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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神靈)의 소원
작가 : 다홍나비
작품등록일 : 201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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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장
작성일 : 16-08-05     조회 : 359     추천 : 2     분량 : 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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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님의 신녀(神女)

 

 국력 ‘윤’황제 5년.

 천희국은 어둠으로 덮였다. 기세가 사납고 흉흉하며 온갖 재앙이 닥쳤다. 뭔가가 틀어진 듯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져 갔다. 드디어 하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건가하고 불안에 떨었다.

 

 젊은 황제께서 직접 나서서 제를 지내시니, 모두가 작은 희망을 품었다. 대무녀 ‘마야’가 이끌어 염원을 빌었다. 제사장 남(家)길수 또한 제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황제가 내력을 열자, 그가 양기를 이끌어내 기운을 부적에 불어넣었다.

 

 그리고 천둥과 폭풍 같은 바람이 지나치고, 어둠이 가시기 시작했다. 이슬비가 촉촉이 내리든가하면 불을 붙인 초가 흔들렸지만 결코 꺼지지는 않았다. 곧 잠잠해지고… 빛이 환하게 드리웠다.

 

 그러자 하늘에서 나타난 누군가.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소녀였다. 물색 머리칼을 지닌 아이는 눈을 감은 채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황제를 겨냥하듯이 해서 그녀를 안전히 안아들었다. 이내 눈은 떴는데 옅은 갈색 눈동자가 몽롱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입이라도 떼려고 하는데…

 

 

 “신녀다! 하늘님께서 보내신 신녀야!”

 

 “그냥 사람이 아니야! 하늘님의 아이야!”

 

 “만세! 만세!”

 

 

 소란스러웠다. 백성들은 그 광경에 환호하고 기뻐했다. 감축드리옵니다-! 대신들이 서둘러 엎드려 절을 했다. 소녀는 어리둥절했다. 황제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폐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야가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다시 자신의 포커페이스를 되찾고, 엄포했다.

 

 

 “그녀를 왕궁의 보호 하에 귀빈으로 모실 것이다! 백성들이여, 모든 것은 그대들의 노고 때문이다! 이제 천희국은 다시 되살아날 것이다! 축하하도다!”

 

 “신녀님, 인사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아... ”

 

 

 말이 안 나왔다. 입술을 떼어 뭐라고 말하려는데 나오질 않았다. 소녀는 답답하고 황망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고개를 저었다. 마야 역시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황제가 물었다.

 

 

 “말을 못하느냐?”

 

 “으...”

 

 “천희국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느냐?”

 

 “(끄덕끄덕)”

 

 

 백성들도 웅성웅성 거렸다. 그러나 누구도 탓하거나 하지 않았다. 고귀한 목소리 못 듣는 것이 대수인가, 구원해주는 걸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대신들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눈알 돌리는 꼴이 하찮은 황제였다.

 

 제를 끝내고, 작은 소녀를 안고서 가마에 올라탔다. 둥글둥글하고 커다란 눈이 티 없이 맑아만 보였다. 어떻게 저리도 깨끗하고 어여쁠까. 왠지 모르게 그리움까지 느껴졌다. 소녀는 손을 움직이며 신기해했다. 그렇게 놀다가 손가락이 황제의 뺨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신기하구나. 너도 내가 신기한 것이냐?”

 

 “(도리도리)”

 

 “그러면?”

 

 “(도리도리)”

 

 

 왠지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황제는 여자들에게 늘상하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귀엽구나, 아주 곱구나. 그러나 소녀에겐 통하질 않았다. 그는 그냥 뱉은 말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폐하, 잠시 그 분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왜 그러지?”

 

 “하늘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닙니까, 많이 놀라시고 이곳이 무서울 것입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알겠다. 잠깐, 네 이름이 무엇이냐?”

 

 “(도리도리)”

 

 “내게 올 때, 널 부를 호칭을 생각해 두마.”

 

 

 황제께서는 계룡전으로 향하셨다. 마야는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소녀를 모셨다. 거울 마냥 비취는 호수. 신을 모시는 제단, 왕궁의 색인 자주색 부적들. 엮어놓은 금줄, 가지각색의 초가 불을 밝힌다.

 

 

 “어떠한 예언도, 귀하신 말씀까지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송구합니다, 신녀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끄덕끄덕)”

 

 

 유리병에 담긴 고운 붉은 가루. 호수에서 물을 떠 휘휘 젓고는 소녀에게 건넸다. 궁금했지만 일단 마셨다. 콜록 소리까지도 나지 않았다. 이건 뭘까?

 

 

 “임시방편으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전달될 것입니다. 하늘님께서 저를 아껴주시어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사용할 때가 오늘이군요.”

 

 “((아... 아... 들리나요?))”

 

 “네, 들립니다. 참으로 고운 목소리십니다.”

 

 “((저는… 저는… 신령입니다. 옥빛 숲에 매화나무의 신령입니다.))”

 

 “어머!”

 

 “((대신령께서 저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그간의 이야기를 꺼내는 작은 신령. 마야는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과 절실함, 슬픔을. 왠지 아련하고 흐릿해져서 코가 찡해지기 까지 했다. 신령은 너무도 순수했다, 만약 이것을 악용하려는 사람이면 어떡하려고 다 털어놓았다. 자연이란… 투명하고도 싱그러웠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혹 폐하의 오른쪽 눈을 보셨나요?”

