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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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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내가 사는 세상 밖의 다른 세상.
작성일 : 17-07-26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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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엉-

 

 소리만으로도 무게가 느껴지는 나무문이 열렸다.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궁궐의 밖은……, 캄캄했다. 보름에 가까운 달만이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을 뿐.

 

 나는 기억한다. 작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 여행했던 서울의 모습을. 그때 난 서울은 참 아이러니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지나간 왕조의 궁궐 바로 앞에 빌딩이 세워져 있었고,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 지나다녔다. 광화문을 중간에 두고, 펼쳐지는 현대 대도시의 모습과 북한산의 범상치 않은 정기를 고스란히 모아 받고 있는 옛 궁궐의 모습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밤이 되었을 때 그 모순은 더욱 심했다. 덕수궁을 산책하며 문득 고개를 들어 본 하늘엔 궁궐 담을 훨씬 넘는 높은 빌딩과 도시의 온갖 불빛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도시의 온갖 것들이 궁궐 안에서 바라보는 시선 일 때에는 어딘가 낯설었다. 불편하고, 먼 세계 같다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확성기로 들리는 선거 유세 소리마저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사는 곳이 저 담 밖의 세상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그때 나는 마치 조선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내가 사는 세상 밖의, 전혀 다른 세상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처럼.

 

 “마마, 헉헉, 괜찮으신……, 것이옵니까?”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 온 소상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난……. 여기 갇힌 것 같아요.”

 

 “네?”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던 주인은 이내 몇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멈춰 섰다.

 

 “마마, 더는 가시지 마옵소서. 아직 궐 밖은 위험하다 들었사옵니다.”

 

 말을 마친 소상궁은 자신이 목숨 바쳐 모셔야 할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여인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 없~네. 아~무 것도 없어.”

 

 허탈한 웃음이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지금 자기 앞에서 웃고 있는 이 여인은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허탈한 웃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마마, 이제 그만 침소로 돌아가시지요. 많이 지쳐 보이십니다.”

 

 소상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영은 발걸음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아니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뛰기 시작한 주인을 뒤따르려는 순간, 옆을 지나는 사람이 있었다. 좌장군이었다. 그는 몇 걸음 만에 수영의 앞을 막아섰다.

 

 “마마! 더는 가실 수 없사옵니다. 궁으로 돌아가시지요.”

 

 수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아직 갈 수 없어요. 여기……, 정말 조선 시대인건가요? 이곳 말고 다른 곳, 다른 곳을 봐야겠어요.”

 

 초조해하며 좌장군을 지나치려던 수영의 발걸음이 멈췄다. 맹의원이었다.

 

 “마마, 이곳은 조선이 맞사옵니다.”

 

 맹의원의 말에 멈춰선 수영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런데……, 맹의원님. 전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

 

 수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알고 있사옵니다. 마마.”

 

 “알고 있다구요? 어떻게? 그럼 내가 이곳에 왜 있는 건지도 아시나요? 아니, 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갈 방법도 아시나요?”

 

 수영은 이 범상치 않은 노인에게 매달리다시피 물어댔다.

 

 “마마, 이제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궐 밖에는 아직 마마를 노리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향화정으로 돌아가시지요.”

 

 허리를 숙인 맹의원의 등 뒤로 한 줄 달빛 아래 지붕에 걸린 현판이 보였다.

 

 광.화.문(光化門)이었다.

 

 ===

 

 “형님! 저기, 좌장군이 아닙니까?”

 

 “그럴 것이다. 조선에서 저리 큰 키를 가진 자가 둘은 되지 않을 테니.”

 

 “허면, 저 뒤에 서 있는 노인과 두 여인은?”

 

 “아마, 맹의원이라 불리는 도인일 것이다. 그리고 저 여인……, 상궁 차림을 하고 있지 않은, 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형님께서 알아보라고 한 그 여인일 것이다.”

 

 “신단수(神檀樹)말이오?”

 

 좌장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여인을 향해 있었다.

 

 “허면, 지금이 기회가 아니오? 가서 저 여인을 데려옵시다. 아, 그럼 궁궐까지 들어가 칼질할 필요도 없고 말이오.”

 

 “쉿, 좌장군이 이쪽을 봤다. 입 다물어라.”

 

 좌장군은 옆에 선 좌장군을 향해 조용하라는 검지를 들어보였다. 그리고는 둘 다 기를 감추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운종가를 들어서며 좌장군이 볼멘소리를 뱉었다.

