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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엘레아
작가 : 마리장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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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아 피에몬테(1)
작성일 : 17-07-31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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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레아는 꿈속을 헤매면서도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심장을 죄여오는 통증이 꿈속의 어린 엘레아가 느끼는 고통인지, 아니면 현재 내가 느끼는 고통인지 그것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지난 10년째 이어진 악몽-

 

  카라꽃처럼 고결하게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지만 10살의 엘레아는 그저 울면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죽어가는 그 순간에 이복오라비라는 사람은 엘레아를 처소에서 끌어내어 성의 가장 높은 탑에 가두어버렸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것처럼. 죽지 않았으나 죽은 자처럼 살거라.”

 

  이복오라비는 이 한마디를 무심하게 던지곤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한 참 뒤에서야 오라비가 어머니의 시신을 아버지의 곁이 아닌 피네 산 인근에 버려둔 것을 백성들이 돌무덤을 쌓아 수습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14살의 엘레아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다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놓았을 뿐.

 

  다시 심장을 죄여오는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엘레아의 작고 하얀 얼굴위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 통증이 10살의 엘레아의 것일까, 지금 꿈을 꾸는 나의 통증일까 생각하며 엘레아는 힘겹게 눈을 떴다.

 

 

 * * *

 

 

  루이스는 조프리의 집무실에서 화려하기로 유명한 비체트 궁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드리아 땅은 모든 작물이 잘 자라는 축복을 받은 것처럼 꽃들도 색감이 화려하고 꽃잎이 풍성했다. 메르헨에서는 보기 힘든 화사함이었다.

 

  왕의 정원에는 라일락은 없었다. 아마 지천에서 만날 수 있는 들나무라 생각하여 왕의 정원에는 들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루이스는 왜인지 피네 산에서 엘레아를 만난 이후에는 모든 꽃향기가 라일락 향기처럼 느껴지는 착각이 들었다.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거리자 그 날의 풍경이 떠오르며 마음의 끝자락도 함께 간질거렸다.

 

  “ 전하. 하워드대공 드셨습니다.”

 

  산드리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하워드가 루이스를 찾아왔다. 이미 조프리가 백성뿐만 아니라 귀족들에게도 신임을 많이 잃은 터라 산드리아를 온전히 장악하는 것이 더 쉬웠다.

 

  사실 궁을 허물고 땅을 빼앗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얻는 것임을 루이스는 잘 알고 있었다.

 

  “각 귀족가문에게는 메르헨의 귀족과 동일한 세율과 법률을 적용한다고 공표하겠소. 메르헨에게 충성을 서약하면 지금 누리고 있는 작위와 토지는 모두 그대로 유지시켜준다는 사실도 함께요.”

 

  “전하. 아무리 조프리가 실정을 하여 신임을 잃었다고는 하나 산드리아 역시 3백년을 이어온 나라입니다. 전하께서 아무 사심 없이 그들을 대한다 하더라도 반란의 불씨는 언제든지 타오를 수 있습니다. 만약을 대비하여 향후 5년간은 가문의 후계자를 메르헨에서 머무르게 한다는 조항도 덧붙이는 것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오. 후계자를 곁에 두면 아비가 감히 반란을 꿈꾸지는 못하겠지.”

 

  백성에 대한 세금 감면문제와 메르헨으로의 회군 일정까지 잡고 나서야 길고 긴 회의는 끝이 났다.

 

  어느덧 해가 뉘엿거리며 산기슭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워드는 회의가 끝이 났음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루이스에게 조심스런 질문을 던졌다.

 

  “ 전하. 전하께서 하시는 일은 늘 뜻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이번에 엘레아 왕녀를 살려두신 것은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엘레아 왕녀는 산드리아 백성에게 신임이 높았던 선왕 패트릭의 적통후계자입니다. 살아있다며 왕녀를 중심으로 분명히 세력이 규합될 것이란 걸 전하께서도 잘 아실 테지요.”

 

  루이스는 자신의 충성스럽고 우직한 노신의 조심스런 질문을 어찌 대답할 바를 몰라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루이스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특유의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머금고 하워드에 질문에 답을 했다.

 

  “이번만큼은 나 자신도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소. 내가 생각보다 여인의 미색(美色)에 약한가보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왕녀의 미모에 반하여 죽이지 못했다는 루이스의 솔직한 답변에 하워드도 함께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속내는 편치 않았다.

 

 

 * * *

 

 

  하워드가 회의를 끝내고 집무실을 나서자 엘레아왕녀가 깨어났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엘레아의 부상이 심하지 않았음에도 이틀 동안이나 깨어나질 못하고 있던 차라 루이스는 은근히 걱정이 되던 차였다.

