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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엘레아
작가 : 마리장
작품등록일 : 2017.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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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그 자는..... 무엇이더냐?
작성일 : 17-07-31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5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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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에게서 레오가 오늘 메르헨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은 엘레아는 하루 종일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아침 식사 후 평소와 같이 도서관으로 향하여 책을 꺼내 읽었지만 눈으로 글자만 읽고 있을 뿐, 머릿속에는 레오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다친 곳은 무사히 다 회복 하였겠지?’

 

  루이스는 자신에게 레오를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이미 자신에게 하였다.

 

  비록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하며 많은 것을 베풀어주고 있지만 ‘국왕’ 루이스에게까지 그 친절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산드리아에서 가장 큰 병력을 지니고 있는 가문의 가주와 왕족인 자신이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좋았다. 반란을 모의하였다고 모함을 받기라도 한다면 레오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 머릿속으로는 모두 이해가 되고 명쾌하게 답이 떨어지는 일이었지만 - 레오를 지척에 두고 만나지도 못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 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으면서... 레오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거야.’

 

  계속하여 골똘하게 생각하던 엘레아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어버렸다. 그동안은 궁 안의 시선이 신경 쓰여 혼자서 처소 밖을 나가는 일을 삼갔지만 오늘만큼은 처소가 답답하게 느껴져 자꾸 한숨이 나왔다.

 

  마가렛은 엘레아가 도서관에서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며 자꾸만 한숨을 짓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자신도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벌써 한 달가량 엘레아를 보필해 온 마가렛은 요즘 들어 엘레아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다. 늘 한결 같이 굳은 표정이라 아무도 심경의 변화는 모르고 있었지만.

 

  처음에 루이스의 명으로 엘레아를 보필하러 이곳에 왔을 때는 솔직한 심정으로 엘레아가 싫었다.

 

  멸망한 나라의 왕족이면 죽어 마땅해야 한데, 루이스가 살려주어 목숨을 부지하였고, 게다가 떡하니 메르헨 왕족의 처소까지 차지하고, 왕의 유모였던 자신의 보필까지 받다니.

 

  마가렛이 무엇보다도 엘레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이 모든 것을 베풀어준 루이스에 대한 고마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마가렛에게 루이스는 자신이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 아들이자, 존경하는 이 나라의 군주였다. 마가렛에게 루이스는 종교 그 자체의 존재였는데, 엘레아는 루이스에 대하여 감사함도, 존경심도, 예의도 없었다.

 

  그러나 한 달의 시간을 같이 지내자 마가렛도 엘레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엘레아는 오만방자하고 무례한 공주는 아니었다. 오랜 유폐생활 덕분에 대부분의 일은 궁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는 편이었고, 의복이나 식사 등으로 까다롭게 구는 일도 없었다.

 

  더군다나 루이스가 이 정도의 관대함을 베풀고 있는 상황에서 보통의 여인이라면 자신의 미모와 국왕의 총애를 무기로 오만방자하게 행동할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지나치게 몸을 사렸다.

 

  다만 아직 루이스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의 마음은 없는 것 같지만 – 마가렛은 한 달을 같이 지내며 엘레아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에게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들이자 존경하는 국왕이지만, 엘레아는 루이스를 제 나라를 멸망시킨 원수로서 처음 만난 것이니.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는 엘레아에게 마가렛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공주님. 답답하시면 산책이라도 나가시지요. 이렇게 처소에서만 지내시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마가렛의 말에 엘레아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에리카 공녀가 만나도 될까요? 오늘 입궁하였을 듯싶은데.”

 

  그 동안 에리카가 엘레아의 처소를 종종 방문하여 정원 산책도 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지만 – 엘레아가 먼저 에리카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이지요. 공녀께 기별을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마가렛 부인.”

 

  엘레아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대답을 하자 마가렛의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 보는 엘레아의 미소였기 때문이다. 아주 희미하긴 했지만.

 

 

 * * *

 

 

  에리카는 엘레아 처소의 궁인으로부터 만나기를 요청한다는 전갈을 받고는 내심 기뻤다. 그동안 항상 찾아가는 쪽은 자신이었고, 엘레아가 먼저 만나러 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원에 처음 산책을 나갔을 때 아직 메르헨 사람과 친분을 나누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던 터라 에리카는 내심 엘레아가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는 터였다.

 

  만찬을 모두 마치고 저녁 늦은 시각 엘레아의 처소로 향하던 에리카는 걸으면서도 만찬장에서 보았던 ‘레오 라키스트’라는 자가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왜 공주님을 찾는 걸까?’

 

  엘레아는 그 동안 산드리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고, 에리카 역시 민감한 부분이라 생각되어 묻지 않았다. 그래서 에리카는 레오에 관하여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에 더욱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공주님. 에리카 클레인 공녀 드셨습니다.”

 

  엘레아가 에리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만찬장에서 어머니를 돕고 오는 길인가요? 피곤하시렌데 괜한 초대를 했나봐요.”

 

  “아니에요. 공주님께서 찾아주셔서 기쁘답니다.”

 

  에리카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엘레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공주님. 오늘 산드리아에서 귀족들이 도착하여 전하께 충성을 서약한 것을 알고 계시지요?”

 

  엘레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리카가 다시 물었다.

 

  “오늘 서약을 한 뒤 만찬을 하는 중 레오 라키스트라는 자가 전하께 공주님의 신변을 물었답니다.”

 

  에리카의 입에서 레오의 이름이 나오자 엘레아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말을 경청하였다.

