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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엘레아
작가 : 마리장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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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클레인
작성일 : 17-07-31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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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과 수프는 준비가 되었느냐? 병사들이 먹을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하거라.”

 

  사라 대공부인은 대연회장과 주방을 바쁘게 오가며 루이스의 승전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루이스의 어머니 올리비아 왕비는 루이스가 12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루이스도 즉위 이후 아직 비를 맞이하지 않아서 레지덴 궁의 안주인 자리는 오랫동안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레지덴 궁에서 중요한 행사를 치를 때면 하워드의 부인인 사라가 그 역할을 도맡곤 하였다.

 

  사라는 넉넉한 풍채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하고 후덕하여 레지던 궁의 시종들도 그녀를 존경하고 지시를 잘 따랐다.

 

  안주인 없는 궁궐의 안살림을 오랫동안 맡았기 때문에 행여 안 좋은 구설수라도 생길까하는 노파심이 사라에게는 늘 있었다. 그래서 혹여나 남편인 하워드와 아들인 알렉산더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생길까 염려되어 레지덴 궁에서는 말과 행동을 더욱 조심하였다.

 

  “ 어머니. 이 꽃들은 어디에 장식할까요?”

 

  하워드와 사라의 딸이자, 알렉산더의 누이동생 – 에리카가 수레국화꽃을 한아름 들고 와 물었다.

 

  에리카는 찰랑이는 금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키가 크고 늘씬한 아가씨였다. 활짝 만개한 색색의 수레국화꽃을 들고 서있는 모습은 어느 누가 봐도 아름다웠다.

 

  메르헨 제일의 기사가문 여식답게 쾌활하고 씩씩한 성격에 총명하기까지 하여 딸이 없는 카를은 에리카를 딸처럼 어여삐 여겼다.

 

  그래서 카를은 생전에 일찌감치 루이스의 짝으로 에리카를 점찍어 놓았다. 게다가 메르헨에서 가장 귀한 신분의 아가씨이기도 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정작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성의 감정이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어려서 그러겠거니 했지만, 결혼을 할 나이가 꽉 차서도 그러하였다.

 

  루이스에게 에리카는 그저 여동생이고, 에리카에게 루이스는 알렉산더와 같은 오라비일 뿐.

 

  하워드와 사라는 아마 루이스, 알렉산더, 에리카가 마치 남매처럼 자라서 그런 것을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하워드에게는 에리카만큼이나 루이스 역시 소중한 존재였기에 서로 원치 않는 정략결혼은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흐르다보니 루이스도 에리카도 혼기가 꽉 차 버렸고, 알렉산더까지도 덩달아 결혼을 못하고 나이를 먹게 되었다.

 

 

 * * *

 

  비체트 궁에서 출발한 루이스 일행은 아얀느 평야를 지나 드디어 레지덴 궁에 도하였다. 비체트 궁을 출발한지 5일째였다. 전쟁 때에는 빠른 진군을 위해서 피네 산을 넘었지만 이제는 굳이 빠른 진군이 필요치 않아 시일이 더 걸렸다.

 

  도성에 들어서자 수많은 환영인파가 나와서 꽃을 던지고 커다란 함성소리로 승전을 축하해주었다.

 

  “ 어머 전하께서 이쪽을 돌아보신다!”

 

  루이스를 보기위해서 귀족 아가씨들까지도 잔뜩 몸치장을 한 채로 거리에 나와 승전을 축하하였다.

 

  “ 승전파티가 열리면 이번에는 꼭 전하의 춤상대가 되고 싶어. 어떤 드레스를 입어야 눈에 확 띌 수 있을까?”

 

  “ 에이 꿈 깨. 전하의 춤 상대는 늘 에리카였잖아.”

 

  “ 그 두 사람이 결혼을 하려면 벌써 했겠지. 에리카가 아무리 전하와 춤을 많이 추어도 결국 비가 되지는 못할 거야. 이제 산드리아 정복도 끝났으니 하워드 대공이 돌아오시면 국혼을 추진하지 않을까?”

 

  루이스는 맨 앞에서 말을 타고 나아가면서도 온 신경은 대열 끝 쪽의 마차에게로 쏠려있었다.

