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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엘레아
작가 : 마리장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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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빌로험프(1)
작성일 : 17-07-31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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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는 턱을 괸 채 가늘고 기다란 검지손가락으로 원탁을 톡톡 두드리며 창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풍만한 여인의 가슴처럼, 해산을 앞둔 여인의 배처럼 부풀어 올라 맑고 투명한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만월(滿月)이었다.

 

  달빛 때문일까, 첫 출정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루이스는 이유를 알 수없는 두근거림을 느끼며 눈앞에 펼쳐진 지도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 피네 산을 무사히 넘기만 하면 산드리아의 도성까지는 1시간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하워드 총대장이 보고를 마친 뒤 자신의 젊은 주군을 바라보았다. 즉위 당시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이 버거워 보이던 소년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5년이란 시간은 그를 단단한 남자로 만들어주었다. 호기심에 반짝거리던 장난기 가득한 눈빛은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해있었다.

 

  사실 루이스가 즉위 했을 당시 귀부인들과 귀족가의 영애들은 큰 꿈에 부풀어 올랐었다. 선대왕인 카를은 사교 파티를 즐기지 않았다. 재위 후반기에는 재정 확충을 위해 왕실에서 주관하는 몇 안 되는 파티마저도 금지해버렸다.

 

  왕이 파티를 열지 않으니 귀족들도 감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파티를 열지 못하였다. 때문에 귀족가의 여인들은 화려하고 성대한 파티에 목말라 있었다.

 

  카를을 이어 루이스가 즉위하자 귀부인들과 귀족가의 영애들은 왕실에서 열리는 화려한 파티를 기대하였다.

 

  게다가 파티의 주최자가 왕세자 시절부터 '여자를 유혹할 일이 평생 없을 고귀하신 분이 쓸데도 없이 너무 잘생기셨다'는 평을 받아온, 게다가 정혼자 조차 없는 젊은 왕이라면.

 

  많은 귀족가의 영애들은 자신이 왕의 첫 춤상대가 되는 달콤한 상상을 하였다. 여인네들의 콧바람과 함께 전국의 재단사들과 보석상들도 함께 들썩였다.

 

  그러나 귀족가의 여인들이 루이스를 공식적으로 볼 수 있었던 기회는 그의 즉위식과 탄일 연회가 고작이었다. 18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즉위한 왕은 5년이란 시간을 오롯이 대륙의 통일을 위한 정복전쟁을 위해서만 사용하였다.

 

  루이스가 종종 호위무사만 대동한 채 비밀사냥을 나서는 것이 사실은 산드리아 정탐 이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 하워드는 내심 대견스러워 하였다.

 

  루이스가 메르헨의 왕으로서 보낸 지난 5년의 시간을 생각하니 하워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모습을 보았다면 친우이자 선대왕인 카를이 분명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하워드는 자신에게 루이스를 부탁하던 카를과의 마지막 약속을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젊은 주군의 말을 경청하였다.

 

  " 도성 진입 후 짐이 친위대를 이끌고 곧장 비체트 궁으로 진격하여 성문을 열겠습니다. 2군과 3군은 도성수비대를 정리한 후 합류하여 성을 포위하도록 하지요. "

 

  " 나머지 왕족들은 어찌 처리 할까요? 왕비인 세실리아와 차비 3명을 비롯해서 왕세자인 리오, 그 외의 왕자와 공주가 모두 6명입니다. 그리고 방금 전 빌립이 보낸 전서구에 의하면 선대왕의 적통 왕녀인 엘레아공주가 궁에 유폐되어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

 

  " 엘레아 공주……? 아직 살아있단 말인가? "

 

  10여 년 전 루이스가 아직 왕세자였을 때 산드리아의 왕위 계승 다툼에 대해서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싸움 끝에 결국 현재 왕인 조프리가 등극하였고 10살의 어린 왕녀는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루이스는 15살의 나이에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도 조프리를 잔혹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왕위의 위협이 되었던 자가 살아있어서는 안 된다. 왕위 다툼의 패배자가 살아남은 적이 있었던가.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산드리아의 정복전쟁을 준비하면서 왕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있었다니. 그것도 버젓이 궁에서. 조프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왕녀를 살려둔 것이란 말인가.