 

  “전하께서 그 질문에 매우 심기 불편해하셔서..... 한 동안 만찬장의 분위기가 썰렁했어요. 그 자는 누구인가요? 혹시.... 공주님의 정인인가요?”

 

  “레오는.... 저의 유일한 기사이자, 스승이자, 오라비입니다. 제가 산드리아에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엘레아는 비교적 담담하게 유폐생활 동안 맺어온 레오와의 관계와 루이스와 얽힌 일까지 모두 말해주었다. 자결하려던 자신이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네가 죽는다면 레오 라키스트도 즉시 처형하겠다.’는 루이스의 협박 이었다는 것 역시. 그리고 오늘 아침 루이스가 레오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은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였다는 것까지도.

 

  엘레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에리카는 왜 루이스가 왜 그렇게 불편한 심기를 내비췄는지 이해가 되었다.

 

  “공녀. 전하께서 레오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은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레오가 레지덴 궁에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떨쳐지질 않네요. 그래서 공녀께... 어려운 부탁을 드리려 고해요.”

 

  엘레아는 에리카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 미안해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떼어 힘겹게 부탁의 말을 건네었다.

 

  항상 에리카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자신이 먼저 부탁하는 것이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 언젠가는 이 염치없음을 갚을 날도 있을 거라 믿으며.

 

  “전하께서 왜 레오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시는지 잘 알고 있어요. 레오는 산드리아에서 가장 큰 병력을 소유한 가문의 가주이니 왕족인 저와 만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반란의 불씨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시겠죠.”

 

  에리카는 루이스가 이들의 만남을 저지한 것은 아마 반란을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엘레아를 보살피고 돌봐 온 – 루이스 입장에선 기분 나쁜 - 사내를 또 다시 만나는 것이 싫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께 공녀와 함께 레오를 만나겠다는 요청을 드려도 될까요? 만약 저와 레오가 불손한 대화를 나눈다면 공녀께서 모두 전하에게 고해주세요.”

 

  에리카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긴 하지만 단 둘이 만나는 것만 아니라면 루이스가 굳이 엘레아가 이토록 바라는 일을 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승낙을 하였다.

 

 

  * * *

 

 

  “마가렛 부인. 지금 전하를 만나 뵈러 가야겠어요.”

 

  오늘은 특별히 치장에 신경이 쓰였다. 그동안은 자신이 루이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전혀 신경이 쓰이질 않았던 엘레아였다. 원래 화장하고 꾸미는 일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여태 누군가에게 더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유폐 생활 중에는 늘 평민들이 입는 아무 장식이 없는 드레스에 아무런 머리 장식도 하지 않고 지냈기에, 화려한 드레스와 장신구가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왕실에서 지내 온 마가렛은 엘레아의 행색은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전하를 뵈러가면서 저런 차림이라.

 

  그래서 늘 마가렛에 손에 이끌려 드레스를 입고 치장을 해온 엘레아였지만 오늘만큼은 – 루이스에게 자신이 아름답게 보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아름다운 얼굴과 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지긴 했지만. 조프리의 눈을 피해 힘겹게 배운 검술이나 제왕학 따위는 지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엘레아는 준비를 마치고 루이스가 머무르는 본궁으로 향하며 사뭇 긴장이 되었다. 엘레아가 본궁에 도착하자 시종장인 베런이 서재로 안내해 주고는 루이스에게 고하였다.

 

  “전하. 엘레아공주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던 루이스는 엘레아의 갑작스런 방문에 깜짝 놀랐다. 엘레아가 먼저 찾아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엘레아가 먼저 자신을 찾았다는 말에 루이스는 가슴이 뛰다가 이내 차갑게 가라앉고 말았다.

 

  ‘역시 그 부탁을 하러 온 것이겠지.’

 

  아마 그녀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레오를 만나고 싶다는 청을 하러 왔을 것이다. 만찬장에서 만난 레오를 떠올리자 루이스는 더욱 기분이 가라앉았다.

 

  남자 루이스의 본능이 강렬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 레오는 엘레아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엘레아를 만나기 이전에 그 둘이 이미 나누었을 많은 시간과 마음들이... 무엇보다 싫었다.

 

  게다가 엘레아는 결국 레오를 죽이겠다는 자신의 협박 때문에 자결의 결심을 취소하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엘레아의 마음도 의심이 되었다. 이전에는 엘레아에게 레오는 그저 은인일 뿐, 정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루이스는 한숨을 쉬듯 베런 에게 엘레아를 들이라 명하였다.

 

  서재의 문이 열리고 엘레아가 들어서자 눈치 없는 루이스의 심장이 또다시 요동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늘따라 더 아름다웠다.

 

  엘레아는 막 목욕을 마치고 온 상태였기에 방금 전 목욕을 마친 여인의 향기가 루이스를 더욱 달아오르게 하였다. 게다가 항상 자신을 차갑게만 바라보았던 엘레아의 은색눈동자에 오늘은 다른 감정이 담겨있었다.

 

  “전하를 뵈옵니다.”

 

  인사를 올린 엘레아가 루이스의 앞에 앉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루이스가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전하께서 비록 요청하지 말라 분명 말씀하셨지만.....명을 어기고 한번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루이스는 엘레아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언지 알기에 눈을 꾹 감아버렸다.

 

  “레오 라키스트를...... 만나게 해주세요.”

 

  엘레아가 자신과 레오가 만나는 것이 의심이 된다면 믿을만한 다른 사람을 동석해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두 눈을 꾹 감고 있던 루이스가 눈을 떠 차가운 눈으로 엘레아를 바라보았다.

 

  “너에게 레오 라키스트는...... 도대체 무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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