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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엘레아
작가 : 마리장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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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바라만 보아도
작성일 : 17-07-31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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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레아와 에리카가 정원을 거닐고 있는 그 시각, 루이스는 국왕집무실에서 재정회의 중이었다.

 

  산드리아 정복으로 식량부족 문제가 해결되어 이제껏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재정회의의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다.

 

  백성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에 메르헨의 겨울은 너무 길고 추웠다. 그래서 메르헨 왕가에서는 겨울이면 왕실재정으로 곡식을 수입하여 백성들에게 배급을 해오곤 했었다. 워낙 거대한 땅이다 보니 겨우 굶어 죽는 것을 면한 정도로만 식량을 배급해도 왕실의 재정이 바닥나곤 했던 것이다.

 

  “ 허허허 올 겨울부터는 한시름 놓고 겨울을 보낼 수 있겠습니다. 전하.”

 

  하워드와 마찬가지로 카를의 재위시절부터 지금까지 재정을 맡아 관리해온 로베르트 공작이 편안하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루이스도 항상 큰 걱정이었던 재정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 한결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워드가 보내온 서신에 따르면 산드리아 귀족 대부분이 메르헨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세금 납부를 끝낸 상태라 이것을 어떻게 운반할지가 주로 논의되었다.

 

  큰 근심거리는 해결되었지만 그렇다고 회의시간이 짧아지는 것은 아닌지라 결국 점심식사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다. 루이스는 대신들의 꼬르륵거리는 뱃속 알람을 듣고서야 그들을 회의에서 놓아주었다.

 

  시종장에게 간단한 식사를 들이라 명한 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정원을 거닐고 있는 엘레아의 반짝이는 백금발의 머리카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루이스는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에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엘레아가 에리카와 담소를 나누며 거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루이스의 입 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올라갔다.

 

  루이스는 창가에 기대어 서서 엘레아가 정원을 거니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어느 곳으로 향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루이스는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제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보았다.

 

  요동치듯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의 움직임이 손바닥으로도 전해졌다. 가슴이 두근거려서인지 마음이 아리고 아픈 느낌이 들었다.

 

  ‘휴......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

 

  점심을 들고 집무실에 들어온 궁인은 간단하게 차려온 식사를 원탁 위에 올리며 창가에 기대서있는 루이스를 힐끔거리며 훔쳐보았다.

 

  궁인은 입궁한지 5년이나 되었지만 루이스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본 것은 처음이라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집무실에는 자신과 루이스 단 둘 뿐이라 이 사실 만으로도 흥분되었다.

 

  ‘전하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뵙다니! 메리앤과 안나에게 자랑해야지.’

 

  궁인은 간단한 식사를 원탁에 올리고는 루이스에게 최대한 나긋하고 애교스럽게 아뢰었다.

 

  “전하. 식사가 모두 준비되었나이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고맙구나. 일을 다 보았으면 물러가도록 하여라.”

 

  궁인의 나긋한 목소리에도 루이스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뒤돌아 선채로 대답하였다. 궁인은 루이스가 한번만 뒤돌아섰다면 하는 못내 아쉬움을 가진 채로 집무실을 나왔다.

 

  루이스는 하염없이 엘레아를 바라보다 엘레아와 에리카가 산책을 마치고 정원을 나서자 그제야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슴은 두근거리고 방금 전까지 바라보았던 엘레아의 얼굴이 벌써 아른거렸다.

 

 

 

 * * *

 

 

  아얀느 평야를 달리던 레오는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제 산드리아를 떠나 쉬지 않고 말을 달려 오늘 국경을 통과해 메르헨 땅으로 들어선 것이다.

 

  메르헨과의 전투 때 전신에 부상을 입었지만, 타고난 체질이 강골이라 그런지 한 달 만에 하루 종일 말을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을 하였다. 비록 침상에서 누워 지내는 시간동안 매일 손에 잡았던 검을 잡지 못해 예전의 날카로운 검술실력은 아직 회복하질 못하였지만.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한다! 모두 준비하도록.”

 

  레지덴 궁까지의 인솔을 맡은 메르헨의 기사가 소리치자 모두 일제히 말에서 내려 야영을 준비하였다. 레오 역시 자신의 말에서 내려 능숙하게 제 손으로 막사를 치고 침낭을 준비하였다.

 

  야영 준비를 마치자 시종들이 모여 간단한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이들이 아니기에 그들이 준비한 식사는 산드리아에서 싣고 온 빵과 구운 고기와 버섯이 전부였다. 귀족들의 평소 식사와 비교하자면 형편없었지만 급히 이동 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훌륭한 편이었다.

 

  시종들은 저녁식사를 받아 자신의 주인들의 막사로 가서 올리고 저희들끼리 모여앉아 남은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타닥거리는 모닥불 앞에 모여앉아 시종들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로빈, 그나저나 레오 대장께서는 왜 메르헨으로 가시는 거야? 이제 대장께서는 라키스트 가문의 가주이시니 직접 가실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러게. 우리 제르미 도련님께서는 메르헨으로 가기 싫다며 후계자 자리를 동생에게 넘겨주겠다며 난리를 치셨다니까. 아버님이신 알베르 후작께서 겨우겨우 달래서 메르헨으로 보내시는 거라고.”