 

  루이스 자신도 스스로의 처신이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어느새 발걸음은 왕녀의 처소로 향하고 있었다. 엘레아의 얼굴을 마주할 생각에 들뜨고도 가벼웠던 발걸음이 그녀의 처소에 가까워질수록 무거워졌다.

 

 ‘ 휴, 적국의 왕녀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자신은 그녀의 나라를 무너뜨린 적국의 왕이라는 현실이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려는 지금 이 순간에서야 느껴졌다. 엘레아의 처소에 다다르자 처소를 지키는 메르헨의 군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루이스의 심장이 또다시 설렘과 긴장감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엘레아는 창가에 서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기 흐르는 풍성한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아 더욱 반짝이듯 일렁였다. 방문이 열리는 인기척에 돌아보는 얼굴은 이틀사이에 많이 야위었지만 그래서인지 그녀 특유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였다.

 

  엘레아는 루이스가 다가오자 예를 갖춰 인사를 하였다.

 

  “ 산드리아 왕녀 엘레아 피에몬테. 메르헨의 국왕을 뵈옵니다.”

 

  엘레아는 인사를 마치고 루이스를 올려보았다. 피네 산에서 자신을 훔쳐보던 얼뜨기 같았던 남자가 메르헨의 국왕이었다니.

 

  ‘ 이 남자는 내 나라를 멸망시켜놓고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살려준 것일까.’

 

  엘레아 스스로도 루이스가 왜 자신을 살려준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엘레아 역시 깨어난 직후 이미 조프리일가는 모두 성문에 효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반적인 관례라면 자신의 머리 역시 조프리일가와 함께 성문에 효수되어 있어야 마땅했다.

 

  이 남자의 한마디에 자신의 생사가 달려있다는 생각에 루이스를 바라보는 엘레아의 은색눈동자가 점점 더 차갑게 변해가고 있었다.

 

  ‘왜 나의 생애는……. 겨우 목숨부지 하는 것조차도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어미의 태중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이복오라비와 그의 가신들의 견제를 받아야만 했다. 차라리 여왕의 선례가 없었다면 조프리에게도 그저 귀여운 막내여동생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선왕인 패트릭이 엘레아가 10살이 되던 해, 그녀를 후계로 세우려하자 조프리는 아비를 독살하고 유언을 조작하여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엘레아의 어미까지도 처참하게 죽여 버렸다.

 

  죽어가던 아비의 간곡한 유언 때문이었는지, 흉흉한 백성들의 입방아가 두려웠던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프리는 어린 여동생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숨만 붙어있었을 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했으니 엘레아는 유폐생활이 종종 죽는 것보다도 더욱 가혹한 형벌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지 않고 여태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조프리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와 희망 덕분이었다.

 

  이제 조프리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고, 언젠가는 자신의 것이 되리라 여겼던 산드리아와 비체트 궁은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엘레아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멸망한 나라의 왕녀로서의 치욕을 견디면서라도 꾸역꾸역 살아갈 이유가 그녀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루이스는 자신을 빤히 올라다보는 엘레아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뭔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적절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팔의 부상 상태가 궁금하긴 했지만 _ 생각해보면 이 부상은 그녀를 죽이라는 자신의 명령으로 인해 생긴 것이니 _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카락과 뺨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 휴우 ”

 

  자신의 충동적인 속마음을 느끼자, 루이스는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서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그저 엘레아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번 품어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은 것인지. 아니 그저 고작 자신의 ‘마음’ 따위 때문에 그녀를 살려두어도 되는 것인지도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뗀 것은 엘레아였다.

 

  “어떠한 이유로 살려주시고 치료까지 해주셨는지 그 저의는 알 수 없사오나, 저는 바란 적 없는 친절이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왕가에선 목숨보다도 명예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잘 알고 계시겠죠.

 

  지난 10년 동안 유폐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조프리에게 복수하고 제 자리를 되찾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조프리도 죽었고 제 나라를 멸망했습니다. 멸망한 나라의 왕족으로 살아가는 치욕은 겪지 않도록……. 제발 자결을 허락해 주십시오.”

 

  루이스는 엘레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과 폐부에 유리처럼 날카롭게 박혀들어 마음이 욱신거렸다. 지금 엘레아가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울지도 루이스는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엘레아가 살아있음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혼란스러움 들을 생각한다면 그녀 스스로 자결을 청하는 것이 루이스에겐 어쩌면 고마운 일 이었다.

 

  그래도 루이스는 제 손으로 엘레아를 죽일 수는 없었다. 죽는 걸 지켜볼 수도 없었다. 엘레아에 대한 자신의 마음도 혼란스러웠지만 그런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그녀가 죽는 것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루이스가 방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 자결은……. 절대 허락 할 수 없다. 그대는 내일 나의 군대와 함께 메르헨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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