 

 “아니, 좌장군이 도대체 얼마나 쎄길래, 이곳까지 올 때까지 숨도 제대로 못 쉬게 합니까? 거 참.”

 

 “그는 천길 밖에서도 기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못하는 무술이 없다고 하더라.”

 

 “결국 형님도 들은 게 전부가 아니오?”

 

 “우리 같은 시골뜨기들은 대적할 상대가 못된다고 하신 말씀 너도 듣지 않았더냐? 우리의 일은 보름까지 궁 주변을 관찰해서 전하는 것뿐이다. 행여 경거망동 할 생각 말거라.”

 

 “쳇, 어차피, 이틀 후면 저 대궐이 한바탕 뒤집어 질 텐데…….”

 

 “어허, 그 입!”

 

 “알았수다.”

 

 좌장군은 좌장군의 눈치를 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

 

 “아버님, 주무시옵니까?”

 

 “아니다. 무슨 일이냐?”

 

 “중궁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대학』을 읽고 있던 우의정 김명기는 책을 덮고 일어섰다.

 

 ‘이리 늦은 밤에 사람을 보내셨다면 필시 세자의 일일 것이다.’

 

 문을 열고 나서자 대청 앞에 중궁전의 정상궁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늦은 시간에 송구하옵니다. 대감. 지금 당장 입궐하라는 중전 마마의 명이시옵니다.”

 

 “알겠네, 내 환복하는 동안 잠시 기다리시게.”

 

 우의정의 뒤를 따라 아들 김시영이 들어섰다. 잠이 드신 어머니 대신, 아버지의 관복을 내드리며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역시 그 하늘의 여인과 관련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허나, 세자 저하의 일일 게다.”

 

 “아버님은 궐에서 일어났다던 그 일을 어찌 생각하시옵니까?”

 오른쪽 어깨의 단추를 채우며 아들이 물었다.

 

 “글세……, 서문기가 조참에서 한 말이 참으로 충격적이었다만, 정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왔겠느냐?”

 

 “소자는 그리 생각지 않습니다. 아버님.”

 

 “그리 생각지 않다니? 무슨 말이냐?”

 

 “제가 그 전설에 대해 알아 본 것이 있사온데…….”

 

 “무엇이냐 그것이?”

 

 “아주 먼 옛날에 사라진 신단수가 다시 이 땅에 나타나면 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얘기이옵니다.”

 

 “세상이 바뀐다?”

 김명기의 눈빛이 반짝였다. 중전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더 아는 것이 있거든 이 아비에게 말해 보아라.”

 

 

 ---

 

 

 “대감마님, 오성이가 왔습니다요.”

 

 초란과 서문기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빨라도 보름날 아침에야 도착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놀란 초란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나리, 어찌 이리 일찍 당도하셨…….”

 

 초란이 말을 채 맺기 전에 뒤에서 서문기가 달려 나왔다.

 

 “형님, 형님이 아니십니까?”

 

 “그래, 잘들 있었느냐? 들어가자. 어서.”

 

 초란이 옆으로 비켜서고, 형님이라 불리는 이를 뒤따라 오성이 들어섰다. 그의 팔엔 비단 보자기가 들려있었다. 정중히 절을 올린 서문기는 몇 년 새 흰머리가 더 해지신 큰형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님. 이것이 어찌 된 일이옵니까?”

 

 “이곳으로 오는 길에 오성을 만났다. 오성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신단수(神檀樹)를 보았느냐?”

 

 “아, 아니옵니다.”

 

 서문기는 멀리 계신 큰형님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상황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부여에서 아무리 빨라도 사나흘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리고 앉자마자 신단수의 이야기를 물어오는 모습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오성은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어리둥절해 하는 서문기를 지나 오성이 자주빛 보자기로 싸인 뭔가를 탁상 앞에 내려놓았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형님.”

 

 “그것이다. 선조들께서 목숨과 바꿔 지키셨던 것. 신단수(神檀樹)의 신물(神物)이다.”

 

 서문기는 놀라며 보자기를 내려다보았다.

 

 “이……, 이것을 어찌, 제가 오성을 내려 보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헌데 어찌 형님께서 이것을 가지고 한양에…….”

 

 “나흘 전에 아버님께서 꿈에 나타나셨다. 돌아가신 후로 한 번도 꿈 중에 나오신 적이 없으셨다. 헌데, 그날 새벽 생시 같은 꿈속에서 신물을 들고 한양으로 가 너를 도우라시더구나. 해서 지체 없이 출발한 것이다.”