 

  이 환영인파와 함성 속에서 엘레아가 어떤 기분일지 – 당연히 우울하고 비참할거라 루이스 역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엘레아는 마차의 창을 굳게 닫은 채로 도성을 지나고 있었다. 비체 성을 떠난 뒤로 마음을 굳게 먹기는 했지만, 산드리아의 정복을 축하하는 인파를 굳이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다.

 

  레지덴 궁에 도착하자 시종장 베런과 사라 대공부인, 그리고 에리카가 루이스를 맞아주었다.

 

  “ 전하. 승전을 축하드리옵니다.”

 

  에리카가 조신하게 드레스자락을 잡고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올리자 루이스와 알렉산더는 ‘풉’ 웃음이 삐져나왔다.

 

  루이스는 에리카의 인사를 받고는 사라를 꼭 안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다.

 

  “ 병사들 음식까지 준비하시느냐고 고생 많으셨어요.”

 

  “ 고생은요. 전하께서 더 고생이 많으셨지요. 피곤하실 테니 일단 푹 쉬세요.”

 

  알렉산더는 인사를 마치고 시종장인 베런에게 지시를 내렸다.

 

  “ 마차에 있는 산드리아의 엘레아 왕녀에게 궁을 내어주고 모시도록 하거라. 그리고 궁인도 선별해서 보내도록.”

 

  루이스의 지시의 베런 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하였다.

 

  무릇 궁을 따로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왕족 뿐이었다. 왕족이 아니라면 그에 걸맞은 신분을 가지고 있는 귀빈에게만 내어주는 것이었다.

 

  패전국의 왕녀라면 포로 신분일진데 살려서 데려온 것도 이상했지만, 따로 궁까지 내주다니-

 

  베런은 당황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곧 기색을 감추고 명을 받들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 한번 내리신 명을 거두어들이시는 성품은 아니시니.’

 

  루이스는 모든 인사를 마친 뒤 내실로 들어갔고, 알렉산더와 사라, 에리카는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

 

  베런은 아직 도착하지 않는 엘레아의 마차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도 도대체 루이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명을 내린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였다.

 

  사실 젊고 혈기왕성한 남자가 여인에게 필요 이상의 호의를 베푼다면 그 이유야 뻔 하겠지만, 베런이 평소 알고 있던 루이스는 단순히 그 뻔한 이유로 이정도의 파격적인 명령을 내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베런이 루이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는 사이 행렬 뒤에 위치한 엘레아의 마차가 드디어 성에 들어섰다.

 

  베런이 마차의 문을 열자 엘레아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엘레아와 마주하자 베런은 자신이 방금 전까지 고민했던 의뭉스러움이 단박에 해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전하께서도 결국은 이 미모에 넘어가신 것인가.’

 

  사실 보통의 패전국의 왕족이면 포로이니 하대를 하는 것이 맞지만, 루이스가 따로 궁을 내어주겠다는 것은 자신의 귀한 손님이라는 뜻이니 베런은 공손하게 엘레아를 맞았다.

 

  엘레아의 미모에 놀라 잠시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결례를 범하기는 했지만.

 

  “ 저는 레지던 궁의 시종장 베런 라이델이라고 합니다. 전하께서 처소로 모시라고 하셨으니 저를 따르시지요.”

 

  엘레아는 시종장이 깍듯하게 자신을 모시자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의 안내를 따랐다.

 

  엘레아는 자신이 머무를 궁에 도착하자 더욱 당황스러워졌다.

 

  ‘이곳이 내가 머무를 곳이라고?’

 

  침실은 대충 보아도 왕족이 머무르던 곳으로 보였다. 비록 오랜 시간 비어있었던 듯이 보였지만.

 

  베런이 처소를 안내해 준 뒤 나가자 엘레아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방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커튼도 침구도 산드리아보다 모두 두터웠고 색상도 어두운 색상 위주였다. 엘레아는 침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자신이 기거할 곳을 둘러보다가 도서관을 발견하였다.

 

 엘레아는 도서관에 들어서 빼곡하게 들어찬 책을 살펴보다가 그 중에서 한 권 골라냈다.

