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고양이보다 여우
작가 : 수수봉봉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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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빛나는 남자와 첫만남
작성일 : 17-07-31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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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낮게 울리는 음성이 기분 좋게 귓가에서 번져갔다.

 누군가와는 다르게 맑고 강한 음색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고양희, 그녀에게는 방해꾼일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망상을 방해한 상대를 향해 못마땅하게 돌아보았다.

 그다. 푸른색 도포를 입은 남자. 그였다.

 

 

 “저…저요?”

 “…….”

 

 

 양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다가 경악했다.

 책이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잘난 사람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걸 직접 목격하다니! 부끄러움에 ‘실제로 저런 사람이 있구나.’ 하는 감탄을 겨우 속으로 삼켰지만 양희의 입은 다물어지질 않았다.

 그 앞에서 어색하게 서 있던 남자는 뭔가 생각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입을 다물지 못하는 양희에게 어느새 깨끗해진 도포자락을 왼손으로 걷으며 무언가를 꺼내서 건네었다. 그가 내민 손 위엔 작고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밴드가 놓여져 있었다. 양희가 자기보고 쓰라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 거리며 검지로 자신을 가르키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이 귀여움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니 이 언밸런스한 귀여움을 보고 있는 건 온전히 자신뿐인 것 같았다.

 

 이 남자는 현재 가장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남자였다. 가장 아름다운 남자 배우 1위였고 미친 시크 남 1위,

 차갑지만 따뜻한 남자 1위!에 빛나는 초특급 스타였다. 그런 남자가 지금 자신에게 이런 귀여운…어린이용 밴드를 내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가…감사합니다!…근데 덕분에 다친 곳은 없어요.”

 

 

 괜찮다는 의사를 둘러서 표현했다.

 

 그를 보자 좀 전에 그 상황이 다시 생각났다.

 단단한 팔이 그녀를 받쳐줬던 수 분 전의 상황이 생생하게 리 플레이 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심장이 약간 뜨거워지는 것 같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짙은 검은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낮게 한번 눈을 감았다 뜨더니 고개를 까닥거리며 그녀의 오른쪽 발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버선 위 붉은 핏자국이 있었다. 본인이 아니면 남들은 잘 보이지도 않을 부분이었다. 거기다가 좀 전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그가 어떻게 이걸 봤을까 의아했지만, 지금 그는 유일하게 이곳에서 그녀를 신경써준 사람이었다. 양희는 그런 사람의 호의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아무생각 없이 감사히 받기로 했다.

 

 

 “아, 아까 오다가 걸려서…감사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양희는 90도 인사를 해버렸다.

 좀 전까지 반장한테 하던 게 아직 몸에 남아있던 탓이었다. 그녀의 인사는 흔히 어둠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매우 각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인사를 받는 상대는 기분이 나쁠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공손했다.

 그런데 남자는 인사를 하는 양희를 보고 그는 오히려 인상을 찌푸렸다.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실수한 것이 있는 건지 싶어 고민해봤지만 아까 넘어진 것 말고는 그가 저렇게 무섭게 자신을 노려볼 정도의 잘못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 자신 때문에 촬영이 지연된 거 때문인가 하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그가 다시 한 번 말없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녀는 남다른 감으로 그것이 밴드를 지금 붙이라는 말인 것 같다고 확신했다.

 

 

 ‘아...이걸 붙이려면 버선도 벗어야하고…’

 

 

 여기는 촬영장 중간이었다. 그러고 있다가 촬영 시작하겠다고 하면 난감 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아니, 나중에 붙일게요~ 혹시 촬영이 시작되면…으앗!”

 

 

 거절의 의사를 정중히 밝히려던 그녀는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소스라쳤다.

 

 

 “가만히 있어요…”

 “…하지만……”

 

 

 지욱은 양희를 다짜고짜 근처 바위로 들어앉혔다.

 그의 말에는 무언가 힘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 사람 왜 이래?’