 

 서문기는 그제야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로 앉았다. 삼형제 중에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효심이 남달랐던 큰형님이셨다. 일각 사이에 꾼 꿈이라도 허투루 생각지 않을 것이었다.

 

 “허면, 이것이……, 그 신물!”

 

 서문기의 두 손이 보자기를 향했다. 그때였다.

 

 “지금은 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째서입니까? 형님.”

 

 “오는 길에 산속에서 신물이 깨어났다.”

 

 “예?”

 

 “깨어났다. 오성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단수가 이곳에 나타나던 때이더구나. 지금 그것을 열면 뿜어져 나오는 빛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이 멀 게야. 노정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이상하게 여긴 노복 하나가 겁 없이 열어보다가 눈을 잃었다.”

 

 서문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물건이었다. 어릴 적 집안의 제사나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문중의 어르신들이 모여 그 신물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하늘에 기도를 드렸었다. 그때 본 신물은 그냥 나무 조각이었다. 둥그스름하고 검은 빛을 띤……. 저런 것이 하늘의 물건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은 신주단지를 모시는 것보다 더 귀히 그 나무 조각을 다루었었다. 헌데, 그 신물이 깨어났다. 그리고 전에 없던 빛을 발한다니…….

 

 ‘이것도 신단수가 나타났기 때문인 것인가?’

 

 서문기는 잠시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지켜왔던 우물이 하룻밤에 말라버렸다. 만약 이 신물도 신단수의 환생 때문에 다시 깨어난 것이라면?

 

 “문기야, 이제 이것을 어찌하려고 하느냐? 신단수가 신물이 아니라, 여인으로 왔다고 들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냐?”

 

 “저도 아직은 어찌 여인으로 오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아직 예언이 빗나간 것이 아니라면, 신단수는 이 신물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형님. 이틀 후면 보름이 아닙니까? 그날 신단수는 반드시 이 신물을 찾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초란은 두 서씨 형제를 바라보며, 여인의 신점 얘기를 어떻게 올려야 할지 생각했다. 초란의 고민하던 시선이 닿아 멈춘 곳에 엎드려 있는 오성의 벌겋게 부어오른 발뒤꿈치가 보였다.

 

 

 ==

 

 “마마, 기침하셨사옵니까?”

 

 슬며시 방문을 열어 본 소상궁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젯밤의 모습 그대로였다. 맹의원과 좌장군이 방을 나선 후 여인은 창문이 있는 벽에 기대어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묻었다.

 

 ‘세상에, 지금까지 이러고 미동도 않으셨단 말이야?’

 

 소상궁은 여인의 근처로 다가갔다.

 

 “마마, 어찌, 이리 주무셨단 말씀이십니까? 어서, 자리로…….”

 

 그때였다.

 

 “어젯밤에 소상궁도 들었죠?”

 

 “네?”

 

 소상궁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랐다.

 

 수영은 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눈 밑이 검었다. 한숨도 주무시지 못한 얼굴이었다.

 

 "내가 나무라는 얘기 말이에요. 신단수의 환생이라고 한 말……. 믿어져요?“

 

 소상궁 역시 어젯밤 맹의원이 한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분이 특별한 분이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먼 전설 속에 나오는 신단수라는 나무였다니……. 그때 그 말을 듣고 있던 여인은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좌장군과 맹의원이 방을 나섰을 때,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웃긴 말인데……. 내가 나무로 태어났단 얘긴 전에도 들은 적이 있어요. 유명한 점집에서요. 결혼 날짜 잡으러 갔었는데, 그때 그 점쟁이가 뜸금 없이 그랬어요. 내가 나무라고, 그런데 주변에 칼이 많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하, 그 점쟁이는 내가 칼에 맞을 걸 알았던 걸까요?……. 그땐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하, 그 점집 진짜 용하네.”

 

 “마마…….”

 소상궁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헌데, 정말 그 붉은 검을 던진 자들이 날 다시 죽이려고 할까요?”

 

 수영은 등 쪽에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통증을 느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맹의원의 말처럼 땅의 것이 아닌 검이라 그런지 통증이 깊게 느껴졌다.

 

 “그들이 날 죽이려고 한다면 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의원, 맹의원이라는 분을 다시 불러주세요. 물어야 할 게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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