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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보다 여우
작가 : 수수봉봉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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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빛나는 남자와의 첫만남
작성일 : 17-07-31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4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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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성웅성-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제 때 나타나야할 남주가 등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NG라고 감독이 말하지 않은 상태라 계속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는 상태.

 찰나였지만 영화가 아니라 생방송이었으면 방송사고가 되고도 남을 정도의 시간동안 정적은 계속되었다.

 모두가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등장했던 양희가 제일 고역이었다. 가장 어색한 상태로 저쪽을 보는 척을 계속해야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멈추면 NG다.

 양희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보려고 돌아섰다.

 

 

 “꺄아-악!”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퍼지는 비명을 내질러 버렸다.

 소리까지 내면 완전한 NG란 생각에 참으려 했지만 갑작스런 상황으로 본능을 이길 수 없었다.

 아까 벗겨졌던 짚신이 그만 끈이 다시 풀리면서 반대쪽 발에 밟혔다.

 하필 급히 움직이다 돌아선 방향이 돌계단일 줄이야…

 제 발에 걸려버린 상황이라 양희의 몸은 온전히 방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얼굴부터.

 누가 봐도 크게 다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칠 것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 이 뒤에 돌아올 비난 섞인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 걱정되는 게 현실이었다.

 인기 있는 스타 주연이 NG를 내면 웃어주지만 양희 자신처럼 보조적인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날은 인생에서 들어본 적 없는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다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보면 된다.

 

 양희는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위험한 상황에서 한참을 생각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아직도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자신의 키가 거인처럼 큰 것도 아닌데 고작 바닥으로 넘어지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퍽-

 

 그녀가 의아함을 느낌과 동시에 요란스레 큰 소리와 함께 무언가 단단한 곳에 부딪혔다.

 기어코 바닥과 키스하고 말았구나! 예쁘진 않지만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던 얼굴이었는데…….

 슬픈 마음으로 슬며시 눈을 뜨는데 양희는 당황하고 말았다.

 아프지가 않다?

 

 

 “얼레?”

 “컷!컷!!!!”

 

 

 신경질적인 컷 소리와 함께 기울었던 그녀의 몸이 타인의 힘에 의해 일으켜졌다.

 강하고 단단한 몸,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손이 등과 허리를 스쳐 지났다. 그 순간 스모키한 짙은 향이 코를 강하게 자극하며 퍼져나갔다.

 양희는 자신의 어깨와 쇄골을 둘러 메운 단단한 팔뚝을 보았다.

 

 아무래도 상황을 보니 엄청난 속도로 꼬꾸라지던 양희의 온 몸을 오직 이 팔 하나가 바치고 잡아준 것 같았다.

 그녀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팔의 주인을 살폈다. 햇빛이 역으로 비추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실루엣이 건장한 남자로 추정된다. 그리고 빳빳하게 잘 다려진 도포자락이 오만하게 태를 자랑하고 있고, 묘한 기품까지도 느껴졌다. 특히 푸른 비단 도포로 가려져있지만 속에는 탄탄히 자리 잡은 근육들과 핏줄들이 가득할 것이었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양희는 어느새 주변의 웅성거림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남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는 없는 강인한 이 팔의 주인에 대해 호기심이 솟구쳤다. 그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알고 싶었다.

 

 

 “아얏!”

 

 

 정체를 확인하려 돌아서는데 오른쪽 중지 발가락 끝이 따끔했다.

 이 느낌은……

 발바닥 끝에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느낌이 익숙했다.

 양희는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지만 기어이 그것을 살폈다.

 역시나 발톱이 크게 부러졌다. 분명 곧 피도 나겠지…….

 그 섬칫- 한 느낌에 기분이 나빠지고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쩌면 바닥에 머리를 박아 죽을 수도 있었다. 굳이 비약하자면 말이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줬다.

 자신의 몸이 가벼운 것도 아니건만 가뿐하게 한 손으로 바쳐서 들어올렸다. 그것도 흔들림 없이.

 

 누군가 그녀가 만든 정적을 깨고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걱정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촬영장을 가득 울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를 향한 소리가 아니다.

 자신을 구해주고 잡아준 그 단단한 손의 주인을 보려고 양희가 고개를 드는 찰나 그녀는 어디선가 달려온 사람들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젠장. 결국엔 이렇게 넘어지는 구나.’

 

 

 속으로 짜증을 뱉어보지만 결코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할 말이다.

 지금 자신은 대형 사고를 친 셈이었으므로 조용히 있어야만 했다. 아무도 자신을 걱정해주거나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들에게 밀려나면서 바닥에 발톱이 끌려 아까보다 더 크게 떨어져 나간 듯 새빨간 피가 버선 위로 젖어들고 있었다.

 아프다....

 

 

 “야!! 빨리 지욱씨 안 다쳤나 확인해봐!! 옷이랑 헤어랑도 체크하고!!!!”

 

 

 정작 다칠 뻔 했던 사람은 양희였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을 지켜보는데 정말 자신은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아무도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 있으나 없는 공기 같은 취급이었다. 늘 예상했고 익숙했지만 막상 정말 실제 상황에서조차 이러니까 좀 상처였다.