 

  자신이 레지덴 궁을 활보하고 다닐 처지도 아니고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이었다.

 

  ‘이젠 10살 소녀가 아니니까. 더 이상 나약하게 울지 않겠어. 이번에는 내가 레오를 지켜줘야해.’

 

  책장을 넘기는 엘레아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꼿꼿했다.

 

 

 * * *

 

  병사들의 식사 준비를 하는 주방은 정신없이 바빴다. 에리카 역시 사라 부인을 도와 분주히 움직이다가 그릇을 닦고 있는 궁인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까 산드리아의 왕녀 봤어?”

 

  “방금 전에 시종장님이 처소로 데리고 가는 길에 마주쳤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봤다니까.”

 

  “우리 전하께서도 결국 미모에 넘어가신 것이겠지? 그러니 죽이지 않고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는 떡하니 처소까지 내어주시고. 왕녀가 쓰는 처소가 전하의 고모이신 켈리 공작부인께서 결혼 전에 쓰시던 처소라며?”

 

  궁인들은 루이스가 관심을 보이는 여인이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쓰라린 듯하였다.

 

  어차피 나의 것이 될 수는 없는 동경의 대상일 뿐이라 하더라도 곁에 연모하는 여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심정적으로 굉장히 큰 차이가 있었다.

 

  아마 궁인들뿐만 아니라 메르헨의 모든 아가씨들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을까. 여기 이 아가씨를 제외하고는.

 

  에리카는 궁인들의 쑥덕거림을 듣고는 엘레아가 궁금해졌다.

 

  ‘어떤 여인이기에 우리 전하께서 이렇게 신경을 쓰시는 것일까?’

 

  에리카 역시 루이스가 다정하고 친근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군주로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이성과 냉철함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직접 가서 만나봐야겠다. 오라버니에게 물어봐야 엉뚱한 소리나 할 테니.’

 

  에리카는 직접 따뜻한 차와 쿠키를 준비해서 엘레아의 처소로 향했다. 어린 시절부터 궁을 내 집 드나들 듯이 다녔기에 켈리 공작부인이 결혼 전에 머무르던 궁 쯤이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엘레아의 처소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었다. 병사들은 에리카를 보고는 살짝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내 문을 열어주었다.

 

  에리카가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엘레아의 시선이 에리카에게로 향해 둘의 시선이 부딪쳤다.

 

  엘레아는 처음 보는 낮선이의 방문에 깜짝 놀라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에리카는 태연하게 손에 들고 있던 다과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 갑자기 들이닥쳐서 놀라셨죠? 무례를 용서하세요. 지금 공주님에 대한 소문이 궁에서 워낙 파다해서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저는 하워드 대공의 여식이자 알렉산더 대장의 누이, 에리카 클레인이라고 합니다.”

 

  에리카는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대화를 할 때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자유분방함이 무례함이나 경솔함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였기에 신뢰감을 주었다.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앉으시지요.”

 

  엘레아는 10년의 유폐생활을 하면서 만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던 사람이 오직 레오 한명 뿐이었기에 또래의 귀족 영애들과의 만남이 어색하였다.

 

  더군다나 현재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엘레아에게는 이 궁 안에 모든 사람이 경계의 대상이므로. 하긴 산드리아에서도 레오 외에는 모두를 경계해야만 했으니.

 

  마음을 내어주는 것보다는 경계하고 멀리하는 것이 더 익숙한 엘레아였지만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시원시원해 보이는 이 아가씨에게는 잔뜩 움츠리고 있던 마음이 슬며시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에리카는 엘레아를 보니 루이스의 이상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여자인 자신도 계속 바라보게 되는 미모였다. 게다가 감싸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특유의 애처로운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여리여리한 여인인데 눈빛만은 차갑고 강하게 느껴졌다.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눈 속에 자리한 차가운 은색 눈동자를 마주하자 에리카는 일순간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여인이었다.

 

  ‘ 우리 전하께서 드디어 사랑에 빠지신 것인가. 그런데 쉽지는 않으시겠어요. 전하.’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홀짝 마시면서 에리카는 마음속으로 킥킥 웃었다. 사랑에 빠진 누군가는 왜 항상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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