 

  어린왕녀가 왕위 계승 다툼에 휘말려 오랜 기간 유폐생활을 해온 것은 안타깝지만 그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내일 죽을 것이다.

 

  '왕녀는 어차피 어린나이에 죽을 운명 인가보군'

 

 루이스는 왕녀의 대해 잠깐 생각한 뒤 하워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 군인과 군인들, 그리고 귀족들까지도 투항하면 모두 살려둔다. 그리고 민간인들은 다치게 해선되는 안 돼. 특히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단, 왕족은 모두 사살한다. "

 

 

  * * *

 

 

  피네산은 메르헨과 산드리아의 국경을 이루는 산으로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산드리아에서는 국경방위대를 피네 산 보다는 아얀느 평야 쪽으로 주로 배치하였다.

 

  게다가 조프리는 지난 2백년간 큰 전쟁 없이 이어진 평화에 도취되어 즉위 이후 국방을 소홀히 하였다. 국방에 소요되는 예산을 줄이고 줄여서 투입된 곳은 왕의 사치를 위한 파티를 여는데 주로 사용되었다. 루이스는 산드리아의 국방이 약해졌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사냥이라는 핑계로 몇 번의 정탐을 직접 다녀온 결과, 대규모 병력을 이동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대규모 병력이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 할 수 있도록 피네 산의 지도를 만들어 오도록 지시하여 차근차근 전쟁을 준비해왔다.

 

  수년간 준비해온 전쟁이 이제 시작이다. 산드리아 정복이 끝나면 동쪽의 서고트까지 단번에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룰 것이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난 루이스는 갑옷을 챙겨 입고 검을 준비했다. 대륙에 위치한 나라 중에서 메르헨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가장 컸는데, 그중에서도 빌로험프가(家)의 사람들은 평균의 메르헨 사람들 중에서도 더 장신이었다.

 

  루이스 역시 빌험험프가(家)의 핏줄답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 두터운 갑옷까지 걸쳐 입으니 더 장대해 보였다. 이미 수도에서 출병식을 하고 온 터라 루이스는 조용히 출격을 명하였다.

 

  피네산을 무사히 넘을 행군지도를 미리 만들어둔 덕분에 메르헨의 대군은 이탈자 없이 무사히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산을 넘으며 산드리아의 국경방위대를 만나긴 했지만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소수의 인원이었기에 전투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 전하! 여기서부터는 산드리아 땅이옵니다. "

 

  대륙의 남쪽에 위치해 있기에 기후도 가장 온화하고 무엇보다 땅이 비옥하여 산드리아의 백성들은 삶이 풍요로워 표정에도 여유가 넘쳤다.

 

  " 산드리아에는 미녀가 많기로도 유명하지요. 게다가 메르헨 여자처럼 키만 크고 뻣뻣한 게 아니라 상냥하고 애교도 넘친다고 합니다. 오신 김에 예쁜 아가씨도 한명 데려가시지요. 허허허 "

 

  무사히 산을 넘자 긴장이 풀렸는지 하워드가 좀처럼 하지 않는 농을 던졌다.

 

  " 정탐을 왔을 때 예쁜 아가씨를 만나기는 했지요. 그러나 이 전쟁 통에 어찌 다시 만나 메르헨까지 데려가겠소? 하워드공이나 며느릿감을 찾아보시던 지요. "

 

  좀처럼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질 않던 루이스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 하워드는 그 '예쁜 아가씨'의 정체가 궁금해 더 묻고 싶었지만,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이런 싱거운 대화가 길어지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아 다시 허허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루이스는 저녁으로 병사들과 같은 주먹밥을 먹으며 평온하기만 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무르며 수줍게 물들여놓은 고운 빨간 빛깔의 하늘을 보며 루이스는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평온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녁으로 먹을 빵을 굽고 수프를 만들고 있었을 산드리아의 백성들에게 내일 저녁엔 평소와 같은 일상을 되돌려 주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친 메르헨의 군대는 피네산 아래에 머무르며 공격 시간인 자정을 조용히 기다렸다.

 

  비체트 궁의 종탑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소리와 함께 루이스는 도성으로의 진군 명령을 내렸다.