 

 “씨x! 고양이!!너 미쳤어? 그것도 똑바로 못해? 거기서 왜 움직이고 난리야!”

 

 

 하… 올게 왔다.

 그녀는 ‘나도 집에선 귀한 자식인데 왜 욕을 하고 난리냐-’ 고 하고 싶었지만 정황 상 그러지도 못하고 참고 잘못했다고 말했다. 죄송하다고- 일어서자마자 아픈 발을 애써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참으며 엉거주춤 서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어디서 이런 뭣도 안 되는걸… 누가 여기 데려 온 거야!?”

 

 

 반장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험상궂게 인상을 쓰고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서 사방에 튀는 침 때문에 양희는 얼굴을 적시는 찝찝함을 묵묵히 닦아내면서 속삭였다.

 

 

 “너님이요…“

 

 

 들릴락 말락 소심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조금 속이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그가 구석에 서있던 그녀를 간단한 거밖에 없다며 굳이 안쪽까지 데려와서 카메라 가까이에 세워뒀다.

 밖에 있었으면 그냥 여러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텐데, 사실 따지자면 저 인간 때문에 내가 여기서 이렇게 사고(?)를 치게 된 거라고 생각하며 양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자신이 나무라는 말에 대한 긍정인 줄 안 남자는 더욱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어떻게든 자기 잘못이 아니란 걸 감독에게 어필하고 싶은 거겠지.

 반장이 뭉툭한 손으로 자기 모자를 벗어 머리를 벅벅 긁어대는 걸 보는데 그녀도 슬슬 짜증이 밀려옴을 느꼈다.

 

 

 ‘진짜 서럽네, 여기.’

 

 

 그래도 다칠 뻔 했는데 어느 한 사람 하나 내 걱정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우울한 일인 줄 여태까지는 몰랐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부러진 발톱도 아프고 괜히 서러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서 울면 그녀 스스로만 더 욕먹는 걸 알기에 애써 입술을 깨물면서까지 눈물을 삼켰다.

 

 찌릿-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몸 전체를 휘감았다.

 좀 전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하아…”

 순간적인 호흡 곤란으로 거친 숨이 입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깊고 까만 눈동자가 있었다. 깨끗한 흰자위 가운데 자리 잡은 새까만 동공이 온통 그녀를 향해 달려 나올 것만 같았다. 먼 곳이었지만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잠시 그 눈에 취해 숨쉬기에만 바쁘던 그녀도 시간이 지나자 곧 다시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가 있게 되었다.

 

 

 “저 사람…”

 

 

 아무래도 아까 나를 구해줬던 사람이 확실하다.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중간 중간 보이는 모습으로는 말이다. 정갈한 도포의 소매 자락만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의상 팀이 몰려와 그걸 정리하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제 옆에서 계속 욕을 하고 있는 반장 따위는 더 이상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 눈이 신경 쓰였다.

 조금이라도 제대로 보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내밀어보지만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 이젠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아…고맙다는 말도 못했는데…”

 “뭐?…. 야!"

 

 

 아뿔싸.

 그녀는 그만 입 밖으로 내뱉어버린 말 한마디 때문에 또 쓴 한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주제를 알아야지. 너 따위가 그런 말 하면 누가 좋대?”

 

 

 계속해서 막말을 퍼부어대는 반장의 언행 때문에 좀 전까지의 긴장되던 느낌이 식어가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근데 이 인간! 보자보자 하니까 점점 말이 심해지는데.’

 

 

 원래도 이쪽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예쁘고 어린 애들한테 집적대고 차별 심하고 존중이라고는 없는 인간쓰레기로. 이 인간이 여기 있는 줄 알았으면 오늘 절대 여기 안 왔을 텐데…

 

 

 “어이ㅡ, 듣고 있냐고? 어?”

 “네…”

 “하! 진짜 답 없네. 이거.”

 

 

 사람을 이거저거 하면서 물건 취급하는 그의 태도에 주변 사람들도 절로 눈살이 찌푸렸지만 어느 누구도 태클을 걸거나 말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변인으로써 그들의 일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심란하지만 그녀 또한 다른 곳에서는 주변인일 뿐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내가 좀만 예뻤다면… 이 쓰레기도 나를 다르게 대했겠지? 씁쓸하지만 그게 사실이니까…

 

 

 “이 반장!!”

 “아. 네-네!! 갑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타박하던 반장은 어디선가 들려온 감독의 목소리에 비굴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급히 달려 나갔다.

 좀 전까지 그녀를 향하던 깔보는 시선 따위는 금세 잊어버린 듯 헐레벌떡 뛰어가는 모습이 마치 주인 호통에 달려가는 똥개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저 모습을 찍어서 보여주고 싶다 정말. 감독 말에는 꼼짝도 못하면서……’

 

 

 마치 약한 자에게 강한 불량배 같은 모습이 아닌가. 열 받는 김에 상상 속에서 한창 놈에게 온갖 욕들을 퍼 붇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기…”

 

 

 낮게 울리는 음성이 기분 좋게 귓가에서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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