으로 들어섰다.

 

 “하……. 이건 마치 경복궁 야간 개장 때 관람하는 기분이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도 없이 아주 조용하게 관람하고 있다는 거…….”

 

 이런 말을 하면서도 수영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아무도 없잖아? 지키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영은 천천히 근정전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근정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을 지나니 얕은 천이 흐리는 다리가 하나 보였다. 그곳을 통과할 때까지도 보초를 서는 사람이나, 뒤쫓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뭐야, 이거, 마치 경복궁 야간 개장에 와서 조선시대 사람들을 만나는 꿈을 꾼 거 같은 기분인데…….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어.”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면서도 수영은 앞에 있는 큰 문을 향해 달렸다.

 

 “그래, 저 문만 지나면 익숙한 서울 풍경이 펼쳐질지도 몰라.”

 

 수영은 있는 힘을 다해, 큰 문을 밀어냈다.

 

 “맹의원님. 천신님을 저리 혼자 두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근정전의 뒤를 돌아 나오며 옆에 선 맹의원을 향해 좌장군이 걱정스러운 투로 이야기 했다.

 

 “그냥 두시게. 주상 전하의 뜻이시네. 자신이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기회를 주라 하셨네.”

 

 “허나…….”

 

 걱정스런 눈빛으로 수영을 바라보는 맹의원과 좌장군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대궐의 큰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이제 가세. 마마께서 아마,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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