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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천수(天樹)의 환생.
작가 : 동그리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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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신물의 행방.
작성일 : 17-07-26     조회 : 308     추천 : 0     분량 : 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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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입니까?”

 

 중전은 우의정 김명기를 향해 재차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마마,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모두 사실이옵니다. 하옵고, 주상 전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신단수의 환생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계신 듯하옵니다.”

 

 중전의 몸이 떨렸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 주상에 대한 배신감이 일고 있었다.

 

 “세상을 바꾸려 하신다고요? 무엇을 위해서 말입니까?! 지금 주상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헌데 무엇 때문에 세상을 바꾼답니까? 왜요?!”

 

 중전의 예상치 못한 분노 앞에 김명기는 감히 눈을 마주 하지 못했다. 머리를 숙인 그를 향해 중전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인을 죽여야겠습니다. 우상!”

 

 교태전을 나서는 김명기는 불안했다. 전날 밤 아들 시영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 또한 적잖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단군의 이야기란 그저 민간에 떠도는 잡설에 불과하다고만 여겼었다. 기자가 이 땅에 오면서부터 중국의 예와 법도가 뿌리내려졌으니 기자의 조선이 아닌, 단군의 조선이란 것은 전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그 잡설에 불과한 이야기를 이 나라 사대부의 영수이신 주상 전하께서 믿고 계시고, 또 이야기 속의 하늘의 나무라는 것을 찾고 계셨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 냉철한 서문기조차 신단수가 환생한 것에 대해 떠들어댔으니…….

 

 “혹시, 정말로……. 그 이야기가 사실인가? 진정 신단수란 존재가 이 세상을 뒤바꿀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을 바라보는 김명기의 눈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그런 김명기를 멀리서 지켜보던 홍안이 걸음을 돌려 강녕전으로 향했다.

 

 “좌장군. 방금, 교태전에서 우상 대감이 나왔습니다.”

 

 “흠, 아침부터 중전마마께 급히 전할 얘기가 있었나보군. 그게 뭘까?”

 좌장군의 왼쪽 눈썹이 올라갔다. 뭔가를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었다.

 

 “알아보겠습니다. 장군.”

 

 홍안이 사라진 뒤, 좌장군은 강녕전 앞을 서성였다. 어젯밤 맹의원이 향화정에서 돌아와 입시한 뒤로 두 분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맹의원. 허면, 이제 그 신물을 찾아야 하지 않겠소?”

 

 “그래야지요. 하늘의 나무이나, 신물이 없이는 그냥 평범한 나무와 같사옵니다. 우의정 천황께서 이 땅에 신단수를 알아보시고 그 나무를 하늘의 나무로 만드신 징표이시니까요. 신단수는 그 신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지요. 옛날, 신단수가 베어졌을 때, 힘을 잃은 신물들이 나무 조각이 되어 흩어져버렸지요. 그것을 찾아야만 신단수는 온전히 하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야만 나머지 천신(天神)들도 찾을 수 있지요.”

 

 “우의정께서 이 땅에 데리고 오신 세 분의 하늘 신(神)을 말씀하시는 것이구료. 이제야……, 그분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소.”

 

 밤을 새며 이야기를 이어 온 두 사람의 얼굴에 피곤기는 없었다. 오히려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혹시 신물의 행방을 아시오?”

 

 “하나는 영의정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서문기가…….”

 

 “그러하옵니다. 그들의 선조 시대인 백제 시대에 그 참언서와 함께 손에 넣은 것이지요. 그들이 끊임없이 고구려를 공격했던 이유이기도 했었습니다. 고구려로부터 그것들을 손에 넣은 뒤엔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했던 자들이지요.”

 

 주상은 서문기의 천신에 대한 집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또한 선조의 유지를 목숨같이 받들고 있는 것이었다. 허나, 그 자에게 천신을 내어 줄 수는 없었다. 주상은 다른 신물의 행방을 물었다.

 

 “두 번째 신물은 옛 조선의 도읍인 왕검성(王儉成)에 있사옵니다.”

 

 “지금 그곳은 요동이 아니오?”

 

 “그러하옵니다. 그곳에서 대를 이어 신물을 지키는 자들이 있사옵니다. 물론 그들 또한 신단수의 환생을 기다려 온 자들이옵니다.”

 

 “흠……. 그들에게서 신물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겠구려. 마지막 하나는 어디에 있소?”

 

 “마지막 하나는…….”

 맹의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앞에 앉은 주상의 재촉하는 눈빛이 겨우 말을 잇게 했다.

 

 “바다 건너……, 왜에 있사옵니다. 전하.”

 

 “왜에?”

 

 “그러하옵니다. 백제가 멸망할 때 왕족과 여러 귀족들이 왜로 도주하면서 함께 건너간 듯 보이옵니다.”

 

 “허……. 그리되었구료. 참으로 내가 무심하였소. 신단수를 찾는 일에만 몰두해서…….”