 

 

 조금 강압적인 남자의 태도에 부담스러웠지만 양희는 강하게 거부하지 못 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천 끈을 풀고 있는 그를 보는데 낮게 내리깐 두 눈에 길고 까만 속눈썹이 가지런히 뻗어 있었다.

 분명 까만색인데 왠지 투명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외간 남자에게 속살을 보인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지만 거부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어지럽게 묶여있던 끈이 모두 풀어지고 헐거운 짚신이 발에서 떨어져나갔다. 무거운 걸 벗은 것처럼 게운해져서 부담스러움은 사라지고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곧이어 지욱이 피묻은 버선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 지켜보던 양희는 얼굴이 씨뻘겋게 달아 올랐다. 버선을 벗김과 동시에 그가 코를 급히 움켜지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참지 못한 구역질을 내뱉었다.

 

 

 “우읍-!”

 “아…설마 냄새나요? 그럴 리가 없는데… 저 발에 땀이 안 나거든요~ 이 버선도 최대한 냄새 맡고 깨끗한 걸로 골라 신은 거고….”

 

 

 어딘가 찔리는 마음에 구차한 변명들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지금 민망함에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진짜로 냄새가 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못 참고 반응하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토록 민망하고 부끄러운 상황이라니말이다.

 킁-킁- 양희가 슬쩍 냄새를 맡아보지만 별다른 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 것 같은데.

 자기 발이라서 그런가 싶어 발을 당겨보아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 조금 전까지 긴장하고 있던 건 사라지고 미칠 듯한 창피함이 얼굴을 뒤덮었다.

 

 

 ‘젠장- 그러게 팔자에도 없는 그런 로맨스 드라마 같은 장면이 내 것일 리가 없지... ’

 

 

 아까 그냥 무슨 짓이냐고 도망쳤어야한다고 뒤늦게 후회해보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미안….”

 

 

 그녀가 멘붕에 빠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듯 멀쩡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발을 매만지며 발톱을 봉합한다. 맨 손으로 잡아 밴드까지 척척 붙이는 모습이 방금 전까지의 상황은 상상할 수도 없게 만들고 있었다.

 

 

 '뭐 이런 빠른 수습이!나는 아직 민망하단 말이야!'

 

 양희는 너무 상황 변화가 빨라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죄송해요….”

 

 

 발 냄새가 이렇게 죄송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녀는 지금 미칠 듯 한 부끄러움으로 조심스레 인기스타에게 사과했다. 사실 그가 스스로 한 일에 그녀가 사과할 것은 없었지만 어떤 말로든 이 창피함을 무마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니라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말해주기를 백 만 번 기도하면서.

 

 

 “아아…….”

 “.......”

 

 

 그가 별다른 말없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아까 그 귀여운 밴드를 척하고 완벽히 발가락 사이에 밀착시킨 후 양희와 눈을 마주쳤다. 또 다시 눈빛교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그 눈빛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확실해진 발 냄새나는 여자라는 딱지가 이마에 떡하니 붙어있는 가운데 어찌 저렇게 완벽한 남자를 똑바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강철심장의 여인이라도 그건 불가능할 거다.

 수치심, 곤란함, 부끄러움이 지금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들이다.

 양희는 이 잘난 남자가 왜 자꾸 안가고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욕이나 무슨 할 말이 있다면 어서 해버리고 비켜줬으면 싶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딱 그런 심정.

 

 

 “당신…어째서.”

 “?네???”

 “……왜….”

 “……….”

 

 

 지금 이게 무슨 대화인가.

 양희는 바보같이 벙찐 얼굴을 하고 말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최선의 표정이었다.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할지 알 수가 없는 그녀는 답답함을 표출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대화란 자고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가능해야지만 이루어지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이건 스무고개보다도 못한 답답한 퀴즈 같았다. 브라운관 이미지에서도 강지욱이란 사람은 그다지 수다스럽거나 가벼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건 좀…너무 심하다 싶었다.

