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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엘레아
작가 : 마리장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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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만찬장
작성일 : 17-07-31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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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루이스는 아침식사를 함께 하자며 궁인을 보내왔다.

 

  이제 아침식사를 같이하는 것은 익숙해져서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향하던 엘레아였지만 오늘 아침만큼은 루이스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루이스는 엘레아의 흐느낌이 모두 잦아들 때까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커다란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따스해서 엘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더욱 마음을 놓고 울어버렸다.

 

  한참을 울다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다시 얼굴을 마주했을 때에도 지금처럼 민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또렷하게 이성이 돌아온 상태에서 다시 루이스의 얼굴을 마주하자니 너무 부끄러워 몸이 아프다는 핑계라도 대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엘레아는 마가렛 손에 이끌려 루이스에게로 향했다. 엘레아는 루이스의 얼굴을 최대한 마주하지 않고 – 특히 눈을 마주치지 않고 – 식사를 마치기 위해서 시선을 음식에 고정한 채 식사를 하였다.

 

  루이스 역시 말없이 식사를 하다가 식사를 마치고 궁인들이 차와 디저트를 내오자 겨우 말을 꺼내었다.

 

  “오늘 산드리아 통치 자문을 위한 가문의 후계자들이 도착을 한다. 모두 내게 충성서약을 마친 자들이지.”

 

  그럼에도 엘레아는 간단하게 ‘네’라고 대답한 채 여전히 찻잔을 응시하고 있었다.

 

  엘레아에게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루이스의 정책이 귀족들의 호감을 얻기 충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미 충성서약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새삼스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오늘 도착하는 자 중에는...... 레오 라키스트 역시 포함되어 있어.”

 

  ‘레오’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엘레아가 고개를 들어 놀라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레오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저녁 먹기 전에는 도착할거야.”

 

  “미리 말해두지만 산드리아에서 도착한 일행과의 만남은 절대 안 돼. 아직 반란의 위험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왕족인 너와 만나는 것은 허락 할 수 없어. 그러니 나에게 그를 만나게 해달라는 청은 하지 말거라.”

 

  루이스는 다정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국왕으로서는 냉철하였다. ‘

 

  엘레아는 루이스를 많이 봐온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그의 성품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있었다.

 

  막 정복을 끝낸 나라의 왕족인 자신과 귀족가문의 후계자가 만난다면.... 그 자체로도 반란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오를 단 한번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 단 한 번이면 되.’

 

 

 * * *

 

 

  레지덴궁은 산드리아에서 도착하는 일행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였다. 이제 메르헨에 정식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귀족이기 때문에 예우를 갖추어야 했고, 또한 서신이 아닌 정식으로 충성을 서약하는 날이기도 한지라 준비할 것이 많았다.

 

  시종장인 베런이 충성서약 의식을 준비하였고, 사라 대공 부인이 입궁하여 만찬준비를 돕고 있었다. 에리카는 어머니에게 소환되어 같이 궁에 들어와 만찬준비를 돕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에리카의 왈가닥 같은 성격이 걱정스러웠던 사라 대공 부인이 꽃꽂이며 자수를 공들여 가르친 덕분에 에리카의 꽃꽂이 솜씨는 제법 그럴듯했다.

 

  오늘도 입궁하여 만찬에 사용될 꽃 장식을 손수 만들다가 궁인을 통하여 루이스가 엘레아를 위한 온실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궁인들 사이에서 루이스와 엘레아의 소식은 레지덴 궁에서 초미의 관심거리였다. 게다가 엘레아가 루이스의 부름 외에는 도통 자신의 처소에서 나오질 않아 본궁의 궁인들 외에는 엘레아의 얼굴을 본 사람도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엘레아의 미모에 대한 소문과 관심은 날로 더해가고 있는 차였다.

 

  에리카는 궁인들에게 온실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우리 전하 제법이신걸.’

 

  꽃꽂이 준비가 마무리 되어갈 때 쯤, 사라 대공 부인이 에리카를 찾았다.

 

  “이제 다 되었느냐? 일행이 도착했다고 하는구나. 이제 의복을 갈아입고 만찬준비를 하거라.”

 

  레지덴궁의 중앙 광장은 방금 전 도착한 산드리아의 귀족들도 소란스러웠다. 그들은 레지덴궁의 크기에 압도되어 여기저기 살펴보느냐고 정신이 없었다.

 

  시종장이 베런이 그들은 레지덴궁 서쪽 궁에 마련된 각자의 처소로 안내해주었다.

 

  “곧 본궁으로 전하를 뵈러 갈 것이오니 의복을 갈아입고 준비하고 계시도록 하십시오.”

 

  긴 여정은 아니었지만 쉴 새 없이 말을 달려 왔기에 대부분은 지쳐보였지만, 레오만은 피곤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레오는 의복을 갈아입고는 창문을 활짝 열어 레지덴궁을 살펴보았다.

 

  ‘공주님은...... 어느 곳에 머무르고 계신 것일까.’