 

 “아니옵니다. 전하, 신단수께서 다시 오시지 않으셨다면 신물이든 뭐든 그것은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옵니까?”

 

 “그리 말해 주니 고맙소. 이제 신물을 찾아 천신님께 돌려드려야지요. 나를 아니,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도와주시오.”

 

 “마땅히 그리할 것입니다. 주상 전하. 그것이 이 땅을 아직 버리지 않으신 우의정 천황의 뜻이기도 하니까요.”

 

 드디어 강녕전의 문이 열리고 맹의원이 방을 나섰다. 좌장군은 댓돌을 내려서는 맹의원을 기다려 향화정에서 온 보고의 내용을 전했다.

 

 “천신님께서는 아침까지 주무시지 못하신 듯 합니다. 그리고 의원을 찾으십니다.”

 

 “그러실 테지. 아직 기억을 되찾지 못하셨으니……. 하루아침에 자신이 하늘의 나무라는 사실을 받아들기 힘드실 게야. 함께 가세. 오늘부터 향화정을 지키시라는 주장 전하의 어명이 계셨네.”

 

 “예, 의원.”

 

 ===

 

 소상궁은 자신의 옷으로 바꿔 입는 수영을 말릴 수가 없었다.

 

 “맹의원이 기다려도 안 오니까. 내가 찾아가보는 수밖에 없죠. 내가 또 기다리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이게 저고리가……, 좀 작은 것 같은데…….”

 

 수영은 소상궁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지라 저고리는 쪼이고 치마도 덩달아 덜렁 들렸다.

 

 “에이, 몰라. 소상궁 같이 안가요?”

 

 “마마, 소식을 전하러 간 아이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사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옵소서.”

 

 소상궁은 밖의 나인 중 한 아이의 옷으로 환복하면서 불안한 표정으로 주인을 말렸다.

 

 “잘 따라와요. 어젯밤에 보니깐 여기 지붕 위에 지키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내가 소상궁 옷을 입었으니까 잘만하면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어휴……. 어쩌시려구요. 마마, 마마!”

 

 앞서 나간 수영의 뒤를 쫓아 소상궁이 달려 나갔다. 향화정을 나오는 동안 다행히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가 어젯밤 내금위 병사들을 피해 뛰어 들어갔던 문이로구나. 이 문을 지나면 동서남북으로 갈라지는 문이지? 낮에 보니깐 밤엔 안보였던 길들이 보이네.’

 

 수영은 자신이 상궁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가며 궁을 횡단하고 있었다.

 

 “저기, 저 상궁의 걸음이 좀 이상하지 않느냐? 그러고 보니, 옷차림도 좀…….”

 

 아침 산책을 나서던 소영 공주는 그 여인이 천신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저 여인을 데려오너라!”

 

 ---

 

 “마마, 의원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옵니까? 헌데, 이리 무작정 걸으시면…….”

 

 앞서 가던 수영이 걸음을 늦추었다.

 

 '맹의원님이 말한 것들이 모두 사실일까? 내가 정말 신단수일까? 믿기 힘든데 여기가 조선 시대라는 게 점점 실감이 나니까 모두 맞는 말 같아.......'

 

 수영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 채로 물었다.

 

 “소상궁은 이름이 뭐예요?”

 

 “예? 소인의 이름 말씀이옵니까?”

 

 소상궁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물어오는 상전의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 소인의 이름……, 소해이옵니다. 마마.”

 

 “소- 해-. 정말 예쁜 이름이네요. 아무래도 나……, 여기 당분간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소상궁은 지금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름 정도는 알아야죠. 하하.”

 

 수영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을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었다. 밤이 아닌 낮의 궁궐은 분주했다. 상궁이든, 나인이든, 병졸이든, 관복을 입은 사람이든 아니든…….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위해 이리저리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상궁 아닌가?”

 

 “헉! 조, 조상궁!”

 

 천천히 걷는 주인의 뒤를 어찌할 바를 모르며 뒤따르던 소상궁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공주전에 있는 조상궁이었다. 나인 복장을 하고 있는 자신을 이게 어찌 된 일이냐는 듯 바라보고 섰는 조상궁 앞에서 소상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그게 저…….”

 

 “소상궁하고 아는 사이신가봐요? 소상궁, 이분은 누구세요?”

 

 수영은 처음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 호기심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수영을 조상궁은 아래위로 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몸에 맞지 않는 옷과 어딘지 이상한 머리 모양새며, 누가 봐도 소상궁의 옷을 입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헌데, 소상궁의 나인 복장은 대체…….

 

 “음음……, 공주 마마께서 부르시네. 이리 따라 오시게.”

 

 소상궁은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어젯밤 두 번 다시 향화정에서 나서시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마마님을 지키라는 좌장군의 매서운 눈빛이 떠올랐다.

 

 “아, 아니 되오. 조상궁.”

 

 “공주 마마라구요? 어디로 가면 되요? 같이 가요.”