 

  포효하는 사자문양이 그려진 빌로험프가(家)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물소의 뿔로 호각을 울리며 나아가는 자신의 군대를 바라보니 루이스는 긴장감과 설렘에 가슴이 요동쳤다.

 

  어차피 산드리아의 도성수비대와 궁을 지키는 국왕친위대로는 메르헨의 군대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아얀느 평야를 지키는 국경방위대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다 하더라도 마찬가지. 그러나 국경방위대와 전투를 벌이면 메르헨의 군대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어 루이스는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내고 싶었다.

 

  도성에 진입하자 허둥지둥 전투 준비를 마친 도성수비대와 마주하였다.

 

  " 대공. 도성수비대가 정리되는 즉시 비체 성으로 오시오. "

 

  " 네! 전하. 잠시 후에 궁에서 뵙겠습니다. "

 

  루이스는 도성수비대와의 전투는 하워드총대장에게 맡기고 기마부대인 국왕친위대와 궁궐의 문을 열어줄 화포부대를 이끌고 비체트 궁을 향해 말을 내달렸다.

 

  비체트 궁에 도착하자 문을 열기위해 화포부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루이스는 기마부대와 함께 뒤에서 대기 중이었다. 갑작스런 전투로 경황이 없었을 와중에도 살수가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화포의 위력은 당하질 못할 테니.

 

  루이스는 휘장이 드리워진 백마 위에 앉아 화포가 날아가는 것을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곧 비체트 궁의 문이 열렸다.

 

 루이스는 자신의 친위대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고 성문을 향해 달렸다. 동이 트기 전 이 전쟁이 모두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도성수비대와의 전투를 마친 하워드가 합류하여 비체트 궁을 포위하였다. 이제 조프리만 찾으면 된다. 이미 도성수비대는 무너졌고, 국경방위대가 연락을 받고 도착하려면 내일 오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국경방위대가 비체성에 당도한다 한들 이미 궁은 루이스가 장악한 상태이니 자신들의 왕을 구하기 위해 궁 안으로 진입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 전하! 조프리를 찾았습니다! 대연회장에 무장한 친위대와 함께 있다고 합니다! "

 

  하워드의 아들이자 국왕 친위부대의 대장인 알렉산더가 급히 보고를 하였다. 루이스는 친위부대를 이끌고 천천히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조프리에게는 자신이 사신(死神)처럼 보이겠지. 사신 역시 누군가에게 죽음을 내리기 위해 나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조금은 떨린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대연회장에 도착하니 조프리는 의복을 모두 갖추고 왕좌의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앞을 10명 남짓의 친위대가 줄서서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루이스가 자신의 친위부대와 함께 긴 연회장을 걸어가니 조프리는 마치 마중을 나가듯이 다가왔다.

 

  " 이미 가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자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오. 친위부대 역시 기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와 함께 자결할 것이오. "

 

  조프리는 욕심 많은 왕이긴 했지만, 생각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루이스는 허락의 의미로 등을 돌려 연회장을 다시 걸어 나갔고 조프리는 자신의 왕좌에서 칼을 몸에 찔러 넣어 산드리아의 마지막 왕으로 남게 되었다. 조프리의 뒤를 이어 친위부대 역시 죽음으로 기사의 명예와 국왕친위부대로서의 명예를 지켰다.

 

  알렌산더가 휘하 군인에게 조용히 보고를 받고는 루이스에게 다시 보고를 올렸다. 왕비와 차비, 그리고 왕세자를 비롯한 자녀들은 이미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상태로 처소에서 발견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 이제 엘레아 왕녀만 남았군요. 왕녀의 시신은 없는 것을 보면 조프리가 왕녀는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질 않았나 봅니다. "

 

  " 일단 국왕 가족의 머리부터 성 밖에 효수하도록 하시오. "

 

  조프리와 왕세자의 죽음을 모두 확인하자 루이스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안도감이 들었다. 완벽주의적인 성격 탓에 전쟁 준비를 철저하게 해왔고 또 그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 되었지만, 산드리아 전쟁은 그가 치르는 첫 전쟁인지라 아무래도 긴장이 되었었다.

 

 이제 남은 건 궁에 나가본 경험도 없을 어린 왕녀 한명 뿐. 그녀 역시 곧 잡힐 테고 효수되겠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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