 

  아직 엘레아가 있는 처소조차 모르지만 같은 장소에 머무르는 사실만으로도 레오는 마음에 안정감이 생겼다.

 

 

 * * *

 

 

  해가 어둑해지는 시간이 되자 산드리아의 귀족들의 충성 서약의식이 진행되었다. 루이스는 대관식 때와 같은 의복을 입고 왕관을 쓴 채 빌로험프가의 장검을 들고 대연회장의 자리에 앉았다.

 

  산드리아의 3대 귀족가문 중에서 조프리의 외가인 멜리아 가문과 왕비 세실리아의 가문인 로베른 가문은 멸문을 당하여 오직 라키스트 가문만이 남게 되었다.

 

  가문의 작위와 봉토 등을 고려하여 충성서약 순서를 정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레오가 가장 먼저 서약을 하게 되었다.

 

  레오는 뚜벅뚜벅 루이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킨 남자.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은 남자.

  공주님을 앗아간 남자.

 

  그러나 공주님을.... 살려준 남자.

 

  레오는 루이스가 적이자 동료처럼 느껴졌다. 그런 루이스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서약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레오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사로서의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러자 루이스가 빌로험프가의 검을 레오의 어깨에 올려 라키스트 가문에게 메르헨 공작의 작위를 수여하였다. 작위를 수여받자 무릎을 꿇고 있던 레오가 일어나 루이스에게 다시 인사를 하였다.

 

  레오의 차례가 끝 난 뒤 다른 귀족들이 차례로 나아가 충성을 맹세한 뒤 작위를 하사받았다. 루이스가 감사의 인사와 은근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충성서약 의식을 마무리 되었다.

 

  레오는 서약을 마치고 만찬을 위해 이동하는 와중에도 엘레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려 궁을 살펴보았다. 안전하게 잘 있는 것인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급했지만 어디에서도 엘레아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엄중했던 충성서약 의식과 달리 만찬은 흥겨운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루이스가 잔을 들어 산드리아의 귀족들에게 다시 한 번 겸손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고, 귀족들 역시 루이스의 환대와 포용력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레오가 건배제의를 할 차례가 되었다.

 

  레오는 와인을 가득 채운 잔을 들고 루이스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엘레아 공주님은 무사하신 겁니까?”

 

  순간 화기애애했던 만찬장의 분위기가 찬물을 뿌린 듯이 냉기가 돌았다. 누군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도 들려왔다.

 

  음식을 나르는 궁인들조차도 레오의 질문에 당황하여 눈이 커졌지만 이들은 짐짓 태연하게 가져온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총총거리며 만찬장을 빠져나갔다.

 

  레오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루이스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루이스 역시 레오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자 자리에 있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도 레오는 흐트러짐 없이 자리에 서서 루이스는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방금 충성서약을 마친 나의 신하가 멸문한 왕조의 왕족을 찾는 것을... 내가 어찌 생각해야 겠소?”

 

  루이스의 분노가 느껴지는 낮은 목소리에 곁에 앉은 산드리아의 귀족이 급하게 얼버무렸다.

 

  “ 전하! 달리 생각 마옵소서. 라,라키스트 공작은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 물은 것뿐이오니 달리 생각하지 마옵소서.”

 

  루이스에게 변명을 한 귀족이 레오를 자리에 억지로 자리에 앉히려 하였지만 레오는 꿈쩍 않고 서서 루이스의 답을 기다렸다.

 

 마주한 두 남자의 눈빛이 불꽃 튀듯이 마주하였다.

 

  루이스는 우직하고 충직스러운 기사 레오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 눈빛으로 지난 수년간 엘레아를 바라보았을 것을 생각하니 또한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사로서 너의 충심을 받고 싶지만...... 곁에 두고 싶지는 않구나.’

 

  “엘레아 공주는 본궁에서 지내고 있소. 신변의 문제는 없으니 그대가 걱정할 것은 없소.”

 

  루이스는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한 번에 들이킨 뒤, 레오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로 엘레아의 처소를 알려주었다.

 

  엘레아의 신변을 확인한 레오는 안심한 듯이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만찬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싸늘하였다. 레오 다음 차례로 건배제의를 할 산드리아의 귀족이 어찌 할 바를 몰라 쭈삣거리자 루이스가 친히 다시 한 번 건배제의를 부탁하였다.

 

  “몬디아 백작. 다음 건배제의를 해주시게.”

 

  루이스가 미소를 보이며 부탁을 하자 몬디아 백작은 힘차게 건배제의를 하였고 다시 만찬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레오 역시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잔을 들고 건배를 한 뒤 술을 마셨다. 메인 요리로 나온 오리고기 요리를 썰어서 입에 넣는 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어머니를 도와 주방과 만찬장을 오가며 손을 돕던 에리카는 방금 전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았다. 오라비인 알렉산더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느낌의 우직함이 느껴지는 사내였다.

 

  ‘뭐지, 저 곰처럼 미련한 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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