 

 소상궁이 만류할 새도 없이 수영은 조상궁의 뒤를 따라 팔을 휘저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

 

 “마마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소상궁은?”

 

 “그, 그게…….”

 

 좌장군의 눈에 익숙한 하얀 소복이 한 나인의 몸에 입혀져 있었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상황이 짐작 되었다.

 

 “하- 내 그리 일렀거늘.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 나가시도록 두신 것이냐?”

 

 나인들과 수하들은 좌장군의 호통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소, 송구하옵니다. 장군. 상궁의 복장을 하시고 나서기에 소상궁인 줄로 만 알고……. 소인의 불찰이옵니다.”

 

 “영우 거기 있느냐?”

 

 좌장군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지붕 위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한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예, 장군.”

 

 “뒤따른 자들이 있느냐?”

 

 “예, 상궁의 복좌장군이시라 마음을 놓고 있다가 느낌이 이상하여 준석과 현태가 뒤를 따랐습니다. 곧 기별이 올 것이옵니다.”

 

 그때였다.

 

 “좌장군. 지금 천신께서 공주 마마의 처소에 드셨습니다.”

 

 “뭐라? 이거 큰일이군.”

 

 옆에서 보고만 있던 맹의원이 발을 굴렀다. 어젯밤 임금과의 독대 중에 중전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중궁전에 이야기가 들어가기 전에 어서 천신님을 모셔 와야 하네. 어서!”

 

 ==

 

 그때 수영은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예쁘장한 공주마마가 차려 준 다과를 먹으며 공주의 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 혹시, 이곳에 오신 천신님이 아니십니까?”

 

 아무도 자신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 궁궐에서 자신이 정말 궁금해 하고 있는 당사자를 만난 기쁨에 소영은 둘러 이야기하지 않았다.

 

 “네, 뭐,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내가 천신이라고…….”

 

 수영은 녹색 당의에 손을 집어넣고 앉아 큰 눈으로 자신을 이리 저리 훑어보는 공주가 꽤 귀엽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만났다면 아마도 학원에서 안경을 끼고 앉아 칠판을 바라보는 고등 학생이었겠지? 정말 다르다. 이 조선 시대라는 시간 속의 삶이…….’

 

 수영은 낯설지만, 조금씩 조선 시대라는 시공간을 이해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은 잘 몰라요. 나도, 내가 여기 왜 왔는지, 그리고 왜 날 천신이니, 신단수니 그렇게 부르는지도…….”

 

 말을 끝낸 수영은 어깨를 올리며 멋쩍게 웃었다.

 

 “신룡과 함께 천신께서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했었답니다. 어떻게 생기신 분이신지, 또 이 궐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헌데, 이리 뵈니 참으로 좋으신 분 같으셔요.”

 

 말을 맺으며 소영 공주 역시 웃어보였다. 호기심에 뜬 큰 눈이 금세 초승달처럼 얇게 그려졌다.

 

 “함께 조반을 드시겠어요? 혼자 먹기 적적해서…….”

 

 조용히 말끝을 흐리는 소영 공주의 말에 수영이 대답했다.

 

 “밖에 나가서 사먹을래요?”

 

 “네?”

 

 “하하. 뭐, 그냥 내가 천신으로 왔다는 이 세상을……, 다시 보고 싶어서요. 어젯밤엔 뭐가 뭔지 몰랐거든요. 사실.”

 

 “마마,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밖은 위험하다고 좌장군께서…….”

 

 “그렇긴 한데,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몇 명뿐이잖아요? 상궁 복장을 하고 공주 마마랑 같이 나가면 누가 알겠어요? 내 생각은 그런데……. 어때요? 공주 마마?”

 

 소영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상궁 복장으로 다니실 필요도 없지요. 조상궁, 출궁 준비를 하고 이분께 고운 옷을 한 벌 내어 드리게.”

 

 ===

 

 “중전 마마, 정상궁이옵니다.”

 

 “들어오너라.”

 

 중전은 세자 영과 조반을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정상궁은 세자를 의식한 듯 두어 발 더 중전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전했다.

 

 “지금 공주 마마께서……, 천신이라 사료되는 여인과 함께 출궁을 하셨다 하옵니다.”

 

 “뭐라?!”

 

 금빛 숟가락을 든 손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상위로 내렸다.

 

 “공주가……, 출궁을?”

 

 “그러하옵니다. 마마.”

 

 “그래?……. 서찰을 하나 써줄 테니, 지금 당장 우상께 가 서찰을 전하고 바로 실행하라 이르거라. 당장!”

 

 “예, 마마.”

 

 중전의 미간이 좁혀졌다.

 

 ‘좌장군이 지키고 있는 향화정에 들어있다면 그 여인에게 손을 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헌데, 출궁을 했다? 설사 좌장군이 뒤를 따르더라도,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을 막기는 힘이 들것이야. 이것은 하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에 어울리지 않게 중전은 주먹을 말아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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