 매우 긴 대사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 말을 못한다는 것도 아닐 테고.

 좀 전에 민망함에 답답함이 더해져 그녀는 절로 미간이 찡그려지는 걸 느꼈다. 그녀는 그냥 빨리 이 상황을 탈출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고개를 숙이고 뭔가 생각하는 지욱이 너무도 불편하게 다가왔다.

 

 

 “왜 여기….”

 “지욱아!!”

 

 

 불편했던 공기를 깨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누군가 엄청난 목소리로 그를 찾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찾으려 주변을 둘러보는데 양희는 아차! 싶었다. 그들 주위에는 여전히 스텝들이 많이 있었고 개중에는 이미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아까까지 발 연기를 하던 여자주연 아이돌이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어쩐지…등골이 서늘하더라니.

 

 

 “야! 강지욱!!!”

 

 

 양희가 잠시 주변에 한 눈 팔던 사이, 반대편에 한 남자가 달려왔다. 제법 반듯한 슈트차림인 것으로 봐선 일반 스텝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그 남자 또한 외모가 한 반듯하여 웬만한 모델들 뺨을 친다.

 그 남자는 좀 더 순하게 생긴 인상이었는데 양희를 보는 눈빛만은 그렇지 못했다. 마치 위험한 것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훑어보더니 무시하듯 고개를 돌렸다.

 

 

 '뭐야.이 개-새-.'

 

 

 차마 입에는 담을 수 없는 말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양희는 처음 본 사람을 향해 강렬한 적의를 가지게 되었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무시하는데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치솟는 짜증으로 남자를 지켜보았다.

 

 

 “여기서 뭐해? 다른 장면부터 찍기로 했으니 이동하자.”

 “.........”

 “?어이!!하….”

 

 

 남자의 말에도 지욱은 여전히 양희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꿈쩍을 않는다. 지욱이 자신의 말에도 그렇게 멀뚱히 서있으니까 슈트남이 그의 팔을 강하게 잡아끌어 당기며 화를 낸다. 지욱은 건장했지만 날렵한 몸매로 그렇게 몸무게가 나갈 것 같지 않았는데 굳어 있는 지욱의 몸을 겨우 겨우 끌고 가는 그 모습이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드디어 민망함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을 충분히 느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끌려가면서도 계속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울 정도였기 때문에.

 그들이 떠나고 반듯하게 붙여진 귀여운 밴드를 만지작거리며 보고 있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붙여준 밴드에서 짙은 스모키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게 기분이 좋다. 슬며시 그녀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킁킁-

 

 

 “아무 냄새도 안 나는구만…”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다가 아까 그가 마치 역한 냄새를 맡은 것처럼 외면했던 순간이 떠올라서 다시 한 번 발을 코끝에 대고 맡아보았다. 하지만 차가운 바람 냄새만 느껴질 뿐이다.

 

 

 “다음에 만나면 대체 무슨 냄새가 났다고 그런 건지 제대로 따져야지!”

 

 

 버선을 다시 신으면서 그녀가 각오를 다졌다. 그래야지만 이 민망한 순간들이 사라질 것 같았다.

 뭐…물론 다시 강지욱을 만날 수만 있다면 말이지만.

 

 

 “어이!너!! 거기서 계속 있을 거야?! 씬 바뀌었으니까 따라와!”

 

 

 그새 대부분 다 빠져나가고 몇몇 스탭들만 남은 가운데 반장이 저 멀리서 양희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나한텐 말도 안 해줘놓고…뻑 하면 소리나 지른다니까.'

 

 

 양희는 목까지 치솟은 불평을 삼키며 서둘러 덧신에 짚신까지 챙겨 신고 그들을 뒤 쫒아갔다. 지나오다가 여자 아이돌이 그녀를 보고 욕을 내뱉은 것 같았지만 그녀는 착각이겠거니 하며 서둘러 달려갔다. 다신 이 촬영장에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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