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소년과 나무
천희국(天熙國), 하늘이 비추는 빛의 나라.
하늘님이 축복 해준 인간들과 신령, 신수가 공존한 나라이다. 이곳은 걱정과 근심이 없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에 그렇고, 그 내면에는 감추고 있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수도 화무량(華舞量)의 ‘옥빛 숲’에는 푸른 청(靑) 매화나무가 심어있었다. 오직 하나뿐이라 그 존재가 신비롭고도 유명했다. 황궁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일반 양민들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름 모를 화가의 작품으로 세상에 널리 퍼져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 나무는 딱히 부르는 이름이 없었다. 지어주는 누군가도 없었다. 단지 존재할 뿐이었다. 그 속에 깃든 신령이 있었다. 이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함께한 그 신령은 마치 작은 소녀와도 같았다. 무려 약87년을 살아왔다.
신령은 나무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었다. 날은 맑았는데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흑구름이 몰려와 시원스럽게도 내렸다. 컴컴한 하늘 아래, 철벅 철벅 물살을 헤치고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 매화나무에 멈춰 주저앉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으아...! 크아! 흐으 흐윽... 세향아... 세향아...”
그것 때문에 놀라 깨어난 작은 신령. 소년의 절규가 신령에게 절실히 다가왔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애절하고, 안타깝고, 가슴이 찢길 듯이 울고 있을까…. 한 이름만을 부르며 나무를 때리며 자학하고 있었다.
((아이야, 아이야. 왜 우는 거니?))
그러나 신령의 말은 전해지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소년의 한 쪽 눈은 붉은색이었다. 저주의 표식이었다.
결국 소년은 탈진한 듯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 이후로 종종 매화나무를 찾아오던 소년. 마치 나무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혼자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언제나 매번 슬프고 괴로운 얼굴이었다. 누군가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모두를 피해서 도망쳐왔다. 소년의 말에 신령은 언제나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감정이 생기고 만 것이다. 희망을 바라게 된 것이다. 소년이 웃을 수 있기를… 행복할 수 있기를… 곁에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이다.
점점 깊어져만 가는데… 어느 순간 소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신령은 나무의 옥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만이 흘러갔다.
아름다운 푸른 매화나무는 수명이 끝나가고 있었다. 곧 머지 앉아 죽게 될 것이다. 그 전에 꼭 소년을 다시 보고 싶었다. 찾아서 함께이고 싶었다. 작은 신령은 자신의 만든 대신령에게 잎사귀에 간절한 염을 담아 보냈다.
수 일이 지나고… 사슬에서 풀려난 신령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신령이 인간에게 정을 주다니... 어리석은 것.”
“아버지, 아버지… 제 소원을 들어 주세요….”
“바보구나, 아이야.”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
“그래. 무슨 소원이더냐?”
“제 소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