 

  이들은 산드리아의 명망 있는 귀족 가문 후계자들의 시종들이었다. 루이스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가문의 후계자를 메르헨으로 보낼 것을 명하였다. 산드리아 통치의 조언자 역할 겸 반란 방지를 위한 인질이었다.

 

  자신의 아비가 산드리아에서 반란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목숨이야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고향을 떠나 자신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적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입장이었지만 레오는 달랐다. 아버지가 조프리와 함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라키스트 가문의 가주는 레오가 되었다. 이치대로라면 메르헨으로 향해야 할 사람은 가주인 레오가 아닌 동생인 다니엘이었어야 한다.

 

  그러나 레오는 어머니와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메르헨으로 떠나기를 자청하였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으시고, 무표정하시니 그 속내를 어떻게 알겠어.”

 

  레오의 시종 로빈이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며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몸짓을 취했다. 사실 레오를 오랜 기간 동안 모셔온 로빈은 레오가 직접 메르헨으로 향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 엘레아 공주님 때문이겠지.’

 

  산드리아 내에서도 전쟁의 날 엘레아와 레오가 왜 함께 있었는지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나돌았고, 어차피 메르헨에 도착하면 밝혀질 사실이긴 하지만 로빈은 제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가장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내가 가슴 속 깊이 남몰래 간직한 감정을 가볍게 떠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로빈이 아무 대답을 않자 시종들의 대화 주제가 레오에서 엘레아로 옮겨졌다.

 

  “메르헨에 가게 되면 엘레아 공주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걸까? 보면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우시다며.”

 

  “내가 13살 때 로렌왕비님을 직접 뵌 적이 있었지. 왕비님께서 엘레아공주님을 가시셨을 때 바네사 공작부인께서 초대하셔서 오신 적이 있거든. 배가 부르셨지만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날 만큼 아름다우셨어. 엘레아공주께서도 왕비님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으셨겠지?”

 

  시종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제 나라의 공주를 궁금해 하며 식사를 마쳤다.

 

  로빈은 자신의 식사를 마치고 레오의 식사그릇을 치우기 위해 막사로 향했지만 이미 레오가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뒤였다.

 

  “어휴! 또 직접 치우신 거예요? 이런 일은 제가 하게 그냥 두세요.”

 

  로빈이 볼멘소리를 하자 천으로 검을 닦고 있던 레오가 아무런 말없이 한번 싱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엘레아가 메르헨으로 떠난 뒤로 안 그래도 별로 없는 말 수며 표정변화가 더욱 없어진 레오였는데, 간만에 보인 미소에 로빈은 방금 전 볼멘소리를 하던 자신을 잊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공주님을 만나러 가시는 길이니 기분이 좋으신 게지. 도대체 사랑이 뭐 길래 바라만 보아도 그렇게 좋은 걸까.’

 

  로빈은 시종들의 막사로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 기분 좋게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로빈은 간단한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아침 식사는 시종들끼리 조를 짜서 준비하기로 하였는데 오늘이 로빈의 순서였기 때문이다.

 

  공작가문과 로벤스 백작가문의 시종과 함께 수프를 끓이고 빵을 준비한 뒤 나머지 시종들을 깨웠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 바로 말을 달리기 시작해서 오후에는 아얀느 평야를 지나 메르헨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빈텐마흐 산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소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말을 타고 달리기도 쉬운 편이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빈텐마흐 산에 오르기 시작하자 저 멀리 거대한 레지덴 궁이 눈에 들어왔다. 시종을 비롯하여 산드리아의 귀족 도련님들까지도 비체트 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크기에 놀라 눈을 떼질 못하였다.

 

  레오 역시 레지덴 궁을 바라보며 눈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곳 어느곳 엔가 엘레아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잘 지내시고 계신 걸까.’

 

  무엇보다도 엘레아가 낯선 땅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엘레아의 기나긴 유폐생활을 지켜봐온 레오였기에 그녀가 혼자 지내면서 느낀 절망감과 고독감, 외로움과 분노의 감정을 고스란히 함께 느껴 온 레오였다.

 

  엘레아는 검술 훈련을 하는 와중에도 책을 읽던 와중에도 종종 레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네가 있어서 버틸 수 있어.’

 

  엘레아의 이 말은 그저 엘레아를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도록 레오의 마음도 버티게 해주었다.

 

  이제 자신이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단 한명의 사람도 없는 곳에서 엘레아가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가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레오였다.

 

  오늘은 결국 산을 모두 넘지 못하고 빈텐마흐 산에 자리를 잡고 막사를 준비하였다. 이제 내일이면 레지덴 궁에 도착할 것이다.

 

  레오는 쉽사리 잠이 오질 않아 자신의 막사 앞에 걸터앉아 멀찍이 보이는 레지덴 궁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매일 밤 반짝이던 별빛인데도 오늘따라 더욱 가슴이 두근거리는 -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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