 

 “((네, 봤어요. 악령의 저주.))”

 

 “그걸 치유하실 수 있겠어요?”

 

 “((제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네요!))”

 

 “저는 마야. 황제폐하가 태어나셔서 장성하신 오늘까지 항상 바라보았지요. 그러나 누구나가 폐하를 위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랍니다. 대적할 사람들을 조심하면서 남은 인생 행복하시길 바라요. 제가 돕겠어요.”

 

 “((고마워요…))”

 

 

 신령의 투명한 구슬이 또르르... 그 모습이 지극히 인간답지 않고, 아름다워서...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었던 마야였다. 정신을 챙기고 지금 입은 옷보다 곱고 어여쁜 옷을 갈아입히려 침소로 향했다.

 

 색이 고운 물색머리칼을 나두고, 속곳을 입고 하나씩 하나씩 매끄러운 비단 옷을 입었다. 화사한 노란색 치마와 분홍색 저고리에 장신구를 달자, 권위 높은 집안의 규수 같았다. 이 정도면 폐하께서도 꿈뻑 죽으시겠지. 마야가 생각하기론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자, 폐하를 만나러 갈까요? 이제 효력은 떨어졌지만...”

 

 “(끄덕끄덕)”

 

 “폐하가 지어주신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신녀님.”

 

 “(끄덕끄덕)”

 

 

 궁을 하나, 둘 지나치고 다리를 건너 계룡전에 도달했다. 앞에선 비현과 지함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다가가고 있었다.

 

 

 “마야, 그 분이...”

 

 “네, 신녀님이십니다. 지함께서도 계셨군요.”

 

 “우리가 굳이 대화를 나누어야 하오?”

 

 “아니요. 그럼 그냥 닥치고 계세요.”

 

 

 ‘문오 지함’ 그는 황제의 호위무사이기도 하고, 천희국의 제일의 검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신을 믿지 아니하고 눈으로 확인된 것이 아니면 인정하거나 믿지 않았다. 마야와는 상극이었고 서로 으르렁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지함은 폐하께서 그녀를 곁에 두시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툭하면 그럽니까! 신녀님께서 놀라시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신녀님.”

 

 “(도리도리)”

 

 “……”

 

 

 고할까요? 내관의 물음에 비현이 끄덕였다. ‘폐하, 대무녀 마야와 신녀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들어오라는 승낙이 있었다. 지나치면서 지함은 아예 그녀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였다.

 

 문을 열리고, 상소문을 읽던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신령소녀가 먼저 내딛고 그 뒤를 마야가 따랐다. 가꾼 치장에 밝아진 아이모습이 그도 마음에 들었다. 특유의 여유롭고 자상한 미소를 띠고 반겨주었다.

 

 

 “어서 오라.”

 

 “(고개를 숙인다)”

 

 “괜찮으니 내 눈을 보라.”

 

 “(고개를 든다)”

 

 “어여쁘구나. 잘 어울리는 구나.”

 

 “(도리도리)”

 

 “피식- 어떻게 이름은 알아냈느냐?”

 

 

 마야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흠... 고심하는 황제폐하셨다. 가까이 오라고 손짓해서 조금 더 다가갔다. 마야는 입을 열었다.

 

 

 “모두를 물러 주십시오.”

 

 “왜 그래야 하지?”

 

 “꼭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 다들 물러나거라.”

 

 

 정적이 돌았다. 마야는 신령의 어깨를 감싸며 진심을 말하려 한다.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자신이 직접 해야만 했다. 곰곰이 듣던 황제. 그래도 달라질 게 없다고 판단한다.

 

 

 “옥빛 숲에서 왔다….”

 

 “그대로 두실 거라면, 가문까지 내려주시옵소서.”

 

 “뭐가 좋겠느냐.”

 

 “매화에서 화(華)는 어떠십니까?”

 

 “어떠하냐? 마음에 드는가?”

 

 “(끄덕끄덕)”

 

 

 또한, 옥빛 숲 매화나무… 신령의 정체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다. 왜인지 마야는 기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영롱하고 푸른빛이라…

 

 

 “네 너를 린(璘)이라 하겠다. 어떠냐?”

 

 “(끄덕끄덕)”

 

 “짐은 천희국의 황제 ‘윤’이다. 너는 신분과 위치가 상관이 없으니, 짐을 윤이라 불러도 좋다.”

 

 “(끄덕끄덕)”

 

 

 마야는 신령이 남은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단지 옥빛 숲에서 소년이었던 황제가 찾아왔던 나무의 신령이라고만 밝혔다. 왜 인간으로 분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황제는... 오래 전 친우를 만난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면서도 과거의 일을 알고 있다는 것에 화가 치밀고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화를 삭인다.

 

 황실의 체면과 명예, 명성을 되찾을 수 있는 패였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탈을 쓸 수 있었다.

 

 

 “고맙구나, 린.”

 

 “으... 으...”

 

 

 소년과 나무 신령은 그렇게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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